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변신
글-德田 이응철
몹시도 춥던 동절기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니 창밖은 완전 냉동고이다.
밖에 나가 잠시 서 있어도 전신에 냉기류가 어느새 닁큼 기관지 정중앙을 점령해 가뜩이나 부실한 호흡기를 옥죈다. 겨울나기를 실감한다. 유년기 때 겨울하면 오로지 춥던 기억뿐이다. 수은주가 어디까지 내려갔는지 알 길은 없지만, 옷을 입고 새우잠을 잔 기억뿐이다. 새벽이 되어 방고래가 냉기가 돌면 엄니는 서둘러 부엌으로 나가 군불을 지펴 구들을 덥힌다.
모든 동식물까지 얼어붙었다.
유리벽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내가 분명했다.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지구를 떠났다가 육신을 두고 영혼만 챙겨 그 자리에 선 것은 아닌가!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며 내가 덕전이란 한 사람으로 카페지기로, 운영위원, 특별회원으로 행세를 하던 사람이라고 소리쳐도 난공불락이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 준회원 정회원 특별회원으로 다시 인준을 받아야 한다. 내가 간밤에 저승이라도 다녀온 것일까? 유리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들어올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나는 인간인가 아니면 저승사람인가? 오싹 필이 스친다. 갑자기 지난밤에 내가 사고로 지구를 떠난 게 아닌가 하고 피부에 자극을 주고 반응도 살핀다.
혹한이 연일 계속된다. 두려움 속에 컴퓨터 앞에 앉자 비밀번호를 교체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이라 부랴부랴 교체하다가 잘못해서 아뿔싸! 아이디까지 바꾸면서 순식간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내 지문을 화석처럼 안고 설립한 친목회 카페를 찾았지만, 거기에도 준회원으로 가입하라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德田이란 닉네임으로 12년간 내 집처럼 자주 찾던 카페도 나를 외면한다.
어디 그뿐인가! 수필가들 문학모임 카페도 단절이다. 운영위원으로 메뉴와 음악 그리고 대문을 좌지우지할 자격의 나를 몰라본다. 메뉴 수필방을 기웃거려본다. 간밤에 올렸던 2013 신춘문예 작품들과 최신작 육지의 섬이 선명히 적혀 있는데도 당신과는 무관하다고 막아서 아무리 나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소속된 동창회, 취미 전문소질 코너 등 많은 인터넷 카페에 마치 어부가 황금 석양을 등지고 바다에 그물을 풀어 놓듯 여기저기에 내 글을 올리지 않았던가! 몇 명이 댓글을 달았는지 얼마나 맛있고 살찐 대어들이 낚였는지 그물조차 걷어 올릴 수가 없다.
어찌할 수 없다. 그들에게 내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회원가입이 유난히 복잡한 초등학교 동창회 카페를 찾았다. 침침한 눈을 비비면 몇 번씩 비밀번호를 확인하고 들어가 카페지기라고 문을 흔들어도 소용이 없다. 여행방이나 사랑방이나 건강코너 모두 내 글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는데 그 방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정회원만 들어오는 곳이라는 문자가 뜬다. 체념하고 복잡한 회원가입을 한다. 영어와 아라비아 숫자를 옮겨 적는데 선명치 않아 몇 번씩 틀린다.
순간 현실과 멀어져 늘 주위에서 맴돌기만 하던 죽음이란 그림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뇌관을 흔든다. 이승을 떠날 때면 내 육체를 두고 영혼만 부상되어 자기가 살고 있던 곳을 돌아보고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스친다.
아니 그 때가 지금이 아닐까! 화들짝 놀란다. 육신을 두고 영혼이 찾아온 시간들이 아닐까? 잠들었던 아파트를 찾아가도 굳게 잠겨 있으리라. 내 지문이 화석처럼 새겨진 서재는 아직 암흑이리라. 아내는 졸면서 벽걸이 티브이 앞에서 오늘도 외화에 중독이 되고 어쩌다 창을 봐도 나를 인지하지 못하리라. 육필로 쓴 병풍이 영문을 모른 채 바람을 막아주고 거실 레드카페에 새긴 훈장이 액자 안에서 졸고 뒷 베란다엔 마늘 몇 접이 디룽디룽 매달려 있을 뿐이다.
고향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곳은 다르리라. 내 수필의 진원지인 정족리 황톳길을 달려간다. 미음자 종갓집엔 조카들이 웅성댄다. 내가 왔다고 수없이 대문을 흔들어대도 아무 기척도 없으리라. 다른 때 같으면 인내의 한계를 보이던 토토의 짖음도 그리울 뿐이다.
나는 경주 이 씨네 중시조 이항복의 28대 손으로 구남매 중 막내로다. 굽은 생의 질곡에서 만년에 터를 잡고 쾌재를 부른 나를 왜 몰라볼까! 42년을 훈장으로 가르친 제자들 숲에서 소리쳐도 몰라보리라. 친구들을 찾아가도 소용없고 근무했던 곳에서도 모르리라.
먼동이 터온다. 새벽의 침울한 회색의 늪에 주저앉아 울음을 토하고 싶다. 말라버린 의식을 촉촉이 적신다. 애착을 버리면 마음이 가볍다고 마음을 다스리며 준회원가입에 최선을 다 한다. 카페지기였던 두 곳도 어렵게 준회원으로 등업하며 누가 나를 등업해 줄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아침이 열려 다움 고객센터 1번을 찾아 간밤의 혼령이 된 나, 존재가 없어진 나를 전선으로 고소했다. 카페는 신상정보가 노출되지 않으니 아이디를 다섯 개나 사용 가능함을 배우고 1인 2얼굴이 되셨다고 위로까지 받았다.
내 존재가 지구상에서 완전 사라진 새벽이다. 취한다. 서재에 매복해 있던 매섭고 시린 동장군이 육신을 시험한다. 바튼 기침 몇 번 토하니 휘청거린다. 양쪽 팔을 만져보고 거울을 보며 내 외모를 확인하던 새벽이다. 심신의 아픔을 안개처럼 걷어 올린 새벽이다.
내가 군주인 카페왕좌에서 저벅저벅 내려와 쓴 소리하며 이름 모를 자들을 자격 박탈하던 때가 떠오른다. 길은 내려다 봐도 사람은 내려다보지 말라고 했는데 복실이란 아낙네가 생뚱맞게 지지부진 올린 글들을 허락없이 삭제한 적도 있지 않던가! 몇날 며칠을 등업해 달라고 석고대죄해도 괘념치 않던 가슴 저린 추억들이 질서없이 나를 채근한다.
낙엽송처럼 곧아서 덕전(德田) 하나만 고집해 하던 내가 이제 활빈당의 홍길동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두뇌의 창을 열고 소나무처럼 휘어서 그들과 함께 하리라. 이런 기회에 자신을 돌아보며 옷깃을 여민 패닉 그 현상에 감사한다. (끝)16.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