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이 난리에 명품쇼핑, 국민 삶에 오물 쏟아"
전주 풍남문 시국기도회…빗속 700여 명 참가
"이 난리 치르는데 쇼핑하는 것 견디기 힘든 모욕"
"각자 도생 넘어 각자 도살…멧돼지 무리 쫓아내야"
이태원 유가족 "10·29와 같은 오송참사 일어났다"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17일 국민들이 수해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순방에서 귀국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과 그 와중에 명품 가게를 쇼핑해 파문을 일으킨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를 향해 "국민의 삶에 오물을 쏟아부었다"고 비판했다. 또 김건희 씨 일가 땅 인근으로 서울-양평고속도로 계획이 급변경된 것을 두고 "독재자의 탐욕과 사악한 권력자들의 타락"이라고 했다.
사제단은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14번째 월요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이곳은 지난 3월 20일 시국 미사와 사제단의 비상시국회의가 열린 자리다. 사제단은 9년 만에 열린 전주 풍남문 시국 미사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월요 시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시국기도회에는 80여 명의 신부와 40여 명의 수녀, 700여 명의 신도와 시민이 참가했다. 시민들은 우비를 입고 '일본 핵폐기수 해양투기 결사반대' '윤석열 퇴진' '일본영업사원 1호 윤석열 탄핵'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윤석열을 탄핵하라"를 외쳤다.
시국기도회는 민중가요 '광야에서'로 문을 열었다. 주례를 맡은 김훈 신부는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는 가운데 우리가 모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면서 "마태복음 26장 52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것을 이 미사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권을 향한 일침이었다.
김영수 신부(평화의전당 관장)는 수해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은 이웃을 향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고하자"고 말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김 신부는 강론 내내 정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 신부는 "대통령은 이런 난리를 치르는 나라와 국민들은 뒷전에 두고 아무 득도 없는 해외 나들이를 쏘다니면서 '내가 있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게 있나'라는 말을 지껄이고, (대통령 부인은) 그 와중에도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명품 가게를 들락거리면서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고 국민의 삶에 오물을 쏟아부었다"며 "나라의 미래를 나락으로 끌고가는 이 어리석고 무도한 자들이 벌이는 일들을 견디는 일은 상식을 지닌 국민이라면,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고 모욕이고 두려움"이라고 했다.
이어 "'각자도생'을 넘어서서 이제는 각자가 알아서 죽으라는 '각자도살'의 삶을 강요 당하는 험한 시절에 평안하시냐고 안부를 묻는 일도 쑥쓰럽다"면서 "우리가 사는 마을에 느닷없이 멧돼지 무리가 나타나서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면서 쑥대밭을 만들고 있다. 밭이란 밭은 다 파헤쳐서 곡식이며 먹을거리들이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가축들은 놀라서 달아나기 바쁘다. 이X들은 이제 동네 사람들을 들이받고 집안까지 뛰어들어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했다.
"더 무서운 일은 이 멧돼지들이 후쿠시마에서 원전 핵 오염수를 마시고 살았다는 것이다. 짐승이 아니라 괴물"이라며 "자신을 사람으로 착각하고 마을을 차지하고, 그곳에 괴물의 왕국을 만들려 하고 있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그런 일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마을을 파헤쳐서 쑥대밭을 만들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괴물들이 설치면 우리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며 "쫓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외쳤다.
또 김 신부는 이집트 파라오가 이스라엘인을 이용해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인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한 성경 내용을 인용해, 윤석열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며 "주가 조작과 땅 투기와 사기로 분탕질한 재산을 저장할 피톰과 라메세스 짓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고속도로를 틀어서라도 처갓집을 부동산 왕국으로 만들어주고, 핵 쓰레기를 모아서라도 원전 마피아들의 창고를 채워주고, 강대국의 발바닥을 핥아서라도 왕노릇과 독재의 권좌를 누리려하는 이 사람은 이 시대의 파라오"라고 했다.
이어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때만 해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가 돼서 상상도 못할 살육과 전쟁으로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리숙해 보이는 그를 앞세워서 권력을 잡았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그를 영웅으로 찬양하는데 앞장섰다. 그들의 행렬을 막지 않았고 히틀러를 그 시대의 메시아로 추앙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양심있는 사람들조차도 침묵이 미덕이 됐고 비겁한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이 비극을 지켜봤다"며, 마르틴 니묄러의 시 '침묵의 대가'를 읊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 그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 그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에게 왔을 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김 신부는 인권운동가이자 시민권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며 일생을 마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발언으로 강론을 끝맺었다.
"한 사람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평온하고 안락한 순간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논란의 시간에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좌절하여 용기를 잃고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14번째 월요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전주교구 사제단 중창단이 성가를 부르고 있다. 2023.7.17.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태원 유가족 "오송참사 또 반복…사람이 바뀌어야"
이날 시국기도회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 씨의 아버지 문성철 씨가 시국발언을 했다. 문 씨는 "어제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있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이 사고를 접하고서 똑같은 10·29가 일어났다고 지금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며 "이 대한민국은 청춘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씨는 "지금 오송 지하차도 유가족들은 10·29처럼 짜맞춘 결론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지 않나 의심하고 있다. 분명히 인재인데도 불구하고 시체 검안을 와서 사고처럼 경찰들은 하라고 한다"며 "저희도 똑같았다. 유가족들은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슬픔을 달래고 싶었지만, 뿔뿔이 흩어 놓았는데 이 또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태원 유가족들은 10·29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8개월 동안 죽지 못해 살면서 싸워왔는데, 또 이같은 사고가 나니까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이 정부는 159명의 희생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게 없다. 오늘 모 신문사 기자가 10·29 후에 오송 참사 사건이 났는데 어떻게 보냐고 물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이 바뀌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송 지하참사 사고가 났을때, 대통령실은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봤자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이 말은 이상민 장관이 사고나고 두세 시간 후에 한 말과 똑같다"며 "그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장관인가. 국민이 다 죽으면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문 씨는 "저희가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것은 제 아들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서인데,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진상규명이 되고 그것에 따라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바뀌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는 "아들을 잃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인생을 살아온 게 없어지고 사라진다"며 "앞으로 남은 인생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뜻을 같이하는 모든 분과 같이 끝까지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음 월요 시국기도회는 오는 24일 오후 7시 대전 대흥동 주교좌 성당에서 열린다. 사제단은 미사를 마친 뒤 행진을 할 예정이다. 우천시에도 행진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