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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목사
사순절 시작 주간(재의수요일) 주일설교.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 13장 10-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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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인 22일부터 사순절이 시작 되며, 이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또는 ‘참회의 수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재의 수요일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시고 천년이 지난 11세기에(주후 1001-1100 사이) 시작되었습니다. 재는 종려나무가지를 태운 재를 말하는데, 신자들은 이 재를 머리에 뿌리거나 이마에 바르며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재만큼 많고, 지워지지 않고, 가릴 수 없는 수치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기독교 전체가 재를 뿌리는 행위를 하지는 않으며,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등 일부 교파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교회들은 재를 뿌리지는 않지만 40일의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주님의 고난과 희생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참회하고 돌이키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번 주부터 사순절이 시작됨을 기억하시고, 내 자신의 죄 문제, 구원의 문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문제, 헌신과 순종의 문제, 여러 가지 신앙의 전반적인 면들을 점검하시고, 십자가 신앙으로 굳게 서는 회복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권면의 주제는, ① “자신의 신앙을 죽기까지싸워서 잘 사수하라”(지켜내라), ②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믿음의 실천을 게을리하지 말라”, ③ “인도함을 받아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딱딱하게 표현 되었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기억하는 사순절에 잘 맞는 내용이며 비장감이 흐르는 듯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신앙의 선진(선배)들의 발자취를 돌아 볼 것을 권면 합니다. 7절 후반부에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신앙의 시작과 과정도 잘해냈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결말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라” 는 구절을 표준새번역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했고, 공동번역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보고”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죽음은 그야말로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결말을 맺었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신앙을 사수하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난의 삶과 죽음을 살아내셨던 본 받을 만한 믿음의 선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주기철 목사님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기철 목사님은 잊지 않으면서도 그 교회에서 함께 시무하셨던 백인숙 전도사님이라는 분은 처음 들어 보실 겁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순교자 이셨습니다.
『백인숙 전도사님은 1917년 평북 신의주에서 출생했습니다. 백 전도사님의 부모님은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야 해 좋은 배필 나서면 잔말 말고 시집 가거라” 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과년한 딸이 시집가서 잘 살아 주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당부에도 백인숙 전도사님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싫습니다. 저는 시집가지 않고 예수님만 섬기겠습니다" 부모들은 펄펄 뛰며 금족령을 내리고 다니던 안동중학교’를 중퇴시켰습니다.
금족령에 얽매여 집에 감금당했던 전도사님은 그길로 집을 나와 평양여자신학교를 입학,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1919년에 요꼬하마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주기철목사님이 시무하는 산정현교회 여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주기철목사님과 같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경찰에 끌려가 수감되고 2개월만에 출옥하는 등 교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는 차라리 옥중에서 죽기를 바랐지만 여러번 끌려가도 번번히 몇달이 안되어 풀려났습니다.
1944년 4월 21일 그가 믿고 존경하던 주기철 목사님의 장례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일본 경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매를 맞고 옷이 찢기면서도 참석했고 백 전도사님은 주 목사님 장례식에서 슬피 울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장례가 끝나자 백 전도사님을 옥에 가두었지만 그는 옥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비굴하지 않게하소서 어떤 경우에도 연약한 꼴을 보이지 않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백 전도사님이 연약한 꼴을 보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애국운동을 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일제에 저항할 때는 여인들의 몸을 발가벗겨 남자들 앞에서 갖은 수모를 다 주었고 담배불로 지지고 곤욕스러워 땀을 흘리면 얼음물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백 전도사님도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끌려온 여인들은 폭도로 변한 간수들의 노리개가 되어 갖은 폭행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인숙 전도사님은 이때도 2개월만에 풀려났고 그 이듬해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북쪽은 김일성이 지배하는 공산국가가 되엇고, 공산화된 산정현교회에서 전도사로 재직하면서 백전도사님은 ‘김철훈 정일선’ 두 분 목사님의 순교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백 전도사님은 1950년 6월 20일 공산당에 체포되어 생매장 되어 순교하셨습니다. 이때 나이 34세 였습니다.
순교 하실 때 ‘장수은(1920-1950)’ 이라는 여성 전도사님도 함께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장 전도사님은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학교 사감으로 4년간 시무 하신 후 평양 신양리 신암교회에서 전도사로 봉직하셨습니다. 당시 신암교회 담임 이셨던 ‘김길수’ 목사님이 순교 하시자 담임목사 없는 교회를 혼자 목회하며 교인을 성전에 모아 철야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회 때이면 공산당 정보부원으로부터 언제나 감시받았습니다. 6.25직전에 교회가 문을 닫게 되자 교인 집집마다 심방함으로 교인들의 신앙을 지키며 순결한 신앙을 널리 전하였습니다. 6.25 남침이 있기 전날인 1950년 6월 24일 장수은 전도사님은 백인숙 전도사님과 함께 공산당원에 의해 끌려 갔습니다.
순교 직전 총 부리를 겨누고 “죽어도 예수를 믿겠느냐?”, 최후의 질문을 던지는 공산당원을 바라보며 백인숙 전도사님은 조용히 미소를 삼키며 대답합니다.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오히려 광영이겠습니다” 공산당원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습니다. 그렇게 예수님만을 죽도록 사랑했던 두 여전도사님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끝까지 배반하지 아니하고 생매장되어 순교하셨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백인숙, 장수은 전도사님, 셀 수 없는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의 결말은 어느 인생과 똑 같은 죽음이었지만, 그 죽음은 썩어 없어지는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을 여는 영광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결말을 본받고, 배우고,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처럼, 우리도 이번 사순절을 보내면서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을 찾아 보고 배워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가족과 함께 기독교 유적지들을 답사해 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 위에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은총이 충만하게 흘러 역사하는 회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삶의 결말과 믿음을 배웠다면 이제는 시선을 더 멀리 옮겨서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사순절에 가장 많이 쓰이는 성경 구절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a)입니다.
사순절에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은 당연히 예수님 한 분에게만 고정 시켜야 합니다.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사순절에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라는 권면의 말씀이 나오는 10~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아멘.
이 구절들에서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는 누구를 말할까요?. 우리는 여기에 앉아 계신 우리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신자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사순절에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묵상해봐야 합니다.
10절에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단’은 외형적으로는 희생제물을 태우던 번제단을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신 십자가를 상징하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히브리서는 유대교에 속해 있었다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신자들 중에 믿음이 불완전하거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자들에게 쓴 편지라고 했습니다. 적지 않은 유대교 출신 기독교인들은 옛 습관을 정리하지 못하고 여전히 할례는 받드시 해야 한다, 유월절만은 지켜야 한다, 정하고 부정한 음식은 가려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단을 언급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하여 은혜로 주어지는 새 언약이 완성 되었음에도, 여전이 율법과 규례를 내세우며 옛 언약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훈계하고 권면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앞세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질책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제단’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제단에서 드리는 희생제사 중 특히 속죄제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은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고, 제물은 제단에서 불사르고 나머지 부속물들은 제단 밖 재 버리는 곳에서 나무 위에 올려 놓고 전부 불사랐습니다. 남기거나, 먹거나 하는 것이 없어 전부 불사르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속죄제의 제물을 먹을 수 없다고 했고, 11절에 그 육체는 영문 밖으로 나가서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에 드리는 희생제사에서는 대 제사장이 희생제물인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성소에 뿌리고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전부 불살랐습니다. (레 16:27) 모두 불사른 장소를 영문 밖이라고 하였고, 이곳은 진영에서 벗어난 외딴 곳이었습니다.
속죄제물을 전부 불에 태웠던 영문 밖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의미 합니다. 12절에 예수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희생당하신 그 장소가 바로 영문 밖이었습니다.
유대교 출신의 개종자들은 제단의 희생제물이 불 태워진 영문 밖은 잘도 기억하고 그리워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피 흘리시고 영문 밖에서 매달리신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는데에는 매우 인색했습니다. 십자가 보다 제단이 우선시 된다는 관습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는 주간에 우리 모두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 우리의 신분, 그리고 우리의 현재 마음 상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으며 힘 닿는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칭찬 받을 만한 일도 마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체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르침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예수님 그 분에게 집중하는 것은 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 해보면 제단은 가르침이고, 영문(성문) 밖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절기이기에, 예수님 그 분이 누구이며, 나는 그 분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분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번 해 보자고 권면하는 말씀과 다짐하는 결단이 섞여있는 구절이 13절입니다. 우리 함께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아멘.
이 구절대로 읽으면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 드리면 “그러므로 우리도 진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로 읽으면 치욕을 짊어지라는 것에 무게감이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의 번역은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과 치욕을 짊어지는 것을 동시에 하라는 말씀이며, 직설적으로는 십자가의 고난을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으로 있지 말고, 가장 가까이에서 십자가 고난의 현장을 지켜보는 실제 현장의 목격자가 한 번쯤 되어 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입니다. 말씀 그대로 2천년 전 십자가가 서 있었던 골고다 언덕까지 나아가셔서 그 당시 우리 주님이 피 흘리신 현장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인하여 직접 목격해 볼 수 있도록 집중해 보셔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들리는 처절한 신음소리와 거친 호흡을 생생하게 들어 보셔야 합니다. 나무를 타고 흘러내리는 우리 주님의 보혈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주변에서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소리도 들어 보셔야 합니다. 그 참혹한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하여 남겨주신 위대한 가상칠언을 들어 보셔야 합니다.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것, 이것이 사순절 신앙의 시작이자 마침입니다. 제단의 시대, 옛 언약(제사, 율법)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고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시대,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변화 되어 가는 새 언약(믿음, 은혜)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바울도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비교하며 말하면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 이라면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라고 권면 했습니다.
우리는 영문 안에서 돈과, 세상과 죽음에 갇혀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영문 밖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감으로 구원과 영생과 은혜를 누리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충만하게 회복하는 시간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 모두는,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지자”, 이 말씀을 기억하며 어느 것도 아닌 오직 예수님, 그분 에게만 집중하고 또 집중하고, 그분 에게만 나아가고, 그분 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들고, 그분 안에서 능력을 공급받고, 그 분의 말씀으로 인생의 해답을 얻어 가시는 복되고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 곧 예수님에게 나아간다는 것이 내 삶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14-16절을 읽어 드립니다.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아멘.
첫째, 14절에서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영구한 도성은 하늘나라이며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입니다. 영문 밖 십자가는 우리 인생의 종착역이자 영구한 도성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이기도 합니다. 14절은, 구원의 확신을 붙잡고 영생의 소망으로 ①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사순절 기간 동안 영문 밖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시면서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확인하시고, 내 영혼이 구원 받았음을 굳센 믿음으로 확신하시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15절에는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찬양은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 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찬양의 가사들은 나의 신앙고백문 이기도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시고 ② 찬양을 듣고 부르시고 묵상해 보십시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계속해서 찬양이 쌓이면 엄청난 은혜와 평안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하루에 최소한 한 곡씩 큰 화면으로 소리를 크게해서 꼭 들어 보십시오. 큰 감동과 감격의 체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이웃에게 식사나 차를 대접하고 선물을 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도움이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도모 한다는 말이며, 특히 나누어 준다는 말은 ‘교제한다(헬, 코이노니아스)’는 뜻입니다.
평소에도 거의 만날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만나고 교제하는 것이 더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③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와 언행에 주의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존중하고 항상 미소 짓는 태도로 이웃들을 상대하시면 됩니다. 성도인 내 자신이 곧 움직이는 교회이기 때문에, 나를 통하여 칭찬 받을 만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행동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을 앞세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누구라도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순절에 실천 하시기를 권하는 세 가지 요약 합니다.
① 구원의 확신을 붙잡고 영생의 소망으로 간절히 기도 하십시오.
② 나만의 찬양 시간을 확보 하셔서 듣고, 부르시고, 고백하시기를 계속 하십시오.
③ 이웃과 만나는 사람들을 겸손한 언행과 밝은 미소로 응대 하십시오.
이대로 실천 하시기로 순종하시면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지자”는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 주제가 성령 충만의 은혜로 역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믿음의 선배로부터 신앙을 배우고 익히며, 오직 예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하며,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신 우리 주님에게로 가장 가까나아가셔서, 믿음이 회복되고, 사랑이 회복되고, 소망이 회복 되는 은혜의 사순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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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영문 밖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기억하며, 그 분께만 나아가는 사순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물과 피를 다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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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