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듭 양해 말씀 드리기: 재삼 양해구합니다.
아래 게시된 풍기 죽령 답사는 작년(2023년) 10월 24일로 게시된 답사자료는 사실은 2022년 10월 25일 풍기-죽령답사자료임을 뒤늦게 확인하고 양해말씀 드립니다. 2023년 10월 24일(화)은 (단양, 제천)옥순봉 답사였네요.
왜 이리 헷갈리는 지요. 사실은 요즘 제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2024.04.17.카페지기 드림)
(이미 올린 자료는 삭제 대신 그냥 놔 둡니다. 반면거울로 삼으려구요.)
(* 양해말씀 구하기:
사진 속 날짜 10월 25일(화)가 아닌 10월 24일(화)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잘못된 입력사진을 게재하게 됨을 혜량바랍니다.)
10월 17일에 문경 새재와 문경지역 천주교 성지 답사를 하고 그 일주일 후에 나온 답사 길이니 당연히 10월 24일(화)인 것을 10 월 25일(화)로 입력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착오를 일으켰습니다.
기록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1) 죽령 옛길 편
대전역에서 충북선을 타고 갑니다. 태백 눈꽃축제 때 자주 이용하던 철도여행길이었는데, 옛날이 새롭습니다.
차창밖으로 충북의 잠사박물관을 멀리서 그 꼬리만 보고 지나갑니다. 누에가, 누에의 역사가 스쳐 지나갑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명주실잣는 토방에서 번데기 얻어먹던 시절이 엊그제만 같은데
삼탄역도 지나고 드디어 풍기역에 도착합니다.
멀리 죽령 대재길 산줄기가 보입니다. 소백산 연화봉 줄기가 오른쪽으로도 보이고.
풍기역앞 풍경입니다.
사과 가게도 있고 오른쪽에는 풍기인삼 파는 곳 풍기인삼시장 간판과 건물도 보이고...
죽령가는 길 시내버스를 타고 갑니다. 자가용 없이 나온 길에 자유스러움과 불편함을 함께 느껴봅니다.
버스승강장 좀 지난 곳에서 기사분의 호의로 중간에서 내려 다시 승강장 쪽으로 내려 옵니다.
(*도중에 전화를 받습니다. 영주역철도사무소 안내 전화, 놓고 내린 물건이 있다는 전갈. 둘러보니 내 선글래스를 그만 열차 속에 놓고 내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귀한 선글래스인데... 잘 보관하고 있다는 말과 풍기역에서 찾을수 있도록 조치를 해준다는전화이다. 하마터면 오늘의 답사를 망칠 뻔한 일이 가까스로 불행 중 다행함을 느낀다.)
죽령길 서쪽 산줄기를 봅니다. 가을 산색에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입니다. 거기에 반가운 전화까지 받았으니..
발걸음도 가볍게 죽령 옛길을 걸어봅니다.
사방을 둘러봅니다. 서쪽의 산세입니다.
오른쪽으로 소백산의 연화봉 천문대도 보입니다.
죽령으로 가는 길 안내표석
수철리 죽령옛길 멀리 잘록한 안부에 죽령 고갯길이 보입니다.
이제는 폐역이 되다시피 된 희방사역 앞을 지납니다.
무쇠다리 쪽으로 안내판을 따라갑니다.
죽령옛길을 따라 나섭니다.
철도 굴길을 지나면 무쇠다리 입니다.
무쇠의 한자말이 수철(水鐵)이니, 이두식 한자표기가 땅이름 속에 들어있습니다.
무쇠다리 찾아 가는 길 :
나무다리도 아니고 돌다리도 아니고 회삼물다리도 아닌 무쇠다리라니. 당시로는 엄청난 다리였으리라.
무쇠다리는 없고 그 터만이 남아있어 표석으로나마 알려줍니다.
무쇠다리 쉼터를 지나 본격적으로 축령옛길로 들어섭니다.
죽령옛길 안내판. <대재>라는 말이 우리말이군요.
죽죽이 이야기가 있으니 이것도 역시 이두식 한자표기인 것 같고요.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의 능선에 있는 고개. 추풍령과 문경 새재와 함께 영남지방의 3대 고개랍니다. 경상도에서 옛날에는 신라시대에는 고구려나, 한양으로 나가는 주요 관문였을 곳입니다.
소백산 국립공원 지도도 봅니다.
고갯길 입구에는 장승들이 도열해 있고..
'가화만사성' (龢= 和자는 고자로 쓰여 있군요) '서기무문'도 그렇구요 (舞 = 無의 본자인데 이제는 고자로 쓰인답니다. )
갑골문 공부도 한자 공부도 해보면서 올라갑니다..
소백산 자락길 안내석입니다.
입산시간 제한 안내 밑에 지도를 들여다 봅니다.
(죽령의 산신 '다자구 할머니' 전설입니다. 산신에는 할머니 산신령도 있고..
먹을 것이 있으면 벌레가 끼고 돈이 있는 곳에 도적 강도가 있는 법.. 사기꾼도...
지난 주에는 터벅터벅 새재길도 걸었으니 이번 주에는 죽령옛길도 걷습니다.
사과밭도 지나고. 옛주막터도 지나고...
옛주막터에는 돌담만 남았습니다.
드디어 죽령 정상 아래에 있는 죽령루 정자에 이릅니다.
올라가봅니다.
한시가 걸려 있는 현판도 읽어보고. 주세봉의 시군요.
정자에 올라서 바라보는 산천경개를 감상해봅니다. 비록 잠간이라도.
바로 이웃에 있는 죽령 대재 고갯길 마루 :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도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백두대간이 지나갑니다.
죽령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 봅니다.
옛고개 옆에 고목나무가 서낭나무인듯... 무사안일 소원을 빌었을...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충북쪽 등산로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고개를 지키는 죽령산성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점심시간이 넘어갑니다. 고개 남쪽 죽령루 맞은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점심을 마치고는 마침 우리 일행을 태워주겠다는 출장나온 친절한 여성 공무원의 호의를 받습니다.
버스대신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고개 중턱에 있는 퇴계 시비도 안내 받습니다.
점심 후 호의를 입어 승용차로 풍기역까지 잘 오게 됩니다.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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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풍기는 인견의 주산지로 이름난 곳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역사를 보면 우리의 쓰라린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정감록 속의 십승지지로서의 풍기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을 당했을 때 보신할 수 있는 곳. 그곳들 10곳이 공교롭게도 모두 남한 땅에 있습니다.
산골짜기..깊은 오지에
그들의 생업은 주로 소창 면직물 인조견 등으로 생업을 삼았습니다
풍기 인견, 인삼. 유구마곡의 유구 직조공장. 공주도 그렇고 대전의 금병산 수운교가 있는 숯골 언저리.
식당도 그래서 함께 유명해지고.
의지할 곳 없는 민초들은 동학이며 서학이며 나중에는 기독교에 , 정감록이며 비결서 등에 의지해서 살아왔네요.
- 우선 정감록에 대한 문헌을 대강 훑어봅니다. -
십승지지가 사람에 따라 비결서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이북에서 이남으로 살기 위해 넘어온 우리 겨레의 이름들이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해방전 후)월남인으로 주로 기독교계, 동학교계, 기타,
(6.25) 한국전쟁 후 피난민 훙남 철수 시 ,
(휴전후 ) 탈북민..새터민... 조선족, 고려인..
이중환의 <택리지> 에 내온 원문을 들여다 봅니다.
<난을 당해서 보신할 수 있는 복지 10곳>
우리나라 비결 속에 나와있는 복지(福地) 는 여러 곳 이다.
남사고는 십승지지의 첫째로 풍기 금계촌(豊基 金鷄村)을 꼽고 있다.
지명도 풍기 금계촌이라... 하늘이 내려준 지명이로다.
( 2. 화산태백양면 3. 보은속리산 아래 4. 운봉동점촌 5. 예천금대곡 6. 공주유구마곡양수간
7. 영월 정동상모 8. 무주무풍북동 9. 부안 호암아래 10. 합천가야산만수동 .. 등)
풍기역앞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풍기인견 벽화를 들여다 본다.
역사 속의 풍기 인견..
우리 근현대사의 한 단면을 담고 있는 풍기인견..
벽화로 보는 풍기 인견 모습들
근대 산업혁명 이전의 모습들이다. 195060년 대 까지도 볼 수 있었던 우리 어머니 들의 베짜던 모습,
그 용어들 순 우리말의 뿌리: 도투머리 (<돝의 머리) 씨줄, 날쭐, 명 잣다. 무명(<木棉)... 베...
풍기가 인견으로 인삼으로 돈을 모으자 저자도 풍성했을 듯. 저자거리 (시장)을 돌아본다.
이제 독립운동의 장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시장(저자거리)이 중심일 수 밖에.
독립운동가 채기중 선생의 약력도 본다. 2천만 동포시절. 3천리 강토에
지금은 3천리가 반 토막이 되고, ( 감사합니다).
인구는 남북한 합쳐서 7천만이 넘는다는데 , 인구는 소멸되어 간다고 걱정 태산..
풍기 향교 앞에 서있는 은행나무 모습
성균관 대학교의 교표가 은행나무잎이고 보면 공자의 상징수인 셈
행단(杏壇) 이란 말도 그렇고,,,,, 2월 8월 상정일에 제를 올리는 진잠향교의 모습을 그리면서 풍기역으로 간다.
풍기역에서 앞서 전화연락받았던 썬글래스를 받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감사한 하루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날씨도 좋고 인심도 좋고,
역앞 인삼시장에 가서 무언가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2024.04.13. 카페지기 자부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