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아바의 집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배우려고 스크랩 안식교에 대하여
이영규 추천 0 조회 44 09.02.09 18: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식교에 대하여

 

◎ 박영관 목사

◎ 전남 나주 출생

◎ 광주 고등학교 졸업

◎ 숭실대학교 철학과

◎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원) 대학원 졸업

◎ 미 Atlanta Theological Association(Emory University,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Interdemominational Theological Center)의

   I.T.C의 S.T.D통과

◎ 미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대학원

◎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중곡중앙교회 담임목사

◎ 한국기독교이단종파연구소 대표, 한국기독교이단피해상담소 소장

◎ 대신대학교, 총회신학교, 칼빈신학대학교, 그리스도신학대학교,

   나사렛대학교, 세계선교신학연구원 등에서 이단종파 역사신학의 교수

머리말




  최근(最近) 이단종파들(Cults)이 세계 도처에서 우후죽순(雨後竹筍)격으로 발행하여 하나님의 교회와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이 분야에 연구를 계속한 필자로서 일반 성도와 신학도 및 목회자들을 위하여 [이단종파비판](異端宗派批判)의 붓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이단종파를 비판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역사와 원리 및 많은 자료들을 분석 평가하는데 시간과 기간, 정열과 물질 등이 뒤따라야 했고, 그 보다는 그들로부터 협박과 공갈, 위협과 괴전화가 걸려오고, 가정과 교회, 학교에 찾아와서 괴롭히는 것이 다반사였다. 인간적인 면에서 이런 것들을 견디어 내기는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이단종파들을 비판할 때에 악령의 역사 또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이단종파들의 꾀임과 미혹에 넘어간적이 없었고,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믿음으로서 물리쳤던 것이다. 1976년 6월15일 [이단종파비판] 제 1권을 내어놓은 후계속적인 교계와 독자들의 관심으로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였다. 이번에 수정 증보를 하여,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본서에서는 기독교외의 이단종파들 가운데, 1830년 미국에서 발생한, 몰몬교, 1863년의 안식교, 1879년의 크리스찬 싸이언스,1884의 여호와의 증인과 1954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문선명집단과 1955년의 박태선 집단 등의 여섯 이단들을  취사선택하여 그들의 역사(History)와 원리(Doctrine) 및 현황(Fact)과 전망 등을 역서적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적 입장에서 비판하였다. 이단 종파들은 대부분이 역사적 일관성이 없고 혼합주의적(混合主義的)이며, 또한 그들의 원리는 주관적 신비주의(主觀的 神秘主義)로 꽉 짜여져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 취급된 이단종파들의 다음 몇가지 시학적인 전제로부터 비판하였다.


  첫째, 성경을 가감(加減)하면 이단이다(요한계시록 22:18-19).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66권으로 된 하나의 책으로서 완전영감(完全靈感)괸 것이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인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성경 자체가 자증(自證)하고 성경의 내적(內的)인 역사로 입증되는 것이다.  역사적 기독교회는 초대교회(初代敎會)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가감하면 기독교회의 이단으로 엄단하여 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외에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救贖事役)을 제한하거나 부인하면 이단이다(사도행전 4:12).

  삼위일제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기의 백성을 택하셨고,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인격적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제일원리(第一原理)요, 주제(主題)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요,  구원의 방편이며,  구속의 사역을 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기독교회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증거한 유일한 유형교회이며 백성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에서 벗어나면 기독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것이다.


 셋째, 지금도 계속적 계시(Revelation)와 영감을 주장하면 이단이다(디모데후서 3:16-17).

  우리는 이미 계시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으며 그것으로 신앙생활에 충족함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계시와 영감을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이제는 주어진 계시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을 통해서 깨닫게 하고 자기의 백성들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으로 계시와 영감을 직접 받는다고 하면, 기독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것이다.


  넷째, 비윤리적(非倫理的)이요, 반사회적(反社會的)이고, 반국가적인 집단은 이단이다(마태복음 24:12-13).

  역사적 기독교회는 이 땅위에서 성경적인 윤리와 도덕들 가지며, 더 나아가서 일반 은총에 의한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가져 그들에 대한 철처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앙적 원리를 주창하면, 퇴폐적이고, 세속적이며 부도덕한 윤리를 주장하거나, 사회의 혼란을 초래하거나 국가에 대한 정당한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은 신앙집단은 이단으로 규정한다.


  다섯째,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주장하면 이단이다(데살로니가전서4:16-17).

  역사적 기독교회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성경적인 올바른 종말론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백성들을 미혹하여 천재지변과 말세적 징조를 강조하여 성도들과 백성들을 유혹하는 혹세무민의 원리를 부르짖는 집단을 기독교회는 이단으로 정죄한다. 대부분의 이단종파들은 잘못된 종말론에서 출발하여, 비 성경적 종말론에서 꽃이 피고, 끝내는 혹세무민의 종말론에서 말썽을 빚어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젓은 기독교회의 이단이 본서에서 취급된 이단종파만이 아니고, 누구든지 전술(前述)한 전제조건에 저촉되면 이단이며, 정통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그리고 그밖의 기독교회에 속할지라도 그가 이상의 원리가운데 한 가지라도 해당하게 되면 기독교회의 이단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또 미완성품(未完成品)을 한국교회에 내놓게 됨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짧은 시간과 제한된 자료, 그리고 주변의 여건들에 얽매어서 이렇게 볼 품 없는 한누더기를 만들게 되었다. 본서의 원고가 정리되는 동안에 1976년 12월 10일 용문산 애향숙의 나운몽씨에 의해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하여 무려 3년간이나 법정투쟁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의도적인 시도로 실패하고 말았다. 또 1979면 5월 24일, 서울 남대문 교회에서필자의 주관으로 ‘이단종파의 도전과 한국교회’라는 신앙강좌를 개최하던 중 둘째날 문선명씨 집단에 의해서 난동을 당했고, 많은 부상자와 기물파괴의 손해를 입게 되어다.

  그후 한국기독교회는 그들의 만행을 용납하지 않았고, 필자는 전국의 주요도시와 교회에서 문선명집단을 비판하여 연인원 100만명이 참여했다. 그 가운데 서울의 영락교회, 안양, 청주, 전주, 김제, 광주, 부산, 진주 등에서 연합집회로, 그 밖의 지역에서는 개교회와 각 신학교에서 특별강의를 수없이 했고, 미국에서는 로스앤젤레스와 가든 그로브에서 특별집회와 개교회의 모임에서 강의를 하기로 했다. 또 [통일교 비판]을 영문(The Unification Church-A Criricism of Moon's Movement)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는 것은 복음의 씨앗을 가꾸는 한 농부로서 복음의 밭에 있는 가라지들을 뽑지 않을 수 없고, 이단종파들의 도전에 수수방관(袖手傍觀)만 할 수가 없어 그들의 정체(正體)를 밝히는 것을 하나의 역사적 사명으로 알고 원고를 정리하였다. 본서가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사회에 유익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이요, 필자에게는 한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내조(內助)한 사랑하는 아내(유요인)와 귀여운 자녀들(새한, 새은, 새현)에게 사랑의 빛을 졌으며, 특별히, 예수교문서선교회의 직원들, 이단종파연구회 그리고 많은 격려와 후원을  해주신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이단종파와 미혹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탕자(蕩子)처럼 진심으로 회개하고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눅 15:11-24), 본서가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994. 2. 25

                                           중곡중앙교회의 서재실에서


                                                       박 영 관 識


제3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안식교)


제1장 안식교의 역사적 배경과 월리암 밀러....................105

  1. 안식교의 근원 윌리암 밀러................................................................106

  2. 안식교의 하늘 성소를 주장한 히람 에드슨...................................108

  3. 안식교의 안식일을 제창한 요셉 베이츠.........................................110

  4. 안식교의 창시자 에렌 치 화이트......................................................111

  5. 안식교의 연혁(沿革).............................................................................113


제2장 안식교 교리 문답집 비판..............................................115

  1. 교리 문답집의 그리스도의 인성과 속죄문제...............................115

  2. 교리 문답집의 토요일 안식일 문제................................................118

  3. 교리 문답집의 조사심판....................................................................124

  4. 교리 문답집의 그리스도의 재림......................................................129


제3장 안식교의 현황과 전망....................................................................131

  1. 안식교의 조직과 활동.......................................................................131

  2. 안식교의 예배의식과 생활...............................................................133

  3. 안식교의 침례와 성만찬 예식.........................................................134

  4. 우리나라 안식교의 역사...................................................................136

  5. 안식교의 전망(展望)..........................................................................137


제4장 맺는말.................................................................................................140





제 3 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Seventh-day Adventists)는 일명 「안식교」라고도 한다. 그들은 철저히 토요일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회의 이단으로서 기독교회 안에서 조용히 서식(棲息)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교가 단지 토요일 예배만 다를 뿐이고, 그 밖에는 모든 교리가 기독교회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식교는 분명한 기독교회의 이단종파인 것이다. 미국 칼빈신학교 교의학 교수인 안토니 에이 훼케마(Anthony A Hoekema)박사는 안식교를 기독교회의 이단종파라 했다.1) 그들은 성경 밖에 또 다른 권위를 갖고 있으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낮게 평가한다. 안식교는 지금부터 113년 전에 미국에서 발생하였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교육과 문서사업, 위생병원 등을 경영하면서 포교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청량리 대왕코너에 S.D.A(안식교) 영어학원을 세워서 간접포교를 시도하고 있다.

  안식교에 대한 비판은 그들의 역사적 배경과 교리문답집, 그리고 현황과 전망을 차례대로 취급할 것이다.




제 1 장


안식교의 역사적 배경과 윌리암 밀러



  안식교의 역사적 배경에는 안식교의 근원이 된 밀러(W. Miller)와 하늘 성소를 말한 에드슨(Hiram Edson), 제칠일 안식일을 주장한 베이츠(Joseph Bastes), 그리고 오늘의 안식교를 이룩한 화이트(Ellen G. White)등이 있다. 그들은 안식교의 역사 자체를 이룩한 장본인들이다.


  1. 안식교의 근원-윌리암 밀러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는 미국 서부 마사츄세츠(Massachusetts)주 피츠필드(Pitsfield)에서 출생하였다.2) 그는 한 농부로서 경건한 침례교회의 회원이었는데, 그가 어렸을 적에 그의 가족은 버몬트(Vermont)경계의 로우(Low) 함프톤(Hampton)지역으로 이사를 갔었다. 그는 기독교회의 가정의 신앙교육을 받았으나,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부인하고 회의에 빠졌다. 이것은 그의 신앙 인격 형성이 형식주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러는 1816년에 완전한 회의주의자가 되었고, 그의 사상은 자연신론주의(自然新論主義)였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부친의 농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 독자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크루덴 성구사전(Cruden's Concordance)을 가지고 집요하게 2년간 성경을 연구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2년 동안의 성경공부를 끝내고 1818년에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즉, 지금부터 25년이 지나면 우리의 현 상태를 매듭짓게 될 것이다.3) 이것은 밀러가 성경을 연구한 결과 1843년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는 뜻이다. 그 후 그는 점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의 확신을 굳게 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예언하게 되었다. 그것은 유대력으로 1843년 3월 21일에서 1844년 3월 21일 사이라고 못을 박았다.4)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일자를 다니엘 9:24~27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아닥사스다(Artaxerxes)왕이 에스라(Ezra)에게 예루살렘에 돌아가도록 포고령을 내린 때를 주전 457년으로 여기며 다니엘 924의 70이레를 490년으로 환산한다. 이것은 에스라 7:11~26에 1일을 1년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490년 후는 주후 33년이 되고, 이 해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해라고 그는 단정했다.

  또 다니엘 8:14에서 그리스도가 성전 청결을 하기까지는 2,300주야가 된다고 했다. 밀러는 이것 역시 2,300년으로 생각하여 주전 457년에서 계산하면 1843년이 나온다. 바로 이 날짜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해라고 했다.5) 밀러의 예언에 의해서 안식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러나 1843년이 지나가 버리자, 그는 자기의 날짜 계산이 유대력으로 했기 때문이라 하여 이것을 로마력으로 하면 1844년 10월 22일 가을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던 12만명의 안식교인들은 뉴욕주에서 기다렸으나 그 날도 무의미하게 지나가 버렸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의 그리스도의 재림론에서 취급할 것이다(p.129 참고).

  이러한 밀러의 예언은 환상적인 신비주의에서 나온 결과였으며, 예언 기록에서 하루가 언제나 1년을 뜻한다는 인위적 해석 때문이었다. 또한 70이레와 2,300주야가 같은 때에 시작되었다는 가정에서였다. 그리고 예언의 기점(基點)을 주전 457년으로 환산한 것이 잘못이었다. 웅거(Merrill F. Unger)교수는 그의 「구약의 고고학」에서 예루살렘 멸망과 시드기야왕의 포로 연대를 주전 587년 혹은 586년으로 생각했다.6) 이것은 안식교가 취한 우셀(Ussher)의 계산과 다른 것을 말해 준다.

  밀러의 예언은 다니엘 8:14의 성전의 청결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뜻한다는 잘못된 성경 해석에서 기인되었다. 안식교는 이와 같이 한 농부의 아들이요, 침례교회의 신비주의자였던 윌리암 밀러의 그리스도 재림의 연대에 근원을 두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알 자가 없다고 했다(마 24:36).


  2. 안식교의 하늘 성소를 주장한 히람 에드슨


  안식교의 역사적 배경 중에 또 한 사람 히람 에드슨이 있다. 그는 밀러 예언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1844년 10월 22일 안식교의 광신자들은 뉴욕주 폴트 기브슨(Port Gibson)에 있는 에드슨 집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날이 그냥 지나가자 매우 실망한 가운에 있었다.7) 에드슨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는 동료 한 사람과 실망한 안식교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들판을 지나가는 도중에 놀라운 환상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넓은 들을 지나가고 있는 동안에 나는 그 들판 가운에서 우뚝 섰었다. 나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것 같이 보였는데 내가 분명히 본 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하늘의 지성소(至聖所)에서 2,300주야의 끝나는 일곱째 달 제10일에 나와서 이 지상에 오시는 대신에 그는 처음올 그 지성소의 둘째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상에 재림하시기 전에 지상의 성결 작업을 행하신 것이다.”8)

  에드슨은 이러한 환상을 그의 동료들에게 말하여 새로운 신앙적 비젼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이 환상을 근거로 하여 1844년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해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처음으로 들어가시는 해라고 하였다. 에드슨은 그 후 몇 달 동안 그의 동료 크로지어(O.R.L. Crosier)등과 더불어 성경을 연구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의 직분 수행에 두 가지 국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날마다 드린 제사가 대 속죄일이 성소에 들어간 때에 성소 청결이 이루어진 것이라 했고 이 성소 청결후에 구약의 대 속죄일의 두 마리 산양 중에(fp 16:7~10)광야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는 아사셀 산양의 머리에 모든 백성의 죄가 넘기워진 것이라 했다. 이 비유가 2,300주야 후인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실질적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9)

 에드슨과 그의 동료들은 사죄문제(赦罪問題)에 있어서도 동일한 국면(局面)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성소에 매일 드리는 제사는 죄를 용서하는 의식이요, 대속죄일에 지성소에서 1년에 한번 드리는 제사는 죄를 말살하는 의식이라 한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있어서도 같다고 하며, 2,300주야 이전까지는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의 사역은 죄의 용서사역이요, 2,300주야 이후인 1844년 10월 22일부터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죄를 도마라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10) 그리고 백성의 죄가 속죄양에게 씌워지는 일이 완전히 끝나야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죄를 짊어질 양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탄이라고 한다. 이 사상은 후일의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소위 조사심판의 교리로 발전되었다.11) 여기에 대해서는 안식교의 교리문답집 비판의 조사심판에서 할 것이다(p.124 참고). 이와 같은 에드슨의 새로운 교리로 안식교는 그들의 신앙적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3. 안식교의 안식일을 제창한 요셉 베이츠


  안식교의 창설 멤버 중에서 요셉 베이츠(Joseph Bates)는 안식일을 제창한 사람이다. 그는 21년간 선원생활을 했고, 선장과 선주의 경험이 있는 노련하고 숙달된 강한 의지의 뱃사공이었다.12) 베이츠는 항해 중에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선원생활에서 은퇴하고는 마사츄세츠주 페어 헤븐(Fair Heaven)에 살면서 기독교 연합교회(Christain Connection Church)에 다녔다.13) 1839년부터 그는 재림교의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토마스 엠 프레블(Thomas M. Preble)「이스라엘의 희망」(Hope of Israel)이라는 안식일에 관한 글을 읽고서, 제칠일은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안식일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14) 그리고 베이츠는 뉴 함프쉬레(New Hampshire) 워싱톤에 있는 재림교파들이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것은 오우크스(Mrs. Rachel Oaeks)라는 한 여인에 의하여 안식일 붐이 조성되었는데 제칠일 침례파인 그 여자는 1843년 겨울에 워싱톤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강론자 프레드릭 휠러(Frederick Wheeler)는 강론 후에 모든 청중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라 모든 것 중에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십계명의 제4계명을 포함한 것이다. 그들은 안식일 사상을 그들의 신조(信條)로 삼았다. 이것이 재림과 교도들로서 제칠일을 안식일로 받아들인 최초의 경우인 것이다.15)

  1846년 베이츠는「영원한 표식 제7일 안식일」(The Seventh-day Sabbath, a Perpeual Sign)이란 48페이지의 소책자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시에 예표되었고, 에덴 동산에서 명령되었으며, 시내산에서 확인되었다고 했다. 1847년 그는 계시록 14:6~12에 관한 그의 두 번째 책을 출판했다. 여기서 베리츠는 교황과 짐승을 동일시하고 제칠일 안식일을 첫째 날로 변경시킨 것은 교황과 짐승을 동일시하고 제칠일 안식일을 첫째 날로 변경시킨 것은 교황이며,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교황과 짐승을 경배하는 자요 그 이마에 짐슴의 표를 받은 자라고 했다.16) 1849년 1월에 베이츠는「사신 하나님의 인치심」(A Seal of the Living God)이라는 책자에서 계시록 7장을 근거로 하여 안식일을 계시록 7:2의 하나님의 날이라고 해석하고, 14만 4천은 안식일을 지키는 자라고 했다.17) 이처럼 재림과 운동은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또 하나의 구실을 첨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식교의 지도자인 에렌 하몬(Ellen Harmon)과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에게는 베이츠의 주장이 용납되지 못했으나, 후에 그들은 결국 이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안식교는 이렇게 밀러, 에드슨, 베이츠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안식교의 원리는 처음부터 주관적인 환상과 재림파 침례주의자들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4. 안식교의 창시자 에렌 지 화이트


  안식교의 진정한 창시자는 에렌 지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15)부인이다. 그 여자는 윌리암 밀러의 재림 예언, 히람 에디슨의 하늘 지성소 환상, 요셉 베이츠의 안식일 문제 등을 종합하여 체계화시켰다. 화이트 부인은 포트랜드(Portland)북쪽 10마일 떨어진 메이네(Meine)주 골함(Gorham)에서 1827년에 태어났다. 화이트가 소녀시절에 그의 가족은 포트랜트로 이사를 갔었다. 여기서 그들은 감리교(Chestnut Street Methodist Church)의 교인이 되었다. 화이트는 9살 때 다른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 3주간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은 적이 있었다.

  1840년과 1842년에 윌리암 밀러가 포트랜트(Portland)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강론을 할 때에 화이트는 크게 감명을 받았고 안식교를 추종하게 되자 감리교는 그 여자를 출교시켰다.18) 그런데 화이트 부인은 1844년에 첫 번째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도성으로 여행하는 재림교도들의 광경이었다. 예수님은 집단의 안내자였고 지도자였다고 한다.19) 얼마 뒤 그 여자는 두 번째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화이트 부인은 청중들의 불신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념을 전파하였다.20) 그리고 그 여자는 1846년에 재림교의 지도자였던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씨와 결혼을 했고 슬하에 4형제를 두었다.21)

  이 때부터 화이트 부인은 재림파의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얼마 안 가서 상당한 무리가 화이트 부인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으며, 그들은 그 여자를 성령의 인도를 받은 여선지자로 믿게 되었다. 그리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던 재림파의 안식교는 통합이 되고, 화이트 부인이 제일인자가 되었다.

  화이트 부인은 그 후 23년 동안에 2백번 이상의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안식교의 신조나 활동은 거의 모두가 그 여자의 환상과 말에 기초를 두고 있다. 특히 그 여자가 쓴 저서들에 근거하고 있다.22)

  특히 화이트 부인은 1845년 2월에는 예수님께서 하늘의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시는 환상을 보았고, 1847년 4월 7일에 화이트 부인 자신이 성소를 거쳐 지성소에 들어가는 환상을 보았고, 거기서 그 여자는 법궤와 10계명을 보았다고 한다. 특히 십계의 제4계명은 광체를 내고 있음을 보았다고 한다.23)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어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시라고 말하고 있다.24) 안식교는 이 때부터 제칠일 안식일을 고정시켰던 것이다.


  5. 안식교의 연혁(沿革)


  안식교는 재림파의 세 그룹이 통합된 것으로서 화이트 부인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25) 1860년「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라는 명칭을 채택하고, 최초의 안식교 본부를 미시간(Michigan)주 베틀크리크(Battle Creek)에 두었다. 그리고 1863년 5월 전국 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해가 안식교의 공식적인 발생 연대가 된다.

  1903년에 총회 본부와 출판사를 워싱톤 디 씨 근교 타코마 파크(Takoma Park)로 옮겼다.26) 그리고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렐리아, 남해군도, 남미, 동남아, 중앙 미국, 그리고 중동 등에 포교를 하였다.27) 1961년 안식교 연감에 의하면 세계 220개국 중에 195개국에 포교하고 있으며, 안식교 수는 12,707이고 안식교인은 1,194,070명이라 했다. 당시의 미국은 안식교 수가 3,002이고 안식교인 수는 311,535명이라 했다.28)

  1990년 안식교 자체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 226개국 중 189개국에 포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안식교 수는 16,726이고, 안식교인은 2,145,661명이라 했다. 안식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십계명의 제4계명에 먼 근거를 두고 있으며, 1844년 밀러의 그리스도의 재림예언에 시초를 갖고, 1845년 베이츠의 제칠일 안식일 제창에 표면화되었다. 1852년 제임스 화이트가 안식교회의 「청년의 교사」(Yourth's Instructor)지를 발행했는데, 1869년에는 「교사」지가 주간(週刊)으로 되었으며, 1888년에는 안식교의 장년 안식일 학교 교과서가 되었다.

  1903년에는 다니엘스가 안식교 선교지를 위한 연금제도를 실시하였다. 1911년에는 연금의 총계가 백만불을 넘었고, 1919년에는 안식일학교 생일 연금 제도가 시행되었고, 1925년에는 투자 연금 제도가 안식일 학교부에 의하여 채택되었다. 1932년 제칠일 예수 재림교의 요람(要覽)을 제정하였고, 1934년과 1940년에 개정을 하였다. 그리고 1948년 10월 18일부터 27일까지 콜로라도주 덴버의 안식교 총회에서 안식교 요람을 최종적으로 제정하였다. 1953년에서 1957년까지는 안식교 성경 사전을 편찬했으며, 1957년에는 안식교 교리문답집을 발행했다.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에 관한 비판과 분석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할 것이다.

  1961년에 안식교 연감을 발행하여 안식교는 기독교회의 도전자로서 등장하였다. 그리고 1971년 이후의 그들은 세계 포교와 자체 조직강화에 들어갔다. 1993년 현재 안식교 수는 17,841이고 안식교인 수는 2,521,429명이며, 우리나라는 안식교 수가 32,302명이다. 안식교는 1세기 혹은 1세기 반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성장해 왔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기독교회와 안식일 문제만 이견(異見)을 갖고 있는 기독교회로 자처하고 있으나 안식교는 역사적으로도 그들은 100년 내지 130년 전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영원 전부터 시작하여 영원 후까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있는 유일한 기독교이다.

제 2 장

안식교 교리문답집 비판



  「안식교 교리문답집」(Seventh-day Adventists Answer Questions on Doctrine)은 1957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안식교의 지도자들, 성경 선생들, 그리고 저술가들의 대표자들에 의하여 편집되었다.29) 그러므로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은 안식교의 교리의 총체이며, 그들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인 것이다. 물론 안식교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도 에렌 지 화이트 부인이 저술한 문헌(文獻)들을 가장 최근의 주님의 영감으로 간주한다.30)

  안식교의 멕스월(Arthur S. Maxwell)은 화이트 부인의 저서들의 권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 부인은 사람의 지혜보다 더 우월하게 말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위에 화이트 부인의 환상적 권위를 첨가하는 것이요, 결과적으로 안식교는 화이트 부인에게 최고의 권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에 전부 나타난다. 교리문답집은 11장 51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독특하게 주장하는 몇 문제를 취사선택하여 비판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인성(人性)과 속죄, 토요일 안식일, 조사심판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등이다.


 1. 교리문답집의 그리스도의 인성과 속죄 문제


  교리문답집은 제2장에서 이 문제를 취급했다.31) 그리고 안식교의 22개조의 기초적 신조 가운데서도 제3조는 그리스도의 문제를 언급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곧 하나님이시니 그는 영원하신 아버지와 같은 성질과 본질을 가지신 존재이시다. 그는 신성(神性)을 가지신 분이시면서 또한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인간으로 땅에 사시고, 그 생애로써 우리에게 의의 모범과 원칙을 보이시고, 많은 큰 이적들로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거하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아버지께로 올라가시사 거기서 항상 사시고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신다」32)고 했다.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문제를 분명히 교리문답집과 신앙개조에서 언급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는 기독교회의 그리스도의 신성에 따르고 있다.33)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서는 판이하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성육신) 땅 위에 오셨는데 사람의 죄스런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계셨다는 것이다.34)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심으로 죄까지도 그대로 지녔다고 하는 의미이다.

  1950년에서 1954년까지 안식교의 총회장을 지냈던 브란슨(William Henry Branson)은 그의 「시대의 연극」(The Drama of the Ages)이란 저서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의 성품을 그대로 지니셨다”고 했다.35) 이것은 초대 기독교회의 아풀리내리스(Apollinaris)의 교리와 같다. 아풀리내스주의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성을 취하지 못했다면 그는 우리의 완전한 구속주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그리스도가 인성을 입으셨으나 범죄하시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거룩한 아이였다(눅 1:35). 베드로는 그를 가리켜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이라 했다. 또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라고 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1서 3:5)고 했다. 그러나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범죄한 성품에 관하여, 그는 죄를 지은 아담의 성품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36) 이것은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당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타락한 인간 성품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37)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담의 타락 전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성품인 것이다.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그의 구속사업이 시작이 되었지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38)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으로 속죄가 충분하지 못함을 뜻하고 있다.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모든 죄사함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지성소에서 그리스도가 심사해서 심판하심으로 된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안식교의 조사심판 문제에서 논하기로 한다(p.124 참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십자가에서 하신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일시적인 용서를 말함이요,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도말되는 것도 아니고, 성령으로 중생함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이 표준이니 그것으로 사람의 성품과 생활이 심판 때에 검토된다는 것이다.39)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안식교는 속죄(贖罪)의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전에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때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고 1844년 10월 22일까지는 하늘 성소에서 제사장의 일을 하셨고, 그 날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는데 지금은 대제사장의 일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40)

  예수님의 하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 일은 지금까지 죽은 성도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 그의 죄과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교의 그리스도의 속죄는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죽어봐야 구원의 여부를 알게 되고, 그것도 예수님의 조사심판을 통해서 확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번 구원을 얻은 사람도 계속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다시 그 구원을 잃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일 때에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2. 교리문답집의 토요일 안식일 문제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에서는 최대의 교리는 토요일 안식일 문제이다. 그들은 안식일 문제가 그들에게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요, 안식교의 존재(存財)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교리문답집 제5장에서 토요일 안식일 문제를 취급했다.41) 그들은 안식일이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주장하며,42)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 쉬셨으므로 제칠일 안식일은 후에 변경될 일시 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안식일 계명으로 항상 남아 있는 것이라』한다.43) 그러나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創造事役)의 안식이지 단순한 창조의 기념일이 아니다. 히브리서 4:9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것으로 안식이 앞에 남아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안식일이 신약시대에 첫째날로 변경된 제칠일 안식일의 가변성(可變性)을 말한다.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는 안식일의 기원이 모세의 율법이라기 보다는 창조에 있음을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안식일에 변화가 있게 되어 첫째날을 지키게 되었다고 덧붙였다.44) 계속해서 보스는 언급하기를, “안식은 인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그것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옛 언약은 일어날 메시야의 사역을 내다보는 것이므로 당연히 일하는 날들이 먼저 있고 안식이 제칠일에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역을 되돌아본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안식을 축하하는 것이 원칙이고, 안식일은 또한 최후 종말론적 안식을 내다보는 예표로서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45)

  1618-1619년의 돌트회의(The Synod of Dort)는 제4계명의 안식일을 지킴에 있어서 의식적 요소와 도덕적 요소를 구별하여 말했다.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던 의식적 요소(儀式的 要素)는 신약의 기독교인을 위해서 폐지되었고, 여전히 남아 있는 도덕적 요소(道德的 要素)는 안식과 예배를 위한 확실한 날로서 첫째날로 되었다고 했다.46)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일반적으로 자연법칙에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시간이 적절히 배정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모든 세대에 걸쳐서 모든 사람과 관련하여 적극적이며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계명으로서 하나님은 특별히 7일 중 한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셨다』(출 20:8,10,11, 사56:2,4,6,7). 창세기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는 한 주일의 마지막 날로 바뀌었다(창 2:2~3, 고전 16:1~2, 행 20:7). 성경에서는 이 날을「주의 날」로 부르고 있으며(계1:10), 세상 끝날까지 기독교인의 안식일로서 지킬 것을 말하고 있다(출 20:8,10, 마 5:17~18).

  다음으로 안식교는 계시록 14장을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인용한다. 『우리는 안식일의 회복이 계시록 14:9~12에 명시된 것으로 믿고 있다.』47) 그리고 그들은 다니엘서 7장과 계시록 3장의 짐승에 대한 예언은 특별히 교황이 십계명의 제4계명의 안식일을 첫째날로 변경시켰다는 의미이다.48) 그러나 계시록 4:9~12을 보면 어느 구절도 안식일에 관하여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의 요셉 베이츠는 본절의 첫째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을 안식교의 교리로 삼은 것은 주관적인 독선(獨善)이다.

  안식교는 또한 신약 성경이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켰다고 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첫째날 보다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며49) 사도바울도 그랬다는 것이다.50)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규례를 따라서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킨 것이요, 부활하신 후에는 두 주를 첫째날에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 바울도 유대인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제칠일에 유대인의 회당에 나갔다. 그것은 그 날에 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안식일이 예수님의 부활 후에 첫째날로 지킨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요한복음 20:1은 예수님께서 일주일 중 첫 날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이 첫 날이 안식일로 지켜야 할 것으로 말씀하셨다. 물론 안식교인들도 이것을 인정한다.51) 예수님께서 일주일의 첫 날 저녁에 열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요 20:19), 그 다음 주에도 첫 날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요 20:26).

  그리고 성령 강림의 약속이 일주일 중 첫 날에 성취되었다(행 2:1). 부르수(F.F Bruce)는, “기독교인의 전통은 성령 강림을 일요일에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52) 베드로는 일주일 중 첫 날에 복음을 전파하니 3,000명이 예수를 믿었다(행 2:41). 또한 드로아시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일주일 중 첫 날에 예배하기 위해 모였고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였다(행 20:6~7).

  안식교의 리키(Arthur E. Lickey)는, “일주일 중 첫 날은(성경의 시간) 토요일 저녁 일몰로부터 시작되어 일요일 저녁 일몰 때까지이다. 그리고 이 모임이 일주일 중 첫날 저녁에 모였으므로 우리가 부르는 토요일 저녁 즉, 첫 저녁 일몰 때 시작되었음에 틀림없다”고 했다.53) 이것은 누가(Luke)가 일몰이 하루의 시작이라는 유대인들의 계산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한 밤중부터 다음 한 밤중까지 계산하는 로마인 계산법을 따랐으며, 누가는 토요일 저녁이 아닌 일요일 저녁을 가리키고 있다.54)

  반면에 리키(A.E Lickey)는 이 모임이 정기적인 예배를 위한 모임이 아닌 단순히 바울을 전송하기 위한 모임이었다고 한다.55) 그러나 사도행전 20:7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라고 누가(Luke)는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만찬을 먹고 기념하는 정기적인 모임임을 강력히 시사(示唆)해 준다.56)

  이 밖에도 고린도전서 16:2에, “매 주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바울은 말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한 주일의 첫날에 하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안식교의 안드레슨(M.L. Andreasen)은 본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이것은 교회에서 모으는 헌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인들로 하여금 이익을 얻는 대로 가정에 돈을 모아 두라는 말씀이요, 이것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부기(Book Keeping)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일요일에 이런 일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57) 물론 기독교인들은 헌금을 믿음의 가정에서 작정하여 둔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 예배의 일부로 바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안식 후 첫 날에 헌금을 드린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1:10에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했다. 여기의 “주의 날”(έυ Τή κυριακή ήμέρα)은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한다. 깅그리히(F.W. Gingrich)는 그의 헬라어 사전에서「주의 날」은 일요일을 가리킨다고 했다.58) 뿐만 아니라 초대 기독교회는 안식 후 첫 날에는 예배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모였다.

  끝으로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은 초기의 기독교회 문헌 가운데 안식 후 첫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게 된 가장 믿을 만한 실례는 2세기가 끝날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의 글이라고 한다.59) 그러나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 1:10에 ‘주의 날’은 주후 95년경에 기록하였고 주후 107년에 기록된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서신 「마그네시안인들에게」 (To the Magnesians) 제9항에서, 『그러면 만일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주님을 통하여 새로워진 것이다』라고 했다.60)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그의 「첫 변증」(First Apology)의 제67장에서 『그러나 일요일은 우리 모든 회중이 모이는 날이다. 왜냐하면 이 날은 하나님께서 흑암과 물질에서 변화를 일으켜 세상을 창조하신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61)

  이상에서 언급한 대로 모든 신약 성경의 증거들은 안식일이 일곱째날에서 첫째날로 바뀌어진 것은 교황권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하나님의 교회들이 그날을 축하하고 기념하면서 예배일로 지켰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안식교인들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7일씩을 세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양 풍습인 주일제도를 채택하여 양력을 사용한 때부터 일요일 제도를 지켰다고 한다.62) 그리고 그들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는 것이요 이교적 산물(産物)이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죽는 사람은 구원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반증했다(p.118 참고). 안식교는 한 마디로 유대교의 율법주의(律法主義)를 따르고 있으며, 더욱이 환상적 신비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교의 토요일 예배는 역사적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3. 교리문답집의 조사심판


  안식교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조사심판」(The Investigative Judgment)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밀러(W. Miller)의 다니엘서 8:14 해석에 기인한다. 그는,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구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미 전장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2,300주야는 2,300년으로 풀이했고, 주전 457년 3월 21일과 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재림하실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나 예언의 날짜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시지 아니하자 히람 에드슨(Hiram Edson)이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들어간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이 환상을 근거로 하여 밀러의 예언을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이 아니라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라고 재해석했다. 안식교는 이것을 그들의 교리로 채택한 것이다. 이것이 안식교의 조사심판이다.

  1845년 2월 화이트 부인(Mrs. White)은 이 재해석을 견고케 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1846년 2월 크로지어(Mr. Crosier)는 재림교 기관지에 이것을 기사화 했다. 이렇게 하여 이 교리는 안식교의 신학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교리문답집의 제7장 36문을 알미니안 개념의 입장인 조사심판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첫째 부분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심판, 둘째 부분은 조사심판의 예언, 상징 그리고 성경원리이다.


  (1) 안식교의 조사심판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심판

  안식교는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관해서는 알미니안주의를 따른다.63) 즉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타락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때부터 계속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안식교는, 아담의 타락은 그의 후손에게 죄가 전가되지 않음을 말한다.64) 그들은 로마서 5:12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를 육체적 영적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시행되니 이는 아담 안에서의 공통적 죄의 형벌로서가 아니라 오직 신적작정(神的作定)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그 죄의 결과를 받아 취하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이 범죄의 행위에 의하여 그들의 죄악성에 자신적으로 동의하는 때문이다. 이것은 아담의 죄는 그 자신에게 전가되고, 그의 후손들에게는 전가되지 않고 각자의 의식적 죄는 각자에게만 죄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을 강조한다.65) 이것은 자력 구원설(自力救援設)을 말한다.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 구원을 얻는데도 인간의 행위가 따른다고 한다. 그러나 의롭다함과 거룩함을 받는 것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신적 은혜로 된다. 그런데 안식교는 이 은총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한다.66) 알미니안주의는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적 은혜(不可抗力的恩惠)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는 알미니안 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알미니안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67)


  (2) 안식교의 조사심판의 예언, 상징 및 성경원리

  여기서는 안식교의 조사심판에 대한 그들의 성경적 근거의 다니엘8:11~14과 9:24~27을 해석하려고 한다. 다니엘 8장의 예언을 자세히 고찰하면, 14절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거나 하늘 성소의 지성소로 들어가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 8장에서 다니엘의 그의 환상 중에 본(단 8:20), 천사의 해석에 따르면 수염소(단 8:5)는 헬라왕을 뜻한다(단 8:21). 그런고로 수염소에 의해 엎드려짐을 당한 수양은(단 8:7) 헬라에게 메대와 바사 제국이 패하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다니엘 8:8의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四方)을 향하여 났더라”는 헬라의 알렉산더 대제의 제국이 그가 죽은 후에 네 나라로 갈라짐을 뜻한다(단 8:22). 그렇다면 “그 중 한 뿔에서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가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단 8:9)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주전 175-164년에 수리아를 통치했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말한다. 그는 유대인의 성소를 헐어버리고 더렵혔으며(단 8: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단 8:11), 유대인들의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을 금하고 대신에 이방인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리고 그 때를 2,300주야까지라고 했다. 이것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제사와 관계가 있다(단 8:14). 그러므로 두 제사를 매일 드렸으므로 이것은 1,150일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의 제사에 의하면, 이날은 3년 50일, 혹은 60일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앗수르왕 에피파네스 때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된 때로부터 마카비(Mac-cabee)가 일어나서 성소를 회복하고 다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된지가 꼭 3년이었으며, 처음에 명령을 내려 못드리게 한 것이 두 달정도 앞이었으므로 결국 50~60일이 되는 것이다.

  안식교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을 곡해하여 성경에 없는 조사심판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비판을 계속 하기로 한다.

  첫째,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는 다니엘 8:14을 그릇 해석한 데서 온 것이다. 안식교는 본절의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으로 보고 1844년 10월 22일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로 말한 것이다.

  둘째,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는 구약의 제사제도를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이다. 안식교는「피가 뿌려질 때 죄가 성소에 기록되었다」고 말하고 이어서「그 해에 축적된 죄는 속죄일의 성소에서 도말된다」고 주장한다.68) 그러나 그들은 단에 속죄의 피로 뿌리는 참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페어베인(Patrick Fairbairn)은 그의「성경의 예표론」Typology fo Scripture)에서 “마땅히 받을 형벌로 인하여 희생제물을 자기 자신의 손으로 잡은 후 범죄자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제사장에게 그 피를 바친다. 그러나 그 피는 죽음으로써 이미 죄의 형벌을 지불한 것이며, 더 이상 죄책이나 오염이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는(상징적으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만족케 되었으며 하나님 자신의 대리인의 손으로 그것을 완전하고도 순수한, 흠없는 것으로, 그리고 바로 하나님 자신의 거룩의 상징으로서 자기의 상, 혹은 단 위에 받으신다. 그러나 거기에 바쳐졌을 때 그것은 여전히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피 혹은 생명을 의미하며, 이와 같이 자기의 희생제물을 피로 드리는 행동을 통하여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새롭게 이룩하게 된 자신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은총과 교제를 장엄하게 받게 되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69)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단회적 속죄(單回的贖罪)를 내포(內包)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안식교의 조사심판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그리스도에게 잘못 적용시키고 있다. 안식교는 그리스도께서 1844년 이전의 죄들을 용서 하셨으나 그 죄들을 제하여 버리시지는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보기로 마태복음 18:23~35을 말하고 있다.70) 또한 안식교는 그리스도께서 1844년 이후 하늘 성소에서 조사심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며 조사심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보(仲保)의 기도를 하고 계신다. 바울 사도는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시니라(롬 8:34)고 했다.

  넷째, 안식교의 조사심판은 하나님의 절대 권위성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위배하고 있다. 안식교의 기초적 신조 16항은「……이 조사심판은 무덤속에 자는 무수한 자들 중에는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할 만하며 또한 살아있는 무리 중에는 누가 승천할 만한지를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교리문답집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누가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받을 것이고 누가 거절당할 것인가를 아신다」고 했다.71) 이것은 그들 스스로가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고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받아들일 사람을 알고 계신다고 말하면  조사심판이 필요없게 되고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찾아내시기 위하여 조사심판을 행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미리 알고 계시지 못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부인하는 태도이다.

  다섯째, 안식교의 조사심판은 구원이 오직 은혜로 얻어진다는 성경적 진리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 안식교는「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자기들을 구속하는 희생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혈을 주장한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책들에 그들의 이름으로 제기된 죄를 용서받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義)에 동참하게 되고 그들의 인격이 하나님의 율법과 부합됨이 증거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영생을 얻을 자로 간주될 것이다」라고 했다.72) 이것은 구원을 받으려고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고 했다. 그러므로 안식교의 조사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칭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알미니안주의 사상에 기초하였고 성경의 해석을 환상적 신비주의로 풀이한 결과로 생겼으며, 그리고 구약의 율법주의를 고수하려는 데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4. 교리문답집의 그리스도의 재림


  안식교의 그리스도의 재림 교리는 그들의 기본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73)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문자적(文字的), 육체적(肉體的), 시각적(視覺的), 인격적(人格的)으로 본다.74) 그리고 안식교의 기초적 신조 20항은,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의 큰 소망이요 복음과 구원의 경륜의 최고 절정이다」라고 했다. 안식교는 밀러의 그리스도 재림 예언에 곤욕을 당하고 오늘의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재림시기를 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렀다고만 한다.75)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분명히 믿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1차 재림은 1844년에 했고, 지금은 이제 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목적은 모든 질고(疾苦)를 없이 해 주며 죽은 자가 부활되고 하늘로 올리움을 받으며 정당한 보상을 주는 데 있다고 한다.76) 그들은 재림의 징조를 하늘의 징조(徵兆)에서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25:21~22은 “……그 날 환난 후에 해가 즉시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라고 했다. 이 예언은 1780년 5월 19일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성취되었다고 하는데77) 그것은 대낮에 갑자기 어두워지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주후 538년부터 1798년까지 1,260년간 계속된 박해로 본다(단 7:25, 계 12:6,14). 또 별이 떨어짐(계 6:13)의 예언은 1833년 11월 13일에 성취되었다고 한다.78) 안식교는 이것을 예언 중에 합리화하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12:4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19세기 이후 과학 지식의 발달을 뜻한다고 한다. 그것은 원자력과 우주 로케트 그밖에 각종 현대무기의 발명 등이라는 것이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3의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는 예언은 종교연합(宗敎聯合)과 평화운동(平和運動)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사탄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79)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징조라고 한다.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는 1천년간이 있고 그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회의 후천년설(Post-Millennium, 계 20:1~5)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은 천년기간이 마칠 때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고, 사탄이 해방되며 마귀와 악인들은 영원히 멸망한다고 한다.

  교리문답집은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들의 명칭에 나타난 대로「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있다.



제 3 장

안식교의 현황과 전망



  안식교는 토요일 안식일 예배를 통해 그들의 포교활동(布敎活動)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짧은 역사에 급성장을 해 왔다. 그것은 그들이 정통 기독교회의 가면을 쓰고 사회와 기독교회에 침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교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요, 알미니안 주의적 사상을 갖고 있으며, 신비주의적 환상주의인 것이다. 최근에 그들은 안식교의 교리를 간접포교(間接布敎)로 전향하여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문서포교, 삼육 교육기관, 병원, 심지어 영어 학원 등 다방면에서 전략을 꾸미고 있다.


  1. 안식교의 조직과 활동


  전장에서 언급한 봐와 같이 안식교는 1863년 5월 베틀 크리크(Battle Creek)의 총회에서 공식적으로「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로서 발족하였다. 그 후 약 110년의 역사 가운데 그들의 활동은 다양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안식교가 기독교회처럼 영원 전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구약에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 부인이 재림파의 단체를 통합하여 된 것이다. 안식교의 형태적 조건은 개개의 안식교인들로부터 안식교의 사업에 따른 세계적 조건을 다섯 계단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안식교회의 개교회, 대회, 연합회, 지화 그리고 대총회 등이다.80) 그리고 그들은 대의제(代議制)를 채택하고 있다. 그것은 안식교인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는 안식교의 정치의 한 형태이며,81) 대총회가 최고 권위를 갖는다. 그리고 안식교의 직제는 목사, 장로 집사, 일반 신자로 되어 있다. 그 밖의 보조적 조직들은 안식교 선교회, 도르가 구제회, 위생과 구호 봉사관, 안식일학교, 청년과 소년 의용 선교회, 가정회 등이다.82)

  다음으로 안식교회의 활동은「예언의 소리」방송과 텔레비전 포교를 하며, 「현대인을 위한 오늘의 신앙」통신학교를 운영하고,「생명과 건강」과「시조」(時兆)를 월간지로 발행하며, 「이 시대」와 「자유」라는 잡지도 발행하고 있다. 현재 외지(外地)에 파견된 포교자들은 72년간 13,400명이었다. 그들은 매년 약 200명의 포교자를 파송하고 있다. 한편 안식교는 교육에 심혈을 쏟고 있다. 그들은 「교육은 곧 구속」이라는 표어 아래서 1872년 1개 학교에 90명이었던 것이 1972년에는 무려 463개의 학교와 학생수는 91,866명이었다. 그중에 초등학교는 1880년 1개에 15명이었던 것이 1972년에는 3,769개에 289,159명이었다. 그들은 초등학교가 신앙교육에 최첨단임을 인식하고 여기에 전적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중, 고, 전수학교, 대학교와 그들의 포교자 양성학교가 미시간(Michigan)주에 있다.

  안식교는 140개의 병원과 182개의 진료소(1972)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다. 안식교의 의료사업은 재정면(財政面)과 포교면(布敎面)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식교의 문서 활동은 현재 50개의 출판사와 308종류의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다. 안식교는 세계 225개 나라 중에 194개국에 포교를 하고 있다. 1961년 안식교의 연감에 의하면 세계 안식교인 수는 1,194,070명이며, 안식교는 12, 707개소이다. 그리고 1974년 그들의 집계에 의하면 세계 안식교인 수는 2,251,429명이며, 안식교는 17,841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안식교인수는 1974년 현재 29,480이며 안식교는 267개소이다. 그들은 안식교의 총출석 인원은 32,302명이라 한다.


 2. 안식교의 예배의식과 생활


  안식교에는 공중 예배를 위한 긴 예배 순서와 짧은 예배 순서가 있다.83) 전자는 풍금 전주, 송영, 개회 축도, 광고, 성경 낭독, 찬미 기도, 연금 수합, 찬미 혹은 특창, 찬미, 폐회 축도, 잠시 묵도, 풍금후주 등의 순서이며, 후자는 찬미, 기도, 연금 수합과 묵도 등의 순서이다.

  그들은 예배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84) 첫째 부분은 노래와 기도와 연금으로 표시된 찬송과 숭경의 마음으로 하는 회중의 응답이다. 둘째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교훈하는 기별, 목회기도, 특별음악, 설교, 연보, 그리고 예배 전후의 묵상 등이다. 일반적으로 안식교의 예배의식은 기독교회의 순서에 준하고 있다.

  그 밖에 성만찬 예식, 세족 예식, 기도회, 안식일학교, 소년과 청년의용 선교회, 그리고 안식교 선교회 집회 등의 순서가 있다. 특별한 것은 안식교의 성만찬식 때 떡과 포도즙을 남자 집사들이 나누어주는 것이요, 발을 씻기는 세족 예식을 갖는 것이다.85)

  다음으로 안식교인들의 생활은 첫째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다.86) 모든 안식일교의 침례자들에게서 그들은 안식일 준수의 서약을 받는다. 복음주의 기독교회처럼 그들은 술과 담배의 사용을 금하는데, 이것은 안식교인이 되는 조건이기도 한 것이다.87) 안식교는 수수하게 옷을 입고 각종 보석과 금과 장식의 진열을 피하는 것을 그들의 신앙과 부합한 것으로 여기며, 졸업식과 결혼식과 예배집회에서 단순성을 강조한다.88) 그러나 안식교는 실제적으로 구약의 율법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복잡한 절차와 예식이 있다. 단지 그들은 그것을 개혁한 현대 율법주의자일 뿐이다. 그리고 안식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교육의 유력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에서「예언의 소리」라디오 프로그램과「오늘의 신앙」텔레비전 방영을 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안식교는 그들의 생활을 말세의 위험 중에 있어서 결국에는 온 우주적인 의를 확립시킬 심판에 직면하여 세상에 구원의 최후 기별을 신속히 전할 책임을 가진 안식교인은 참된 마음으로 그들의 몸과 혼과 신을 다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들의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할 생활을 하는데 있다고 한다.


  3. 안식교의 침례와 성만찬 예식


  안식교는 유아침례(幼兒浸禮)를 반대한다. 그것은 신앙, 회개,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등이 침례의 전제 요구이기 때문이다.89) 안식교의 기초적 신조 제5항은,「침례는 그리스도 교회의 예식이요, 물에 담그는 것이 합당한 형식으로 회개와 죄사함을 경험한 이후에 받을 것이다. 이것을 행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냄과 부활하심을 믿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생애의 시작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三位)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자들은 공중(公衆) 앞에서 저희가 사탄 섬기기를 버리고 왕족, 즉 하늘 임금의 자녀가 되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 한다. 침례의 방식은 물 속에 잠그는 침례를 말하고 있다. 안식교는 침례 받을 자들을 공중앞에서 심문을 하며, 그들에게는 27문의 안식교 교리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은 13가지의 침례 서약을 한다. 그리고 침례를 받는데 침례복을 입고한다. 여기에 대해서는「몰몬교의 의식제도」비판에서 재림과 침례교 계통에서 기원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례보다는 침례를 더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안식교의 성만찬 예식(聖晩餐禮式)이다. 이 예식은 성만찬과 세족 예식을 포함하고 있다. 성만찬은 3개월마다 거행하며, 매기의 끝에서 둘째 안식일에 예식을 행한다.90) 성만찬 예식 전에 세족 예식(洗足禮式)을 갖는데 남녀별로 나누어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다. 이것으로 그들은 마음의 겸손과 봉사의 교훈으로 삼는다. 안식교의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정하신 그 때처럼 오늘도 거룩한 것이며, 이 거룩한 예식을 거행할 때에는 예수께서 또한 임재 하신다고 믿는다.91) 이것은 일종의 기념설(記念設)이다.

  기독교회의 역사에 소시너스파, 알미니안파, 메노나잇파는 주의 만찬을 한 기념으로 신앙 공언의 행동, 도덕적 개선의 방편으로 보았다. 이것은 이성주의 감화 아래서 인망적(人望的)인 견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만찬에는 중세 기독교회의 로마 가톨릭은 화체설(化體設)을 주장했고, 16세기 트렌트호의에서 최종범식(最終範式)이 되었고, 기독교 개혁자 루터는 공재설(共在設)을 말했다. 이것은 성찬 제정이 말씀의 문자적 해석과 성찬에 그리스도의 신체적 임재를 말함이다. 반면에 칼빈은 주의 영적이지만 실제적인(real, through spirtual)임재, 영적 덕성과 효능의 원칙으로서의 그의 임재를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의 만찬을 사람의 기념이나 신앙 공언을 강조하는 대신, 이것은 무엇보다도 제일로 사람에게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신물(燼物)이요, 이것은 기본적으로 신앙의 강화를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방편으로 보았다. 칼빈의 성만찬설은 우리에게 보다 더 신앙과 신학적인 비전을 제시해 준다. 그러므로 안식교의 인위적인 것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적인 것이 옳은 것이다.


  4. 우리나라의 안식교 역사


  우리나라의 안식교는 72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초창기를 1904년에서 1908년으로 본다.92) 1904년 여름 하와이로 이민 갔던 한국인 유은현, 손흥조 두 사람이 일본 고베에서 일본의 안식교인인 구리야 히데(國谷秀)에게 교리를 배우고 그 해 6월에 침례를 받아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안식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선교기를 1908년에서 1919년으로 간주한다.93) 이것은 미국인 전시열 목사의 내한으로부터 조선합회의 조직까지이다.

  우리나라의 안식교 역사를 살펴보면, 안식교는 외국 포교자들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일본인들, 후에는 미국인들이다. 지금까지 내한(來韓)한 미국 포교자(布敎者)들은 대부분 신비적 환상을 통해서 한국에 왔다고 한다. 그 중에 사엄태(史嚴泰: Mimi Scharffenberg)양은 꿈을 꾸고  그 응답으로 왔다고 한다.

  안식교의 확장기는 1919년부터 시조사와 협회 사무실의 화재 사건까지 1930년으로 여긴다.94) 그리고 성숙기는 1930년에서 1941년까지라 한다. 여기에는 안식교가 일본의 신사참배를 승인하고 외국 포교자들이 귀국하여 고립되었다. 안식교 역시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그들은 역사적 운명도 함께 하였다.

  안식교의 수난기(受難期)는 1941년부터 8․15해방까지인 1945년이다.95) 이때에 안식교의 「교회지남」(敎會指南)과「시조」(時兆)가 1941년 4월에 폐간되었고, 1943년 2월 4일에는 안식교의 지도자들이 일본 순경들에게 검거되었다. 그리고 1943년 2월 4일에는 안식교의 지도자들이 일본 순경들에게 검거되었다. 그리고 1943년 12월 28일에 안식교는 해산되었다. 1945년부터 6.25 동란까지 안식교의 재건기라 한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복구작업을 했으나 또 한국 동란으로 다시 원점(原點)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1950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안식교의 발전기로 본다.96) 안식교의 이영란씨는 안식교의 역사를 세 구분하여 선교사적 고찰을 시도했으며 그것을 10년간씩 계단적으로 꾸몄다.

  현재 우리나라 안식교는 272개소와 184명의 지도자, 그리고 침례자 수는 29,480명이고 총 출석 인원은 32,302명이라 한다. 그들은 매년 각 지체들이 2회 이상 포교회를 가지며 1973년 한 해 동안 209회를 가졌고, 여기에 투자한 돈은 약 2천만원이었다. 그리고 일반 안식교인들을 각 분야에 투입하여 포교활동 실효(實效)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식교 교육사업은 전국적으로 12개의 초등학교, 14개의 중․고등학교, 1개의 삼육대학 등이 있다. 또한 그들은 건강의료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서울과 부산에 안식교 위생 종합 병원을 경영하며 최근에 수륙비행기를 구입, 천사호라 명명하여 산간벽지까지 의료혜택을 주면서 간접 포교를 하고 있다. 그밖에 안식교의 활동은 문서포교사업, 예언의 소리, S. D. A. 영어센터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안식교는 토요일 안식일을 주장하면서 72년간 포교를 해 왔으나, 그의 성장은 연륜에 비해서는 미비하고, 외국 포교자들이 모든 행정과 포교와 사업 등을 관장하므로 독자적인 자립 정신 결여와 안일주의에 빠지고 있다.


 5. 안식교의 전망(展望)


  안식교는 독특한 신앙과 생활의 원리로써 지금까지 지탱해 나왔다. 그들은 신앙면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화이트 부인의 환상적 계시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있으며, 토요일 안식일을 참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1844년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늘 성소에서 조사심판을 하고 있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무의식상태(無意識狀態)라고 하며, 율법주의적 의식과 제도를 개혁하여 적용을 하며, 안식교만이 하나님의「남은 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알미니안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교리들이 형성되었으므로 대부분이 인위적인 사고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안식교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사상으로서 하나의 인본주의적인 흐름이다.

  반면에 안식교는 문화의 영역(領域)에서도 간접적으로 공헌을 시도하면서 안식교의 앞날을 개척해왔다. 그들은「의료선교」,「진료실」,「생명과 건강」이란 잡지 등으로 보건 위생에 이바지하면서 포교를 하고 있다. 또한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안식교 교육 사업을 통하여 안식교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안식교가 존재하게 된 가장 큰 밑거름인 것이다.

  안식교는 최근에 가정의 성별문제(聖別問題)에 성공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가정의 성결, 결혼예식의 엄격, 그밖에 세속적인 주장, 댄스, 화투 등을 금하고 경건주의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에 있어서 율법주의를 따르므로 그들은 채식주의자들이 되었고, 생활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외식주의가 일어나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적인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다.

  안식교는 세계 각국에서 외국인들이 모든 행정과 재정을 장악하고 있어 사대주의를 형성하며, 외국인들이 우월의식과 배타주의적 사상이 농후하여 자체 내의 권력 다툼과 분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후진국가들에 있어서 국가적 민족의식의 발흥으로 과거처럼 외국인 중심의 안식교는 쇠퇴일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식교와 기독교회의 접촉점(接觸點)은 불가능하다. 최근에 마틴(Walter R.Martin)교수와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ay Barnhouse)등은 안식교를 구속함을 받은 형제들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교인들이라고 했다.97) 그러나 그들은 안식교의 특정교리에 대한 기독교회와의 유사성(類似性)에서 얻은 결론일 뿐이다. 안식교는 기독교회와 영원한 평행선(平行線)을 그리고 나아갈 때까지 그들은 안식교의 하나님, 안식교의 그리스도, 안식교의 교회로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그리고 최후에는 안식교라는 함정에 전부 빠져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교는 시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율법주의에서, 알미니안주의에서, 그리고 토요일 안식일 제도에서 기독교회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제 4 장


맺 는 말



  지금까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를 비판했다. 이제 여기서 결론적으로 안식교가 기독교회의 이단종파인 것을 더욱 분명하게 몇가지 점을 종합하여 밝히려고 한다.

  첫째로, 안식교는 성경의 권위 외에 그들의 최종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안식교는 그들의 창시자 화이트 부인(Mrs.Ellen G. White)이 받았다고 하는 계시를 최종적 영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별히 그들은「안식교 성경주석」(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의 생의 원리」(Principles of Life from the World of God), 그리고「교리문답집」(Seventh-day Adventists Answer Questions on Doctrine)등이 있다. 이 책들은 화이트 부인의 소위 계시적 영감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모든 성경 해석은 화이트 부인의 저서를 근거로 삼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보다 화이트 부인의 권위를 더 따르고 있음을 말한다. 안식교뿐만 아니라 모든 이단종파들로 한결같이 그들의 창시자나 혹은 교주를 신격화하여 그의 권위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 밖에 다른 최고의 권위는 없는 것이다. 성경만이 성경의 독자적 권위(Self Authenticating αύΤοπὶσΤου)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안식교는 행위로 말미암은 칭의를 말하고 있다.

  안식교는 율법의 순종으로 말미암은 칭의(稱義)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번 의롭다 함을 받았어도 그들의 범죄 행위와 복음의 불순종으로 그 의를 잃게 된다고 한다. 또한 조사심판은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 교리에는 배타가 되는 것이며, 토요일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하며,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것은 자력구원설(自力救援設)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은 칭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이것은 단회적(單回的)인 것이다.

  셋째로, 안식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救贖使役)을 낮게 평가한다.

  안식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구속을 미완성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모든 죄가 반드시 아사셀 양처럼 사탄에게 지워져야 된다고 한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이룩한 구속을 불완전하게 하며, 1844년의 하늘 성소의 조사심판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안식교가 구속을 자신적 자아 결정으로 하기 때문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을 부인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넷째로, 안식교는 하나님의 남은 자의 교(敎)로서 자처한다.

  안식교는 자기들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공동체(共同體)라 자처한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회를 이방인시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특별히 십계명의 제4계명을 지킨다는 것이요, 화이트 부인의 영적 예언(Teh Spirit of Prophecy)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교회의 교회론에 위배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복음 전달에 있고, 지상에 있는 유형교회는 무형교회와 종속적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회만이 영원 전부터 영원후까지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다섯째로, 안식교는 종말론(終末論)에 있어서 환상적 신비주의(幻想的神秘主義)이다.

  안식교는 그들의 발생부터 주관주의적 환상주의였고, 창시자인 화이트 부인 역시 자신의 깨달음을 계시화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어서 더욱 현저하다. 안식교는 종말론을 자기들의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도록 정원화하고 있다. 이것은 종말론적 드라마의 중앙에서 자신들을 나타내는 영적 교만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도서 목록



  1. 안식교를 비판한 저서 목록


최만석,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거짓된 교리들, 서울, 신망애사, 1961.

Bird,   Herbert S., Theology of Seventh-day Adventism, Grand Rapids,         Eerdmans, 1961. 안식교의 원리들을 분석 비판한 유용한 책이다.

Canright,  D.M., Seventh-day Adventism Renounced, Grand Rapids,         Baker, 1961.. 저자는 전에 안식교인으로서 안식교에서 탈퇴한 이        유와 원리들을 폭로한 저서이다.

Douty,  Norman F., Another Look at Seventh-day Adventism, Grand         Rapids, Baker, 1962. 안식교의 교리문답집을 분석 비판한 책이        다.

Herdon, Booton, The Seventh-day, New York, McGraw Hill, 1960.

Mitchell,  David, Seventh-day Adventists(Faith in Action), New York,         Vantage Press, 1958.


  2. 안식교의 문헌과 자료 목록


안식교, 교회요람, 서울, 시조사, 1961.

안식교, 다니엘서 연구, 서울, 시조사, 1974.

안식교, 안식일학교 요람, 서울, 시조사, 1967.

안식교, 현대인을 위한 오늘의 신앙, Vol. 5, 서울, 시조사, 1974.

이영린, 한국 재림교회사, 서울, 시조사, 1965.

Branson, Wm, H., In Depense of the Faith, Washington D.C., Review &         Herald, 1933.

Department of Education; General Conference of Sevents-day             Adventists, The Story of Our church,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1960.

Don F. Neufeld, ed., Seventh-day Adventist Bible Dictionary,             Washington D.C., Review & Herald, 1946-54.

Nichol, Francis D. ed., Seventh-day Adventist Bible Dictionary, 7 Vol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53-1957.

Nichol, Francis D,. Questions People Have Asked Me, Washington         D.C., Review & Herald, 1959.

SDA,   Seventh-day Adventist Church Manual, General Conference of         seventh-day Adventists, Washington D.C., Review & Hereld,         1919.

SDA,   Seventh-day Adventist Answer Questions on Doctrine,           Washington D.C., Review & Hereld, 1957.

SDA,   Year Book of the Seventh-day Adventist Denomination,          Washington D.C., Review & Herald, 1970.

White,  Ellen Gould, The Acts of the Apostles in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1947.

White,  Ellen Gould, Christ's Object Lessons, Washington, Review &         Herald, Pub. Association, 1941.

White,  Ellen Gould, Desire of Age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1940.

White,  Ellen Gould, The Great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Mountain View, Pacific Press, 1911.

White,  Ellen Gould, The Ministry of healing, Mountain View, Pacific         Press, 1942.

White,  Ellen Gould, Patriarchs and Prophet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ociation, 1913.

White,  Ellen Gould, Prophets and King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1917.

White,  Ellen Gould, Steps to Christ, Washington, Review & Herald,         1921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