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애틀랜타에 와 있다. 이곳은 한국보다 14시간이 느리다. 그러니 나는 이곳에서 묵상을 올리는 시간을 한국 시간으로 맞춘다. 그러려면 나는 이곳에서 오후 두시까지는 한국의 다음날 아침 시간에 맞도록 묵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애틀랜타 와서는 딸 수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귀한 시간이라고 하겠다.
애틀랜타에도 내 "묵상 식구"들이 있는지라 수요일 목요일 모두 묵상 식구들 만나고 주일날 설교를 세 번 한다.
뉴욕을 떠나 오는 날 공항에서 짐을 좀 일찍 수속하기 위해서 공항 안에 들어가기 전 돈을 좀 더 주면 빠르게 짐을 붙여 주는 곳으로 갔다.
흑인 남자가 있는 카운터로 갔는데 내 짐을 일찍 붙이게 되면 얼마나 돈을 더 내야 하느냐고 했더니 이건 tip으로 주는 것이니 내가 정하는 대로 주면 된다고 한다.
이럴 때 보통 5불씩을 주면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이럴 때 역시 전도를 해야 하는지라 20불을 주었다. 그랬더니 눈이 좀 휘둥거려 지면서 놀란다. 영어로 "결신문" 적혀 있는 마스크를 보여 주면서 여기 있는 이 글 꼭 읽어 달라고 했다. 글 서두에 벌써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나와 있으니 나를 보면서 자기 이전에는 교회 다녔다고 한다. 오늘 이런 글을 받으니 하나님이 자기를 다시 부르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하나님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힘 주어 해 주었다.
그 사람은 나를 천당 문 앞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고맙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 말 약속 꼭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곳은 꼭 천국이어야만 합니다. 내가 뉴욕에 온 이유는 바로 그대 때문인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20불이라는 팁을 주면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감사! 감사!! 내가 돈 버는 이유? ㅎㅎ 전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그대입니까?" 처럼 뉴욕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찾게 해 준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가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나를 "복음의 통로"로 사용해 주시기를 더 더욱 기도하게 된다!
기 승 전 복음 전파!! 내 삶의 정확한 목적이라서 감사하다!
설교를 6번 뉴욕에서 했으니 강사비를 받았다. 받은 강사비를 어떻게 사용하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까 그런 거룩한 고민(?)을 하면서 애틀랜타에 도착했는데 ㅎㅎㅎ
집까지 오는 우버 택시비가 한국 돈으로 14만 원인가 나왔다. 집에서 공항 갈 때는 약 8만 원인데 왜 공항에서 집에 올 때는 이렇게 더 비쌀까??
나중에 알아보니 공항에서는 손님들이 우버를 타야 할 수 밖에 없으니 우버 회사에서 그렇게 택시 가격을 올린다고 한다.
우버 타고 난 다음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받냐고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운전기사들은 5만원 가량 밖에 안 받는다고 한다. 세상에나 ~~~
그러면 우버 회사는 완전 50% 를 이익으로 한다는 것인데.. 갑자기 "돈"에 대한 짜증이 확 일었다.
이 세상 이렇게 "돈 돈 돈" 이러고 사는 게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
나는 내가 버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겠는가... 또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돈이라는 것이 나의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 역시 생각해 보았다.
일단 그 택시비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내 마음이 적잖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돈은 무엇일까? 나는 "하나님 어떻게 쓸까요?" 라는 재정에 대한 책을 쓴 저자이다.
그 책에 중심 된 부분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노예 삼아야 하는 우리 사람들의 마땅한 자리 매김"에 대한 것이다.
돈이 있으면 기쁘고 돈이 없으면 마음이 내려가고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삶에 "돈의 영역"을 어떻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런 맥락이 함께 있는 책인데
나도 이렇게 돈으로 인하여 좀 불공평하다는 상황을 마주치게 될 때 돈이 나가는 영역에 대한 나의 반응을 살펴보게 된다.
내게 허락된 재정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나는 보통 10의 10조를 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편이다.
이번에 강사비를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나 강사비 받는 것이 많고 적음이 그다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다시 흘러 나갈 재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설교하고 난 다음 강사비 받는 것은 다른 사람들 주는 것을 그렇게까지 어려워(?) 하지 않는 것은
나는 복음을 거저 받았다. 그리고 거저 받은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강사비를 받는다.
그러니 거저 받은 것으로 내가 얻은 수고비(?)를 거저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활비가 필요한 사역자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없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활비가 그다지 필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뿐이다.
재정!! 남들에게 10의 10조를 주어도 매달 나름 도전이 되는 생각들은 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도와 줄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사람 보다는 저 사람을 더 돕는 것이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들
내가 꼭 이 사람 도와야 하나? 이런 생각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이라고 고백하는 그 고백에 마땅한 태도가 어떤 것인가 매 달 10의 10조를 사용하는 때마다 "숙제"는 "숙제"이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강사비를 사용하는 것 외에 나에게 "품위 유지비" 하세요! 라고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특별 축복 기도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교헌금을 내는 사람들은 내가 축복 기도 안 해주어도 어련히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지만
"나"라는 "개인"에게 나를 사랑해서 나를 배려해서 "개인 후원금"으로 주는 분들은
내가 누군가를 재정으로 도와 줄 때 그분들이 나를 고마와하여 "축복기도"를 해 주듯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축복기도"를 해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이 이 재정을 허락하시는 순간 순간 이 재정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큰 기쁨이 되는지..
이것은 우리들이 돈을 필요로 하고 살아가는 시간들 동안 어쩌면 끊임없는 숙제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말 성경 사무엘상 18장
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군사들과 함께 돌아오는데 온 이스라엘 성읍에서 여자들이 소고와 꽹과리를 갖고 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사울 왕을 맞았습니다.
7. 그들은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사람은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수만 명이라네.”
As they danced, they sang: “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s of thousands.”
8. 사울은 이 노랫소리를 듣고 몹시 불쾌해 화가 치밀었습니다. 속으로 “다윗에게는 수만 명이라더니 내게는 고작 수천 명뿐이라는구나. 그가 더 가질 것이 이제 이 나라밖에 더 있겠는가?” 하며
9. 그때부터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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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다윗에게는 수만 명이라더니 내게는 고작 수천 명뿐 이라는구나. 그가 더 가질 것이 이제 이 나라밖에 더 있겠는가?”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 묵상 구절을 한 구절 이상으로 선택했고 요즘 내 묵상을 담장 안에 있는 분들이 800명 넘게 읽는지라 성경 번역을 쉬운 번역으로 옮겨 보았다.
담장 안 식구들은 전에 교회를 한번도 안 다녀본 분들도 있다고 한다.
나는 요즘 담장 안 식구들이 내 묵상을 매일 꼼꼼히 읽어 주고 그리고 매일 기다린다는 말에 참 큰 감동과 감사가 함께 한다.
어차피 담장 밖에서 예수님을 잘 믿는 분들은 나의 묵상이 그렇게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으나
담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분들이 담장 안으로 들어갔기에 접하게 된 "나의 묵상을 통한 복음"이 그들의 삶에 큰 변화와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큰 감격과 감사인지!!
그래서 요즘 나는 묵상을 가능한 성경을 잘 모르는 분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성경의 배경이 되는 구절들은 우리말 성경 쉬운 성경으로 옮겨 적는다.
오늘 이 묵상 구절에는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는 그 이유가 나온다.
자기가 죽인 적군들 보다 다윗이 죽인 적군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 백성들이 노래하는 그 노래의 가사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결국 우리들이 갖게 되는 시기와 질투의 마음은 남들과의 비교 의식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유툽에 내 설교를 올리는데 "조회 숫자"에 민감해 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어! 나랑 다른 설교자들이랑 뭐 딱히 설교 내용이 다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누구는 10만이 넘는 조회 숫자고 나는 그렇지 않을까?
나도 내 설교에 대한 조회 숫자가 그렇게 작은(?) 것은 아닌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회 수"를 보면서 나를 나 자신 스스로가 비교하는 것을 보고 어느 날은 "조회 수의 영 물러가라!" 대적 기도를 하고 나 스스로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ㅎㅎㅎ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쓸데없이 남들하고 비교하면 주님 기뻐하지 않는 시기 질투 자기 연민 자기 비하 이런 영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조회 수의 영" 주님 이런 거 아셨어요? ㅎㅎ 시대가 바뀌니 마귀들의 이름도 참 다양해 지내요! "야동의 영"도 내가 찾아낸 귀신의 이름인데 ㅎㅎ 저는 이런 영들은 저에게 뭐 감히 얼씬도 안 하는데 "조회 수의 영"은 다가온 적이 있어서 감사하게도 제가 얼릉 캐치 해서리 쪼까 냈죵!!
대신에 아 ~~ 한 사람이라도 내 설교 들어주니 넘 감사하다 이렇게 태도를 바꾸게 해 주신 울 성령님의 지혜 감사 드립니다!
오늘은 수요일 이곳에서 제 묵상 식구들이 저를 찾는 것 같애요 ㅎㅎ 구역예배 수준으로 만나게 되는데 만나서 "믿음의 진보" 이야기 잘 하도록 도와 주시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딱 맞는 기도를 잘 해 드리도록 성령님 동석하여 주실 것이니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