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정보]
조사일시 : 2013. 1. 10(목)
조사장소 : 전남 장흥군 장흥읍 남동리 남동마을 마을회관
제보자 : 김석중(남, 66세)
청중 : 0인
조사자 : 나경수, 서해숙, 이옥희, 편성철, 김자현
[구연상황] 조사자를 장흥조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김석중 제보자였다. 일단 지역사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으며, 기억력이 좋아 유년시절에 선친께 들은 이야기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첫 조사를 시작하면서 제보자를 만나 조사 취지와 배경을 설명드리고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하여 2주 후에 미리 전화를 드리고 제보자를 장흥문화원에서 다시 만났다. 제보자는 현재 장흥문화원에 실무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성품이 차분하고 더불어 함께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으며, 기억력과 언변이 좋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앞서 제보자가 명의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뒤에도 소송과 관련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어 조사자가 천관산에 대해 물으니 다음 이야기를 구연했다.
[줄거리]
천관산이 헐벗은 것은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배를 축조할 때 천관산의 나무를 베어다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순신장군이 명랑대첩 할 때 선단을 건조했는데, 이 때 천관산의 나무를 베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본문]
천관산이~ 다른 산에 비해서 나무가 없어요. 예~전부터 헐벗은 산이었어요.
@1조사자: 그니깐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 이유가 십이세기(12C) 때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그 배를 축조를 했는데, 선단을~. 관산읍 죽청리 마을에서 선단을 만들었어요.
인자 고거를(그것을) 뱃길로 합포~ 마산으로 가가지고. 어~ [잠시 생각한다] 이제 일본정벌을 했는데. 한번은 상륙도 못하고, 한번은 상륙해갖고 규슈 일대를 쓸어 버렸잖아요. 혹시 여러분들이 후쿠오카 여행을 가믄 후쿠오카 여행을 하믄 하코다끼 신궁이란 데가 있어요. 그 그건 천황 직속 신사거든요. 그라믄 그 앞에 편액이 이러케 있는 게 아니라, 이러케 있는데. 적국 항복!
그러케 돼있는 편액이 희안한 편액이 있어요. 근데 일본 열도에서는
외침이 별로 없었잖아요. 근세에서 인자 열강~ 서구 열강이 들어왔지만. 근데 제일 극박했던 때가 여몽연합군의 침공이었어요.
이 규슈 일대를 이차 상륙하고 쓸어버렸는데, 인자 그래가지고 나중에 유물들을 수습해가지고 인자 그때 선단에 들어왔던 배 같은걸 이러케 건져가지고 거~ 해져 있는 것을 그 하코다끼 신궁 앞에 보믄 긴 길죽한 돌이~ 이만큼 돌이 있거든요.
그 돌 앞에가 표지석이~ 표지 안내판이~
“이거는 전라남도 어…… [잠시 생각한다] 남방~ 장흥군 천관산에서 채취한 닷돌.”
그러고 보관돼있어요.
예, 그때 그 천관산 나무를 비어서(베어서) 선단을 맨드니라고 이제 천관산에 나무가 없다.
@1조사자: 네.
두 번째는 임진왜란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했다고 하잖아요.
@1조사자: 그렇죠.
백의종군할 때 최초로 발진한 기지가 회령진이었어요.
@1조사자: 회령진- .
예. 여그 회진. 지금도 산성이 지금은 산성을 복원해갖고 있어요. 근데 거기서 인제 그 장흥 의병들~ 장흥 민중들이 인제 노역을 하면서 천관산 나무를 베다가~ 충무공의 선단을 회진에서 만들었어요. 회령진에서~. 그래서,
“그 두 가지 설 때문에 천관산에 나무가 없어져 부럿다.”
그렇게들 얘기를 해요.
실제로 역사적으로 조명을 많이 하믄, 어디가 어쩌구 그란디. 머 저~ 해남 그쪽 제첩~ 그런 디가 머죠? 울돌목?
@1조사자: 예. 울둘목. 명랑해(대)첩!
명랑해(대)첩!
@1조사자: 예, 예.
명랑해첩에~ 주 선단을 건조한데가 회령진이죠.
@1조사자: 아 - 그렇구나.
예.
@1조사자: 좀 멀리~ 먼 것 같애도 안 머나보죠. [웃음]
안 멀죠.
지금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머 이런 해역이믄 머 멀지 않은 해역이죠.
그걸 인자 충무공~ 여그서 선단을 구축해가지고 전열을 정비해가지고. 인제 거기에 마하수, 정경달 머~ 이런 분들이 우리 장흥에 유명한 장수들이 그~ 인자 많이 활동 하고 막료로~ 충무공의 막료로 활동을 했었고. 또 장흥에 백성들이 많이 그쪽 수군으로 탑승해서 가서 희생을 많이 당했었죠.
@1조사자: 예.
[출처]: 한국학통합플랫폼(https://kdp.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