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아들인 게냐?”
유명협은 만상 최고의 어른이자 결정권자인 도방 강쌍리의
암울한 듯 하면서도 기쁜 듯 한 호기심어린 목소리에 이마를
찡그렸다.
“아...참...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애 만들 틈이
어디있었다고!”
짜증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건성으로 대꾸하는
유명협을 보던 소산이 강부인 앞으로 나선다.
“저는 일광스님 밑에서 수학하던 ..소산이라 하옵니다!”
똘망똘망한 눈빛에 예사롭지 않은 귀한느낌을 풍기는 어린 녀석이
강부인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입적하신 일광스님께서는 단순한 낙천가에 비관적이며
방약무도하기 까지 한 아드님에게 부처의 깨달음을 전달하고저
저와 함께 3년 동안 수련을 하라 명 하셨습니다.”
대충 소산을 본전에 떠넘기고 슬그머니 일어서려던 유명협은
쥐콩만 한 녀석의 대답에 그대로 굳어들고 말았다.
“뭐라고.....!!!!!”
울그락 불그락 낯빛을 형형색색 바꾸는 아들의 얼굴을 보던
강부인은 대소를 터뜨린다.
“오호호호호호호호.........!!!”
“어머님!!!!!”
강부인의 호탕하고 놀림 섞인 웃음소리에 푸념을 하 듯 유명협이
소리친다.
“그럼...저 불효막심한 녀석이...원숭이 이자
돼지에...물귀신이고...
너는 고명한 법사이겠구나.....명안이로고...!!!”
역시 어린애다운 어눌한 어투지만 인사법이나 태도는 나무랄 바 없는
완벽한 양반의 것이었다.
살짝 례를 차리는 듯 한 굽은 허리를 펴며 그동안 그 누구도
이 여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올려다보는 한 쌍의 눈동자는 깊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젖살이 탱탱 오른 상태지만 뚜렷한 이목구비하며 호전적인
성격에 자연스레 주위를 압도하는 기상까지... 어쩌면 아직도
어미 치마폭에서 칭얼거려야 할 만큼 어린, 겨우 4~5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소산이 서유기를 들먹이며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아이답지 않는 대법함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깊다...저 어린것의 눈동자속이...마치 심연처럼 깊어
빨려들어 갈 듯 해 왠지 모를 서글픔까지 강부인은 느낀다.
* * *
평소 무서울 게 없던 유명협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광경이 거북하기 그지없었다.
짧은 다리에 아장아장 걷는 다섯살 난 꼬마 녀석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점포마다 쫓아다니며 전주들 속을
박박 긁어내리고 혼을 쏙 빼놓는 통에 전주들과 사환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디하나 틀린 지적이 없어 도방인 어머니의 신임또한 두터워
더더욱 열 받는 점주들이 불려 들어와 역정을 받아내며 울먹임을
게워내는 모습이 희극이었다.
오늘도 비단전의 전주 민병호가 꼬맹이의 놀림감이 되어
풀이 죽을 대로 죽어 어께가 빠진 체 본전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 유명협은 애처로운 마음에 어께를 툭툭 도닥이며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대행수 어른 ...어디서 저런 소악마를 데려 오셨습니까!?”
“... ...!”
“제가 도방어르신과 대행수어르신을 모셔 온지 몇 해 입니까,
하루아침에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를 저런 젖내 나는 어린것한테
능멸을 당하도록 하십니까?”
“내 민행수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님이랑 저 소악마녀석이
죽이 척척 맞아 제 자리 지키기도 급급합니다.”
말대로 더더욱 가관인 것은 이 꼬맹이가 너구리같은
전주영감탱이들을 손바닥위에 내려다 놓고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점포를 순회하며 지적한 것들이 시정되자 나날이 매상이
올라 두말 못하게 꽉 잡고 흔드니 녀석의 악명과 함께 도방의
신임 또한 더더욱 깊어만 갔다.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어진 녀석이 요즘 들어 부쩍 자신에게 까지
마수가 뻗어 옴을 느껴 노심초사 전전긍긍 하게 되는 유명협은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저 꼬맹이 손에 놀아나기 전에 선수를 쳐야 산다!
몇날 며칠 노심초사하던 유명협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본전 서기
민동주가 자리를 마주한다.
비단전 전주 민병호의 딸로 그 미모와 머리가 뛰어나 동래 젊은
남정네들이란 남정네들은 모두 자신의 발치에 두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오로지 유명협 하나만을 바라보며 그 수많은 사주단자를
거절해 봤건만 자신을 바라보는 유명협의 눈동자 안에선 전혀
남정네의 불길이 보이질 않아 애간장만 태우며 노처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주는 상큼한 미소를 머금으며 연신 비단전 전주이자 자신의
아버지 민병호를 도닥이는 유명협을 향해 말한다.
“이번엔 소녀가 나서 보지요....”
“... ...!”
동주는 상대가 꼭 유명협일 때 스스로를 소녀라 칭했다.
저 콧대 높은 노처녀를 상대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세삼 별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연상인 민동주의 질척한
눈빛을 감당하기엔 유명협의 성정이 너무 담백해 항상
온몸을 긁어대기 일수다.
“동주야 무슨 묘안이라도 있더냐?”
징징거리던 민병호가 동주의 말에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꼬마가 제 스스로 내상 일에 관여하지 않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듣고 있던 유명협과 민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집과 어머니를 그리워하기 마련이지요.
집을 생각나게 하면 제 발로 걸어나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 아이에게 어미를 떠올리도록 만들겠습니다.”
생긋 웃으며 말하는 동주에게 유명협은 부질없는 듯 한숨을 내쉰다.
“... ...!”
민동주의 득의만만한 표정과는 달리 유명협의 표정이 갈수록
구겨지며 콧방귀를 뀐다.
“흥!”
코딱지라도 튀어나올 정도의 유명협의 세찬 콧방귀소리에
민동주와 민병호가 쳐다본다.
“애도 낳아 본 적이 없는 누님이 어찌 어미의 마음을
알겠습니까...그리고 그 꼬마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아픔이 있습니다...섣불리 건드렸다간 변을 볼 겝니다...
결코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니까.”
동주는 유명협의 대답에 자존심이 상한 듯 눈을 흘기며
왔던 길로 되돌아 사라진다.
>>>>>>계속
첫댓글 나오는 사람도 무척 많아서 일일이 기억해서 쓰시기도 힘드시겠 습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습니다
늘 재미 있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표현을 너무 재미 있게 하셔서 보는 즐거움이 두배 입니다.........ㅎㅎㅎ
잼있는 글 엮으시느라고 나날 수고하십니다.. 님의 재주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꾸만 본글 또보게 됩니다 이제 시험을쳐도 되겠어요...재미 있게 올려 주시는글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고전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ㅎㅎ 너도밤나무님 말씀에 더 웃고 갑니다. 모든 분들께서 이처럼 재미있게 보시니 저도 더욱 재미 있는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미있어 머물고가네 수고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