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롤 압박 주의!!!
들어가기 전: 저는 35살의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줌마입니다. 6살된 딸아이가 있고 직업군인인 남편과는 주말부부 중이며 보건교사라는 나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죠. 후후(절대 자랑질 아님 ㅡㅡ;)
우선 인도 서번트 투어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저는 2005년 직업군인, 2009년 병원 간호사를 거쳐 2013년 보건교사가 되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이직과 결혼, 출산, 육아에 임용고시까지 너무나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내적불행을 가슴 가득 가지고 살던 저는 창피하지만 2013년부터 병적인 우울감이 시작되었고 2014년이 되면서는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병원을 찾게 되었고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 아래 일 년 정도의 약물 치료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만 내 아이, 내 가정, 내 직업 모든 게 싫었고 세상 모든게 부정적으로만 보였었죠. 특히 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저는 딸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많은 육아서를 읽게 되었는데 많은 육아서를 통해서 제가 얻은 것은 깊은 절망감이었드랬죠. '나는 나쁜 엄마'라는 것을 인증하는 절차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육아서로 인해 더 많이 힘들었고 육아서를 멀리 하기로 결심했을 때 쯔음 친언니의 권유로 ‘꿈꾸는 다락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꿈꾸는 다락방’은 이미 예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이 책인 것 같습니다. 다시 읽는 ‘꿈꾸는 다락방’은 내 뒷통수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주었고 내가 꿈을 꾸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에 내 정신 상태가 지금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꿈꾸는 다락방을 시작으로 많은 자기 계발서를 접한 저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의 장애를 핑계로 구체적인 꿈을 갖지는 못했던 상태였답니다. 그러던 중 올 해 5월 2일 이지성 작가님의 대전 강연으로 서번트 투어를 알게 되었고 폴레폴레 카페를 통해 방학기간에 참여할 수 있는 인도 서번트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심리 상태를 아셔야 이해가 쉬울 것 같아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잊어주세요. please...)
누군가는 저의 글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였고 서번트 투어가 활성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일기 형식이라서 반말입니다.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7월 24일(목)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인천공항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우리팀 모임시간은 14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은 13시 30분...
나름 여유있게 출발했으나 도로 사정으로 2시에 꼭 맞춰 도착을 했다. 인천공항 3층 J26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자 OT때 만났던 몇몇의 낯익은 얼굴들과 처음 뵙는 분들이 서먹서먹하게 모여 있었다. 곧 이어 최주현 인솔 간사님께 전화가 왔다. 공동짐이 많으니 10번 게이트로 나와달라는... 몇 몇 분과 함께 나간 10번 게이트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짐들이 있었다. 서번트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했다. 간단한 OT를 받고 드디어 수화물을 보내는 시간이 왔다. 남자팀원들이 주를 이루고 여자 팀원들은 뒷받침이 되어 완벽하게 수화물을 부쳤다. 30분간의 조별 시간(환전, 화장실, 간식 등) 후 다시 집결한 팀원들... 그 짧은 시간에 큰 일이 하나 벌어졌다. 우리 팀의 호신과 체력, 얼굴을 담당하는 문정환군의 전대 분실!!! 전대 안에는 여권(인도 비자 포함)과 비행기표가 들어 있었다는... 우리는 예비로 여권사본과 사진을 챙겨왔기 때문에 당연히 잘 해결 될 것으로 생각했고 인솔 간사님과 정환군만 남고 나머지 팀원은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안으로 향했다. 해외 여행이 처음인 나는 공항내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음. 중간에 김은정양이 인터넷으로 신청한 면세물품 받는 것도 왕 신기... 얼마후 혼자서 모습을 드러내신 인솔 간사님... 정환씨는 결국 여권을 찾지 못해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통보... 팀 분위기 다소 다운 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긴장감을 잃지 말자고 다 같이 다짐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홍콩 경유 방콕에서 환승!!! 태어나서 매우 충격적인 경험, 평생 잊지 못하리라. 나는 냄새에 매우 민감하다. 좋은 냄새, 나쁜 냄새 모든 냄새에 민감해서 무취를 좋아한다. 방콕에서 콜카타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찾아간 C10 탑승구. 나 뿐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인내에 놀랐지만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불평과 불만은 다른 팀원들에게도 독이 되는걸 알아서일 것이다.
<조별 자유시간 전>
정환군 전대 분실전 단체 사진
<Gate C10>에서...
7월 25일(금)
몇 시인지 모르나 새벽에 콜카타 공항에 도착. 정환군은 없고 현지에서 비자 발급하는 세 명과 인솔 간사님은 비자 발급하러 가시고...
나머지 팀원들은 개인짐과 공동짐을 받기로 했다. 모두들 카트 끌고 대기. 짐 나오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자들이 비를 맞아 터지기 직전인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 기아대책 스티커가 붙은 짐들을 모조리 내려서 싣고 나옴. 어마 어마한 짐들.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음.ㅡㅡ;
양보다도 무게가... 장난 아니었음.
뒷 이야기: 짐을 급하게 싣다 보니 다른 여행객 캐리어도 하나 잘 못 가지고 온 것을 숙소에 가서야 알게 됨.
비가 오면서 스티커가 다른 캐리어로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 다음날 이은옥 선교사님께서 그 캐리어 해결하느라 더 바쁘셨음. 죄송합니당~~~
우리를 마중나온 이은옥 선교사님의 아들 빅토와 현지 스텝분들 덕에 스쿨버스에 짐을 실을 때는 수월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고 2인 1실로 들어갔다. 나의 룸메이트는 인솔 간사님. 주인장이 우리 여권을 모두 복사할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아서 오셨는데 정환군과 같은 사고를 방지하고자 나에게 모조리 맞기셨다. 여권을 지퍼락에 담아 캐리어에 넣고 잠근뒤 캐리어 자체를 커튼 뒤에 숨김...ㅋ
우리 방은 분실 사고를 대비하여 묵는 내내 청소를 딱 한번함. 청소한 날은 캐리어를 청소 안하는 다른 팀원 방에 숨김...
그렇게 여권을 안전하게 모신 다음에야 씻고 잠이 들었다. 나름 숙소는 에어커도 나오고 순간 온수기도 설치되어 있었다는...
생각보다 훌륭한 숙소였다.
오전 10시에 식당에 모여 아침을 먹었다. 커리와 난, 식빵과 쨈, 쥬스 등 맛있게 먹고 현지아동 가정방문을 위해 모였다. 이은옥 선교사님께 간단한 오티를 받고 현지아동 집에 나누워 줄 선물을 공유했다.
인도에서 주의해 할 사항들을 알려 주심.
실제로 들은 이은옥 선교사님의 목소리는 허스키 그 자체였다. 혹시 성대결절 있으시냐고 여쭤봤더니 이미 수술한지 오래라고 하심. 워낙 말씀을 오래도록 많이, 열정적으로 하셨기 때문인듯 싶다.
아이들이 스티커 매우 좋아함.
그러나 내가 가정방문 후 느낀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물은 유선 노트(선 그어져 있는 것)!!!
그 이유는 아래에서...
11시 30분 쯔음...
가정방문을 가는 길은 험난 그 자체였다. 온 길거리는 소똥, 개똥, 각종 오물과 합쳐진 물이 발목까지 차는 정도였고 무릎을 넘어서는 물길을 헤치고 가야했다. 물이 많이 차서 스쿨 버스가 들어갈 수 없단다... 우리조는 조준석 팀장님과 이재청군, 나 이렇게 세 사람으로 현지 스텝분, 이은옥 선교사님의 딸 글로리아와 함께 했다. 사실 구정물에 발을 담그는 것 자체가 꺼림직하고 논의 진흙에 발이 빠져 걷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더욱 굵어진 빗방울에 물이 불어난 탓에 현실은 더 험난한 길이었지만 정말 기분 좋게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방문한 아동은 모모따, 9학년이라고 했다. 정말 작은 집에 모모따와 엄마, 할머니가 계셨는데 모두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모모따 어머니는 우리 손에 들려 있던 신발을 받아서 물에 씻어 주셨다. 엄마와 할머니는 주방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주방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곳 없이 집 입구 바로 옆에 가스렌지와 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주방과 분리된 방 하나가 전부인 집에서 그 방이 모모따의 방이었다.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들고 있는 모모따의 액자가 첫 눈에 들어왔고 사진 아래 작은 침대가 있었다. 방바닥이 좁은 탓에 우리는 침대에 걸터 앉았고 모모따는 서 있는 상태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도중 모모따의 교과서와 노트를 보게 되었다. 갱지 수준의 교과서에는 글자가 빼곡했고 정말 작은 그림이 아주 가끔 들어가 있었다. 잡지 수준의 질 좋고 색색깔의 글씨와 더불어 각종 사진과 그림들이 그득한 우리나라의 교과서와 크게 대조 되는 모습이었다. 노트 또한 갱지 수준의 무선 노트였는데 유선 노트는 비싸서 무선 노트를 사서 줄을 직접 그어 사용한다고 했다. 교과서와 노트 모두 겉표지를 따로 포장해 두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이 잘 파손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의 꿈이 선생님이라는 모모따는 CDP 센터를 통해 공부하는 것만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지나온 험난한 물길을 매일 매일 걸어서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모모따의 그 한 마디에 구정물 길을 꺼림직해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맛있는 커리와 탄두라 치킨을 점심으로 대접받았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모모따의 어머니는 우리의 방문을 감사한다며 나의 발에 키스를 해 주셨다. 우리가 방문한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듯 했고 모모따도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하나의 동기가 된 것 같았다.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대한민국 학생들도 모모따처럼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지금처럼 학교가 지옥같지 만은 않치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발목까지 빠지는 길>
포장되어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모모따는 매일매일 무릎까지 빠지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닌다.
* 천연 각질 스크럽 진흙길: 무슨 소리인지는 아랫글에 있어요...^^
왼쪽부터
1. 조준석 팀장님: 현지인 버금가게 식사하심.
2. 나: 모모따와 커플 하트
3. 모모따: 선생님이 꿈인 아이
4. 이재청군: 평소 조용 조용한 일꾼, 재청군은 안동에서 사 왔다며 필통과 부채를 조용히 전해 줌.
14시 쯔음
다음 일정을 위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길을 나서는데 비가 많이 온다며 가지 말라고 만류하시던 모모따 어머니, 감사합니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물길을 헤치고 나온 우리는 꽤 먼거리를 걸어 스쿨버스에 올랐다. 다른 조들도 스쿨버스에 합류한 후 어느 가정집을 가는 길이 더 힘들었는지... 누가 물구덩이에 빠졌는지를 가지고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우리 팀의 큰언니인 권영미 선생님께서 한말씀 하셨다. “다들 발 뒷꿈치 좀 만져봐. 얼마나 보드라워졌는지. 이거 완전 천연 각질 스크럽이다.” 우리는 다 같이 발바닥을 만지면서 그 보드라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권영미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물길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팀은 다 같이 웃으며 다음 일정을 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짜증내기보다 감사하기!!! 진정한 생각의 전환이 아닐는지...
16시 쯔음
남아 기숙학교로 향했다. 넓다란 강당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인도는 어딜가나 꽃으로 우리를 환영해 준다. 얼마만에 남자에게 받아온 꽃이던가... 우리를 위해 공연도 준비해 주고... 감사합니다.
조준석 팀장님의 지도 아래 여자 팀원들은 사다리 놀이, 단체 공 튀기기 놀이를, 남자 팀원들은 축구까지... 어딜가나 남자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란... 강당 밖에서는 권영미 선생님의 미용실이 한참이나 운영되었다. 아이들은 신기한지 둥그렇게 모여 구경을 했다. 정말 지저분한 머리는 중,고등 정도의 큰 아이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사춘기라서 머리에 민감하다. 절대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귀여운 작은 아이들만 머리카락을 잘랐다.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머리까지 정리되니 얼마나 이쁘던지... '순돌(아름답다. 멋있다)' 한 마디에 수줍게 웃던 그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꾸 정전이 되고, 결국 날까지 저물어 잘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순전히 감으로 머리카락을 자르시던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 해맑게 웃고 있는 이 아이들이 이은옥 선교사님께서 남아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으셨다면 어딘가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연하남에게 받은 꽃 ㅋ
<단체 공 튀기기>
여러명이 힘을 합쳐 공을 받아야 함.
아이들 정말 정말 좋아했다.
오죽 좋았으면 무지개 천 밑에 들어가 있는걸까?
위험해 보였으나 다행히 안전 사고는 없었다.
<권영미 쌀롱>
7월 26일(일)
10시쯔음
우리팀에 첫 환자가 발생했다. 16살의 태선이가 설사 이후 복통을 호소한 것. 오늘은 오전에 예배 시간이었으나 태선이가 심상치 않아 내가 숙소에 같이 남기로 하고 다른 팀원들은 출발. 나는 서번트 투어내내 보건언니 or 누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0대 팀원들과 서스럼없이 지내고 싶은 아줌마의 마음이랄까... 태선이에게 약과 물을 먹이고 누나(?) 손은 약손이라며 배를 문질러 주었다. 어리게만 보였던 중학생 태선이가 본인이 아픈 바람에 일정에 차질을 주거나 자신의 일을 못 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심히 걱정을 한다. 배가 아팠다 괜찮았다를 반복했지만 불행중 다행인 것은 증상이 아주 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식사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먹고 아프고 조금씩 먹고 아프고를 돌아오는 날까지 반복했다. 많이 불편했을테지만 끝까지 티내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준 태선이, 장하다!
오후부터 일정에 합류하기로 하고 다스빠라 학교에서 팀원들과 함께 근사한 점심을 먹고 시원한 바람과 경치를 즐겼다. 오늘은 일요일이므로 현지 스텝분들도 휴식이 필요함.
태선이와 나를 데리고 다스빠라 학교로 와준 빅토...
내 사윗감으로 점 찍었는데...
딸이랑 나이 차이가 11살 이라눈... ㅜㅜ
<최고의 만찬>
콜카타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다스빠라 학교에서의 점심
점심이후에는 150년된 교회, 빅토리아 메모리얼, 갠지스강과 연결된 강을 돌아봄. 이야기가 많은 관계로 관광이야기는 제외하는 것으로 함.
7월 27일(월)
7시 30분쯔음
아침을 먹으러 내려간 식당에서 문정환군을 만났다. 다행히도 전대를 찾아서 촬영간사님과 함께 오늘 새벽에 들어왔단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고 당연히 정환군 여권도 내가 맡기로 했다. 정환군의 별명은 당분간 '2%' 이다. 정환군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갓김치도 이 날 처음 맛보게 되었다. 이미 갓 김치는 우리 손에 들어와 있었으나 정환군이 없는 관계로 열기가 미안했다는... 며칠만에 맛 본 김치는 식빵과 먹어도 너무나 맛있었다. 아침 일찍 선교사님과 목사님, 글로리아와 함께 기차를 타러 갔다. 새벽에 도착한 심명섭 간사님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피곤이 역력하셨지만 인도의 거리를 열심히 촬영하셨다. 인도의 기차는 정말... 대단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것은 기본이요. 문을 연 상태에서 매달려 가는 사람, 기차가 서면 철도로 내려 반대편으로 오르는 사람... 이것도 그들의 문화이려니 생각하기엔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도착한 작은 역에서 짐과 함께 몇몇 분들은 경운기 비슷하게 생긴 것을 타고 이동했고 나머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길은 한적했고(그래도 이 마을은 길이 있었다.) 양 쪽의 논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랑 경운기 사이쯤 되는거 타고 가는 팀원들>
탑승후기: 엉덩이가 매우 불편했다고 함.
물바다가 된 논, 여기서 그물로 낚시하는 마을분도 계셨는데 작은 물고기부터 제법 큰 물고기까지 잡힌다고...
엄청난 기찻속 인파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찍는 단체 샷
손연재(?) 닮음꼴, 강도율 양
인도에서 그녀의 인기란...ㅋ
그녀의 셀카 능력 또한 실로 놀라웠다.
도착한 학교에는 어린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 학교에 오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고...
대부분의 팀원들이 풍선, 페이스 페인팅, 종이접기 교육봉사를 하고 권영미 샘은 미용봉사, 나는 의료 봉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느낀 점은 '내가 이렇게 한번 약을 발라준다고 한들 곧 물길을 헤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것 아닌가...' 또한 대부분의 아이들의 발은 맨발로 다니면서 생긴 작은 상처와 함께 습진이 심한 상태였다. 약을 거부하는 아이도 있었다. 절대 몸에 무언가를 바르면 안된다는 아이들... 그들의 뜻에 따라줄 수 밖에... ㅜㅜ
의료봉사를 마치고 교육봉사에 합류했다. 나는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유치원생들과 종이접기를 했는데 학, 거북이, 하트 등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또 접어 달라며 종이 동물을 가르키던 손짓이 선하다.
풍선 왕관과 풍선 칼, 페이스 페인팅과 종이접기로 너무나 행복해 하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아이들의 하굣길에는 비눗방울과 초코파이를 나눠 주었다.
* 뒷이야기: 늦게 합류한 정환군 왈 "초코파이 받은 아이들이 또 달라고 하면 어쪄죠?"
우리팀원 전체 왈 "여기 아이들은 받고 또 달라는 안 해요. 오히려 또 주려고 하면 받았다고 하던걸요..."
이렇게 솔직하고 꾸밈없는 아이들의 눈빛은 얼마나 맑았겠는가...
15시 쯔음...
오후 스케줄은 영아원이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서 다시 스쿨버스로 이동하는 길, 인도의 교통체증 역시 대단한다. 큰 길도 차선이 따로 있지 않고 차선 변경도 없이 운전사 맘대로 알아서 추월하며 달린다. 다른 방향에서 차가 오면 각자의 좌측으로 통행하는 규칙만은 확실한것 같다. 그렇게 찾아간 영아원은 이미 목욕이 끝난 상태였고 간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기들의 체격이 엄청 작은데도 걷고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개월수는 좀 된것 같다. 영아원에서 차고 있던 기저귀는 빼 버리고 옷만 입히고 차에 올랐다.
4살 정도의 남자 아이는 눈빛부터가 개구쟁이임을 알리며 태선군을 잘 따르며 장난을 쳤다. 내가 안고 있던 아이는 머리 여러군데에 큰 종기(?)들이 가득했는데 아마 병원진료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인지 심란해 하고 있을 때 영아원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이 아이들은 영아원에서 간식과 점심을 먹기 때문에 영양상태며 위생상태가 좋은 편이란다...
더 심한 아이들이 길거리에 많다고...
아이 머리의 전체가 저런 종기(?)같은 것으로로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피부과에 이끌고 가고 싶으나 인도의 거리는 병원시설이 여의치 않다. ㅜㅜ
영아원 아이의 한 집을 가정방문(가정방문시 마음 아픈 일이 있었으나 나의 추측인 듯 하여 자세한 이야기는 패쓰함) 하고 모바일 스쿨에 다니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는 쓰레기 장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플라스틱을 골라내고 재활용센터에 팔아서 먹고 사는 집도 있다고 했다. 그 곳을 지날때의 냄새란... 이것이 진정한 시궁창 냄새이구나. 쌉싸름하면서 짭쪼름한, 매캐하면서 탄내가 뒤섞인... 주변에 까마귀 또한 엄청나게 많다. 이 곳을 지나 도착한 마을은 집이 좁아서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상태로 촬영간사님만 촬영을 가시고 마을주민들과 들판에서 함께했다. 인솔해주신 선생님과 마을 아이들이 같이 노래를 불러주고 어머니들이 비스킷과 음료를 마련해 주셨으며, 악수를 청하는 많은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마을의 모기들 또한 우리를 대상으로 포식했을 저녁이었다. 우리 팀원 모두 모기에게 엄청나게 뜯겼다. ㅡㅡ
<인솔 선생님과 마을 아이들의 노래 시간>
인솔 선생님, 목소리도 좋으시고 노래 정말 잘 부르신다.
이쯤에서 내가 알아낸 인도의 대표적인 냄새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남다른 후각 덕분에 사실 인도에서의 시간이 힘들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코가 예민하다는 이유로 불평하고 언제까지나 코를 틀어 막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투어가 3일 4일 지날수록 팀원들이 다소 지쳐가고 있을 때 나의 머리를 스쳐간 아이디어는 ‘인도 냄새 즐기기’였다. 냄새에 민감한 내가 인도 냄새를 정리해 주자. 곧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우리민족과는 다른 냄새, 인도인들의 인내를 1번이라 한다. 방콕 공항 C10 탑승구에서의 잊지 못할...
길거리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커리 냄새를 2번이라 한다.
감자를 볶거나 튀겨 먹는 인도에서 흔히 맡을 수 있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자튀김 냄새, 일명 롯데리아 냄새를 3번이라 한다.
종교의 나라 인도는 곳곳에 신당이 차려져 있고 그만큼 향 냄새를 많이 맡을 수 있는데 향 냄새를 4번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방문한 인도의 우기에 흙냄새에 섞인 비 비린내와 함께 풍기는 소, 개, 기타 동물들의 분변 냄새, 정리해서 비릿한 똥냄새를 5번이라 한다.
그 외에도 시궁창 냄새, 아스팔트 냄새, 내 발가락 냄새(자주 발을 씻는 나의 모습에 오해한 팀원이 있었을 뿐, 사실이 아니다...) 등등이 더 있었는데 대표적인 다섯 가지 냄새만으로도 충분했고 우리 팀은 어느 거리를 지날 때마다 번호를 붙인 냄새를 공감하며 때로는 퀴즈로 냄새 맞추기를 하며 냄새 때문에 힘들어 하기는커녕 인도의 냄새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인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렇게 냄새를 구분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듯!!!
7월 28일(화)
7시쯔음
오늘은 우리의 일정중 제일 바쁜 날이다. 모바일스쿨 등교부터 일정이 시작된다. 우리를 먼저 태운 스쿨버스는 아이들을 태우러 마을로 향한다. 영아원과 모바일 스쿨로 가는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줄을 서서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예전에는 학교로 데려가 아이들 사진을 찍어서 돈벌이를 한다는 오해를 산 적도 있으나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개끗이 씻고, 간식을 먹고 공부를 배운다는 것을 아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단다. 이은옥 선교사님의 모바일 스쿨 운영이 이렇게 한 마을의 부모님들을 바꿔 놓은 것이다. 아이들로 가득찬 스쿨버스는 모바일 스쿨로 향했다. 아이들은 매일이 그렇듯 문에 들어서자 마자 한 쪽에 옷을 벗어 두고 수돗가로 모인다. 우리는 열심히 아이들을 씻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햇볕이 나지 않아 발가벗은 상태로 덜덜 떠는 아이들이 생겼다. 우리는 힘을 합쳐 최대한 빨리 깨끗하게 씻겨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 전날 다른 학교에서의 아이들 발이 생각나 샤워볼로 발을 박박 깨끗이 닦아 주었다. 한쪽에서는 미용봉사가 시작되었다. 권영미 선생님은 전문가의 포스로, 조준석 팀장님은 난생 처음 바리깡을 잡고 견습생의 포스로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다른 팀원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교육봉사를 위해 교실로 향하셨고 나는 머리를 깍거나 깍는걸 구경하느라 씻는 타임을 놓친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수돗가에 남아 있었다. 이때 나를 감동 시킨 한 여자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돗가라고 물이 콸콜 나오는 수돗가가 아니다. 우물물을 길어서 써야 하는 곳이다. 모두들 교육봉사로 바빴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씻길 물을 길어야 했다. 우물물을 긷기 위해서는 일명 레고통을 이용해야 했는데 레고통 사방에 구멍이 뚫려있다. 레고통에 달려있는 긴끈을 잡고 우물물 위에서 좌우로 슬슬 흔들면 사방에 난 구멍으로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통이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물이 가득 차면 그 때 통을 끌어올려서 물통에 쏟아 붓기를 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아줌마고 우물물을 긷기 위해 우물 위로 올랐을때다. 빼짝 마른 여자아이가 나타나더니 나보고 내려오란다. 자기가 길어주겠다더니 우물물을 긷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다 씻을때까지 아마도 50박스 이상 물을 길어준 것 같다. 그 아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봉사를 한 것이다. 처음본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와서 필요한것을 채워준 그 아이의 순수한 손길...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인도의 천사다. 너무 열심히 목욕을 시킨 탓에 그 아이와 사진 한장 찍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바일 스쿨에서>
11시쯔음
드디어 이지성 작가님, 박재범 본부장님과 합류한다고 한다. 우리는 다스빠라 센터로 향했다. 운전사분이 길을 잘못 들어 차가 들어가면 안되는 시장길을 통과했는데 그 틈에 인도의 시장 문화를 엿 볼 수 있었다. 내 머리 속엔 온통 생닭을 잡던 모습이 그득...
다스빠라에서도 역시 꽃을 받으며 환대를 받고 아이들의 공연을 봤다. 우리를 위해 준비한 공연인데 교통체증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비눗방울과 초코파이를 준비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중에 동영상으로 다시 봐야지...
부랴 부랴 선물을 나누어 주고 예정했던 교육봉사는 취소가 되었다. 인도는 교통체증 때문에 생각보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이들이 배식하는 것까지 보고 우리는 다스빠라 바로 옆의 병원건축중인 곳으로 향했다. 내과, 치과, 산부인과와 장애인 재활센터도 들어올 예정이란다. 병원 건물에 맞춰 엘리베이터도 들어간다고 했다. 지금은 우기라서 건축이 잠시 중지된 곳에서 바닥 다지기(?)를 조금 하고 윗층으로 올랐다. 앞이 탁 트인 멋진 곳. 이 곳에 병원이 완공되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물론 부모님들도 병원에 다니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선교사님은 아직도 인도에서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을 덧 붙이셨다. 아이를 길거리에서 낳는다는건 아이와 산모가 감염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인데... 더군다나 인도의 길거리를 실제로 본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건축중인 병원 건물 옥상에서>
다스빠라 학교의 한공간인 베이커리에서 빵만들기를 했다. 이 곳에서 만드는 빵으로 매일 550명 정도에게 배식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만든 빵을 직접 먹어 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베이커리에서 일하시는 스텝분도 이 학교 출신인데 정말 친절한 분이셨다.
<베이커리에서>
여러 CDP 센터가 있지만 이렇게 베이커리를 같이 운영하고 곳은 아직까지는 다스빠라 밖에 없다고 한다.
훈남이신 현지 스텝 *^^*
영아원으로 돌아간 우리는 작가님과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인도의 다른 지역을 거쳐 오신 작가님과 본부장님께서는 인도에서 이렇게 맛있는 집밥은 처음 드시는 거라며, 매우 감격해 하셨다. 우리팀은 거의 매일 먹었는뎅...ㅎㅎ
우리팀 각각의 서번트 투어에 참여하게 된 계기, 느낀점, 작가님의 다른지역 여행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가님을 바로 옆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어우, 잘생기셨다...^^
<작가님과 함께>
영아원 2층에서...
그 이후시간은 작가님의 특별 강연... 인도에서 강연하게 될 줄은 모르셨다며...
현지에 살고 계신 한국분들과 우리 폴레폴레 회원들에게 매우 유익한 강연이었으나...
USB 발매 예정이라 내용은 생략..
<콜카타에서의 특별강연>
7월 29일(수)
7시 30분쯔음...
오늘은 숙소를 정리하고 개인짐을 모조리 싸서 대기해야 하는 아침. 일정상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스쿨버스를 타고 교회에 잠시 들러 개인짐을 내려두었다. 겅가조라 드림센터로 향하는 길에는 이미 비가 많이 와서 허벅지까지 물이 찼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들은 목까지 물이 차서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현판을 걸기도 해야 했고 이미 가정방문을 했던 날, 물에 대한 공포가 없어졌기 때문에 열심히 겅가조라로 향했다. 겅가조라로 가는 길에 잠시 시간을 내어 심명섭 간사님과 함께 스케치북에 나의 꿈에 대해 쓰고 15초 인터뷰를 했다. 아무나 연예인 하는게 아닌것 같다. 손발이 오글오글~~~
선교사님과 목사님, 글로리아가 동행하였고 겅가조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었지만 우리는 또 한번 천연 발뒷꿈치 스크럽을 하러 온양 즐거웠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ㅜㅜ
아이들이 없는 관계로 여러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을무렵 빗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겅가조라에 잠시 머물러야 했는데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벽돌위에 올려진 판자를 밟고 지나가야 했다. 내가 화장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간 교실에는 나보다 먼저 화장실에 들렀던 전은미 양이 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판자에서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좌측 새끼 발가락이 꺽였다고 했다. 본인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심하게 부어 있었다. 팀원들에게 손수건과 길다란 수건을 얻어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였는데 더 큰 문제는 허벅지까지 차는 물길을 헤치고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다. 나는 우리팀의 보건 담당이다. 어쩔수 없이 지시 아닌 지시를 하게 되었는데 흔쾌히 받아준 모든 팀원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우선 체격이 가장 좋은 문정환군이 은미양을 업고 조준석 팀장님이 뒤에서 받쳐 주고 나머지 팀원들은 이 3명의 짐을 나누어서 들고 물길을 헤쳐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물길을 헤치고 나와 스쿨버스에 탈 수 있었다. 그 순간 우산은 우리에게 사치였기 때문에 온 몸으로 비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팀워크란...
<겅가조라 가는 길>
나올때는 더 깊은 물에 비까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
나올때는 너무 급박하여 사진 한장 없다...
모든 팀원이 비에 홀딱 젖고 은미양의 발가락 부상으로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겅가조라센터 다음이 고빈도풀 센터 방문이었는데 여기에서는 이미란 양과 기선, 태선군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척 아쉬워 했다. 교회에서 대충 씻고 점심 먹으로 시내로 출발, 작가님께서 추천하신 곳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로컬센터에서 잠시 쇼핑을 했다. 인도의 유명한 힐말라야 립밤을 대량 구입하고 싶었으나 가게마다 소량씩 가지고 있어서 조금밖에 사지 못했다. ㅡㅡ;
그 사이 은미양이 병원에 다녀왔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일반 반창고로 발가락을 감고 걸어서 나타났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은미양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발이 저리다고 해서 우리는 공항에서 휠체어와 카트(휠체어 준비가 안 된 방콕에서 짐 실는 카트)에 태워 다녔고 결국 한국에 들어와 병원진료를 받았는데 발가락에 실금(어째튼 골절)이 간 상태였다는...
공항으로 이동하기전 짐정리를 위해 교회로 다시 돌아온 우리에게 써프라이즈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미란 양과 기선, 태선군을 위한 후원 아동과 부모님이 교회를 직접 방문한 것이었다. 박재범 본부장님께서 특별히 비밀리에 준비하셨다고... 먼 곳에서 교회까지 왔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 인사하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후원 아동 2명 모두 꿈이 의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부모님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학교다니는 비용이 만만히 않아서 후원 없이는 아이를 가르치지 못했을 거란다. 100명의 아동을 후원하는 것이 꿈이라는 미란양은 후원 아동이 의사가 될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기선, 태선군도 직접 후원자인 아버지가 끝까지 후원해 주실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후원아동과 그들의 부모님들, 후원하는 사람, 지켜보는 우리 팀 모두가 훈훈한 시간이었고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것이 바로 일대일 결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한 한가지,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인데도 불구하고 후원자와 후원 아동이 닮아 보이는 것은 왜 일까...
<미란양과 후원 아동>
미란양의 눈가에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기선, 태선군과 후원 아동>
아이들과 함께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천사가 되는
기선, 태선군...
조준석 팀장님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무사히 귀국했다. 조준석 팀장님은 열흘정도 마더 테레사 미션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공항에서 짐을 찾자 마자 각자의 열차 시간과 버스 시간으로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뿔뿔히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우리 후속 모임때 다시 만날테니 괜찮아...
여기까지가 일정에 관한 후기였습니다.
<인도 서번트 투어를 다녀온 나의 다짐>
첫째, 감사한 마음 갖기. 내가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임을 잊지 말자.
둘째, 꿈을 갖고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 내가 목표 의식이 없어지면서 우울증을 앓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울할 틈이 없다. 새로운 꿈을 꾸고 이루어야 한다. 내 꿈은 구성애 선생님을 버금가는 성교육 전문 강사가 되는 것이다.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 특히 어머니 보다 많은 아버지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사가 되려면 대학원도 가야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다.
셋째, 행복한 부자가 될 것. 이지성 작가님도 특별 강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도서번트투어를 통해 감정적인 것만 경험하는 것이
아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고 실천하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의 부자,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부자,
유명한 강사가 되어 받을 강의료와 재테크를 통한 경제적인 부자가 되어 기부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넷째,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것 홍보하기.
TV 에서 보는 것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의 생생한 후기를 듣는다면 기부에 대한 생각을 빨리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서번트 투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꾸준히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인도에서의 시간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인도서번트투어의 모든 팀원들, 최주현인솔간사님, 심명섭촬영간사님, 박재범본부장님, 이지성 작가님, 이은옥 선교사님과 가족분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첫댓글 '스크롤 압박 주의'라는 말씀에 잠깐 겁을 내기도 했지만 글을 너무 재밌게 써주셔서 한자한자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번에 '생각하는 인문학'을 읽고 서번트 투어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생생하게 써주셔서 저도 일주일동안 인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경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셨네요. 말씀처럼 이번 서번트 투어가 다정이맘님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뤄지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정말 구성애 선생님을 넘어서는 성교육 전문강사가 되어 주셔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늘 화이팅입니다~!! ^^
분위기 메이커 언뉘ㅜ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이때가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같은 부분에서 저랑 다른 느낌도 신기하구요 ^^~ 긴 후기 감사합니다!!!
언니 너무 멋져요!! 언니의 후기를 읽다보니 다시 인도가 떠오르네요 ^^ 저도 이번 서번트투어 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넘 멋집니다. 기회를 만들어 두딸들이 서번트투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네요
보건언니 진짜 너무 멋져요...♡♡이 글을 읽으니 가라앉은 줄 알았던 이 마음들이 올라 와 저도 모르게 자꾸 그 아이들이 생각나고 눈에서 눈물이....흐르네요ㅜㅜ 언니 보곺아요... 후속모임때 꼭 보기를~ 인도 서번트투어 절대 잊지 못할거에요!!! 감사합니다.
난 인도 체질인가
한국 온지 몇일만에 다시 각질이~~
언니 너무 멋져요ㅠㅠ 다시 인도에 다녀온 느낌이네요ㅠ 언니가 가진 꿈 다 이루실거에요!
빨리 후기모임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서번트 투어 널리널리 홍보합시다! 이렇게 좋은 걸 우리만 다녀올순 없죠!ㅋ
글 잘 읽었습니다. 작년에 작은 교육봉사로 인도에 다녀 온 그 날의 영상들이 스쳐가며 눈물이~
그 땐 몰랐는데 후기를 읽고나니 참 편하게 다녀왔구나~생각됩니다
고생하셨구요. 담엔 저도 함께 가요. ㅎㅎㅎ
인도서번트투어 다녀오신 모든 분들~~ 고생많으셨습니다~
가현엄마 김미애입니다.
보건쌤! 리얼한 후기~
모두들 힘들었지만 행복한 서번트투어였던 것 같아 후기를 읽는 내내 저도 가슴저림과 따뜻함이 밀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날마다 행복하시길~~^^
참 행복한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봤어요~ 감사합니다~^^
진짜 멋지네요
보건언니♥ 진짜 멋있어요! 후기 읽으니까 다시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ㅠㅠ 읽으면서 울컥해서 잠시또 쉬었다가 읽고... 저도 이번 서번트 투어가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의 중요한 역할을 할 터닝포인트가 된것 같아요! 다음 서번트 투어때 꼭 다시 만나서 같이 봉사해요. 그리고 모기 물렸을때 치료해 주신거 너무너무 고마워요. 진짜 너무너무 보고싶고 후속모임때 만나요♥
잘 새겨둘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