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내가 쓴 운동 기사가 벌써 몇 개인지 감히 세지도 못하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운동방법을 체험하고 분석해서 글로 풀어냈다. 모두 하나같이 좋은 운동이었지만, 그럼 뭐 하나. 뭐든 꾸준히 해야 하는걸. 결국 나의 게으른 천성을 끝까지 떠안고 갈 놈은 아니었다.
지겹다. 모든 운동이 그리고 나 자신에게 운동을 꾸준히 할 거란 거짓말을 하는 것도.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보려 한다. 일단 ‘재미!’에 촛점을 맞춘 신박한 운동법이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재미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게임이야, 이렇게 나의 뇌와 몸을 속일 수 있는 게임(운동)을 준비했다. 게임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칠걸? 정신적, 체력적으로 칼로리 소모량이 어마어마하다. 우선 뇌를 속여보자. 뇌는 생각보다 쉽게 속는다. 준비물은 뭐? 바로 VR 헤드셋만 있으면 된다.
▲현재 가장 핫한 VR게임 중 하나 'The Climb'
먼저 암벽등반을 해볼까? ‘더 클라임’은 VR 암벽 등반 게임이다. 실사인지 그래픽인지 구분하기 힘든 고퀄리티 배경에 1인칭 시점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내가 방에서 VR로 게임을 하는지 정말 산을 타는지 헷갈릴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아슬아슬한 벼랑에 메달려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면, 어느새 손과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운동효과가 강력하다.
좀 더 익사이팅한 스포츠를 즐기길 원한다면, ‘VR 스포츠 챌린지’도 눈여겨보자. 하키, 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 당신이 꿈꾸던 스포츠의 주인공이 되어 플레이 그라운드를 신나게 누빌 수 있다. 때론 상대 선수와 싸우고, 슬램덩크를 하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라켓을 휘두르고. 당신이 꿈꾸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당신의 눈앞에 있다. 누워서 뒹굴기만 했던 내 방이, 관중과 상대 선수들로 가득찬 경기장으로 변신한다. "이건 가짜야!" 라고 외치면서도 미친 듯이 심장이 뛰는 경험은 지금 당신이 정말 미래에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HTC VIVE
현재 운동효과를 누릴 수 있는 대표적인 VR 기기로는 HTC 바이브, 오큘러스 리프트, 플레이스테이션 VR까지 총 3종류가 출시되어 있다. 스마트폰을 끼워 쓰거나, 헤드셋만 출시된 제품들도 간혹 있지만 이 제품들은 제대로 된 VR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시야만 VR처럼 보일 뿐, 내 몸의 움직임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VR을 제대로 즐기고, VR로 운동을 하려면 '룸 스케일'이라고 하는 공간 인식 기술이 적용된 위의 제품들을 구매해야 한다.
최첨단 VR이 아직 당신에게 낯설고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여기 좀 더 친근하고 쉬운 (가상) 운동방법도 있다. 한때 유행했다가 지금은 당신의 장롱 구석에 들어가 있을 위(Wii)가 그것이다.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휘적휘적 움직이다 보면 의외로 칼로리 소모량이 크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위 스포츠(Wii Sports)로 가족들과 소소하게 작은 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설거지하기’ ‘안마하기’ 등 뭐가 걸려있어야 승부욕이 생기는 법이니까.
작년 그리고 올해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포켓몬고. 실제로 포켓몬고는 잘 걷지않는 현대인들을 배려해서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한다. 진짜 현실에서 걸어야만 게임을 더 진행할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많이 걷지 않으면 포켓몬을 만날 수 없다. 포켓몬을 잡기 위해 필요한 포켓볼을 얻기 위해서는 포켓스탑 근처를 부지런히 걸어 다녀야한다. 버스나, 자동차 등의 꼼수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속도 제한이 있어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서면 플레이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미국에서 포켓몬고가 미국인들을 하루 2천보 이상을 걷게 했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니, 주변에 걷기 싫어하는 가족이나 동료가 있다면 포켓몬고를 플레이하도록 유인해보자.
몸이 찌뿌둥한 주말, 아무 부담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 하나쯤 만들어 두는 건, 무료한 일상에 활기가 된다. 큰 준비물이나 마음의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는 생활 체육에는 대표적으로 배드민턴과 탁구가 있다.
배드민턴은 우리나라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운동이다. 실제로 전문적인 레슨을 받지 않아도 일명 ‘약수터 배드민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습게 보기 쉽지만 사실 체력 소모가 엄청난 운동이다. 배드민턴을 처음 한 사람은 다음 날 팔을 들지 못할 정도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 초보자끼리 툭툭 가볍게 치는 것도 꽤 많은 운동이 된다.
반면 탁구는, 라켓과 셔틀콕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있는 배드민턴과 달리 테이블이 필요하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동네 중학교, 고등학교 강당이나 동네 주민센터에 탁구 테이블 하나쯤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모든 구기 종목 중 2.7g으로 가장 가볍고 작은 공인 탁구공을 톡톡 치는 게임이다. 탁구는 막상 해보면 팔보다는 다리가 중요한 게임. 이리저리 날아오는 탁구공을 쫒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숨이 차오른다.
우리나라 생활체육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조기축구, 사회인 야구 모임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새벽부터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축구를 한다. 야구와 축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사람이 모여야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그만큼 다양한 재미를 느낄수 있다. 운동이 끝나고 다함께 술집으로 가서 너무 거하게 먹고 마시지만 않는다면, 일주일에 한 번 재미와 운동을 동시에 잡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말 마실과 운동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날 좋은 주말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가보자. 등산복을 입고 너무 거창하게 갈 필요는 없다. 서울 근교에도 용마산, 수락산, 관악산 등 교통좋고, 천천히 자연을 즐기며 걸을 만한 둘레길이 많이 있으니까. 요즘같이 날이 좋은 날엔 둘레길만 걸어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자연과 함께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등산은 정서적으로 상당한 만족감을 줄 뿐만 아니라, 지방을 태우면서 근육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
집이나 실내에서 운동할 때 가장 좋은 메이트는 사실 음악보다는 TV다. 미뤄뒀던 예능 프로를 깔깔거리면서 보다 보면 어느새 당신이 목표했던 시간과 거를 훨씬 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때 볼 TV프로그램은 너무 심각하거나, 내용이 복잡한 건 운동보다 TV에 정신이 팔릴 수 있으니, 가벼운 예능 프로나 가벼운 드라마가 좋다.
TV에 별로 관심이 없고 집 밖으로 나가는 타잎이라면? 비트가 빨라 운동하는 데 스퍼트를 내게 해줄 음악이나 혹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운동에 도음이 될만한 음악을 추천하자면, 나이키 런에서는 애플 뮤직을 통해 달리면서 들으면 좋을 플레이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러닝 페이스에 맞춰 들을만한 음악을 신중하게 고른 그들의 플레이리스트는 바이오리듬처럼 높고 낮음이 있어서 달릴 때 더 없이 좋다. 이렇게 단순히 운동만을 하기 보다는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과 결합하면, 운동을 덜 지루하게 할 수 있고, 결국 운동도 하나의 취미활동이 되어 꾸준하게 할 수 있다.
달리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려면 거추장스러운 선이 없어야 하고, 가벼워야 한다. 이럴 때는 완전무선 이어폰이 답이다. 핸드폰은 점퍼 주머니에 넣어두거나, 혹은 런닝머신이라면 근처에 대충 던져두면 된다. 최근 새로 출시되는 완전무선 이어폰들은 경량화, 고음질화가 이뤄져서 귀에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다. 1세대 완전무선 이어폰은 조금만 움직이거나, 뭔가에 가로막힐 경우 음악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출시되는 모델들은 무선 신호 강도도 보강되어서 왠만한 거리와 움직임으로는 음악이 끊어지지 않는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셀카를 찍고, 혹은 기록을 하는 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매일 밤 하루의 운동일기를 쓰자. 아침이든 저녁이든 혹은 점심이든 시간은 상관없다. 그냥 같은 시간에 내 몸을 둘러보고, 하루의 일상을 돌이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도 한 방법이다. 꼭 누군가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큰 동기 부여가 되어줄 것이다. 아, 물론 자랑은 본인의 선택이다.
최후의 도전이다. 이쯤 되면 운동을 즐기는 수준에 왔다. 위와 큰 맥락은 같다. 매일매일 자신의 상태를 기록할 것.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추가된다. 조금씩 상향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기록을 단축하거나, 들 수 있는 무게를 조금씩 늘려간다거나, 더 오래 버틴다거나 하는 거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냥 윗몸일으키기 하나 더, 푸시업 하나 더 처럼 어렵지 않게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보다 한발 더 나아지고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 어떤 유인책보다 더 강렬하고 달콤한 운동의 이유가 될 것이다.
뭐든 재미있어야 한다. 운동도 사는 것도. 아주 오랜시간 운동을 내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마도 재미가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운동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 우리 인생은 길고, 오래봐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