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운이 명정을 노려보고 말하자. 명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아운의 말은 사실 그대로였다.
하지만 누가 대놓고 저렇게 말할 수 있으랴.
“좋아. 그럼 호연란이란 계집에게 가서 전해라! 사과 따윈 받지 않겠다. 대신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고…….”
“예.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명정이나 다시 정신을 차린 노숙은 이제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그들은 교연의 말을 듣고 있다가 아운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남을 괴롭혀 보았어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기에 지금 상황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정파란 허울을 뒤집어 쓴 그들이었기에 어떤 일을 하는데 절차가 있어야 했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명분이란 것을 중요시하며 살아왔었다.
폭력을 사용해도 남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사용하거나,
정면에서 사용할 땐 그래도 품위 있게 사용했었다.
물론 그 안에서 온갖 짓을 다 했어도 일단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아운은 전혀 달랐다.
그는 대 놓고 주먹질부터 시작을 한 것이다.
그에겐 무림에서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이나 호연세가라는 이름이
무용지물이었고 행동을 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남들 눈을 의식하거나 명분을 따지지 않았다.
굳이 이러니저러니 시시비비도 따지지 않았다.
명정이나 노숙은 이런 종류의 사람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것은 교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법 무공 좀 할 주 안다고 하는 자들이라야 자신의 세치 혀에서 놀아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의 혀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곤 했었다.
특히 아무리 교활하고 잔인한 성품의 무인이라도 그들에겐 체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정파의 명숙일수록 심한 편이라,
그 점만 잘 이용하면 그의 혀는 능히 초절정 고수 이상의 힘을 내곤 했다.
그러나 아운은 달랐다
. 아니 말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무조건 주먹질부터 하고 나서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는 자에게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교연은 세상에 이런 몰상식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인간이 여기 있을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리고 설사 아운이 그 자인 줄 알았다고 해도
피부로 느끼기 전에는 제대로 그 가치를 알기 어려운 법이었다.
소홀이 교연이 하는 말을 전부 듣고 나서 아운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까지 들으면서 북궁연을 보고 말했다.
“공자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군요.”
북궁연이 상기된 얼굴로 소홀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소홀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었다.
“할 짓은 다했지만 교연이 한 말로 인해 이제 그 누구도 공자님에게 허튼 짓을 하기 어렵게 되었잖아요.
이제 호연란은 다른 사람이 공자님을 공격하려 해도 막아야 할 판이에요.
자칫하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그리고 이미 공자님이 아가씨의 부군이 될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으니
더 이상 어떤 핑계거리도 찾을 수 없게 되었어요.
이 일로 인해 그녀는 좀 많은 손해를 볼 것 같아요.”
“하지만 교연이란 자가 폭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말을 했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공자님은 그냥 치기만 했지. 묻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명분이 있지요. 그리고 저길 보세요.”
북궁연은 소홀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매화각이 보이는 건물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숨어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 근처를 순찰하던 순찰 무사도 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보낸 첩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직접 아서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교연이 하는 말을 전부 들었다.
북궁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공자님은 모든 것을 예상하고 일을 가장 간단하게 처리하신 것이다.’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일을 처리했지만,
과연 누가 권왕과 같은 방법을 망설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까?
힘든 일이었다.
감히 단언하건데, 자신의 부군이 권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신없이 쏟아내는 교연의 말을 다 듣고 난 아운이 명정과 노숙을 보면서 말했다.
“이렇다는 군. 이제 당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겠지?
그럼 이제 수하들과 함께 고이 돌아가도록…….
아, 다시 올 땐 심사숙고해서 오는 것이 좋을 거야.
힘이 모자라면 그런 눈치라도 있어야겠지.”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서서 휘적거리며 북궁연에게 다가갔다.
북궁연이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운을 맞이했고,
소홀은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아운은 그녀들과 함께 매화각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으며,
매화각 정문을 지키던 두 명의 여무사는 그저 멍한 모습으로 아운 일행의 뒷모습을 보기만 했다.
교연은 아운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맥이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교연의 귓가에 아운의 전음이 천둥처럼 들려왔다.
- 나, 권왕 아운이다.
그 말을 들은 교연의 얼굴이 다시 한 번 하얗게 질겨갔다.
이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들었던 권왕 아운에 대한 전설을 생각하며 그의 말을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않았다.
들은 대로의 권왕과 지금 자신들을 상대한 자의 성정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그리고 권왕이 아니라면 누가 명정을 한 주먹으로 이기겠는가?
이제야 상대가 터무니없이 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들이 진 것은 아운을 우습게 보다가 당한 실수가 아니라, 정확하게 실력에 진 것이다.
만약 상대가 권왕 아운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가 감히 그에게 정면으로 덤비겠는가?
다시 한 번 아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 만약 내 정체가 밝혀지면 네 놈의 머리통을 부셔 놓겠다.
말투 자체가 완전히 뒷골목의 하류잡배의 말투였지만,
그것이 지금은 더 무섭다. 교연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교연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아운이 권왕이란 사실을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해야만 한다.
무림맹이나 호연세가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버렸다.
수하들의 보고를 받은 호연란의 표정은 담담했다.
“후후, 그 자 제법이군. 총사의 부군 될 자격이 있는 자야.”
호연란은 경탄한 표정이었다.
일이 틀어지거나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앞에 앉아 있던 설비향은 그녀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도 호흡 한 번 거칠어지지 않다니, 과연 대단한 분이다.’
굳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 것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고대로라면 상대는 명정을 일권에 이긴 자였다.
물론 설비향의 판단으로 본다면 명정 일행이 상대를 너무 쉽게 보았다가
그 교활함에 당했다고 판단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의 무공은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이 설비향의 생각이었다.
그것을 호연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담담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리라.
설비향이 본 호연란은 시간이 갈수록 독해지고 강해졌으며 노련해져 갔다.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그녀의 재지는 설비향으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설비향이나 호연란은 자신들의 상대가 권왕 아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아운의 활동 무대가 감숙 부근이었고,
그와 함께 행도하던 우칠 일행이 없었으며,
그들이 판단하건데 절대 귀족 태생이 아닌
권왕 아운이 북궁연의 배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비향은 아운의 행동이나 그의 성격을 분석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아운이 뒷골목 출신이거나, 마도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명문 출신인 북궁연이 그런 자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인연이 닿아 있으리란 생각을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야말로 똑똑한 자가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당한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설비향이 호연란을 보면서 물었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특히 교연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호연란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주인을 팔았으니, 용서 할 순 없죠. 본보기를 위해서도…….”
“죽인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의혹을 살 수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처벌한 다음, 배신자의 낙인을 얼굴에 찍어 쫓아내 버리세요.”
호연란의 단호한 말에 설비향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다시는 설익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배신자란 낙오와 함께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의 자백은 총사의 남자가 주먹으로 협박하는 바람에
살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자백을 받아 놓겠습니다.”
“그 부분은 각주가 알아서 하세요.”
호연란이 냉정하게 말하자, 설비향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연을 몹시나 싫어하던 설비향이었다.
지닌 그릇이 교활하고 깊은 지혜가 아닌 잔머리로 부군사가 된 교연을 언제나 경멸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기회에 혀 바닥이나 뽑아 놓아야겠군.’
설비향은 생각할수록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보는 눈이 있어서 죽이진 못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혀를 뽑아내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설비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연란이 그를 보면서 명령을 내렸다.
“총사의 남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조사해 보고하도록 하세요.
그에 대한 것이라면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조사해 주세요.”
“충.”
설비향이 간단하지만 확실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뒤로 물러서 있죠.
우리가 아니라도 그 자와 북궁연을 상대할 사람들은 많은 테니.
그리고 권왕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호연란의 물음에 설비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에 대한 모든 것이 의문투성입니다.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자 같습니다.
그가 처음 나타난 곳은 동정호 근처의 낭인촌이라고 합니다.
한데 그 이전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행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권왕과 함께 있던 자들도 사라졌습니다.”
설비향이나 호연란이 아운이나 흑칠랑 일행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가택과 살수들만이 아는 길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삼대 살수란 이름이 달래 붙은 것이 아니었다.
“현재 세가의 정보망을 총 동원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 부분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권왕과 함께 있던 자들 중,
중원의 삼대 자객 중 한 명인 흑칠랑과 야한으로 생각되는 자들이 있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겠죠.”
“제 생각엔 흑칠랑과 야한 같은 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가의 정보망을 피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라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비향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본 호연란은 설비향에게 나름대로 비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설비향이 묘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구, 그는 절강성 신아현 출신이었다.
나이 여덟 살에 뜻한 바가 있어 강호의 기인을 찾아 세상을 헤맸고,
열두 살에 드디어 원하던 기인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승인 대산진인은 왕구를 보자마자 그를 제자로 삼으며 말했다.
“너는 비록 키가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능히 천하제일 인이 될 만한 그릇이다.
내게서 십 면만 무공을 닦으면 세상이 모두 네 주머니 속에 들어갈 것이다.”
왕구는 스승이 너무 맘에 들었다.
우선 자신의 왜소한 체구와는 달리 풍체가 당당한(사실은 비만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
우선은 자신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스승은 선인이라 할 만 했다.
그리고 십 년 후엔 천하제일 인이라고 하지 않은가?
왕구는 무조건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십 년 동안 스승의 수발을 들며 열심히 무공을 닦았다.
십 년이 지난 후 스승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 세상의 무공이 날로 발전하고 있구나.
그런데 너의 진전은 너무 느리니, 넌 다시 십 년을 더 수련해야겠구나.”
왕구는 그 말도 믿었다.
그리고 다시 십 년. 정말 뭐같이 고생하며 스승에게 무술을 배웠다.
비쩍 마른 몸에 낮에는 일찍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팔아 스승을 봉양했으며,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죽어라 무공을 배웠다.
그렇게 이십 년이 지났다. 왕구의 나이 서른둘이었다.
북궁연의 거처로 돌아온 아운과 북궁연 일행은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운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은 이미 모두 잊은 듯 차를 마시는 것에 열중했다.
북궁연과 소홀은 그런 아운을 보고만 있었다.
보기만 해도 듬직한 모습이었다.
차를 다 마신 후 아운이 북궁연을 보면서 말했다.
“연 누이는 그동안 총사로서 임무를 조금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 같소.”
북궁연은 아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 뿐인 총사지요. 총사로서 내 임무를 완전하게 하기란 여러 가지 여건이 너무 빈약했어요.”
“그럼 묻겠소. 총사가 무림맹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오?”
“크게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일이라면 형법을 집행하는 일을 하지요.
또 대내외적으로 무림맹의 당주급 이하의 무사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런데 가가께서는 그것을 왜 물으시는지요?”
아운이 묘하게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대답은 좀 있다 하리다. 그런데 형법을 집행 한다는 것은 무엇이오?
그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간단하게 저의 직할대인 금룡단이란 별도의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무림맹 산하에 있는 무사들이 잘못을 했을 때 그들을 잡아서 압송하거나
적과 내통한 문파들이 있을 때는 그들을 징벌하는 역할을 합니다.
황실에 비교하자면 동창과 비슷한 역할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북궁연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고, 소홀이 그 부분을 대신 대답했다.
“금룡단은 그 힘이나 역할 상 무림맹에서 아주 중요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금룡단의 단주는 총사가 겸하고 있지만, 그 외의 수하들은 장로원에서 사 할을,
그리고 구파일방의 제장 중에서 무조건 삼 할을 뽑아야 해요.
그리고 나머지는 총사가 뽑아서 장로원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모두 총사님의 수하가 아니라 장로원이나 자신을 밀어준 자에게 충성을 하게 되죠.
총사님은 그들을 관리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아운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소? 단주가 수하들을 직접 뽑지 못하다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금룡단의 힘이 커지고 그것이 총사님께 힘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장로원과 맹주가 이년 전에 그렇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럼, 그 사정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 내가 그 금룡단의 단주가 되는 길은 있소?”
아운의 물음에 북궁연과 소홀이 놀란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북궁연이 궁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지만, 가가께서 그럴 이유가 있나요?”
아운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은 징조요. 일단 금룡단을 나에게 맡겨 주시오.”
북궁연과 소홀은 더욱 궁금한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아운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왕구는 스승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이제 늙어서 다 죽어가는 스승은 애처러운 눈으로 왕구를 본다.
비록 사기를 쳐서 데려온 제자였지만 늙어서 정 붙이고 살아온 사랑하는 제자였다.
언제고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제자의 의지가 너무 강하고
천하제일 인에 대한 집념이 너무 강해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 사고라도 칠까봐 십 년을 더 잡아 놓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엔 분명히 강호 무림으로 나갈 것이고
이제 자신의무공이 겨우 삼류를 조금 벗어난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실망을 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지금이라도 말을 해주고 싶은데, 너무 의연한 제자의 모습을 보니 그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자신에게 배운 무공으로 어디 작은 표국이라도 들어가면,
표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니 굶어죽진 않을 것이라 위안하며 숨을 놓고 말았다.
‘처음에 만났을 때, 천하제일 어쩌고 하지나 말 걸.’
왕구의 스승은 마지막으로 그 부분을 후회하며 그렇게 죽어갔다.
왕구는 스승의 유해를 정성껏 모신 후 그 앞에서 맹세를 했다.
“스승님, 제가 고금제일무적이 되어 돌아 온 후 이 산 전체를 스승님의 묘지로 사용하겠습니다.”
정말 포부도 당당했다. 그리고 왕구의 꿈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그후 산을 내려온 왕구는 당당하게 무림맹을 향해 전진했다.
자신의 무공을 입증하려면 아무래도 무림맹의 맹주와 직접 겨루어 이기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어서 여비는 큰 문제가 없었다.
드디어 무림맹 근교까지 도달한 왕구는 노숙을 하게 됐다.
산에서 자란 왕구에게 노숙은 그다지 불편한 잠자리가 아닌지라 적당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불빛이 보이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커다란 나무 아래 세 명의 인물이 노숙을 하며 산돼지 한 마리를 굽고 있었다.
마른 체형에 날카로운 인상의 두 남자와 덩치가 산만한 인물.
세 사람은 모두 만만해 보이지 않았지만 왕구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무림맹 맹주와 겨루려면
그래도 무엇인가 어필할 품위가 있어야 하고 자신 대신 움직여 줄 수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침 용도에 딱 맞는 인물 셋이 나란히 모여 있다. 그리고 덤으로 음식까지…….
‘그래, 이 자식들로 하자.’
결정을 한 왕구는 당당한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지자, 그는 가슴을 활짝 열고 말했다.
“나는 고금제일무적 왕구님이시다.
지금 무림맹 맹주와 겨루러 가는 중인데, 너희들을 내 수하로 거두려 한다.
영광으로 알고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라.”
세 사람의 입이 딱 벌어졌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었다.
흑칠랑과 야한의 시선이 우칠을 향했다. 흑칠랑이 묻는다.
“너 언제 후계자 키웠냐?”
우칠이 고개를 흔들며 왕구를 본다.
왕구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겁 먹었다 오판을 하고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이 놈들 뭐하느냐? 어서 와서 무릎을 꿇어라! 아니면 내 주먹에 죽을 만큼 맞고 후회할 것이다.”
우칠이 한숨을 쉬면서 일어나려 하자, 야한이 더욱 빠르게 그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하지.”
말을 하는 야한의 한 손은 이미 품속을 더듬고 있었다.
그의 품에 피 묻은 도끼자루가 아직도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흐흐.”
야한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감돈다.
왕구는 야한을 보면서 ‘저 놈이 내 기세에 압도당해 미쳤나?’하는 생각을 했다.
야한은 왕구가 어떤 생각을 하던 관심이 없었다.
그는 왕구에게 조용히 다가선 다음 점잖게 말했다.
“권왕께서 주먹으로 말씀하셨다.”
왕구가 뭔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야한을 본다.
“치매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뭐 이런 미친 놈이……. 켁.”
도끼 자루가 화려하게 하늘을 가르며 왕구의 이마를 강타했고,
그 힘에 의해 왕구의 몸은 멋지게 뒤로 넘어갔다.
정신이 황홀해진다. 왕구는 그날 매란 것이 얼마나 아픈지 처음으로 깨우쳤다.
아주 확실하게 몸으로. 이미 아운의 폭력에 중독된 야한의 도끼 자루는 무자비하고 용서가 없었다.
그날 왕구는 평생 맞아야 할 매를 한 번에 다 맞고 말았다.
그는 그날 이후 평생 동안 야한의 그림자만 보아도 벌떡 일어서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운이 금룡단의 단주가 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실질적인 단주라고 할 수 있는 북궁연에게 단 하나의 권한이 있다면
바로 자기 대리로 단주를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금룡단의 단주는 총사의 명령 이외에는 누구의 명령에서도 자유롭다.
북궁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직책이 제 아래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운이 웃으면서 물었다.
“대신 내가 그만 두고 싶은 땐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맞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잠시 금룡단을 맡기로 하겠소. 그리고 내가 지명하는 자들을 금룡단의 단월들로 선출해 주시오.”
“그들이 누구누구인가요?”
아운은 웃으면서 지필묵으로 몇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다 적은 후 아운이 무엇인가 망설이며 말했다.
“혹시 모든 무림맹 이외의 인물들도 선출할 수 있소?”
“무림맹 이외의 인물이라면 장로원이나 맹주부에서 허가를 안해 줄 겁니다.
대신 단주의 권한으로 그들의 허락 없이 다섯 명 정도는 임의로 선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주가 지닌 거의 유일한 권한입니다.”
아운은 만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때,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보면서 북궁연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명이도 있고, 의외의 인물들이 많군요. 그리고 이 자는 누군가요?”
북궁연이 가리킨 자는 바로 무림맹의 문지기였던 육삼이었다.
비록 그의 사촌형인 육자명은 동생 북궁명과 친한 사이라 알고 있었지만
총사가 문지기 조장의 이름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지기 조장이오.”
북궁연과 소홀은 아연한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금룡단이 아무리 이름뿐이지만 무림맹에서 가장 유명한 세 개의 단체 중 하나였고,
그만큼 그 권한도 의외로 컸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문지기 조장을 뽑는다면 누구라도 비웃을게 뻔했다.
그러나 아운은 그저 태연하다. 북궁연도 더 묻지 않았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 정도라면 그다지 어렵진 않을 겁니다.
문제는 명이가 문제인데,
내 밑에 있기 싫어서 금룡단의 부단주도 마다하고 문지기를 했던 참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나에게 맡겨 놓으시오. 단, 처남에겐 나중에 말해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오. 이제 금룡단의 단주로서 가지는 권한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오.”
“단주는 당연히 대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지니게 됩니다.
비록 대원들을 뽑는 것은 장로원의 힘이 크지만,
그들을 어떻게 쓰건 그것은 단주의 권한입니다.
그리고 죄가 확실한 자일 경우, 그가 누구든지 잡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실제 잘못을 한 자가 있더라도 그 자가 무림맹의 요직에 있거나
장로원의 장로들과 연관이 있는 자들이라면 수하들이 꺼려하고 잡
아들인다고 해도 시끄럽기만 할 뿐 실제 제대로 벌을 받는 경우가 없습니다.”
“금룡단에게 직접 문책을 하거나 할 순 없소?”
“일반 무인이나 무림맹 소속의 고수가 아닐 경우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림맹의 조장급 이상일 경우 장로원의 허가나
무림맹의 부맹주님 이상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 범죄자를 잡는 것까지만 허락됩니다.
그 다음 그의 유죄판결이나 벌칙은 장로원의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아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건 또 어떤 절차가 필요한 것이오?”
“일단 어떤 범법자가 잡히고,
그가 무림맹의 조장 이상이라면 장로원은 세 명의 판결 위원을 선발하고,
그들로 하여금 공개 재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판결된 내용을 가지고 벌을 줍니다.”
아운의 얼굴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주 지들끼리 다 해먹는군.”
“그래서 장로원의 힘은 거의 절대적이지요.”
아운은 길게 한숨을 몰아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북궁연은 그런 아운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운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재밌군. 정말 재미있어.
사람은 자기가 가진 권력이라면 친 자식에게도 나누어 주지 않는 법인데,
장로원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한데도 맹주는 그저 보고만 있었단 말이지.”
북궁연과 소홀은 아운이 하는 소리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아운이 한 말에 무엇인가 가시가 있어 보였던 것이다.
북궁연 또한 아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말 그렇다는 것을 깨우쳤다.
항상 그 안에 살다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묻어서 살아 왔기에 깨우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운의 말을 듣고 보니 장로원의 힘이 지나치다.
그들은 현재 무림맹의 맹주에 못지않은 힘과 권력을 지니고
무림맹과 무림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 장로들 중에서 명리에 초연한 자들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힘을 지닌 장로들의 힘은 맹주 이상으로 무림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고,
그들은 더욱 강한 힘을 지니기 위해 지금도 부단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었다.
장로원에서 어떤 일을 처리함에 모든 결론은 다수결이 원칙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익을 위해 장로들이 뭉치게 되었고
그들은 모두 서너 개의 분파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그들은 서로 협력한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과반수 이상의 힘을 지닌 채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 내곤 했다.
또한 장로원의 장로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공간에 누가 끼어드는 것을 철저하게 방어해 왔다.
오년마다 한 번씩 장로원의 장로들을 새롭게 뽑았지만 삼십 년이 넘도록
그 구성원에 큰 변화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들의 힘을 키워왔었다.
북궁연이나 소홀은 그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운의 말을 듣고 보니 맹주가 그들을 방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든지 자신의 권련을 침범하는 자가 있으면 경계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
런데 자신의 영역까지 침범해 오는 장로원의 힘을,
맹주는 크게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맹주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장로원의 힘은 그런 맹주의 권력에 거의 근접해 있거나
어떤 면에서는 넘어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운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참, 그건 그렇다 치고 주시오.”
아운이 손을 내밀자, 북궁연이 당황해서 아운을 보았다.
무엇을 달라고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때 소홀이 무엇인가 깨우친 듯 품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아운에게 주었다.
아운은 그 책을 받아 들고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이 세상에도 지옥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오.”
북궁연은 소홀이 준 책자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어이 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가가께서는 정말…….”
“당연하지 않소.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를 괴롭힌 자들을 그냥 둔단 말이오?”
북궁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제가 정말 큰 봉변을 당한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이 알면 속이 좁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아운이 놀란 눈으로 북궁연을 보면서 말했다.
“몰랐소?”
이번엔 오히려 북궁연이 놀란다.
“예! 뭐가 말인가요?”
“나, 속 무지 좁소.”
아운의 태연한 말에 북궁연과 소홀은 그만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떤 자식들처럼 체면이나 위신 때문에 응징을 뒤로 미루거나 마음 넓은 척 넘어가지 못하오.”
북궁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달래듯이 말했다.
“그래도 그들을 응징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나 속 좁고 경우도 없는 사람이오. 명분 찾다가 늙어 죽을 참이오?
내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나를 금룡단의 단주로 선출한다는 공고나 해 놓으시오.
한숨자고 일어나리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오. 잘 부탁하리다.”
태연하게 말한 아운은 자신의 잠자리로 가버렸다.
북궁연과 소홀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그가 사라지자 갑자기 소홀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북궁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홀은 왜 웃죠?”
웃던 소홀이 겨우 진정을 하면서 말했다.
“속 좁은 공자님이 낭군이어서 좋으시겠다고요.”
북궁연의 표저이 멀뚱해진다.
소홀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앞으로의 일이 너무 기대가 된다.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무려 오장이나 날아가 쳐 박힌 북궁명은 아직도 정신이 멍한 기분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육자명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북궁명이라면 신주오기 중 한 명인 북궁손우의 손자였다.
그의 재질이 누나인 북궁연에 미치진 못하지만,
나름대로 기재란 소리를 듣는 청년 고수였다.
세상에 그를 일 권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란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 기적 같은 일을 목적에서 보고 있었다.
아운이 빙긋이 웃으면서 자신의 주먹을 흔들며 말했다.
“아직 멀었군. 처남.”
북궁명은 겨우 일어서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북궁명은 육자명의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매화각으로 왔었다.
그땐 이미 그의 매형인 하영운은 무림맹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북궁명은 매화각으로 가면서도 의아했었다.
‘매형은 무림인이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이지?
가출 했다고 하더니 어디서 한 수 배워 온 것인가?’
그 점이 가장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는 매형에게 따질 일이 많았다.
단 하나 밖에 없는 누나였다.
그런 누나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가 연락 한 번 없었던
매형에 대한 원망은 북궁명의 가슴을 불태웠던 것이다.
매화각에 도착한 북궁명은 자고 있던 아운을 강제로 깨운 다음,
그를 원망하며 달려들었고 지금 이 꼴이 난 것이다.
“이……익.”
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뭐하는 것이냐?”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북궁연이 소홀과 함께 나타났다.
북궁명은 누나를 보자 안색이 굳어졌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누나인 북궁연이었다.
“누……누나?”
“네가 감히 매형에게 덤비다니, 누가 너에게 그렇게 가르쳤더냐?”
북궁연의 매서운 일갈에 북궁명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만 하시오. 연 누이. 내가 처남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이오.”
아운의 말에 북궁연이 얌전해진다.
아운은 북궁명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처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술 한 잔 하며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여기서 멈추세.”
그 말을 남기고 아운은 휘적거리며 나갔다.
북궁명은 멍하니 아운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단 일 권을 이기기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복 소홀이 다가와 말했다.
“공자님이 지신 것은 당연합니다.”
북궁명이 소홀을 본다.
“저 분이 바로 권왕이십니다.”
그 말을 듣고 북궁명의 입이 딱 벌어졌다.
육자명은 그보다 더하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북궁연을 보았다.
북궁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북궁명과 육자명의 이마엔 식은땀이 흐른다.
그렇게 멍하게 서 있던 북궁명은 무엇인가 정신이 번쩍 든 표정으로
갑자기 아운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뛰어가며 고함을 쳤다.
“매형, 이야기 좀 합시다. 매형이 정말 혼자서 사라신교와 광풍사를 섬멸했습니까?
그거 어떻게 한 것입니까? 이야기 좀 해요. 이야기 좀…….”
그 모습을 보면서 소홀과 북궁연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미 권왕 아운의 명성은 젊은 무인들에게 있어서 우상, 그 이상의 존재였다.
나이 삼십이 되기 전, 천하십사 대 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도 전대미문의 사건인데다,
혼자서 광풍사를 섬멸한 사건은 그를 신화 속의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무림맹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북궁연에게 태중 혼약자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가시기도 전,
일 년 만에 처음으로 금룡단의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더욱 놀란 사실은 금룡단의 새로운 단주가 바로 북궁연이 낭군이라는 사실이었고,
새로 뽑힌 인물들 중에 문지기 조장까지 있다는 사실은 더욱 화제가 되었다.
무림맹의 인물들 중 반 북궁세가 파들은
북궁연이 낭군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금룡단을 이용한다고 비웃었다.
이런 저런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흑칠랑과 야한 그리고 우칠이 무림맹으로 들어왔다.
왕구는 세 명의 하인 신세가 되어 함께 들어왔다.
아운은 그들을 모두 금룡단의 단원으로 선출했고,
흑칠랑은 훈련 조장으로 야한은 군기 조장으로 임명했다.
야한은 도끼 자루를 휘두르며 좋아했고,
흑칠랑은 왜 내가 네 밑에 있어야 하냐고 난리를 쳤었다.
아운이 그럼 지금 당장 대결을 하자고 나오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이튿날,
금룡단이 거주하는 금룡각의 거대한 건물 앞에는 넓은 연무장이 있었고,
연무장 앞에는 큰 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새로운 단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가?
백이십 명의 단원들은 일찍 나타나서 여기저기 삼삼오오 몰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화제는 당연히 새로운 단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북궁연을 연모하던 자들이라,
새로운 단주에 대한 질투심으로 공공연하게 적개심 이상의 살기를 드러내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새로 온 단장을 어떻게 길들일까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다.
이때 약 십여 명의 인물들이 천천히 연무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모아진다.
그들 중에는 북궁명과 육자명 그리고 육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윽고 북궁명 일행은 연무대에 도착했고, 그들 중 한 명이 대 위로 올라갔다.
바로 문지기 조장인 육삼이었다.
“새로운 금룡단의 단주님이 오셨습니다.
모두 여기, 대 아래로 모이시랍니다.
아울러 내가 열을 셀 때까지 다 모이랍니다. 하나…….”
단원들은 모두 시큰둥한 표정들이었다.
그들 둥 누군가가 말했다.
“저거 누구야? 외성의 문지기 하던 놈 아닌가?”
“아니 저런 놈이 금룡단이라니 금룡단도 다 됐군.”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육삼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이때 우칠의 뒤쪽에 있던 아운이 나서며 금룡단의 단월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편 단원들 중에는 남궁세가의 남궁단과 쾌도문의 문형기,
그리고 새롭게 단원이 된 개방의 소걸개 이심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도 역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타난 일행을 보면서
우칠과 흑칠랑을 어디선가 보았다고 생각하며 기억하려 하던 참이었다.
그동안 우칠의 덩치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아운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우칠을 보고도 생각을 못한 자신의 머리를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명정이 한 주먹에 깨진 것은 당연했다.
이제 사태를 파악한 그들은 벌떡 일어섰다.
다른 단원들은 뭐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급했다.
조금이라도 잘못 보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너무도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 끔찍했던 과거가 생각나자 똥줄이 탄다. 다른 단원들이 불쌍해서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 육삼이 일곱을 세고 있었다.
눈치라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소걸개 이심방은 아운의 모습을 보자마자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그는 급했다. 그래도 혼자 살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뭉기적거리고 있는 친한 친구들을 보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 날 믿나?”
동료들이 그를 바라본다.
“날 믿으면, 저 자가 열을 세기 전에 빨리 날 쫓아오게. 늦으면 평생 후회할 걸세.”
천하에 이심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건 아무리 잘 봐도 겁먹은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이 세상에 이심방이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평소 염라대왕 앞에서도 이심방의 입은 살아 있을 것이라고 놀리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놀라기도 전에 이심방은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평소 그를 잘 알고 그와 친했던 친구들 세 사람은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최소 이심방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살렸다.
그런데 달리는 그들보다 더 빨리 달리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소림 십팔나한의 한 명인 몽진이었다.
그 역시 얼굴엔 다급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천하에 몽진이…….
그들이 서둘러 도착하는 순간 육삼의 입에서 ‘열’하는 숫자의 마지막이 떨어졌다.
그리고 자리에 선 자들은 모두 열 명에 불과했으니, 그들은 다음과 같았다.
개방의 소걸개 이심방, 소림 십팔나한 중의 한 명인 몽진,
절환검 남궁단, 비호섬 문형기, 그리고 이심방의 친한 친구인 종남의 은형분광 정명호,
절강성 추가장의 세우검 추운, 무당의 운현검 우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머저 세 명은 강소성 운룡표국의 십단검 한명옥,
호남성 철가장의 소장주인 금강대도 철담, 하복성 무진상단의 소장주인 칠보금검 소광이었다.
한명옥이나 철담 그리고 소광은 아운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들은 금룡단에서도 가장 특이한 존재들이었다.
원래 그들이 금룡단이 된 것은 순전히 가문에서 사활을 걸고 돈으로 밀었기 때문이었다.
강소성의 운룡표국이나 철가장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곳이었다.
그들의 가문에서는 자신의 아들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무림맹에 출세시켜보고자 집안의 전 재산을 장로들에게 바쳐 겨우 금룡단의 일원이 되게 만들었다.
이는 무진상단의 소장주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삼류 상단에 불과한 무진상단은 소광을 무림맹 금룡단에 넣고는 휘청했었다.
세 명은 금룡단에 들어오긴 했지만 모든 대원들로부터 심하게 차별을 받았고,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서 궂은 일은 모두 도 맡아서 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다른 단원들에게 놀림을 받고 대련을 빙자해서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그들 중에선 노골적으로 이들을 무시하고 구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럴 적마다 숨어서 울며 서로를 의지해 왔었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금룡단과 무림맹을 나가고 싶어 했지만
가문을 위해서 꿋꿋하게 버티는 중이었다.
보통 그런 식으로 들어왔던 자들 중, 중소문파의 자제들일 경우
십일을 버티는 자가 없었는데 세 사람만 유일하게 일 년 이상을 버티고 있었다.
금룡단에서는 그들을 일컬어 삼충 즉 세 마리의 벌레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진 역경 속에서도 그들은 금룡단을 나갈 수 없었다.
자신들이 금룡단을 벗어나는 순간 가문은 몰락하고 말 것이란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가장 먼저 자리를 지키고 섰었다.
육삼은 열을 다 세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육삼, 내려와라!”
육삼은 좌중을 둘러보고 자리에서 내려갔다.
아운이 단에 올라오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선 열 명 이외의 인물들은 모두 비웃는 눈초리였다.
아운은 그들을 돌아본 후 북궁명을 돌아보고 말했다.
“처남, 단주의 말을 무시한 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하는가?”
북궁명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형만 아니면, 단주님 마음입니다.”
“그래? 그거 하난 좋군.”
아운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이심방이나 몽진, 그리고 문형기와 남궁단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가 얼마나 유식하고 폭력적인지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종남의 은형분광 정명호가 전음으로 물었다.
“자네 왜 그러나?”
이심방은 기겁을 해서 전음으로 대답했다.
“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게. 잠시 후면 알게 될 걸세.”
그 말 한 마디를 하곤 대꾸도 하지 않는다.
정명호는 더욱 궁금해진다.
아운은 흩어져 있는 금룡단원들을 보고 웃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뭐 그럼 내 명령을 무시한 자들에게 벌칙을 주지.
오늘부터 여기 앞에 선 열 명과 내가 선정한 자들을 빼곤 전부 금룡단의 하인으로 강등한다.
그리고 네 놈들이 정신교육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마치 장난처럼 말하는 아운의 말에 모든 금룡단원들은 하품이 날 정도였다.
별로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고, 겁도 나지 않았다.
지금 금룡단에 포함된 인물들은 모두 명문의 자제들이다.
이들을 하인으로 쓴다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그들의 가문으로부터 난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정신교육이라니……. 누가 당하고 그대로 있겠는가?
그들은 모두 무공이라면 나름대로 자신 있는 자들이었다.
인원만 해도 몇 명인데…….
물론 그들의 무공은 광풍사와 비교한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하겠지만…….
아운은 서 있는 자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흰 모두 이쪽으로 물러서라.”
“충.”
이심방과 몽진, 그리고 문형기와 남궁단은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고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묻어서 한 쪽으로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금룡단원들은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금룡단에서도 괴짜로 소문난 이심방과 가장 진중한 몽진,
그리고 오만하기가 둘째라면 서러운 문형기와 남궁단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었다.
아운은 천천히 걸었다. 그 뒤를 흑칠랑과 야한이 뒤쫓는다.
야한의 손은 이미 품안에 들어가 있었다.
먼저 십여 명의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한 아운이 그들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모두 일어서라.”
그 말을 들은 십여 명은 모두 피식 웃었다.
그들은 모두 태연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안 일어서면 너 어쩔래? 하는 표정들이었다.
“말 안 듣는군.”
아운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뭐, 우린 자격 없는 자는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운이 그를 향해 물었다.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난 화산의 매화고검 운몽이라고 하지. 들어보았나?”
“매화고검이라 앞으로 매화곡검이라고 부르게.”
운몽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단주라도 말을 함부로 하면 혼날 수도 있을 텐데…….”
아운이 웃는다.
운몽도 지지 않고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의 신형이 바람처럼 날아가면서 발로 운몽의 입을 걷어찼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운몽의 이빨 다섯 개가 하늘로 날아갔다.
운몽이 검을 뽑아들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었다.
아운은 뒤로 두 바퀴나 구르고 나서 바둥거리는 운몽에게 다가가
발로 그의 머리를 밟아 뭉개기 시작했다.
순간 그와 함께 있던 십여 명의 청년들이 무기를 빼어 들었다.
그의 모습을 본 아운이 웃었다.
“단주에게 무기를 뽑아 덤비다니, 죽어도 할 말이 없겠지.
지금 기회를 주겠다. 누구든지 나에게 불만이 있는 자들은 나에게 덤벼라!
버러지들이니 한꺼번에 덤비는 것이 좋겠군.”
아운의 말을 들은 추운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심방에게 말했다.
“미친 것 아닌가? 저건 중과부적일세.”
그 말을 들은 이심방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중과부적이지. 저들은 아마도 지옥이 무엇인지 곧 알게 될 걸세.”
추운과 주변에 있던 몇몇 인물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심방을 보았다.
“자네는 설마…….”
“그냥 지켜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