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말씀(2018.7.8.) 말씀/ 전도서 7:14 시기와 우연에 대한 자세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한 주가 잘 지내셨나요? 목사인 저의 삶의 중심은 매주 돌아오는 주일입니다. 주일을 중심으로 시간과 날들이 돌아갑니다. 한 주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고, 기록하고, 전하고...거룩한 부담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감사한 것은 긴장과 깨어 있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삶이 지루하지 않고 존재 의미가 있고, 행복과 보람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기와 우연, 타이밍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가 합니다. 전도서(9:11-12)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시기와 우연히 모든 자에게 있다. 빨리 오던지 늦게 오던지 그 차이는 있지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일등으로 달리던 자가 나중에도 꼴찌로 달립니다. 공부 잘 하던 사람이 돈도 잘 버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삶에 시기와 우연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와 우연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연이라는 것은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시기와 우연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방종하고 한 눈 팔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지난 10월 2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있었습니다. 롤러스케이트 남자 3천m 계주에 최인호(논산시청), 최광호(대구시청), 정철원(안동시청)이 이어달려 마지막 바퀴를 1취로 달리며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주자 정철원이 우승을 예감하고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 속도를 줄이고 두 팔을 벌려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그 사이 뒤따라오던 대만의 마지막 주자가 사력을 다해 발을 뻗었습니다. 대회 공식 기록 결과 한국은 4분5초702호 대만의 4분 5초692에 0.01초 차로 뒤져서 결국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차이는 0.01초입니다. 얼마나 가슴을 치고 억울해 했겠습니까? 방심하다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것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불성실하면 최고의 기회도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때와 시기에 대해서 또 전도서 3장 1-4을 보면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여기서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아무리 애를 쓰고 급하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한 때를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요셉이 억울한 누명으로 옥에 갇혔을 때에 그는 성심을 다해서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을 섬기며 꿈까지 해몽 해 주었습니다. 결과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어 바로를 다시 섬길 수 있게 되었고 , 요셉은 자신을 기억하여 억울한 누명을 벗길 수 있는 기히가 왔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시편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발은 착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시편 105:18-20). ‘여호오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는 계속 노예로 있어야 했고, 옥중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찰 때까지 그는 기다려야했습니다. 그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온 세상에 대 흉년 때에 세상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며 애굽에 팔아버린 형들도 곡식으 사러 아서 그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놀라기는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의 열 곡식단과 하늘의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던 어린 시절의 꿈이 바로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임신했으면 반드시 10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들에 심은 곡식을 심었으면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선한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랜 인내심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그네처럼 살았어도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는 25년을 기다리고, 모세도 이스라엘을 출애굽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40년을 양똥 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도 언제나 하나님의 때를 따라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메시아로 들어내셔야할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와 머무실 때, 죽으셔야 할 때오 부활 승천하실 때를 아시고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그 모든 때는 하나의 영광을 들어내실 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때는 충분히 때가 차야 이루어집니다. 세상에는 각 분야에 천재들이 있습니다. 두 살 세 살 때부터 언어가 띄어나 많은 외국어를 구사하거나 초등학교 때 수학 미적분을 하고 중학교쯤 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재가 없는 분야야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문학 천재입니다. 인생을 충분히 살아보지도 않고 어릴 때부터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문단 데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인생살이 글을 쓸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삶을 건너 띈 천재들이 후에는 사회에 적응이 안 되서 불행한 경우가 많습ㄴ다. 인생은 막 뛰어노는 유년기도 있고, 사춘기도 있고, 청장년기도 있는 것입니다. 건너뛰고 월반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충실하게만 때를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비범한 사람보다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대기 만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천재성이 없기 때문에 느리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자기 삶을 살고 후에 최상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김재중 집사님 스스로 대기만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평범하게 시작하였지만 끝 판에 큰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 자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30년 가까이 신앙생활하였지만 요즘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큐티를 새기고, 독서를 하면서 열정을 다하는 삶이 제가 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은혜스럽습니다. 이명남 집사님도 우유배달로 시작하여 변변한 직장 없이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보는 이들마다 걱정이 되게 하고 답답하였지만 지난 번에 전국 기자 일등상 받고 이어서 이번에는 장관상도 받았습니다. 딸 다은이는 아빠가 뭘하였길레 해양경찰 청으로부터 장관상을 받았냐고하지만 내심은 뿌듯하지 않았겠습니까? 정미 집사님도 돈이 안 되는데 장관상이 무슨 필요냐고 할 수 있지만 내심 기분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도 두 분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매일 기도하는데 기분이 상당히 좋습니다. 받기 시작한 상 앞으로 계속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아멘. 서광호 목사님도 이제까지 토요일이면 어디 교회로 갈까 근심을 하였지만 이제 우주호를 탑승하여 삶의 일터에서 대기만성의 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도 과거는 남들과 비교하며 남을 쫓는 삶을 살며 왜 나는? 왜 우리 자녀들은? 왜 우리 교회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나만의 사역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며 대기만성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 주일 예배 후 교제를 나누는데 지홍 집사님도 현옥 집사님도 모두가 황금기 가장 풍요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고, 최광휴 선교사님, 경숙 집사님도 대기 만성의 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은혜가 되었습니다. 적은 무리이지만 우리 우주교회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대단해야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것처럼 보여도 작은 것을 감사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살아갈 때 누구나 대기만성의 때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저는 주안에서 누리는 행복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왜 나는? 그런 생각 절대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마다 시기와 우연이 있습니다. 오늘이 당신이라면 내일은 내 차례입니다. 나중 된 자도 먼저 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신실하게 한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평범한 일상의 삶이 다 기적이 될 것입니다. 밥도 뜸이 들어야 맛이 있고, 과일도 속성보다 충분한 일조량 가운데서 익은 것이 맛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적당한 시기와 때가 필요합니다. 이 때는 준비 기간입니다. 서서히 익어가고 숙성되는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준비하면 장래에 좋은 열매를 맺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올 해는 가을철이 됐는데도 유독 과일들이 비쌉니다. 이 때가 되면 온 들력이 주렁주렁 달린 감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데 올해는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때가 잘 못되서입니다. 제가 사과를 좋아하는데 해도 너무 비싸서 먹기가 힘듭니다. 작황이 안 좋아서 다 떨어졌습니다. 고추도 녹고 깨도 떨어지고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때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저희 주차장에 단감 나무가 있는데 겨우 5개를 수확하였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런 때도 있어봐야 저런 때도 있는 것입니다. 불황의 때가 있어야 풍성함의 때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흉작일 때가 있는데 이러한 때도 불필요한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겸손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하지 못한 것을 회개도 할 수 있고, 더 좋은 날을 준비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전도서 7:14절에서 전도자는 때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우리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의문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만사 형통이 안 되고 어려운 일들이 자주 생길까? 왜 안 믿어도 잘만 되는데 나는 믿어도 이런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서 마음이 힘들게 하실까? 전도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형통한 날만 주시지 않고 곤고한 날을 병행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늘 기뻐하며 살아가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대로 곧은 형질을 굽게도 하시고, 굽어서 펼 수 없는 형질을 곧게 할 수도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인생 사는 날동안 형통한 날도 주시고 곤고한 날도 주시는 것은 선한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는 날이 다 곧기를 바라고 형통하기를 바리기 때문에 생각과 다른 일들이 생기면 반발과 원망히기 쉽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인정하고 왜 하나님이 나의 길을 굽게하셨는지, 왜 곤고한 날을 주셨는지 일의 의미를 깨닫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연단하시고 내 길을 더욱 단단하게 하시고 변함없이 선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을 안다면 우리는 감사하며 삶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좋은 날만 계속 되면 좋은게 좋은 줄 모릅니다. 낮과 밤, 배부름과 배고픔, 실패와 성공, 생명과 죽음 모두가 한 짝 입니다. 서로 견제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번 무슨 일을 시작하면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업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무엇에 열중하다 보면 그것에 빠지게 됩니다. 잘 못가고 있어도 궤도 수정을 못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씩 곤고한 때를 주셔서 삶을 잠간 멈추게 하시고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내일 종말이 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본질적인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저도 60 후반 70이 기까우니 이 되니 또 한번 인생을 돌아보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 것인가? 남들은 은퇴를 하는데 내가 제대로 쓸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그렇다면 지금 순간순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가 있을까? 자칫 앞만 보며 달리다가는 낭패를 보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천하를 다 얻었어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는 나중에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인생을 다 쓰고도 남는 것이 무엇일까? 후회하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을 섬기고 존재감을 키워가야 합니다. 인생 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이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소유를 띄어 넘고 나이를 띄어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라는 것은 결국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는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10대에서 100대까지 인생 순위 나이별로 <없다> 시리즈를 냈습니다. 10대 철이 없다. 20대 답이 없다. 30대 집이 없다. 40대 돈이 없다. 50대 일이 없다. 60대 낙이 없다. 70대 이가 없다. 80대 처가 없다. 90대 시간이 없다. 100대 다 필요 없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를 돌아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나중에 이렇게 됩니다. 소유가 없어도 자신이 남아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소유에 집착하며 사는 사람은 소유가 없는 순간 나도 없게 됩니다. 그게 불행이고 헛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키워가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믿고 없으면 없는 대로 주께 맡기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준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실 때에 소유가 많으셨습니까? 머리 둘 곳도 없느셨습니다. 예수님은 차도 집고 없고, 좋은 옷도 없으시고, 돈도 없으시고 오직 존재만 부요하셨습니다. 매이는 것 하나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때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면서 때를 따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스케줄 속에서 죽기까지 철저히 순종하셨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시기와 우연의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수고해도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시기와 우연이 때는 모든 자에게 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승리의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때를 따라 반응하며 준비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