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가 품은 가을 문향(聞香)
유 준 호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1. 들어가는 말
가을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늘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의 단골 시재(詩材)가 되어 왔다. 그만큼 가을은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을 소재로 한 많은 시와 시조가 우리 앞에 나타나 있다. 그 중에 우리 선조들이 알뜰히 써놓은 시조을 찾아 살펴보는 일은 그 의미가 남다르고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가을에 대한 선조(先祖)들의 정서를 시조로 표현한 가을 고시조는 이미 해월(海月) 채현병(수석부회장)이 “우리 선조들이 노래한 <이 가을의 시조>”란 제(題)로 살펴본 바가 있다. 그래서 거기서 이미 해설 감상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백설이 잦아진 골에〜’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의 ‘십년을 경영하여〜’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추강에 밤이 드니〜’ 한벽당(寒碧堂). 곽기수(郭期壽)의 ‘물은 거울이 되어〜’ 방촌(厖村) 황희(黃喜)의 ‘대추 볼 붉은 골에〜’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수국에 가을이 드니〜’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의 ‘금잔에 가득한 술〜’ 삼주(三洲) 이정보(李鼎輔)의 ‘국화야 너는 어이〜’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의 ‘이려도 태평성대 저려도 태평성대〜’ 미상(未詳)의 ‘월명정 월명정커늘〜’ ‘가을 하늘 비갠 빛을〜’ 등은 제외하고 가을 관련 고시조를 찾아 이에 담긴 정서와 감흥을 살피려 한다.
2. 孤山의 漁父四時詞와 山中續新曲에서 보여준 가을
윤선도의 가을을 노래한 작품 가운데 으뜸은 춘하추동 각 10수씩 총 40수로 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 속세를 떠나 자연과 동화됨을 나타내고 있는 [秋詞]와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의 추야조(秋夜操)이다. 이중 해월(海月)이 언급된 [秋詞 • 2]는 제외하고 차례로 보기로 한다.
[秋詞 • 1]
物外에 조흔 일이 漁父生涯 아니러냐.
배 떠라 배 떠라
漁翁을 욷디마라 그림마다 그럿더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四時興이 한가지나 秋江이 읃듬이라
◈ “속세를 벗어난 깨끗한 삶이 어부의 생애가 아니더냐./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어부라고 비웃지마라 그림마다 그려졌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사계절 흥취가 모두 같으나 가을 강이 으뜸이더라.”하는 시조로 한시구(漢詩句)의 어의(語意)나 어음(語音)에 상응하는 우리말로 전혀 새로운 자신의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세속을 벗어나 선경 같은 물외(物外)에 서서 가을강의 물외한정(物外閑情)인 어부생활의 흥취를 말하고 있다. 속세를 벗어나 자연에 합치한 어부의 청빈한 생활이 곱고 아름답다.
[秋詞 • 3]
白雲이 이러나니 나모긋티 흐느긴다.
돋 다라라 돋 다라라
밀물의 西湖가고 혈믈의 東湖가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白瀕紅蓼난 곳마다 景이로다.
◈ “흰 구름이 일어나니 나뭇잎이 바람에 흐느적거린다./ 돛을 달아라 돛 달아라 바람 따라 밀물 때 서호로 가고 썰물[혈믈]때 동호로 가자./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흰 마름과 붉은 여귀 꽃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로다.”하는 시조로 자연의 변환인 바다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떠돌며 배 위에서 바다의 풍광을 즐기는데 때마침 바닷가 절벽 해안에만 피는 흰 마름과 여귀 꽃이 조화롭게 어울려 지은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를 읽는 우리도 거기에 그 자연의 형상에 동화될 듯하다.
[秋詞 • 4]
기러기 떳난 밧긔 못 보던 뫼 뵈난고야
이어라 이어라
낙시질도 하려니와 取한거시 이 興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夕陽이 바애니 千山이 錦繡ㅣ로다.
◈ “기러기 날아가는 저편을 보니 안개에 가려 못 보던 산이 보이는 구나/ 노 저어라 노 저어라 낚시질도 하면서 자연에 취한 것도 또한 흥이라/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석양이 눈부시게 비추니 온 천지가 비단결 같도다.”하는 시조로 배에서 바라본 원산(遠山)의 가경(佳景)을 표현하고 있다. 기러기가 떠 있는 저 멀리로 이제껏 보지 못하던 산이 보이니 배를 저어가면서 낚시질도 하며 즐기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이렇게 못 보던 새로운 경치를 보는 일이다. 저녁놀이 눈부시게 비치니[바애다는 눈부시다의 고어] 붉게 물든 단풍이 찬란하고, 거기에 저녁놀이 비치니 이것은 분명 온 세상에 비단을 둘러친 것 같다고 감격어린 감회를 표출해 보이고 있다.
[秋詞 • 5]
銀脣玉尺이 몃치나 걸년나니
이어라 이어라
蘆花의 블부러 갈해야 구어노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딜병을 거후리혀 박구기예 브어다고
◈ “은비늘 반짝이는 고기가 몇 마리나 낚시에 걸렸느냐./ 노 저어라 노 저어라 갈대꽃에 불을 붙여 좋은 것만 골라서 구워놓고/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술병을 기울이어 표주박에 부어다오.”하는 시조로 속세를 멀리 떠난 곳에서 낚시질하며 세속의 명리를 떠난 어부의 생활을 찬양하고, 특히 가을 낚시의 흥겨움을 노래했다. 물고기를 은순옥척(銀脣玉尺)이라고 했는데 이는 물고기의 비늘이 아름답게 반작임을 표현한 말로 싱싱한 금방 잡은 고기란 뜻이다. 이를 가을 갈대에 불을 붙여[블부러] 구워먹으며 질병에 막걸리를 따라 마신다고 하였다. 어떤 면에서 가어옹적(假漁翁的)인 면을 느끼게 하고 있다. 작자는 물아일체나 유유자적을 노래하고 있지만 오히려 불우한 정객으로서의 비록 비좁은 낚싯배에서 살지언정 부세(浮世)에는 가고 싶지 않은 '지사비추(志士悲秋)'의 심경을 노래하는 것은 아닐까.
[秋詞 • 6]
녑바람이 고이 부니 다론 돋긔 도라와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暝色은 나아오대 淸興은 머러읻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紅樹淸江이 슬믜디도 아니한다
◈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이 곱게 불어주니 달아놓은 돛에 배가 움직여 돌아온다./ 돛을 내려라 돛 내려라 저녁 빛이 가까워지니 맑은 흥이 멀리 있는 듯하다/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붉은 단풍 맑은 강물이 싫지만은 아니하다.”고 한 시조로 시간이 어느덧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바람이 옆에서 불어와 돛의 방향을 바꿔 집으로 향한다. 바람도 곱게 불어 적당한 속도로 집으로 오는데 해가 져서 빛이 점점 어두워 오니 흥취도 차츰 차분히 가라않는구나. 때는 바야흐로 한 가을 나뭇잎이 붉게 물든 나무와 티없이 맑은 강물이 참으로 마음을 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외부공간인 배경의 ‘빛의 변화’와 내부공간인 ‘마음의 흥취가 가라앉음’을 대조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낮에 하던 발산적 사고가 어둠이 오면서 서서히 수렴적 사고로 바뀌어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저녁때의 차분한 마음속에 황금을 닮은 빛에 반사된 단풍 든 숲과 맑고 푸른 물이 잘 어울려 있어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秋詞 • 7]
흰 이슬 빗겨난대 발근달 도다온다.
배 셰여라 배 셰여라
鳳凰樓 渺然하니 淸光을 눌을 줄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玉兎의 찐난 藥을 豪客을 먹이고쟈
◈ “하얀 이슬이 맺힌 이슬방울 위에 밝은 달이 돋아온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궁궐이 아득한데 밝은 달빛을 누구를 줄 것인가/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옥토끼가 찧는 약을 풍류객에게 먹이고 싶구나.”하는 시조로 밤이슬 내린 바다위로 밝은 달이 뜬다. 보름달이었으면 더없이 운치를 자아내리라. 맑은 달빛은 사랑을 상징한다. 그래서 달빛을 걷어다가 사랑하는 님의 베개 맡에 비추겠다는 표현이 고전 작품에 많이 나온다. 사랑의 표현으로 임금님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간신들의 발호로 제대로 뜻이 전달되지 못할 것 같다(봉황루가 묘연하다) 달나라에서 옥토끼가 찧는 다는 신비의 명약(부귀공명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청정한 마음을 갖게 하는 명약)을 호탕한 사람(자신)에게 먹이고 싶다고 하고 있다. 자신이 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한 선비의 생활을 해 나가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秋詞 • 8]
乾坤이 제곰인가 이거시 어듸메오
배 매여라 배 매여라
西風塵 몬 미츠니 부체하야 머엇하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드론 말이 업서시니 귀 시서 머엇하리.
◈ “하늘과 땅이 제 각각인가 여기가 어디인가/ 배 매어라 배 메어라 속세의 먼지가 못 미치니 부채를 부친들 무엇 하겠는가.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속세의 말을 들은 적 없으니 귀를 씻어 무엇 하리.”하는 시조로 하늘과 땅이 낮의 세계에서처럼 확연히 구별되는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하게 하는 밤이니 이것이 내 즐기는 곳이 아니겠느냐고 자문하는 것이 초장이다. 시각적 착각을 강조한 말이다. 중장 종장은 내용으로 보아서 부귀와 공명을 추구하는 세계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세계를 암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예전에는 자연에 살면서도 속세의 벼슬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 있어 그 쪽의 소식에 귀를 곤두세웠는데 지금은 유량과 같은 간신배가 권력을 남용한다는 소식이 들리지도 않고 또한 듣고 싶지도 않으니 굳이 왕도처럼 부채로 먼지를 가리고 날려버릴 필요도 없다. 욕심에 의한 번뇌가 일체 개입하지 않은 무념무상의 무욕의 경지이다. 또한 더러운 세상에 나오라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귀를 씻을 필요도 없이 속세의 세계와는 절연된 상태이니 허유처럼 귀를 씻을 필요도 없다. 부귀공명을 아예 잊고 살음을 표현해 보이고 있다.<서풍진(西風塵)>이란 말은 진(晋) 나라 유량(庾亮)이란 사람이 제왕의 외삼촌으로 천권(擅權)함을 몹시 언짢아 여기던 왕도(王導)가 일찍 서풍에 섞여 온 먼지를 부채를 들어 가리며, ‘원규가 사람을 더럽힌다.’고 했다는 고사이고, <귀 시서>는 기산영수(箕山潁水) 고사를 떠올려 한 말이다.
[秋詞 • 9]
옷 우희 서리 오대 치운 줄을 모랄르다
닫 디여라 닫 디여라
釣船이 좁다하나 浮世과 얻더하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내일도 이리하고 모뢰도 이리하쟈
◈ “옷 위에 서리가 내려도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 놓아라 닻 놓아라 낚싯배가 좁다하나 덧없는 세상과 어찌 견주리./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내일도 이럴게 살고 모레도 이렇게 살자.”는 시조로 가을 서리를 맞으며 배 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감회를 노래했다. 바다 바람 실은 서리가 어찌 춥지 않으랴만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옷 위로 서리가 내렸지만 자연에 취하여 추운 줄을 모른다. 비록 비좁은 낚싯배일망정 마음만은 대자연을 품고 부귀영화를 타투며 아웅다웅하는 뜻 없고 속절없는 바다 밖의 속세와 어찌 견주랴 견줄 수 없다. 이제 그런 것 다 잊고 사니 이곳이 바로 마음의 무릉도원이라고 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오늘도 내일도 이런 탈속의 마음을 지니고 근심 걱정 없이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인생을 관조하는 풍모와 무심(無心)의 세계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秋詞 • 10]
松間石室의 가 曉月을 보쟈하니
배 브려라 배 브려라
空山 落葉의 길흘 엇디 아라볼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白雲이 조차오니 女蘿衣 므겁고야
◈ “소나무 사이의 작은 돌집에서 새벽달을 보려고 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공산에 낙엽이 쌓였으니 가는 길을 어찌 알아볼까./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흰 구름이 따라오니 이슬막이 풀 옷도 무겁구나.”하는 시조로 소나무 사이로 뜬 새벽달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배를 띄워놓고 빈산에 낙엽이 쌓여 길을 찾기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다. 백운이 좇아온다고 한 것을 볼 때 신선이 된 듯한 감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벼운 풀로 만든 옷도 무겁다고 하는 ‘여라의(女蘿衣)’를 입고 있음으로 보아 작자는 속세를 잊고 사는 모습을 세상에 보란 듯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추야조(秋夜操)]
蒼蠅이 쓷뎌시니 파리채난 노하시되
落葉이 늣거오니 美人이 늘글게고
댇숩픠 달빗치 맑으니 그랄 보고 노노라
◈ “쉬파리(소인이나 참언하는 이)가 죽었으니 파리채는 놓았으되/ 늦가을이라 낙엽 지니 어여쁜 님(인조 임금을 지칭한 듯)은 늙으실 게고/ 대숲에 달빛이 맑으니 그것이나 보고 노노라.”하는 시조로 이 작품에서 창승(蒼蠅: 쉬파리)은 사람을 참소(讒訴)하는 간신배들을 풍자한 것이며, 미인은 임금 곧 인조를 가리킨다. 가을밤을 제재로 당대의 정치 현실을 우의적(寓意的)으로 노래하고 있다. 창승(蒼蠅;쉬파리) 같은 간신배는 물러갔으나 미인, 곧 인조가 늙을 것이 한스럽다고 연군지정을 풍겨내면서 다만 대숲에 달빛이 맑게 비치니 그와 더불어 노닐겠다고 하고 있다. 가을밤에 느끼는 절조(節操-절개와 지조)을 표현하고 있다.
지은이 윤선도는 이렇게 자연 풍광 가운데 가을의 정서를 인사에 섞어 아름다운 시조 작품을 집중적으로 읊었다. 윤선도는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해옹(海翁)이다. 부정공(副正公) 유심(唯深)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8세 때 백부인 관찰공(觀察公) 유기(唯幾)의 양자로 가서 해남윤씨의 대종(大宗)을 이었다. 11세부터 절에 들어가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26세 때 진사에 급제했다. 1616년(광해군 8) 이이첨의 난정(亂政)과 박승종·유희분의 망군(忘君)의 죄를 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당해, 경원(慶源)·기장(機張)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풀려났다. 고향인 해남에서 조용히 지내던 중 1628년(인조 6) 봉림(鳳林)·인평(麟坪) 두 대군의 사부가 되면서 인조의 신임을 얻어 호조좌랑에서부터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에 이르기까지 주요요직을 맡았다. 1667년(현종 9) 그의 나이 81세에 이르러 여생을 한적히 보내다가 1671년(현종 12) 낙서재(樂書齋)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시비를 가림에 타협이 없어 자주 유배를 당했다. 한편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풍류인이기도 했다.
그의 시조는 시조의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았다.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한국어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숙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윤선도의 작품은 조선 중기의 시인∙학자.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삼았으며 우리말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했다. 대표작으로 <고산유고>가 있다.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으로, 서인(西人) 송시열에게 정치적으로 패해 유배생활을 했다.
3. 孤山 外 先祖들의 古時調에서 보여준 가을
江湖에 가알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잇다.
小艇에 그믈 시러 홀리 띄여 더뎌 두고
이 몸이 消日하옴도 亦君恩이샷다.
-孟思誠
◈ “대자연에 가을이 되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작은 배에 그물을 실어 흐르게 띄워놓고/ 이 몸이 근심 걱정 없이 지내는 것도 이 또한 임금님의 은혜이시다.”하는 시조로 평화로운 전원생활이다. 가을에는 오곡백과뿐만이 아니라, 물속의 고기도 살이 쪄서 그 맛을 더한다. 매상이(작은 배)에 그물 싣고 강으로 나가 물속에 던져두면, 그 살찐 고기들이 저절로 들어가서 잡힌다. 이렇게 맑은 강물에 배를 띄우고 고기잡이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 이것도 다 나라님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덕택이라고 하고 있다.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도 언제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나라님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데에 우리 옛시조의 한 특징이 있는데 이 시조도 태평성대를 구가하면서 연군지정을 잊지 않은 지은이의 연시조 '강호사시가' 중 가을 노래이다.
지은이 맹사성(1360〜1438)은 자는 자명(自明)·성지(誠之), 호는 동포(東浦)·고불(古佛). 조선 세종 때에 좌의정을 지냈다. 청렴결백하고 검소한 평민적인 생활 속에 고아한 품위를 잃지 않았으며, 젊었을 적에는 출중한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가을 밤 밝은 달에 반만 픠온 蓮곳인 듯
東風 細雨에 조오는 海棠花인 듯
암아도 絶代花容은 너뿐인가 하노라.
-李鼎輔
◈ “가을 밤 밝은 달 아래 반만 핀 연꽃인 듯 / 동쪽에서 솔솔 부는 봄바람에 가는 비 맞으며 졸고 있는 해당화(흔히 미인에 비유됨)인 듯/ 아마도 당대에 뛰어난 미인은 너뿐인가 하노라.”하는 시조로 어느 그리는 님을 가을밤 밝은 달빛 아래 반쯤 핀 연꽃처럼 그윽하고, 봄바람에 날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바닷가에 졸고 있는 해당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 그는 시적자아를 당대의 절세미인으로 자리매김해 주고 있다. 한 편의 연모가(戀慕歌)이다.
지은이 이정보(李鼎輔, 1693~1766)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삼주(三洲)ㆍ보객정(報客亭). 대제학, 예조 판서 등을 지냈고, 한시와 시조의 대가로 “해동가요”에 시조 78수가 전한다. 다양한 제재를 가지고 가객들과 가까이 하며 시조를 즐겼기 때문에 시풍이 근엄한 격조에서 벗어나 당시 유행하던 풍류적 경향에 가깝다. 조선 영조대를 최후로 장식한 사대부 시조작가로서, 시조의 주축을 평민층으로 옮기는 교량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을 밤 채 긴 적의 님 生覺 더욱 깁다.
먹귀 선긘 비에 남은 간장 다 석놈애
아마도 薄命한 人生은 내 한잰가 하노라
-金天澤
◈ “기나긴 가을밤이 매우 길어진 때면, 그리운 임 생각이 더욱 깊어만 간다./마른 잎이 엉성하게 남은 머귀나무를 스치며 내리는 빗소리에, 내 간장이 다 썩는구나!/ 아마도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난 목숨은 나뿐인가 싶구나.”하는 시조로 사람을 감상의 세계로 곧잘 끌고 들어가는 기나긴 가을 밤, 특히나 님을 여의었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애간장을 태우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큼직한 머귀나무 잎사귀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반주는 사람의 마음을 한층 슬프게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박명한 인생은 나 혼잔가……"하였다. 좀 지나친 과장인 것 같다. 현대적 감각으로 볼 때는 부자연스런 표현이다. 가을 긴긴 밤의 님 생각, 오동잎에 떨어지는 애간장을 녹이는 성긴 비와 같은 것은 또한 상투적인 소재, 상투적 표현이다. 이런 투의 시조 전개는 신선하고 짜릿한 감동을 주기 어렵다.
지은이 김천택(金天澤)은 숙종조때 사람으로 자는 백함(伯涵), 호는 남파(南坡)이고, 벼슬은 숙종 때에 포교(捕校)를 지냈다. 조선조 영조 때의 가인(歌人)으로, 노가재(老歌齎) 김수장과 가까이 사귀면서, 평민 출신으로 이루어진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에서 많은 후진을 길러내었다. 영조4년(1728)에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하여 시조 정리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해동가요'에 그의 시조 57수가 실려 오늘에 전한다.
落葉이 말발에 채이니 닙닙히 秋聲이로다
風伯이 뷔 되어 다 쓰러 바리도다
두어라 崎嶇山路랄 덥퍼둔들 엇더리.
-金裕器
◈ “낙엽이 말발에 차이도록 가득하니 한 닢 한 닢에 가을철 바람소리만 들리도다./ 바람의 신인 풍백(가을바람)이 빗자루 되어 다 쓸어 가버렸도다,/ 험악한 산길에 쌓인 낙엽은 그대로 두어 험한 세상을 사는 고단한 삶을 잊고 가을을 더 즐겨보게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는 시조이다. 낙엽 속에서 가을소리를 듣는 그 시적 심성이 경이롭다. 이는 요즘 표현기법으로 보면 공감각적 심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장은 바람을 의인화하여 ‘풍백’이라 하였는데 이 시적 제재는 지은이에게는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기구산로(崎嶇山路)’즉, 험악한 산길 같은 고단한 삶을 자연풍광으로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종장에서 표현하고 있다. 자연풍광을 향유하고픈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지은이 김유기(金裕器 생몰년 미상)는 조선 숙종 때의 가인(歌人)으로 자는 대재(大哉). 유명한 창곡가(唱曲家 작곡가)로 김천택과 친교를 맺고 있던 사람이라고 한다.
내 언제 無信하여 님을 언제 소겻관대
月沈 三更에 온 뜻이 젼혀 업내
秋風에 지난 닙소릐야 낸들 어이 하리오.
-黃眞伊
◈ “내가 언제 신의 없어 임을 언제 속였기에/ 달 기운 한밤중에 님이 찾아올 듯한 뜻(기척)이 전혀 없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를 내 마음인들 어찌하리.”라고 한 시조로 임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음을 초장에 배치하고, 중장에 달 기우는 삼경에도 님이 오려는 기척은 전혀 없다고 하며 그 기다림과 아쉬움, 원망의 심경을 쓰고, 쓸쓸한 이미지를 통해 슬픔과 외로움이라는 화자의 정서를 대변하는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어찌하겠느냐고 낙엽에 의탁한 체념의 정서를 표현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임과 헤어져 있는 상황에서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한 것으로 이별의 한을 노래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조의 하나이다. 사랑과 그리움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으로, 그것을 느끼는 데 사대부와 기녀의 신분적인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가을밤에 초조하게 임을 기다리며 외롭게 밤을 지새우는 여인의 정한(情恨)을 그린 시조이다. 찾아 주지 않는 임(서경덕으로 알려짐.)에 대한 안타까움과 기다림의 정서를 여성의 섬세한 시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시조는 서화담(徐花潭)의 “마음이 어린 後ㅣ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하는 시조에 대한 화답시조로 우리말의 오묘한 의미를 미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한 기녀 시조 1인자다운 작품이다.
지은이 황진이(黃眞伊,? ~?)는 조선 중기의 시인, 기녀, 작가, 서예가, 음악가, 무희이다. 중종·명종 때(16세기 초, 중순경) 활동했던 기생으로, 다른 이름은 진랑(眞娘)이고 기생 이름인 명월(明月)로도 알려져 있다. 중종 때 개성의 황씨 성을 가진 진사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며, 생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시와 그림, 춤 외에도 성리학적 지식과 사서육경에도 해박하여 사대부, 은사(隱士)들과도 어울렸으니 그녀가 교류한 이는 생불로 불린 지족선사, 왕족의 벽계수, 성리학자 서경덕 등으로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도 불린다.
秋山이 夕陽을 띄고 江心에 잠겻난대
一竿竹 두러 메고 小艇에 안자시니
天公이 閑暇히 녀겨 달을 조차 보내도다
-柳自新
◈ “가을 산이 석양빛을 머금고 강 한복판에 잠겨 비추는데,/ 낚싯대 하나 둘러매고 작은 고깃배에 앉았으니/ 하느님(조물주)이 나를 한가롭게 여겨 달까지 보내는구나.”하는 시조로 가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밤이 들도록 밝은 달 아래 강물에 일간죽(一竿竹-한 개의 낚싯대)을 드리우고 있다. 강심에 잠긴 가을 산의 석양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작은 배에 앉아 있는 멋 또한 비길 데 없다. 게다가 동녘 하늘에 달까지 둥실 솟아오르니 그 기분 그 무엇에 견주랴.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다. 천공(天公)이 한가로이 여겨 달을 보내 주었다는 표현을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진심이 담겨 있어 마음을 끈다.
지은이 유자신(柳自新 1533〜1612)은 광해군의 장인으로 형조참판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는 동지중추부사로, 세자 광해군을 따라 평안북도 강계에 갔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국구로서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인조반정으로 관직이 박탈되었다.
秋山이 秋風을 띄고 秋江에 잠겨 잇다
秋天에 秋月이 두려시 도닷난대
秋霜에 一雙秋雁은 向南飛를 하더라.
-儒川君
◈ “가을 산이 가을 색을 띠고 가을 강에 잠겨 있다./ 가을 하늘에 가을 달이 뚜렷이 돋았는데/ 가을 서리에 한 쌍의 가을 기러기는 남쪽을 향해 나르더라.”란 시조로 이 작품은 ‘추(秋)’(가을)자가 일곱 번이나 들어있어 온통 가을로 채우고 있다. 언어유희성이 강하며 두운으로 추(秋)자를 두고 있다. 초장에서는 가을의 낮을 중장과 종장에서는 가을밤을 표현하고 있다. 가을 기러기는 남쪽을 향해 나른다고 하였는데 이는 철새 기러기가 오는 겨울을 상정한 표현인 듯싶다.
지은이 유천군(儒川君)은 조선시대의 왕족으로 생몰 연대 미상이다. 선조(宣祖)의 증손. 경창군(慶昌君)의 아들. 이름은 정.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다. <해동가요(海東歌謠)>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에 각각 한 수씩의 시조가 전한다. 인용한 작품과,“어제도 난취(亂醉)하고 오늘도 또 술이로다./ 그제 깨었던지 그끄제는 나 몰래라./ 내일은 서호(西湖)에 벗 오마니 깰동말동 하여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병와가곡집』을 비롯하여 19군데의 가집에 전하지만, ‘추산이 추풍을 띄고’는 오로지 『병와가곡집』에만 전한다.
秋水난 天一色이오 龍舸는 泛中流이라.
簫鼓 一聲에 解萬古之愁兮로다.
우리도 萬民 다리고 同樂太平하리라.
-肅宗
◈ “가을철 맑은 물은 하늘빛과 한가지로 푸르며 용을 새긴 임금이 타는 배는 물 가운데 떠 있구나./ 퉁소와 북소리가 어울리는 풍악 소리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온갖 근심 걱정이 다 풀리는 구나/ 우리도 만백성과 함께 태평 성세를 즐겨 누리도록 하겠다.”고 하는 시조로 유유자적한 태평성대를 희원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우리말 어휘보다는 한문구가 많이 쓰인 시조로 초장은 당나라 왕발의 시 <등왕각시서(滕王閣詩序)> 중 [(落霞與孤騖齊飛(낙하여고무제비) 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저녁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아득한 하늘과 같은 색이로구나]에서 따온 말이다. 군왕이 타는 용을 새긴 배를 흐르는 물 가운데에 띄워놓고 풍악을 울리며 호기롭게 뱃놀이하며 온갖 오래된 시름이 다 사라졌다며 만백성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구가하고자 한다고 하고 있다. 군왕으로서 선정(善政)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담뿍 담겨 있다.
지은이 숙종(肅宗1658~1721)은 이름은 이순(李焞), 자는 명보(明普)로 현종의 외아들이며 조선 19대 임금으로 14세의 어린 나이로 대통을 이어 46년간 재위한 왕이다. 치열한 당파 싸움을 겪었지만 이를 이용한 정치로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이다. 한때 희빈 장 씨 장옥정과 사랑에 빠져 정비 민 씨를 폐출하면서 역사에 피비린내를 풍기는 오점(汚點)을 남기기도 하였다.
집 方席 내지 마라 落葉엔들 못 안즈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도다온다.
아해야 濁酒山菜ㅣᆯ망정 업다 말고 내어라.
-韓濩
◈ “짚방석을 내지 말아라. 낙엽엔들 앉지 못하겠느냐/ 관솔불을 켜지 마라. 어제 서산에 진 달이 다시 동쪽에서 돋아 오른다./ 아이야! 변변치 않은 술과 나물일지라도 좋으니 없다 말고 내오너라.”하는 시조로 풍류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전원 한정가(田園閑情歌)이다. 이 시조의 특징은 대조되는 소재를 통하여 시적화자의 내면정서를, 자연물을 통하여 안빈낙도의 삶의 가치를, 그리고 설의적 표현으로 화자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하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을 통한 주객일체(主客一體)된 감흥이 이 시조에 나타난 주요 흥취이다. 낙엽에 앉아서 달빛 아래 한 잔의 술을 마시는 화자의 풍류에서 우리 선조들의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풍류(風流)를 느낄 수 있다.
지은이 한호(韓濩 중종 38∼선조38)는 조선 중기의 서예가로 본관은 삼화(三和).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峯)이다. 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선조 16년에 와서(瓦署) 별제(別提)에 제수되었으며. 글씨로 출세하여 사자관(寫字官)으로 국가의 여러 문서와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썼고, 중국에 사절이 갈 때도 서사관(書寫官)으로 파견되었다. 벼슬은 흡곡 현령(縕谷縣令)과 가평 군수(加平郡守)를 지냈다. 모친은 호롱불을 끄고 떡을 썰고 석봉은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떡은 고르게 썰어졌으나 석봉글씨는 엉망이어서 어머니가 석봉을 야단쳐 다시 산으로 보냈다는 일화(逸話)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4. 마무리 말
고시조는 현대시조의 뿌리이다. 이 뿌리들이 어떻게 우리의 정서와 정감을 표출하고 있는가를 보았다. 윤선도의 작품이 특히 눈을 끄는 것은 한문학이 판치던 시대에 우리말을 쉽게 구사하여 탈속의 심사와 자연 풍관을 예찬하고 있음이고, 고시조의 대부분이 근엄한 격조(格調)로 교학적(敎學的) 내용을 담고 있는데 윤선도의 작품들은 다분히 풍류적(風流的)이고, 평민적인 언어구사로 자연 풍광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시청각적 이미지들이 많이 동원되어 있어 현대시조의 전범(典範)이 되기도 한다. 많은 작품이 자연(自然)몰입(沒入)의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드물게는 자연을 자기화하는 경향의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윤선도 이외의 분들 작품에서는 적지 않게 서민의 애환이 섞인 인간적인 연모(戀慕)의 정이 깃들인 작품도 있어 마음을 짠하게 하였다. 위의 대부분 작품들이 초, 중장에서 자연경관, 경치, 정경, 또는 사물의 묘사를 표현의 전제로 깔아놓고, 종장에서 주관적 감흥이나 주정적 정서를 표현하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전형(典型)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후대에도 이런 경향을 띠고 있기에 그 모형을 제공해준 셈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기온과 습도의 오르내림이나 낮과 밤의 길이가 변하는 것, 주변 환경이나 동식물 세계의 변화는 사람의 감정에 미묘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봄에는 기쁨과 희망적인 감정이 절로 솟는 반면, 가을이 되면 마음은 상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 들고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가을은 숙고의 시간이 된다고 한다. 가을은 티 없는 자연으로 하얀 도화지(圖畵紙)를 만든다. 그 도화지 위에 사람들은 마음과 그리움을 그리고, 잔잔한 정서를 풀어 색칠을 한다. 고인(古人)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위와 같은 시심을 시조라는 도화지에 시적 정서란 물감으로 색칠해 놓고 있었다.[2020년 가을호, 시조사랑 제18호]
[참고 서적]
鄭炳昱, 時調文學事典, 新丘文化史, 1971. 03. 30
성낙은, 고시조 산책, 국학자료원, 2015. 02. 04
이희승, 고시조와 가사 감상, 집문당, 2004. 06. 10.
韓國人名大事典編纂委員會, 韓國人名大事典, 新丘文化史, 1972. 0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