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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장 진소양왕의 무력 정책 (7)
- 진군(秦軍) 침공.
처음 이 같은 보고를 받았을 때 조혜문왕(趙惠文王)은 당황했다.
인질까지 내주고 화평 조약을 맺은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곧이어 새로운 보고가 날아들었다.
진(秦)나라의 최종 공격 목표는 한(韓)나라 수도 남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렇다고 문제가 아직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진나라 장수 호양(胡陽)이 알여를 포위하고 공격 중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모르는 척 내버려두자니 진군의 소행이 괘씸했고, 군사를 일으켜 치자니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진군의 기세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는 신하들을 불러모아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길이 멀고 험해 싸운다 해도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르는 척 내버려두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상여, 염파, 악승 등은 이같이 대답했다.
악승(樂乘)은 악의의 동생이다.
악의가 조나라로 망명할 때 함께 따라와 장수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천하에 덕망을 떨치고 있는 평원군(平原君)은 출병을 주장했다.
- 이는 엄연히 조약 파기입니다. 군대를 보내어 진(秦)나라의 무례함을 꾸짖어야 합니다. 더욱이 한(韓)나라와 우리 조나라는 순치지국(脣齒之國)입니다. 입술이 없다면 어찌 이가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 길을 빌려준다 하더라도 진(秦)나라는 한(韓)나라를 치고 나면 반드시 우리 나라를 노릴 것입니다.
이 무렵, 조혜문왕의 신뢰를 받는 신하 중에 조사(趙奢)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사는 원래 전부리였다.
전부리(田部吏)란 농지에 대한 세금을 관리, 징수하는 직책으로 직급이 매우 낮다.
그를 천거한 사람은 평원군이다.
평원군이 세리(稅吏)인 조사를 천거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 한번은 평원군(平原君)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조사(趙奢)가 재촉했으나 평원군의 집사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세금 내기를 미루었다.
이에 조사는 법령에 근거하여 평원군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 9명을 모조리 사형에 처해버렸다.
평원군(平原君)이 진노하여 조사를 붙잡아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조사(趙奢)가 말했다.
- 군(君)은 조나라의 귀공자이십니다. 공의 집사들은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하고 나라의 법을 어지럽혔습니다.
- 국법이 어지러워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다른 나라들이 군대를 일으켜 우리 나라를 칠 것이고, 여러 나라가 군대를 일으키면 결국 조(趙)나라는 없어지게 됩니다.
- 조나라가 없어지면 군(君)께서는 과연 지금의 부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군과 같이 귀하신 분이 솔선하여 공무(公務)를 받들면 위아래가 공평하게 되고, 위아래가 공평하게 되면 나라가 강해집니다.
- 또한 나라가 강해지면 군(君) 또한 더 큰 부귀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집사 9명을 사형에 처한 것은 결국 군을 위한 일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평원군은 감탄하고 조사를 조혜문왕에게 천거했다.
그 후 조사(趙奢)가 나라의 세금을 관장하자 그때부터 백성들은 부유해졌고, 국고는 언제나 가득차게 되었다....
군대를 내어 진군(秦軍)과 싸울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의견이 둘로 갈라져 논쟁할 때 조사(趙奢)도 그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시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혜문왕(趙惠文王)이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비로소 조사(趙奢)가 입을 열었다.
"너무나 명료한 일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 우스워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명료한 일이라니?"
"알여(閼與) 땅은 지형이 좁고 길이 험합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싸우는 것은 쥐 두마리가 쥐구멍 속에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면 반드시 이깁니다."
조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혜문왕(趙惠文王)은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그대가 가서 진군(秦軍)을 격파하고 알여 땅을 구하시오."
이렇게 해서 싸움은 엉뚱하게도 동맹국끼리인 진(秦)나라와 조(趙)나라가 벌이게 되었다.
대장에 임명된 조사(趙奢)는 군사 5만을 이끌고 알여 땅을 향해 떠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단성을 떠나 30리쯤 이르렀을 때 조사가 전군에게 명했다.
"이곳에 영채를 내리고 단단히 보루를 쌓아라!"
이어 다시 영을 내렸다.
"계급 상하를 막론하고 군사(軍事)에 관해 간(諫)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리라!"
그러고는 영문을 굳게 닫고 군막 안으로 들어가 침상 위에 누워 잠을 자는 것이었다.
장수와 군사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가슴만 두드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 대장은 진(秦)나라 군대에 겁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는 사이 10여 일이 지나갔다.
세작들의 보고가 연일 날아들었다.
- 알여성(閼與城)이 함락 직전에 있습니다.
마침내 소교(小校) 하나가 조사의 군막으로 찾아가 아뢰었다.
"속히 알여성(閼與城)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관절 언제까지 여기에서 이렇게 누워 계실 작정이십니까?"
조사(趙奢)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 이놈, 군사(軍事)에 관해 말하면 죽인다고 하지 않았느냐. 여봐라, 이 자를 참수에 처하라!"
소교는 밖으로 끌려나가 죽임을 당했다.
다시 10여 일이 지났다.
여전히 조사(趙奢)는 침상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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