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지승호 (triana@freechal.com">triana@freechal.com) 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3/6/16(월) | |
콘서트장이 텅텅 빌 망정
조선일보에 광고는 내지 않겠다 노래하는 운동가, 운동하는 가수 안치환 인터뷰 마포에 있는 참꽃스튜디오에서 안치환씨를 만났다. 안치환씨는 전국 투어를 가지고, 하반기에는 여덟 번째 음반 작업을 해서 올해 안에 꼭 내고 싶다는 의사도 밝혔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의 말에 따르면 안치환은 80년대 암울했던 시절 권력에 저항했던 80년대 노래운동이 나은 최고의 결실이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철의 노동자' 등을 작곡하고 불러 당시 민중과 호흡했던 노래운동권이 배출한 당대 최고의 민중가수였고, 그후 90년대 들어 '귀뚜라미'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얼마나 더' 등의 서정적인 히트곡을 내면서 대중가수로 적응한, 아니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래운동 출신 가수인 안치환은 새로운 음악 인생을 다시 찾은 듯 활기가 넘쳐 보였다. 다음은 안치환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지승호(이하 지) -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피묻은 운동화'를 작곡하시기도 했는데요. 그 사건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안치환(이하 안) = 그때요? 사실 저도 월드컵에 푹 빠져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축구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월드컵 시작하고, 공연 다니는 사이에 일어났던 일인데, 굉장히 큰 일인데도 불구하고, 월드컵의 그늘에 가려져서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그때는 쉬쉬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안타까워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사람들이 무감각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노래로 만들려고 했는데, 가사를 쓰다 보니 '태극기는 울고 있다' 이런 식의 가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사를 쓴 친구한테 얘기를 했어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의정부에 사니까 가깝게 그걸 느낄텐데, 내가 노래를 만들어 보니까 가사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가사 좀 써달라'고 하면서 느낌을 얘기했는데, 그 다음날 메일이 왔어요. 밤새 고민했다면서요. 그래서 곡으로 만들었고, 그 당시에 현장에 가서 노래를 한다거나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지 - 촛불시위 공연이나 현장은 자주 가셨습니까? 안 = 한번밖에 못 갔고, 제가 갔을 때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였을 때였어요. 인터넷에서 앙마라는 친구가 먼저 제안해서 시작된 거잖아요. 거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고 놀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깃발 올릴 데가 별로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웃음) '범대위의 성격 자체가 자신들이 지향했던 행태와는 달라서 분리한다'는 식의 얘기들이 있었잖아요. 그게 무슨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큰 대의를 가지고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 - 이슈를 주한미군 철수 이런 것으로 끌어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것 같은데요. 안 = 자기 자신이 운동권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까요? 어쨌든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는 거잖아요. 선거철도 가까워지고, 복잡다단했던 것 같은데, 제 자신은 그게 반미건, 민족의 자주권을 생각하는 자리이건 그 아이들의 죽음과 함께 미제로부터 억압받고, 피해받고 상처받은 것을 씻김을 하자고 모인 것이고, 우리가 미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거기 가수들이 많이 왔는데, 얘기들을 너무들 잘해 가지고 저는 안했어요. 그런 자리에서 늘 아쉬운 것은 그런 정도의 자리에 왔으면 그 이슈에 맞는 노래 하나 정도는 만들어 가지고 무대에 올라갔으면 하는 거예요. 가수가 노래를 하러 왔으면 노래를 해야지, 노래는 안하고 말만 유창하게 하고 내려가는 가수들이 있더라고요. 가수면 그 정도는 준비를 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무대를 왔는데, 자기가 무슨 노래를 부를 게 없으면, 그 무대에 서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서 이 뜻에 맞는 노래를 부르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도 없이 가수가 촛불 시위에 동참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시류에 영합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촛불시위를 이끌어가고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 - 촛불 시위에 대해 노 당선자도 자제를 당부하고 있고,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촛불 시위 반대 시위까지 벌이고 있는데요. 매향리 출신이지 않습니까? 미군 범죄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안 = 제가 의도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웃음) 매향리 문제는 몇 년 전에 시위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마이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사람들이 잘 모르겠죠. 반미라는 것과 어우러져서 운동권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알려진 건데, 그 전까지 제가 알고 있는 매향리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거기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농사 짓거나 하지 않는 아저씨들 몇 명은 경비원들이었어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시끄러운 것이 기본이니까 저뿐만 아니라 그 동네 아이들은 너무 무서워서 울었던 기억이라든지 이런 게 많은데, 자라면서부터 너무 무감각해졌어요. 음악 좀 들으려고 하거나, 기타를 좀 치려고 하면 너무 시끄러워서 하지 못했고요. 그때 당시는 미군이 한반도를 전진기지화하고, 이런 생각은 못했죠. 지금으로서는 끔찍한 기억이지만, 그때 당시로서는 좋았던 추억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야 윗집 아저씨가 경비원이 된 것이 가족들이 오폭에 맞아 죽은 뒤 보상으로 경비원이 되어 있다든지, 그래서 매일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있다든지 하는 얘기들을 듣게 되었죠. 폭발사고라든지 하는 사고도 많았고, 그런 일들이라든지 아무튼 생각해보면 소음이라는 게 저의 부정적인 성격 일면의 원인을 찾아보면 그런 것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쪽 사람들은 말을 해도 시끄럽게 얘기하거든요. 잘 안들리니까. 그런 부분들이라든지 오폭으로 인해서 죽거나 다친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철이 들면서 노래운동을 하면서도 생각을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미국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나가면서 다시 어릴 때 생각이 났죠. 나중에 철들어서 생각해보니까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 만약 그런 환경이라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아요. 지 - 노당선자가 촛불 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하고,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소파가 불평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요.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개새끼들 아닌가요?(웃음) 맨 처음에 노 당선자가 자제해달라고 했을 때는 민감한 때였잖아요.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착잡하기는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는 북핵 등 민감한 문제가 있었고, 당선자로서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민운동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서 시민운동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되죠. 최근에 지식인들에 대한 시선이 날카로워져서 지식인들이 갖는 더러운 속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근래에 쓰는 노래들에 그런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고요. 지 - 자기 발언에 책임은 지지 않고, 잘되면 한자리하려는 그런 류의 지식인들 말인가요? 안 = 김규항씨 책 같은 경우 두 번 읽었어요. 한번은 쭉 읽고, 한번은 하루에 한두 편씩만 읽었어요. 저도 나름대로 세상에 익숙해지고, 남들이 볼 때 타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식인이라면 지식인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든지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요즘 손에 잡히는 책이 그런 거더라고요. 홍세화씨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보면서 너무 좋았어요. 가증스러운 지식인에 대한 일갈들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동감하거든요. 건강한 사회를 이끌어갈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인데,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에게 단호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위안을 갖는 건 요즘 한가해서 노래들을 만들면서 '이런 노래들을 이제야 만드는 구나'하는 노래들이 있어요. 대중성을 갖고, 안갖고를 떠나서 '이제서야 만들었구나' 하는 노래들이요. 오늘도 노래 한 곡을 만들었거든요. 그동안 노래로 만들지 못했던 '아메리카'라는 노래가 있고요. '피묻은 운동화' 등 미국에 대한 노래가 있는데, 아메리카의 가사는 이래요.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에는 담벼락 앞에서 줄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미국이 싫소. 우리 국민들을 줄서게 만드는 미국이 싫소. 베트남 정부는 말했다고 하오. 당신들이 뭔데 우리 국민들을 줄세우느냐고... 그렇게 미국 앞에 당당한 베트남이 좋소. 아메리칸 드림 같은 맹목적인 환상을 쫓아서 ..... 나는 그 여자들이 싫소.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통역하는 그 여자들이 싫소. 오늘도 변함없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읊조리는 노랜데, 참 좋더라고요.(웃음) 이런 문제의식 같은 것을 새삼 느꼈어요.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서잖아요. 베트남에서도 미국 대사관 앞에서 줄을 세웠대요. 그런데 그들은 언론에서 막 떠드니까 정부에서 '당신들이 뭔데 우리 국민들을 줄을 세우느냐'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나온 조정래 선생의 산문집에 나오는 글인데요. 거기에 그런 느낌의 글들이 있어서 포인트를 잡고 썼어요. 지 - 간혹 보면 수구적인 사람들은 논외로 치고 가만히 놔두면서도 진보 진영에서 열심히 뭘 하다가 '나 좀 지쳤어. 쉬고 싶어'라고 말하면 '변절했네, 어쩌네'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해온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닌데요. 여러 가지 운동의 방법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난 아닌 것 같다, 좀 더 고민해보겠다'라는 태도를 더 지켜봐 주는 인내심도 부족한 것 같은데요. 안 = 극우라든지 수구는 단결이 잘되잖아요. 하나의 목표를 지켜야된다는 것을 가지고 단결이 잘되잖아요. 좌파적인 성향이라든가 운동권 성향은 서로에 대해서 감시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결국은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주변에 대해 '니가 옳으냐, 그르냐' 이런 것을 많이 따지는 성향들이 있잖아요. 그런 성향이 많은 건 사실이죠. 자연히 비판의 소리를 받을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들을 잘 이겨 내야죠. 지 - 사실 진지한 성찰 없이 맨날 욕해봐야 변화가 별로 없거든요. 누구나 다 지역감정을 나쁘다고 말하지만 별로 변화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신해철씨 같은 경우 다른 사람 씹을 에너지로 좀 더 좋은 노래 많이 소개시켜주는 것이 진짜 공격적인 것이고, 결국은 그것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안 = 노래 운동권에서도 서로 욕합니다. 저도 욕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요. 노래운동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용적인 것을 채워나가느냐, 음악에 투철하면서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는 것 등을 고민해야 되잖아요. 음악적으로 게으른 부분에 있어서 얘기하다 보면 서로 담을 쌓는데, '얼마 되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냐, 서로 욕하지 말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응원해줘야 될 것 아니냐, 애정을 가지고 해 보자'는 얘기를 많이 해요. 썼던 노래 중에 아직 발표 안한 건데, 제목이 아직 안 정해졌는데, 이런 가사예요. '절대선은 없다. 절대악도 없어. 니 밥 그릇 앞에. 내 밥 그릇 앞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어. 넌 개새끼야. 난 개새끼야.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절대가치는 없고, 신념도 없고...' 이게 가사예요. 이거 써놓고 너무 좋았어요.(웃음) 저 자신도 그런 면이 있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이라든지 절대적인 정의나 선이라든지 이런 것을 알면서도 자기 밥그릇 때문에 배신을 하거나, 자기를 버리거나 이런 것을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지 - 8번째 앨범은 언제쯤 내실 건가요? 안 = 금년 8월 이후에 저희들 녹음실이 생길 거예요. 저희가 녹음작업까지 할 수 있는 작업실이 생기는 거죠. 그때부터 녹음해서 올해 안에 내고 싶어요. 시의에 맞는 노래가 몇 개 있어서 빨리 녹음해서 들려주고는 싶은데, 저는 시기에 대한 조급함은 없어요. 노래는 몇 년이 지나도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는 노래여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 - 7번째 음반 [Good Luck!]을 발표하고 "사실 지금 음악을 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좀 쉴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반을 내놓고 나니 지친 느낌도 들고, 뭔가 내 자신에 대해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여행을 떠나든지, 유학을 가든지 하는 것도 고려중인데, 그런 욕구가 점점 커져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뵈니까 그때보다 훨씬 의욕도 넘치고, 음악적인 열정도 되찾으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 = 의욕이 좀 떨어졌었죠. 그때는 정말 그랬어요. 재작년이었죠? 작년 1월 달에 한 달 넘게 여행을 갔었어요. 여행가서 아무 생각 안하고 있으면서 노래를 꽤 썼어요. 갔다와서도 많은 노래를 썼고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때는 도피적으로 '쉬고 싶다, 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노래를 만들면서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개인적인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주셨는데 여기 사진에 나온 진중권, 김규항, 홍세화, 유시민씨 등의 글들이 요즘 제게 많이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인의 가사에다가 곡을 많이 붙였는데, 요즘은 그런 분들의 글들을 통해 모티브를 얻고 있습니다. 지 - 지난해 가을 '지역감정을 걷어내는 즐거운 장례식' 행사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대통합을 위한 국민의 힘'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지난해 8월 2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전국 49개 도시를 돌며 지역감정을 영원히 떠나 보내기 위한 '49재' 의식을 치렀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분들이 참여하셨고,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진 행사입니까? 안 = 저는 거기에 별로 활동을 한 게 없어요. 사실 김원중씨가 하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한번만 공연해 달라고 해서 참여한 겁니다. 거기에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까 매니저한테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대요. 그때 구호가 '잘가라 지역감정'이었죠. 그거 하고 나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확이 있었어요. 제가 걱정했던 것은 거기 시인들과 가수들이 나오는데, 원중이형한테도 말했지만 '지역감정에 관한 노래가 없는데, 가수라면 말이 아니고 노래로 해야지, 노래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이 기억해서 부르고, 인구에 회자되고 그래야지, 운동권에서 했던 답답한 노래들, 제가 들을 때는 철지난 노래들을 하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호응이 없는 거다'라고 했어요. 그런 결과물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역감정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습니다. 그 행사를 대선에 맞물려서 하게 된 것 같은데, 처음에는 순수하게 출발했는데, 그런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있잖아요. 지 - 말씀하신 대로 말로 하는 것보다 노래로 하게 되면 사람들이 따라 부르게 되게 더 영향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2년 전 인터뷰했을 때 "좋아하는 정치인이 없다. 정치인이 노래불러달라고 하면 거절한다. 소신을 가진 사람이 지지할만한 정당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으십니까? 안 = 지금도 그렇죠. 이번 대선 때 거의 유일하게 표명을 안했던 것 같은데 노캠프, 민노당에서 전화 오고, 양쪽 다 전화가 오는데, '그런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 안하기로 했다'고 했더니 민노당 쪽에서는 '그럼 노무현 쪽이라는 거죠? 알았습니다' 하고 딱 끊더군요. 민노당 쪽에서 오해를 했다는 생각도 들고, 사람 대하는 게 약간 서투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웃음) 어차피 어느 쪽도 지지를 안할 예정이었지만, '이번에 노무현을 찍더라도 다음에는 진보진영에 힘을 실어주십시오'라고 했었으면 굉장히 미안했을 텐데.(웃음) 사실 심정적으로 고민은 됐어요. '나는 누구를 찍어야 하나' 하는 그런 고민이 있게 만든 대선이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고민은 안하게 될 것 같아요. 다음부터는 그런 고민 안하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치적인 지향점도 좀 확실해졌으면 좋겠고, 사실은 지금까지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과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있었는데, 다음부터는 아무리 미약하나마 그런 부분에 대한 입장을 갖게 됐으면 하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노무현을 찍을지 권영길을 찍을지 고민했는데,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것을 일차적인 진보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되면 사상적 지향점이 불확실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들도 있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정)태춘이 형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의 노래를 적어도 들은 사람들은 최소한 노무현 이상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을 선택할 겁니다. 그게 적어도 이회창은 아닐 거고요. 내가 노래를 해나가고 그것이 정서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선택은 최소한 그럴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지 - 현재 민중가요의 명맥을 윤민석씨 정도가 잇고 있는 것 같은데, 윤민석씨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회창 후보가 윤민석씨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 민석이 같은 경우 송앤라이프를 통해서만 음악을 발표하는 것 같아요. 온라인 상에서 민감한 이슈에 관해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음악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친구이고, 대중음악 현실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작업 외에도 균형을 갖고, 다른 음악활동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민중가요의 새길 찾기'라는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한 적이 있거든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가 봤는데, 들을 얘기는 별로 없더라고요. 이쪽 진영에서 서로 욕하지 말자고 해놓고, 저도 하는 셈인데, 여전히 저쪽에서 박박 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창남이 형이 할 얘기 없냐고 해서 '할 얘기 없다'고 했죠. 용어는 나중에 얘기하고요. 적어도 세상에 대해 역사의식과 시각을 가지고 발언을 하려는 사람들은 음악성에 대해서도 무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런 것들을 실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을 잡고 있지 못하면 끝없이 추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히 예술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평론에 귀 기울이지 말고, 자기 자신의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상처받거나 하지 말고, 그런 말은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배포나 정신적 강인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잘 견뎌내기 위해 동지가 필요한 거겠죠. 지 - 촛불시위에 이 후보를 지지했던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참석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그럼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스케줄상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안 = 자기가 갈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나? 글쎄요. 그런 것에 임하는 태도는 자신이 가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서로간에 인정을 하더라도 그들이 촛불 시위에 나오는 것은 오버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나름대로 각자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 - 안티조선 같은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보적인 성향의 대중문화인들 중에서도 일단 생존해야 하니까 조선일보 홍보를 외면하지 못하고, 인터뷰 같은 형태로 조선일보를 이용하기도 하는데요. 안 = 자기 문제겠죠. 단호하게 자신이 결정할 문제예요. 내가 초기에는 조선일보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나? 만약 했으면 꽤 오래 전에 했을 텐데, 그런 비슷한 이유에서였겠죠. 조선일보에 대한 의식도 없었는데, 개인적으로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조선일보를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그 이후로도 언론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공연 같은 것을 기획하면 기획사에서 '제발 조선일보 인터뷰 한번 하자'고 하거나, '그게 안되면 공연 광고라도 한번 내게 해달라'고 해요. 그러면 '안돼' 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힘든 거 알지만요. 조선일보에 나가면 표가 쫙 빠지는 거 알면서도 거부한다는 것이 제 양심인 것 같아요. 김용택 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조선일보에 이야기를 연재하잖아요. 그 부분을 생각해보면 갑갑한데, 당사자의 개인적인 세계관과 양심에 맡겨야 할 것 같아요. 지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이었던 문부식씨가 '폭력'이라는 주제로 조선일보 연재를 시작했는데요. 안 = 그 분이 왜 그러셨죠? 거기다 쓰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하지만 그건 자기 함정인 것 같아요.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거죠. 지 - 아까 '나도 지식인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정태춘씨도 '사실 자신의 노래는 민중적이지 못하다'는 말도 했거든요. 노동자를 위해서 노래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로부터 완전히 동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분명히 역할이 다른 건데, 그 다른 역할에 대해 잘 인정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안 = 세상은 분명한 것을 요구하잖아요? '주황이야, 빨강색이야, 자주색이야?'하구요. 의외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무대가 파업현장이에요. 그런데 별로 안가거든요. 거기서 제가 할 수 있는 노래가 없더라고요. 나의 목소리로는 투쟁가를 부르기도 어렵고, 극우라든지, 자본가라든지 그런 사람보다는 항상 노동자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우월감을 갖는 부분이 있잖아요. 가면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요. 그런 정서를 제 스스로 완전히 이해해야 하지만 편해질 것 같고, 그런 게 편해져야만 그런 현장에 가서 기쁘게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 - 파업현장에서 '철의 노동자' 같은 노래들이 아직도 많이 불리고 있지 않습니까? 안 = 사실 이건 농담인데, 그 노래가 그렇게 불리는데도 저작권료는 생각해보지도 못했습니다.(웃음) 지 - 사실 그걸 여쭤보고 싶었거든요. 저작권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냐구요.(웃음) 파업현장에서 할 수 있는 노래가 없다고 하셨는데, 요즘은 '철의 노동자' 같은 노래는 안부르십니까? 안 = 가끔 부르죠. 분명히 내 노래인데, 내 노래 같지 않은 것이 있어요. 연주로서는 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빼놓죠. 너무너무 고민하면서 만든 노래여서 애정이 있는데, 사람들이 불러주는 게 고맙죠. 저작권을 생각을 안하도록 만드는 게 저작권 리스트에 없어요.(웃음) 그걸 많은 사람들이 불러주는 것이 저한테는 기쁨이죠. 지 - MP3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 저작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이 없어요. 또 전 워낙 온라인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무지하고요. 지 - 오아시스 어떻게 보셨나요? 극중 테마곡으로 쓰인 안치환의 '내가 만일'은 이룰 수 없는 현실을 대변한다고 하던데요. 안 = 영화 재밌게 봤어요. 하지만 대개의 우리나라 영화는 뭣 같이 만들면서 할리우드처럼 폼을 잡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또 1년에 영화제는 왜 이렇게 많아요? 최근 영웅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예술성 있는 영화도 좋지만, 나름대로 철학도 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뒤지지 않는 영상미와 내용의 깊이는 서양인들이 좇아올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 - 노당선자의 광주 95% 득표의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지역감정에 의한 투표라는 말과 위대한 선택이라는 말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데요. 안 = 호남쪽 얘기는 다르지 않겠어요? 광주민중들을 학살한 사람들에게 누가 표를 주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표를 주는 사람들이 더 이상한 사람들이죠.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노무현 찍은 것도 아닙니다. 대학생들하고 얘기해봐도 '노무현 너무 싫어한다'고 하는 친구들 많거든요. 그런 얘기들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기 때문에 기성세대와 똑같이 생각하는 거죠. 지 - 지난해 10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초기엔 대학무대가 주였지만 이제는 사회단체, 대기업 행사, 장애우들 행사에 이르기까지 초청 받는 공연이 다양해졌어요. 폭은 넓어지긴 했는데, 내가 그토록 동반하고자 했던 정신적 동년배인 386을 볼 수 없어 아쉽다"고 하신 적이 있으신 데요. 안 = 물리적인 나이의 386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매몰되어가는 386에 대한 아쉬움이자, 제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었죠. 지 - "전 부담 없는 가수가 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영화 오아시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들 하던데 제 노래 전반에 깔린 내용 역시 사람들이 불편해 할 순 있어요"라고 하셨는데, 서정적인 노래들보다는 예전의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안 =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더 과격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정확해지는 것 같고요. 세상을 바라보는데 제 눈이 머무는 곳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게 곧 노래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사회과학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책을 보면서 가끔 이전의 음반에서 머뭇 머뭇거리는 느낌의 노래들을 더 이상 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이상 자신 없는 머뭇거림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0년 넘게 활동을 하면서 내 노래의 지표, 시각을 가져야될 시점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노래들이 좀 더 확실한 자기 발언들을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8집 음반에 실을만한 노래들이 넘쳐나요. '어떤 걸 넣어야 되나, 어떤 걸 빼야 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인데, 그런 것이 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 -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영향력이 생길 수 있는데, 그걸 무조건 권력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안 = 저한테도 문화권력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그 권력을 어떻게 쓰냐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지 - 그것이 삶 자체를 모두 관통하는 거라면 상관이 없는데, 때로는 '나는 아직 얻지 못했으니까, 얻은 너희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웃음) 그렇다면 자기를 뭘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지, 소박한 희망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와서 욕설을 퍼붓는 건 어떻게 보면 깡패짓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럼 딴데 가서 놀지, 굳이 이런데 와서 욕을 하거든요.(웃음) 안 = 자기 심지가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게 확고한 것 같아요. 글로써 싸운 게 아니라 노래로 싸웠잖아요. 우리 같은 경우엔. 자기 존재적인 확고함이 없으면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저는 노찾사에 있을 때 후배들에게 10년 후에 이 자리에 있으면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거든요. 그건 처절한 거예요. 저 같은 경우 10년 넘게 이 지랄을 하다보니 내적인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그러면서도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볼 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저 자신에게는 소중한 자산이에요. 음악으로 얘기해서 질 사람도 없고, 지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서로 용기를 줘야할 친구랑 음악문제로는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 그런 게 필요해요. 너무나. 지 - 1,200회 이상 콘서트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콘서트가 있습니까? 안 = 남들이 1,000회 했다니까 그 정도 한 거 아닌가 추정하는 거죠. 횟수를 따져 본 적은 업습니다. 정식 콘서트는 그렇게 안되죠. 그런데 왜 그런 걸 중요시하는지 모르겠어요. "니가 지금까지 어떤 음악을 해왔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 왔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 너에게 천회라는 횟수가 무얼 줄 거냐"는 얘기를 많이 해요. 광석이형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차라리 10년이 낫고, 20년이 더 낫죠. 횟수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아요? 1,000번인지, 2,000번인지. 지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으신가요? 안 = 기억에는 여러 가지들이 남아요. 딱 하나 얘기하는 공연이 있어요.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고 있어요. 10년이 넘게 가는 건데, 민가협이 하기 전에 민족문학 작가회의랑 같이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출연자가 가수도 있고, 시인이 시낭송을 하고, 중간에 나와서 노래하고, 고은, 김남주, 이기형 등 시인 중에 나이 많으신 선생님들이 시낭송을 하고, 반주를 하다 보면 짜릿하더라고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저 나이가 되서도 무대 위에서 정열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공연이었어요. 물론 그 이후 좋은 공연 많이 해 왔지만, 그 못지 않게 초라한 공연도 있었지만, 그 역시 모두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지 - 문학평론가 고영직씨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니. 그 무슨 턱없는 오만이냐."라고 했다는데,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 그 말도 맞기는 한데, 모든 것을 다 거두고, 생각하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될 세상은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요? 지 - 지난 1월말 신동호(희곡) 김정환(연출) 윤민석(작곡) 임수경(홍보대사) 씨와 함께 금강이 창작 뮤지컬 <대륙의 여인 수천(守天)>에 참여하셨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안 = 후배들이 연출하고, 신동호씨 등이 저한테도 출연해 달래서 거절하고, 노래는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근데 제가 일본 갔다오면서 한겨레신문을 봤더니 '노래를 흔쾌히 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과거형으로(웃음), 전화가 몇 번 와있고, 핸드폰 부재중이 여러 번 와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노래를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노래와 다른 색깔의 색다른 소리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대지의 노래라고 해서 철학적인 부분들이 많은 노래죠. 지 - 통일에 관한 노래도 많이 부르셨는데요. 현재 김대중 정권의 대북비밀지원 2억 달러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 북한에서도 너무 돈을 요구하는 건 있는 것 같아요. 투명하게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해야된다는 건 상식적이지만, 정리된 생각은 없어요. 제가 북한에 갔을 때 했던 수많은 행사들은 아마 북한에 돈을 주고 한 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저쪽은 돈이 없고, 우리는 있으니까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 - 일부에서는 386세대의 투쟁의 열매를 일부 운동권이 차지했고, 그 후광으로 정치를 하는 386세대 정치인들이 전혀 개혁적이지 못하다고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민석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고요. 안 = 상징화된 몇몇 사람들이 있을 텐데, 저도 그런 것에 대한 수혜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일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해요. 대신에 대표성을 그들에게 준거라고 생각하는데, 끊임없이 견제하고, 지적하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이런 것들에 대해 기억하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견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들에 대해서 항상 기억하고, 이러한 힘들을 잃지 않는 386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 - 노무현 당선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십니까? 안 =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지 - 정몽준 후보가 지지철회 선언을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안 = 큰일 났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죠.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지게 된 건 결과적으로 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만 해도 세상은 뭔가 끝내 음모적이고, 드라마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 측에서 일부러 했던 것도 같고, 그런 전술을 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정몽준은 정치꾼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지 -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안치환씨가 80년대 암울했던 시절 권력에 저항했던 80년대 노래운동이 나은 최고의 결실이었다고 했습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철의 노동자' 등을 작곡하고 불러 당시 민중과 호흡했던 노래운동권이 배출한 당대 최고의 민중가수였고, 그후 90년대 들어 '귀뚜라미'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얼마나 더' 등의 서정적인 히트곡을 내면서 대중가수로 적응한, 아니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래운동 출신 가수인데요. 그러다 보니 일부 운동진영에서는 변절, 배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안 = 글쎄요. 그런 말들에 대해서 겸손하게는 인정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 전체적인 음반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고, 방송에 나온 음악만 듣고 표피적인 반응을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실질적으로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들보다는 내가 더 고민을 하면서 살았다고요. 지 - 故 김남주 시인 헌정앨범 [Remember]를 발매하기도 했고, 김남주 시에 곡을 달아서 발표하신 것도 많은데, 요즘은 칼럼 등에서 모티브를 얻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다른가요? 안 = 모티브라기보다는 시각을 갖게 되는 거죠. 정확한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받는 거죠. 시를 가지고는 가사로 쓸 수 있어서 시에 멜로디를 입히는 거고, 칼럼은 세상에 대한 시각을 옳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많이 읽습니다. 자본가를 옹호하는 시각의 글을 통해서는 역설적으로 지식인 사회의 추악한 면이라든지 이런 것을 볼 수 있어요. 노래에서 시는 30% 정도까지 있는 것이고, 시가 좋아서 멜로디를 입히는 과정만 거치면 음악이 완성되니까요. 지 - 존경하는 음악인은 누구입니까? 지난번에 김민기씨를 존경한다고 하셨는데요. 안 = 지금은 음악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후를 본다면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전부이든지. 음악을 많이 들으려고 애를 써요. 제 3세계 음악이나 팝 등을 많이 듣습니다. 지 -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아빠, 가수 안하면 안되요?"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우셨을 텐데요. 안 = 어리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요즘 같은 경우는 애들이 바쁘니까 같이 못 놀아요.(웃음) 시간 날 때 항상 같이 지내려고 하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어요. 제가 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음악 때문에 주위에 소홀한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가족이 행복해야 내 음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이젠 알아요. 요즘은 예전보다 나아진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지 - "힘든 역경에 직면해서도 사랑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안 =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 때가 있을 테니까 그런 자양분이 부모로서는 되야 되는 건데, 제 자신은 그런 게 미숙했던 사람 같아요. 요즘 좀 철이 들어서 좀 나아졌죠. 지 - 특별히 애착이 가는 노래는 있으신가요? 안 = 새로 만든 노래들을 테이프로 녹음해서 그것만 듣고 다니거든요. 새로 만든 노래들만 한 테잎에 거의 찼어요. 그게 저로서는 굉장히 기쁜 일이거든요. 그게 하나의 음반이 될만한 분량이 된 거거든요. 그런 노래들을 들으면서 다니고 있어요. 제일 많이 듣는 노래가 '내 밥 그릇 앞에'라든지(웃음), 연탄 한 장이라고 후배가 누가 만든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그걸 나한테 들어보라고 준건데, 듣다가 좋아서 불러봤거든요. 안도현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건데, 그런 것도 좋고, 제가 새로 만든 노래들이 신선해서 다 좋죠.(웃음) 기존의 노래들도 사실은 다 애착이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새로 만든 노래는 세상에 나만 아는 노래잖아요. 그것들을 세상에서 저 혼자 듣고 다니는 것이잖아요.(웃음) 그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제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 - "민중가요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항가요, 운동권의 가요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확실히 재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이 향유하는 노래가 대중가요가 아닐까요? 80년대는 뚜렷한 적의 개념이 있었지만, 90년대 이후 사회는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양해졌습니다. 요즘의 노래운동의 방향은 사람들이 편파적 정서를 흡입할 수밖에 없는 것을 다양한 정서를 흡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는데요. 예전과 같은 방식의 저항가요는 필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보십니까? 안 = 아직도 제가 확고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개념 자체를 가지고 글쓰는 사람들이 너무 공부를 안한다는 것입니다. 공부 안한 평론가들이 글써서 먹고살려고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저항가요, 운동가요라고 하는 것보다는 민중가요라고 하는 게 대중들에게 더 접근하기는 쉽지만, 그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테두리적 한계 때문에 사실은 스스로 벽을 너무 높게 쌓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벽안에서 스스로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용서해버립니다. 말도 안되는 좋지 않은 민중가요들도 그 안에서 용서해버리는 것 같아요. 당당하게 노래운동이라든지 운동가요라든지, 저항가요라든지 그게 더 좋잖아요. 민중가요라고 얘기하기에는 노래들이 천차만별이고, 기본적으로 민중이 향유하지 않잖아요. 민중을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먹물들이 만든 노래니까, 그리고 그들만이 향유하는 노래니까. 대부분이 그러니까 제가 그 분야에서 노래를 하면서도 못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 말이 안타깝고, 내부에 스스로의 적을 만들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래라는 건 그들이 민중가요라고 생각하는 민중들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지 몰라도 기존의 대중가요에 저항해서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우리가 대중가요를 비판하는 이유를 정확히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표현해내고, 그것과 싸우고, 정서적인 투쟁을 해나가야 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만 분명하게 노래의 적이라는 것은 잘못된 대중가요다, 상업적으로 치닫는 대중가요다, 싸구려 대중가요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죠. 대중가요 중에서도 좋은 노래 많잖아요. 적의 개념으로서 사용하기보다는 자기 노래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요. 민중가요가 아닌, 색깔로 표현할 수는 있겠죠. 그냥 민중가요 가수가 아니라 색깔로 안치환이면 안치환이고, 저 사람은 사람 불편하게 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런 게 되야 된다는 거죠. 꽃다지면 꽃다지, 그들은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그런 이름을 가져야지, 민중가수 이런 게 아니라 안치환, 꽃다지 이런 식이 되어 야죠. 지 - "대중적인 장악력을 획득하는 노래여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도 하셨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저항을 상업화했다는 공격을 받는 측면도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굉장히 성공한 신해철, DJ DOC 같은 음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 정서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 음반들은 들으면서 우리편이고 아니고 간에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DJ DOC 같은 음악은 양아치들한테 굉장히 의미가 있을 거고, 그들 나름대로 음악으로 사회에 저항하는 방식이겠죠. 그건 그들의 성향이고, 이쪽은 좀 달라야 하는데, 그런 개념들이 모호하기는 합니다. 이쪽 판에 젠이라는 댄스 가수가 있는데, 전 전혀 아니라고 봐요. 저는 성가는 경건해야 된다고 보고, 저항 가요는 진지하거나, 풍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 - 김대중 정부 역시 친노동자적인 정권은 못되었던 것 같은데요. 두산중공업 노동자인 배달호씨가 분신자살을 하기도 했고요. 노무현 당선자 역시 해고를 더 쉽게 하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노동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 기쁜 것은 물론 그거예요. 이회창이 안됐다는 것. 하지만 그 이상의 기대를 가지고 기대는 건 무리가 아닐까 생각해요. 국민들이 차선의 선택을 했지만, 그걸 나름대로 시민의식의 성숙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사회적 의미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발표한 노래들이 별 의미가 없는 노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혁명이 아닌 이상 갑자기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수구세력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급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처럼 갑자기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 - 난곡에 있는 낙골공부방을 살리기 위한 콘서트도 여셨죠. 그곳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안 = 시간 되고, 몸만 되면 가면 되요. 언론에 알려지면 대단한 것처럼 될 수도 있는데, 저한에게 일상입니다. 그런 걸 많이 못하는 것이 미안하죠. 누굴 위해서 내 노래를 쓴다는 게 좋은 일인데, 많이 못해요. 나이 들면서 예전처럼 시위 현장의 담을 뛰어 넘어가서 공연을 하는 열정은 좀 줄어든 것 같아요. 지 - 그 외에 특별하게 관심가지는 문제는 있나요? 안 = 없어요. 마음의 여유를 두고 편안해지면 가족에 대한 것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하나 불러 놓고, 그 후에는 못했거든요. '왜 영어를 배우려고 해?' 이런 노래 부르면 욕먹을까요?(웃음) 나이 들어서도 정신이 살아 있으면 답이 보이겠죠. 지 - 이영미씨가 이렇게 평한 적이 있는데요. "평소에 어눌하고 말도 잘 못하다가도 일단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르면 무대 전체를 자기 분위기로 만들고 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런 만큼, 노래와 음악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새로운 음악적 체험에는 마다하지 않고 신나게 나선다"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안 = 노래하는 사람의 기본 아니에요?(웃음) 무대에 서는 사람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장악력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대를 장악하는 건 가수로서 당연히 가져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 - 올해 특별한 계획은 있습니까? 안 = 연습실이 좁아서 녹음도 해가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을 가지려고 계획했는데, 올해 실행에 옮겨요. 명실상부한 참꽃 스튜디오를 만들 계획입니다. 언젠가 그걸 하려고 했는데, 지금이 그 시점인 것 같아요. 거기서 우리 음반을 만들 겁니다. 나머지는 항상 했던 스케줄이죠. 콘서트하고, 곡 만들고, 그래서 음반으로 발표하고... * 필자는 신간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인물과 사상)'의 저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