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
포근한 어머니의 품안처럼 느껴지는 내고향, 영암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월출산이 나를 맞이하고 부모형제 그리고 어린시절 친구와 함께 했던 많은 일을 기억해 보고 추억 속에 빠져들곤 한다.
*군서면 동구림리 출생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장
*한국예총 광주시연합회장(현)
*전남대학교 미술대학 교수(현)
필자는 2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서 태어났다. 영암 구림마을은 고려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것을 예지하였던 낭주 최씨의 시조 최지몽 선생의 탄생지이며 지금은 그 후손들이 각계각층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도참사상의 시조로 고려의 건국을 예언하고 불교 중흥을 일으킨 도선국사의 탄생의 전설이 이어온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낭주골은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으로 이어지는 큰 인물의 발원지로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월출산의 큰바위 얼굴의 발현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구림마을의 상대포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중국과 일본을 잇던 커다란 항구로 현재도 곶의 형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왕인박사가 천자문과 백제의 문화를 일본에 전하기 위해 이곳에서 배를 탔으며 일본과 중국의 교역선이 드나들던 포구였다.
구림마을 동쪽 문필봉 기슭 평온하고 아늑한 터에 왕인박사 유적지가 있다. 왕인박사는 5세기초 백제의 선진문물과 천자문을 일본에 전하여 아스카 문명을 꽃피우게 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소통과 상생의 대표적인 인물인 것이다.
왕인박사의 정신을 알리고 세계평화의 디딤돌로 삼기위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명사 1천명이 육필로 천자문 한자씩을 지극정성을 들여 쓰고 이것을 영암의 석공들이 돌을 새겨 만들었다는 천인천자문 조형물은 글자 한자 한자에 담긴 세계평화와 인류공동 번영의 염원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 영암에는 특산물 무화과가 있다. 농약이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꽃을 품은 무화과’는 무화과 자체가 지닌 성분이 해충이 없게 하고 사막에서도 생존할 만큼 생명력이 강한 과목이라 한때 이스라엘의 국화로 지정되기도 했다. 육류육질 연화작용 및 변비치료와 강장효과에 탁월한 신이 주신 보물 무화과가 우리 영암에서 잘 재배된다는 것에 신기한 바위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 월출산이 자리잡고 있다. 강진군과 영암군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장흥, 서쪽으로는 해남, 남쪽으로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는 곳에 있는 월출산은 천황봉을 최고봉으로 하여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거봉 등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다.
또한 도갑사와 무위사가 있고 구정봉으로 오르는 산기슭 중턱에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이 있다. 북쪽에 용추폭포, 동쪽에 구절폭포, 남쪽에 금릉 경포대가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예술적 혼이 깃든 대표적인 지역으로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 명인을 비롯하여 하춘화의 ‘영암아리랑’, 영암백리 벚꽃길, 궁중 진상품으로 이름났던 참빗과 산란기인 3∼5월에 잡은 숭어의 알, 최고 별미의 세(細)발낙지, 짱뚱어 요리가 있어 아름다운 산세와 더불어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흔적, 큰 인물, 빼어난 산과 들, 특산물 등 소중한 자원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이 속속들이 영암을 찾고 있다.
내 어릴적 월출산의 정기를 받고 잔뼈를 키웠던 내 고향 영암!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어느새 근 40년을 훌쩍 넘어 버렸지만 틈틈이 고향을 찾을 때면 무척 설레고 행복감이 젖어온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고향을 향한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고 글을 쓰면서 내내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있다.” 고향을 그리는 사람은 많으나 정작 찾는 사람은 많지 않는 현실 속에 우리 출향민 모두가 영암을 찾고 영암자랑의 선봉자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