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이기철
나는 오랫동안 풀꽃의 생애를 노래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사(人事)에 대해서 노래하련다
이제 내 몸이 바라는 곳, 눕고 싶은 곳은
산이 아니라 물이 아니라
병(病)이 있고 근심이 있고 자주 흰 걸레를 더럽혀야 하는
마룻바닥이 있는 집
여름에는 퇴근길에 수박을 사고
월말에는 세금을 내러 은행에 가는 마을
이제 나는 이념에 물들지 않은 나무보다 이념을 구겨 호주머니에 넣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선계(仙界)의 산정보다 아직 청소차가 오지 않은 골목들이 좋다
등(燈)을 켜고 다가오는 별을 보면
진흙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겨워진다
제도가 있고 공장이 있고 못 만날 약속이 있는
집 옆에 집, 아, 사람이 살고 있다
이기철,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