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장 17~36절/본질과 비본질 사이에(450/302)
세상의 모든 구조나 단체는 모두 자기 유익을 위해서 결성이 되고, 움직인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세워진 공동체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공동체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세워진 공동체다. 교회가 세상에서 칭찬을 받는 모습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1.사도 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방문하기 위해서 서둘렀고, 계획대로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예루살렘에 방문한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기쁘게 영접하였고,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났다(17~19).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이방의 교회들을 어떻게 세워가셨는가 말했다.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운 이야기를 듣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기에 어떤 시기와 질투도 찾아볼 수 없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에 교회는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릴 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이방인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가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에게 유대인의 전통을 따른 정결 예식을 할 수 있도록 했다(21~25). 유대인들은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맞으면서 틀린 말이다.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관습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모세를 배반하지 않았다. 모세의 율법은 예표로서 그리스도를 드러냈고, 바울은 실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리고 할례도 역시 바울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할례가 예표이지 그 자체가 구원하는 실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권면에 대해서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들인다(26). 바울이 이들의 권면을 받아들인 것은 진리를 외곡시키지 않는 문제이라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바울이었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지금까지 말했고, 그렇게 생활을 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여기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위하여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 아이의 수준으로, 어른에게는 어른의 수준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2.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결례를 행하고 있을 때 아시아에 온 사람들이 바울을 보고 오해하여 바울을 죽이자고 소리쳤다(27~29). 성난 유대 군중들은 바울을 둘러싸고 바울을 치고 돌을 던져서 죽이려고 하였다. 온 예루살렘이 소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천부장은 군인을 이끌고 나타나서 소동을 진정시켰다. 천부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물었으나 유대인들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했기 때문에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왜 유대인들은 바울을 보고 분노하며 소동을 일으키며 바울을 죽이려고 했는가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우월의식이 있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우월의식과 하나님께서 친히 율법을 주셨다는 것과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우월의식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분노한 것이다. 자신들의 자랑이며,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월하게 만든 그 성전과 율법과 선민의식을 짓밟았으니 자존심이 상하여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누구든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다. 유대교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든지, 아니면 유대교로 개종을 해서 할례를 받든지 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모든 유대인의 절차를 무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니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똑 같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차별과 구별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한다(롬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죄가운데 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한 죄란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꾸 죄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인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렇게 윤리적인 수준에서만 신앙생활을 점검하니까 예수 믿는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죄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선포하지 못한다.
죄란? 하나님만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서 이제는 이룰 수 없게 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죄로 인하여 나타난 현상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죄다. 그래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