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라는 점이 있다
주역이 근간이 되어 명리학에 이르러서
함께 사주팔자도 진화가 된다
이 주역이란것은 주나라시절의 역이다
중국은 각 시대별로 역이 존재한다
과학이 미천했던 시절의 산물이다
명나라시절 명리학은 조선에 들어와 전성시대를 맞이 한다
명리학과의 반대개념인 성리학도 판을 친다
이미 중국에서는 실패한 학문이 왜 조선에 유입돼
전성기를 누리나
조선은 종교가 없었다
억불숭유정책으로 유교가 근간
그러나 유교는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다
국교가 없다보니 별의별 학문이 난립한다
학문이라기 보다 썰에 지나지 않는데
학문이란 진리탐구이다
누구는 사주팔자가 통계학이라 한다
통계학? 통계학을 저주해도 유분수지
그럼 누가 한 개인의 출생부터 죽을때까지
그 수많은 사람의 통계를 냈다는 것인가
통계학이란 자료에 근거하여 자연 또는 사회 제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추론과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사주팔자의 자료란?
생년월일시..
과거엔 24시간 아기가 출생하지만
언젠가부터 누가 밤이나 새벽에 태어나나
이런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것이 사주팔자이다
과거 백수인 여친이 백수생활도 지겨워
화장품 대리점을 내겠다 하고는 감감 무소식
대리점창업일은 잘 돼가나 묻자
점을 보니 3개월 후에 창업하는것이 좋다는 점괘
나같으면 대리점 낼곳의 지정학적 특성에
신경쓰리라 하는데 점괘라..
3개월후 낸 대리점은 1년을 못버티고 홀랑
부모 잘 만난덕에 창업은 가능했지만
또 다시 무일푼 백수로 전락
참나 경영학의 개념은 기초도 없는 탓일까
경영학이란 어엿한 학문이다
이러한 학문에 절대 점이라는 썰은 어깨를 나란히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이런 썰에 약하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이런 썰에 귀가 얇아지기 쉽다
나약한 존재라기 보다 만물의 영장이다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일까..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진다
당시 고려의 수도는 현 베이징이고 위화도 역시 압록강이 아닌
훨씬 북쪽의 중국에 위치한다
고려의 천리장성도 위화도 아래에 위치하고 지금도 존재한다
여진족였던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대한민국은 점점
쪼그라 들어 현 한반도가 된다
최소한 조선역시 고려의 방대한 땅과 국력을 물려받았다면
이런 찌라시같은 썰은 난립 안했을것이라 본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반도내로 축약 시키기위해 현 식민사학자들을 배출한다
대표적으로 과거 서울대총장인 이병도를 필두로
식민사관학자들에게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웠다
그러나 언제가부터 다시 일어나는 역사의 고증으로
머리는 현타의 지경이다
역사문제는 하고픈 말 많지만 이만 중략하기로 한다
첫댓글 저랑 역사관이 비슷하시군요. 왜 우리나라 지명이랑 똑같은 지명이 중국에 있을까요 ?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후 옛날 자신들이 살던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 아닐까요 ?
중국에는 북경, 남경, 증경, 서경이 있는데 동경은 없고 그 동경이 왜 일본에 있을까요 ? 5개의 수도를 거느린 나라는 따로 있지 않을까요 ?
우리 역사와 남의 역사를 비교하면 아직 많은 의문이 듭니다.
진보된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중국의 4경은 과거 고구려 백제 신라의 땅이 중국에 넓게 자리했기 때문이죠 백제의 역사는 담로를 통해 많이 알려져있지만 고구려의 본래영토나 신라의 중국영토에 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는데 이런것이 일제의 탓입니다
일본의 수도인 동경은 여러설이 있는데 신라의 수도를 동경이라 했고
고려시대 경주를 동경이라 했는데 이 시대에 일본과 왕래가 왕성해 처음엔 에도라고 했다가 동경으로 바뀌었다는 설
또 하나는 제가 가장 신뢰하는 설로 연개소문이 나당연합군의 양방 공격으로 패퇴한후 죽음에 이르기 까지 고구려의 전설적인 인물이 현재 우리 기록에는 없다??
그런데 일본사기에는 그 기록이 있죠 연개소문은 관동지방으로 피신해서 천무천황이 되었습니다 사무라이라는것도 연개소문이 처음 만들었죠 관동지방에서 세력을 다진 연개소문은 궁을 짓고 그 궁을 지키는자와 보디가드를 사무라이라고 했습니다
연개소문의 후예들이 일본최초의 정부인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습니다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승리해 수도를 교토에서 에도지방으로 옮긴후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경으로 네임체인지
과거 신라나 고려에서 이 지방이 수도가 될것이라는 예측과 연개소문의 음덕으로
일본의 수도가 되었다는 논리를 저는 가장 신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담을 보면 중국지명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당시 우리의 땅였기 때문이죠
성주풀이 나오는 북망산 역시 낙양에 있는산
태산이 높다하되.. 태산 역시 중국의 산
친구따라 강남간다 의 강남도 중국지명 등등..
일본의 수도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도를 오사카로 주장했는데
당시 옛명이 백제였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교토로 주장했는데
원래 교토는 늪지대인 불모지였던것을
신라인 진하승이 신라인 100여명을 이끌고 교토에 정착
후시미부터 아라시야마까지 제방을 쌓고 개간
처음 농사를 지었죠 그를 모시는 신사가 후시미 이나리 신사입니다
오사카vs교토의 수도 싸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물이 풍족해야 하는데 교토는 물부족이라고 주장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은 가까이 있는 바다와 같은 호수인 비와코에서
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며 도요토미 사후 그의 교토 요새인 난젠지에
수로각을 세우는 계획을
결국 도요토미家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한뒤 교토를 수도로 지정
그러나 대도시가 되기에는 한계를 느낀 그는 현 동경으로 천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란 승자의 기록으로 임진정유재란의 원흉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되어있는데 실지의 원인은 다른곳에 있습니다
와우 ! 역사에 조예가 깊으시네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