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하~ 하지만, 뒷일을 익히 짐작할 수 있는 것
이기에 뻔뻔하게 들이댑니다.^^
당분간 19금이 나올 일은 없을 거라 예상했었는데, 쓰다보니 오늘도
좀 므흣한 장면(약한 19금?)이 들어갔네요. 아무래도, 제가 너무 궁
한가 봅니다. 하하하~ 깊어가는 가을 탓으로 돌려도 될까요.
가장 먼저 정확하게 맞추신 큰손님~ 축하드리고요. 다른 분들도 모
두 예리하십니다.^^
역시나 극심한 주말의 정전을 깨는 저를 반겨주시기를....
*얼음장미님~ 작품을 두 개나 받고 입찢어졌습니다. 좋아하다가
답글도 못 달고 본편에서 감사를 드리게 됐답니다.^^
*라니냐님~ 무슨 일이신지요?
*park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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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17....운명 속으로 한 걸음
"........신군, 무슨 일이야?"
전화를 끊는 신의 표정을 본 채경이 같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확인 좀 하고."
노트북을 여는 신. 인터넷으로 들어가니, 누나가 말한 대로 사진이
떠 있었다. 자신과 채경이 공원에 있는 사진. 스페인을 관광했던 사
람이 스페인의 여러 풍경 사진들과 함께 공원의 아름다운 연인들-
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홈피에 둘의 사진을 올린 것이다.
문제는, 이 사진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점이다. 황태자와 닮았다
는 댓글들이 올라오면서 화제가 되다가, 누군가 채경의 모습이 전
황태자비와 닮았다는 댓글을 올리면서 일이 갑자기 일파만파로 번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이 사진이 발견되었을 때, 공내관이 너에게 알리자고 하는
것을 내가 못하게 했어. 그냥 이러다 넘어갈 거라고, 이 정도로 찍
힌 사진을 누가 알아보겠냐고, 괜히 신경쓸 일 만들지 말자고 했는
데, 내 판단이 아주 틀렸다. 내가 인터넷의 위력을 너무 얕잡아 봤
나봐.
자조적인 어조로 말하는 혜명.
-지금, 여기는 아주 난리야. 황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지
만, 네가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젠 아주 단정하는 분
위기로 흘러가고 있어.
누군가 재빠르게 전 황태자비가 스페인에 체류 중이라는 말을 올
리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고, 그 사진들은 지금 인터넷
을 도배하고 있는 중이었다. 합성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일찌감치
무릎을 꿇은 상태. 다만 가까이서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확
실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 사진을 찍은 사람
은 하도 시달려 홈피를 일시 폐쇄한 상태라고도 한다.
-단 며칠 사이에, 최고의 화제 1위로 선정됐고, 그 때문에 종친회
장이 구속된 일도 다 묻혀버렸단다. 사방에서 너의 말을 듣고 싶
어하는 중이야. 종친회에서도 연락이 왔단다. 전하를 뵙고 싶다고.
여론은 둘로 나뉘어 있다고도 했다. 순애보적인 사랑이라고 감동하
는 사람들과, 할마마마의 말씀대로 모두를 기만한 거라고 눈살을 찌
푸리는 사람들. 채경의 옛 스캔들 기사와 두 사촌을 갖고 놀더니 아
직도 황태자를 손 안에 넣고 주무르는 것이 아니냐는 악의적인 말들
까지 벌써 떠돈다고 한다. 예상보다 훨씬 파장이 커서, 이제 황실이
침묵으로 대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라고 누나는 말했다.
-하지만, 할마마마 말씀대로 황실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거야.
다만, 너희들이 직접 나선다면 언제든 너희들을 지지할 거야. 종
친들은 할마마마와 아바마마께서 맡아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신중
하게 결정해서 움직이도록 해. 부디, 건투를 빈다.
"어떡하지?"
채경이 잔뜩 걱정이 어린 눈으로 신을 보았다. 인터넷을 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지금까지 몰래 만나왔다느니, 벌써 애까지 있다느니,
채경이 그동안 황태자의 비호 아래 흥청망청 사치스럽게 지내왔다
느니, 각종 억측으로 가득한 기사들. 벌써 스페인으로 기자를 파견
했다는 언론사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그 기자에게 신경쓰는 사이,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버렸다.
".............."
난감한 표정이던 신, 그 기사들을 보고 화가 난 듯 입매가 한 일자
를 그리면서 눈빛도 차갑게 변했다.
"신군."
"응?"
"지금이 몇 시지?"
".........3시잖아." (물론 새벽)
노트북을 닫아버린 채경, 신의 손을 잡아끌고 침대로 가서 억지로
눕게 하고 자신도 누웠다.
"일단, 자자."
"뭐?"
"지금은 한창 꿈나라에 가 있어야 하는 오밤중이잖아. 머리가 제대
로 돌아갈 리가 없다고. 그러니까 푹 자고, 내일 맑은 정신으로 생각
하자구. 혹시 알아? 아침햇살의 정기를 받아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자신을 보며 배시시~ 웃는 채경. 그런 채경을 보자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어느새 따라 웃고 있는 신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얼른 자자."
채경을 품으로 끌어당겨 안자 채경도 아무 저항없이 가득 안겨왔다.
"아야~ 너~~"
"그 불순한 손, 확 묶어논다~"
째려보는 채경에게 꼬집힌 손을 뒤로 빼며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짓는
신이다.
"내 손은 별 뜻 없이, 그냥 닿은 것 뿐이야."
"그래, 손이 뭔 죄가 있겠냐.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이 죄지."
"뭐야?"
"숙면을 취해야 하는데 왜 딴 짓이야?"
"아니, 나는... 어디까지나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
눈이 아주 가늘어지는 채경.
"맞고 잘래, 그냥 잘래?"
"예, 예. 3초 안에 자겠습니다."
"오호, 정말이지? 하나, 둘, 셋~"
자는 척 하는 신. (맞을까봐 복종...^^) 웃음을 참고 신의 품으로 더
파고드는 채경. 채경을 꼭 안는 신이다.
"자는 거 아니었어?"
"자고 있어."
"자는 사람이 대답을 해?"
"잠꼬대야."
"하~ 정말 잠꼬대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거 참, 의심도 많네."
눈을 번쩍 뜨는 신.
"자는 거라면서 눈까지 떠?"
"잠버릇이다."
"빨리 자랬더니 쇼~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는 너는 왜 안 자는데?"
말문이 막힌 채경. 그래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이젠 네가 자는 척이야?"
"난 진짜 잘 거야."
"3초 안에 안 자기만 해."
그러나... 채경은 정말로 잠들어버렸다. 홀로 남겨진 신은 그저 황당
할 뿐.
"졌다, 졌어."
웃으면서 채경을 꼭 안은 채로 역시 잠을 청하는 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단, 영국으로 가는 것은 미루자. 잘못하다 율이와 태후마마께 불
똥이 튈 수도 있으니까."
"응."
신을 보고 웃는 채경.
"너 수염 나는 거 보면, 아직도 신기해."
"왜?"
"넌 왠지, 수염이 어울리지 않거든. 워낙 깔끔쟁이라."
"남자가 수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잖아. 그리고, 그래
서 매일 면도하고 있잖아."
살짝 까칠하게 반응하는 신.
"으이구, 까칠하시긴... 꼭 네 수염 같다."
신의 턱을 손으로 문대며 까끌까끌, 딱 네 성격이야~라고 말하는
채경. 채경을 잡고 어디 맛 좀 봐라~하며 볼에 턱을 문대는 신. 비
명과 함께 도망가려는 채경이지만 힘에서 당할 수가 없는 지라 꼼
짝없이 당하고 만다.
"이상해~"
아프다기보다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에 몸을 움츠
리는 채경.
"자업자득이다~"
웃으면서 채경을 꽉 붙들고 고문(?)을 계속하는 신. 걱정은 다 잊어
버린 듯, 아침부터 즐겁게 놀고 있는 두 사람이다.
"겁도 없이, 나한테 무기를 맡기는 거야?"
면도기를 손에 쥔 채경, 흐흐흐~ 웃는다.
"무기를 손에 쥐니까, 음... 갑자기 복수심이 끓어오르는데."
"뭐? 야, 당장 내 놔~"
"무르는 거 없기."
하얀 거품을 입 주변과 턱에 가득 묻힌 신이 욕실에 앉아있고, 그
뒤로 약간 높이 앉아서 신을 감싸안은 채경의 손에 면도기가 들려
있다.
"이렇게 보니까, 산타클로스 같다. 이 거품은 수염~"
거품에 살짝 손을 대보며 신기해하는 채경.
"이렇게 젊고 잘생긴 산타클로스 봤어?"
웃음이 싹 사라지는 채경이다.
"이런 몹쓸 왕자병같으니."
"왕자병이라니? 난 진짜 왕자라구."
".........내가 손에 무기를 들었다는 중대한 사실을 잊으셨나 보네."
"사실을 말한 것도 잘못이야?"
"에휴~ 됐다. 수염이나 깎자."
한숨과 함께 면도기를 고쳐쥐고 전투태세에 임하는 채경이다.
"살살 해. 너무 힘주지 말고."
"좀... 무섭긴 하다."
면도기를 턱에 대려다 말고 머뭇거리는 채경.
"이래서 언제 깎을래? 네가 해 보겠다고 큰소리 쳤잖아."
"막상 하려니까, 자꾸 잘못해서 벨 것 같아."
채경이 자신없는 얼굴로 말하자 면도기를 든 채경의 손을 잡는 신.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턱에 갖다 댔다. 신의 손 안에서 면도기가 움
직이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는 채경. 경직됐던 표정이 풀리면서 웃음
이 번졌다.
"이렇게 하면 돼."
신이 손을 떼려하자 저지하는 채경.
"왜?"
"오늘은 처음이니까, 계속 이렇게 하자."
"그럼 결국, 내가 깎는 거잖아."
"같이 하는 거지. 다음 번엔 내가 해 줄게."
그래서 끝까지 손을 겹친 채로 같이 움직이는 두 손이었다. 거울에
비치는 두 얼굴에도 똑같은 미소가 그려져 있다.
"왜 전기 면도기 안 써? 그게 간편하지 않아?"
"이게 더 제대로 깎여."
"아, 까다로우신 전하~"
파란만장 면도하기가 무사히 끝나고, 신의 손이 갑자기 채경의 얼
굴을 스쳤다.
"어?"
그리고는 하하~ 웃으면서 도망가는 신. 채경의 얼굴에 면도거품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너, 이리 안 와?"
"싫다. 내가 왜 가냐? 맞을 게 뻔한데."
"그러게 맞을 짓을 왜 해?"
"재밌잖아."
말을 하는 동안 수건으로 얼굴을 말끔히 닦고 태연하게 자, 이제 생
각이란 걸 해 볼까?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신.
"생각은 무슨 생각! 일단 맞고 시작하자~"
"야! 폭력 아내로 신고한다~"
"하던지 말던지!"
쫓아오는 채경을 피해 도망가던 신. 속도를 슬쩍 늦춰 채경의 손이
막 닿을 때쯤 갑자기 멈춰서서 뒤로 돌았다. 따라서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신의 가슴으로 돌진하고 마는 채경이었다.
"어이쿠~ 무슨 소가 달려드는 것 같네. 투우사의 기분을 좀 알겠다."
"뭐야? 내가 소란 말이야?"
눈을 부릅뜨는 채경.
"갑자기 서면 어떡해."
"서라고 할 땐 언제고, 서니까 또 야단이냐?"
"이거나 놓고 얘기해."
신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단단히 채경을 안은 팔은 꿈쩍도 하
지 않았다.
"놓으면 때릴 거잖아."
"당연하지. 넌 맞아도 싸."
"남편을 헐값에 팔려고 하질 않나, 툭하면 때리지를 않나. 어디 마누
라 무서워서 살겠냐?"
"우씨~ 내가 언제 툭하면 때렸다구..."
"아니야?"
".......네가 맞을 짓을 했잖아."
"원인제공자의 책임도 있다, 이거지. 뭐... 조금은 인정해 주지."
"인정해 주지~는 또 뭐야?"
그러나 씩 웃은 신, 채경의 허리를 더욱 죄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
왔다.
"뭐, 뭐하는 거야..."
"새벽에 못다한 거..."
"아침부터 무슨-"
그러나 때를 못 맞추고 울리는 채경의 전화에 분위기는 깨지고...
"어, 강현아. .........응, 우리도 봤어. ..........그래?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신을 보는 채경.
"한국은 지금, 뒤집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거라는데."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털썩 앉는 신.
"이젠 정말, 생각이란 걸 해야 되겠구나."
그러나 신의 생각은 3초도 가지 못했다. 채경이 옆에 와서 앉자 생
각이고 뭣이고 마음은 한 길로만 간다.
뭐,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사랑을 나눈다
는 것에 눈을 뜬 한창 때의 그인 데다가, 단 둘이 있는 데다가, 결정
적으로 연인이 아닌 부부(아직 법적으로는 아니긴 하지만)라는 점
에서 사실 거리낄 것은 없었다.
머리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마치 첫날밤 그 때
처럼. 놀란 채경의 눈이 난처하게 변하는 것을 무시하고, 지금이 햇
살이 눈부시게 비쳐들어오는 오전이라는 것도 무시했다. 좁고 불편
하다고 생각했던 그 소파에서 우리는 사랑을 나눴다. 환한 햇살 아
래 몸을 드러낸 채경이 부끄러워할 틈도 주지 않고 키스하고, 만지
고, 깨물고, 빨아들이며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채경이 수줍게 뱉는
신음이, 탄식같은 숨소리가, 열에 들뜬 눈빛이 나를 더 제어할 수 없
게 만들었다.
신의 어깨 너머로 비쳐들어오는 햇살은 그저 눈부시기만 했다. 부
끄럽고 수줍은 마음도 잠시 접었다. 마음을 다해 나를 안아오는 그
를 기쁘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눈으로,
몸으로 말을 거는 그에게 나도 눈으로, 몸으로 대답했다. 나도 좋다
고... 너만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 있다고... 나도, 행복하다고...
담요를 두르고 소파에 포개져 누워있는 두 사람. 채경의 머리카락
을 만지작거리는 신에게 채경이 물어왔다.
"여기, 계속 있어도 될까?"
"응?"
"이젠 집으로까지 막 찾아올 것 같거든."
"............"
"학교로도 찾아올 거고."
2주만 더 다니면 되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원래는... 올 초에 오려고 했었어. 그래서 너 학교 다니는 동안 나도
이 곳에서 뭔가 공부를 더 하려고 했었거든."
가라앉은 신의 목소리.
"그리고, 너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정식으로 발표할 계획이
었는데... 아바마마가 쓰러지시고, 할마마마까지 쓰러지셔서 내가
세웠던 계획이 다 물 건너 가버렸어."
신의 가슴에 기대누워 가만히 듣고 있는 채경.
"너 졸업할 때 맞춰서 올까도 생각했지만...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
"혼담 때문이었지?"
"............."
"그 여자하고, 혼담이 오간 건 맞는 거잖아."
".........응. 황실에서도, 종친들도 올해 안에 나를 혼인시키는 것이
지상과제였으니까."
고개를 들고 자신을 보는 채경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는 신.
"그 때는 화가 났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기사들이 오히려 도움
이 된 것 같아. 일찍 설레발들을 쳐 준 덕분에 미리부터 단호하게 아
니라고 못을 박을 수 있었으니까. 고마워해야 되는 건가?"
"........괜찮은 여자, 아니었어?"
"응?"
"그 여자, 어쨌든 만나봤을 거 아냐."
"신채경~"
"............"
"아직도 질투하냐?"
대답없이 고개를 도로 묻어버리는 채경을 보며 또 픽 웃는 신이다.
"알고보면, 우리 비궁마마도 은근히 투기가 심하시단 말씀이야."
고개를 번쩍 드는 채경.
"내가 뭘?"
"그 여자 얘기를 아직도 물고 늘어지고 있잖아."
"전에도 말했지만, 난 그냥...."
"그냥, 뭐?"
"...........흔들리지 않았어?"
장난스럽던 신의 눈빛이 일순, 바뀌었다. 애잔한 채경의 표정. 디에
고라는 남자를 만나 내가 느낀 혼란을, 너도 느끼고 있는 거니?
"니가 했던 말, 나도 돌려줄게."
눈을 크게 뜨고 신을 보는 채경에게 다정하게 내려앉는 말.
"내 눈에도, 너 밖에 안 보여."
큰 눈에 또다시 반짝이는 물기.
"앞으로는 안 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운 거 아니다."
"이게 눈물이 아니면, 땀이냐?"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런다."
끝까지 우기기는. 채경의 얼굴을 손으로 잡고 바싹 끌어당기는 신.
"그럼, 불어야겠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눈에 입을 맞추는 신.
"......이게 부는 거야?"
"그래서, 불만이야?"
".............."
신의 눈이 애틋하게 채경을 본다.
"더 기다릴 수가 없었던 건, 혼담 때문만은 아니야."
"............?"
"보고 싶어서...."
채경의 큰 눈에 또 물기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했었지. 근데, 못 보니까 더 보고 싶더라.
미쳐버리고 싶을 만큼..."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의 입술이 받았다. 너무너무 다정하고, 따뜻
하게...
막 입을 맞추려는데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신의 전화. 몸을 일으
켜 전화를 받는 신.
"예, 공내관."
전화를 끊는 신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언론단에서 정식으로 요청했다는데. 황실의 입장을 밝혀줄 것을.
대변인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나와주었으면 한다는 은근한 압력과
함께."
아직까지 나의 소재가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고 있으니 그들
도 답답한 모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니?"
채경의 말에 표정을 굳히는 신.
"그 말은, 나 혼자 돌아가라는 뜻이야?"
"일단은, ............"
입을 열었지만 뒷말을 더 이을 수가 없는 채경.
"너 또 바보같은 생각 하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니야, 그런 거..."
눈을 못 맞추고 고개를 숙이는 채경의 얼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하
는 신.
"하늘이 두 쪽 나도, 나 혼자 돌아갈 생각은 없어. 너도 그런 생각은
버려."
"........알았어."
"이제 두 주 남았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보자."
채경을 품에 안고 다짐하듯 말하는 신. 그의 따뜻한 품에서, 눈을 감
고 몸을 맡기는 채경.
들킬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했었지만, 그래도 알려지기 전에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아쉽기만 한 신이
었다. 종친들에게 먼저 동의를 얻고 공식 발표를 하려던 원래의 계획
도 이젠 틀려버렸다. 아마 배신감에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하겠지.
느긋하게 채경과 여행을 즐기려던 계획도 이젠 지킬 수 있을지 모르
겠다. 지금의 최우선 과제는 파장을 줄이면서 우리의 사이를 공식화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2년 전이던가. 기자가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었어. 버림받은 황태
자비-해서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기사로 만들고 싶었나봐."
이것도 처음 듣는 얘기. 채경이의 생활을 빠짐없이 알아왔다고 생각
했는데, 의외로 놓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물론 단칼에 거절했지. 할 말도 없고, 그런 기사 나가는 건 더더욱
싫고. 인터뷰에 안 좋은 추억도 있고."
"안 좋은 추억? 아, 그 생방송 인터뷰."
내 마음을 배신한 건, 내가 아니라 너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둬....
지금도 신의 그 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젖은 눈도.
"그건 잊어버려. 하나도 좋은 기억이 없잖아."
"하나는 있다."
신의 눈이 궁금한 빛을 띤다.
"뭐?"
"네가, 처음으로 고백했잖아. 비록, 그 때는 그게 고백인 줄을 몰랐
었지만."
신도 생각나는 듯 약간 겸연쩍은 표정이 되었다.
"진짜 놀랐었어. 그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거든."
"..........믿지 않았던 거야? 전혀?"
고개를 젓는 채경.
"인터뷰 자체가 가짜나 다름없었는데 어떻게 믿어. 그리고 그 때는,
이혼 얘기를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쓸쓸한 채경의 얼굴.
"이젠 다 지난 일이잖아. 자책할 필요없어. 나도 뭐, 잘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어? 인정하는 거야?"
"그래, 깨끗이."
"오~ 놀라워라~"
채경의 놀림에 까칠하게 바뀌는 신의 표정.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격려는 못해줄망정 놀리다니?"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알고?"
"..............."
"하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으시겠지."
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명랑병~"
"하~ 전에는 기분 날 때만 그렇게 부르더니, 이젠 불리할 때만 부르
네. 안 됐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
혀를 쏙 내밀고는 도망가는 채경.
"안 무섭다면서 도망은 왜 가?"
"음... 생활의 지혜랄까."
"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넌 살면서 꼭 말이 되는 소리만 하고 사냐?"
"하~"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도로 소파에 앉아버리는 신. 전혀 쫓
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안심하고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가려다가
딱 걸린 채경.
"넌, 너무 빨라."
그런데 신의 표정이 심상치 않고, 눈도 빛을 발하고 있다.
"왜 그래?"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어, 정말?"
환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채경에게 씩 웃어보이는 신.
"네가 한 말 덕분이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건 이따가 얘기하고, 일단 벌부터 받자."
"벌은 무슨~
반항하는 채경의 허리를 안고 입부터 들이대는 신. 그러자 언제 반
항했냐는 듯 얌전해져서 그의 목을 끌어안는 채경이었다.
수진이 한국에서 사진 파문이 났다는 것을 안 것은 목요일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부리나케 채경이 다닌다는 학교로 찾아갔었다. 그
러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어떻게 됐어?"
동료들의 숨가쁜 질문에 고개를 저은 수진. 이미 본사와 연락을 해
서 취재 허락과 함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물론, 실
리는 것은 수진이 몸담고 있는 잡지가 아니라 신문으로, 그녀가 취
재에 성공해서 사진과 원고를 넘기는 대로 즉시 실리기로 되어있었
다.
"이럴 때 마침 우리가 스페인에 있다는 것이 정말 요행이다."
"운이지, 운!"
"다른 데는 아직 파견 안 했대?"
"지금 막 하느라고 난리들이란다. 각 언론사의 스페인 특파원들은
다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가 있어서."
"일단, 만나야 운이고 뭐고를 따질 수 있지."
일침부터 놓은 고참. 그러나 곧 부러운 표정이 된다.
"어쨌든, 좋겠다~ 성공만 하면 넌 특급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잖아."
이번 일 때문에 수진의 일까지 떠맡게 된 고참 기자와 칼럼니스트
였다. 그래서 죄스런 마음이 드는 수진이다.
"미안해요, 선배들. 괜히 뒤치다꺼리만 맡기게 됐네요."
"괜찮아, 괜찮아. 이런 세기의 특종을 옆에서 구경할 수 있게 된 것
만 해도 난 좋다네."
"그래~ 사진은 나한테 맡겨둬."
사진 기자도 팔을 걷어부치며 씩 웃었다. 이제, 그들만 만나면 된다!
화요일. 아직 집까지는 알아내지 못했기에 다시 학교로 향하는 수진
과 사진기자. 수진은 건물 정문에, 사진기자는 뒷문에 대기 중이다.
그러나 학교에 오지 않은 것인지, 변장을 한 건지 또 허탕을 치고 말
았다. 일단 철수하려고 사진기자와 함께 학교를 나서는데 수진의 전
화가 울렸다.
-김수진씨?
"예. 누구십니까?"
-이 신입니다.
"!!!!!!!!!!!!!!"
너무 놀라 우뚝 멈춰선 수진. 이 신... 황태자가 어떻게? 옆에서 사진
기자가 영문도 모르고 따라 멈춰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에서 들려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수진. 한동안 심각한 대
화가 오가는 듯.
"........전하께서 말씀하신 조건은 모두 수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측
에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니까요. 다만, 전하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
을 지가 문제입니다만."
수진의 대담한 말에 돌아온 대답은 간결하고도 힘이 있었다.
-황태자는 허언을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