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
<말씀봉독> <등단 후 멘트> <찬송가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2절) (3절) 주님 내 몸,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기도> <설교말씀> <찬송가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中> 1. 상처와 절망의 골짜기를 메우라 그렇게 되려면 먼저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이 패인 골짜기들이 메워져야 합니다. 상처와 절망의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40장 4절에 보니,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라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려면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우리 마음 가운데 이 패인 많은 상처의 골짜기가 있어서 주님이 오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미래를 바라보고 꿈과 소망을 갖고 나아가라고 하는 그러한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삽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늘 꾸중 받던 경험, 학교 선생님에게 야단맞던 경험, 사업에서, 사업을 하다가 경영이 안 돼서 한때 큰 어려움을 겪고 파산에 이르렀던 경험,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움푹 파인 골짜기를 만들어서 절망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며, 그 상처에 매여 살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 젊은 자매님 한 분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그곳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곳에 가서 들은 얘기는 미국 전역에 있는 모든 병원에 있는 각종 환자들의 숫자를 다 합쳐놓은 숫자만큼 정신병원에 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큰 병원이 바로 도시 한복판의 울창한 숲 뒤에 있는 것을 몰랐어요. 매일 그 앞을 지나갔지만, 뒷길에 보니까 큰 병원이 있는데 그동안에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가득 입원해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미국 전역의 병원에 환자가 2천만 명 있으면 정신병원에도 2천만 명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과 닥터가 말하기를 “저 사람들은 과거에 받은 어느 상처에 붙잡혀서,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 상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겁니다.” 좀 나아질 만하면 또 과거의 상처를 들먹이고, 또 얘기하고,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그러한 약을 주고, 그러한 테라피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늘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과거에 상처받은 그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약 85%의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 그날 다 퇴원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과거의 상처에 딱 붙잡혀가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과거의 어떤 상처, 내가 남에게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억울한 일당하고, 이러한 일을 가지고 매여 산다면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스스로 그런 웅덩이를 파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파인 웅덩이는 메워야 되는 것입니다. 파인 채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파인 상태에서 더 파이고, 더 파이고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상처는 깊어가고 절망은 깊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더 이상 상처에 매여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치료받았습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 같은 은혜가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치료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아서 사람에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주님 앞에서 치료함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과거의 모든 상처가 치료함 받고, 내가 헤어나지 못하던 고통과 아픔에서 치료함 받고 회복되어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과거의 상처에 매여 사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요,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요. 늘 아버지는 술 취해 들어와 가지고 자녀들에게 욕을 하시고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가 30년 지났어요. 그런데도 그걸 못 잊는 거예요. 못 지워버리고 평생 갖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의 결혼생활도 불행해요. 왜? 자기 남편에서 아버지 모습을 자꾸 보니까 남편이 화를 내면 또 아버지가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좌절하고 그런 모습을 봅니다. 2. 교만의 산을 낮추라 둘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교만의 산을 낮춰야 됩니다. 독선과 아집과 교만의 산과 언덕을 낮춰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4절에 보니,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 산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이 교만을 깨뜨리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깨뜨리고, 또 깨뜨리고, 또 깨뜨리고, 또 깨뜨리고, 또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불편한 삶을 살 것입니다. 늘 부딪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예수를 더 믿은 사람이 처음 믿은 사람을 섬겨야 됩니다. 평신도 때보다는 제직을 임명받아 직분 자가 되면 더 많이 섬겨야 됩니다. 서리 집사 때 평신도를 섬겨야 되고, 안수 집사님 권사님이 되면 더 섬겨야 되고, 장로님이 되면 더 섬겨야 되고, 주의 종이 되면 더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질서입니다. 내가 늘 다스려야 되고, 늘 남들이 나의 말을 복종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 인생은 정말로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많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이 교만의 산들을 깎아 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교만했는지 “우리가 너희들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바리새인들이다.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도 하고, 철저하게 십일조도 드리고, 십계명 다 지켜 행한다. 너희들은 죄 덩어리가 돼서 방황하지만, 우리는 너희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생각하며 이렇게 교만이 꽉 들어찬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만이 존경받고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라는 분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을 따라가니까 그것에 저들의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였더라”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받아야 될 영광을 예수님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마다 문제가 생겨나고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분열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홀로 존귀 받아야 되는 이 교회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나타내고 “나! 나! 나!”를 강조한다면 우린 상처투성이로 살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낮아져 살면 인생이 더 편한데 대우받으려고 하니까 불편한 거예요. 저는 어디 회의를 가면 항상 말석에 앉습니다. 왜? 윗자리에 앉았다가 순서를 맡은 분이 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말석에 앉아요. 윗자리로 오라고 해도 저는 밑이 좋다고 극구 사양합니다. 여러분, 섬김은 훈련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깨어지고 낮아질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4장 11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조덕삼 장로님이 섬겼던 이자익 목사님은 경남 남해군 한 섬에서 태어나 너무너무 가난해서 김제에 있는 한 부잣집에 가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저를 머슴으로 써주세요” 하고 들어간 그 집이 바로 조덕삼 장로님 집입니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로부터 이 머슴이 예수를 믿게 되고 나서 주인을 전도합니다. 그래서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고 그곳에 세워진 교회가 금산 교회인데, 이 주인 조덕삼과 또 머슴 이자익은 나중에 둘 다 그 교회의 영수가 됩니다. 옛날 장로교회에서는 장로 직분 밑에 ‘영수’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을 도와서 교회 일을 하는, 요즘으로 말하면 우리 교회의 ‘안수집사’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다 영수가 되었는데 선교사님이 여러 교회를 돌아보셔야 하니까 교회를 비우실 때는 영수 직분을 받은 분이 대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머슴이던 이자익 영수가 설교를 잘했기 때문에 늘 이자익 영수가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1908년에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의 영수를 놓고, 조덕삼, 이자익 영수를 놓고 투표를 했는데 그만 머슴인 이자익 영수가 장로가 되고, 그리고 주인인 조덕삼 영수는 떨어진 거예요. 교인들이 걱정했습니다. ‘아이고, 주인 어른이 떨어지고 머슴이 붙었으니 이거 참 교회가 난감하게 생겼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떨어진 조덕삼 영수가 나와서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참 감사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봉사하기가 어려운데, 젊은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섬겨서 교회를 부흥시킵시다.” 할렐루야! 여러분 쉽지가 않습니다. 쉽지가 않아요. 현실적으로 사장님이 장로에 떨어졌는데 사원이 장로가 되면 참 힘든 겁니다. 그런데 이 조덕삼 장로님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자기 집 머슴인 이자익 영수가 장로가 되었을 때, “장로님!” “장로님!” 하고 교회에서 얼마나 잘 섬겼는지, 큰 감동을 주고 교회에 부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3. 굽어진 신앙을 바르게 하라 셋째로, 굽어진 것이 바로 펴져야 됩니다. 우리 굽어진 신앙을 바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4절은,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보니까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더라고요.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삐뚤게 봅니다. 매사가 부정적입니다. 그 입을 열면 늘 부정적인 얘기만 합니다.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원망 불평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 좋은 많은 자랑할 내용을 다 뒤에 두고, 백 가지 자랑할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문제점만 지적해서 이야기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견과 오해로 똘똘 뭉쳐있어가지고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그러한 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이 부분은 힘든 부분입니다. 잘 안 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안 변해요. 이 굽어진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잘 안 변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어려운 신앙생활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굽어진 것도 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성령의 불을 받으면 매사에 비판적인 것이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굽어진 인생을 살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바다에 돈이 2조가 들은 보물선이 빠졌다!” 해놓고 돈을 거둬들인 다음 그렇게 사기 친 사람이, 또 저쪽 싱가포르로 건너가서 가상화폐를 만들어가지고 투자자를 모아가지고 또 사기치고. 계속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굽은 마음이 그와 같은 절망적인 삶을 살고 부패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4. 험한 곳이 평지가 되리라 마지막 네 번째로, 험한 모습이 선하게 되어야 합니다. 본문말씀 4절에 보니,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주먹을 휘두르는 그런 거친 인생을 살아요, 입을 열면 욕을 해대는 데, 어떻게 사람이 저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할 수가 있나할 정도로, 막 거친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이 아이는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의 사랑의 손길을 통하여 이를 다 해 넣고 요즘은 활짝 웃습니다. 옛날에는 웃을 때도 입을 가리거나 입을 벌리지 못하고 웃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활짝 웃어요. 할렐루야!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야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철저히 회개해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나에게 그런 상처를 준 부모 이웃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참 불행하게도 알코올 중독의 자녀들이 절대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안 되겠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 그렇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닮아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그것이 심겨져버렸어요. 절대 나는 부인 안 때리겠다 했는데, 자기가 부인을 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아버지의 술 먹고 부인을 때리는 모습이 자기한테 유전이 되어 심겨져서, 그 DNA가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잘못된 DNA를 다 정리해버려야 됩니다. 다 청산해버려야 됩니다. 다 쓸어 내버려야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2절) <찬송가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2절) (3절)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