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연령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시작되는 외국곡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1970년대 어느 날 TV에 등장한 낯선 외국가수. 통기타에 긴 머리.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를 시작한 그의 이름은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 그 노래의 제목은 ‘아낙(Anak.아들)’이었다.
‘아낙’ 이 한 노래로 단숨에 아시아의 별로 등극했던 프레디 아길라. 그의 노래, 아낙은 세계 28개국에서 번안되며 당당히 8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자식이라는 뜻의 아낙(Anak)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린 노래다.
KBS 수요기획팀은 2007년 6월 20일 ‘프레디 아길라, 그를 기억 하십니까’를 통해 70년대 세계를 사로잡았던 수퍼스타 프레디 아길라를 만나 노래처럼 감동적인 그의 삶을 만나봤다.
80년대 초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 등 팝의 황제들과 함께 당당히 빌보드 싱글챠트 5위라는 기록을 남긴 프레디 아길라가 지금 살아가는 곳은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다.
그는 그곳에서 한칸의 교실에서 이 지역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공부방 아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필 한 자루까지 공연을 통한 수익금으로 채운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누렸을 당시, 필리핀은 마르코스 독재에 신음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프레디 아길라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마르코스 독재를 피해 망명중이던 니노이 아키노가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암살된 것. 분노한 민중은 거리로 나섰고, 독재에 항거했다. 프레디 아길라는 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의 숨결로 노래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필리핀 민중의 삶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자유를 외치는 곳,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이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존경이 담긴 전설이 되었다.
항쟁의 시기는 끝났지만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는 여전히 필리핀 사회를 보듬고 있다. 그는 여전히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어루만진다. 58살,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감동의 순간을 KBS 수요기획팀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