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기억을 더듬어 쓴 몇편의 글은 서울시민대학 2014년 가을학기 경희대 이문재교수님과 함께 한
글쓰기시간에 쓴 습작노트를 옮겨온것입니다.
잊지못할 추억 – 수세식 화장실
나는 대구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전근가신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서면에 있는 부산 개성중학교다. 그 당시 부산에는 경남중학교, 부산중학교와 더불어 3대 명문 중학교
중 하나였다.
개성(開成)의 뜻은 開物成務(개물성무) 즉 만물의 뜻을 깨달아 천하의 일을 이룬다.는 易經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을 따온 학교이다. 그 역사는 1885년에 부산상업고등학교의 전신으로 세워진 학교
이다. 1951년에 단행된 학제개편에 의해 중학부는 부산 개성중학교로 고등부는 부산 상업고등학교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1961년 입학한 우리들은 그때 일제가 세운 목제 교사가 아닌 콘크리트로 지어진 4층의 현대식 건물의
위용에 우리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 자재는 전후 복구를 위해 미군이 원조한 자재로 최신식으로 지어졌다.
동관과 서관으로 ㄱ자형의 교사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들어가는 기차 길 언덕에 위치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나, 직장 생활 할 때 부산에 가면서 한번 씩 바라보며 옛 기억을 되살리고 하였으나 학교
부지를 매각하고 가야동에 교사를 신축 이전하는 바람에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이런 학교를 다닌 나는 그 당시 동관 화장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름 아닌 이곳에 대변기는 수세식 좌식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학한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동관 쪽에 교무실, 1학년 1반, 2반, 3반이 배치되었는데 나는 1학년 2반에
반 배정이 되었다. 그 곳의 화장실에 배치된 양변기를 처음 본 순간 '아~ 어찌 걸상에 앉아서 대변을
볼 수 있단 말인가?'였다.
쉬는 시간 소변기에서 오줌을 누고 한번 씩 열어보는 좌식 화장실에서 수세식 변기 핸들을 만져 한 번
씩 물도 내려 본 그 화장실, 피식 웃음도 나고 두렵기도 하고 했다.
그때까지 제가 경험한 화장실은 우리 집에서 사용한 푸세식 변소였다.
대구에서 사용한 그 곳을 변소라고 불렀다. 집 뒤 쪽에 설치된 문 하나짜리 변소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휴지로 사용하라고 잘라 놓은 신문지가 가지런하게 놓여진 곳이다. 그렇지만 저녁이 되면 그곳에 들러
기가 왜 그리 겁이 나는지. 항상 내 위의 형에게 구원을 청하면 형은 마지못해 따라와서 밖에서 '다 됐
나?' 라고 물으면 '형아 쪼끔만.' 하던 곳 이었고 시골 큰 집에 가면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닌 곳이었다.
사립문 옆에 설치된 변소는 그 앞에 거름더미가 늘부러져 있고 그 곳에 들어가면 똥 장군에 똥 퍼는
바가지까지 있는 그런 곳 이었다. 그리고 국민학교 변소는 왜 그리 깊은 지. '에고 무서버라.'
아 아~ 그런데 처음 사용한 중학교 화장실.
수업시간 부터 배가 아파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달려 간 변소.
바지춤을 내리고 아무리 앉아 있어도 배는 아픈데 아래에서 기척이 없는 것, 이리 저리 힘을 써 보아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지라 십 분의 쉬는 시간은 지나가고 있고 이를 어쩌나? 나는 벌떡 일어나 새하얀
변기 엉덩이 판을 젖히고 그 좁은 변기 위에 발을 조심히 놓고 쪼그려 앉아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간신
히 균형을 잡으니 '오~ 내가 변소에 왔구나.'를 알리는 소식과 함께 쾌변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래도 중학 3학년 때 다시 동관으로 교실을 배정 받았지만 그때는 수세식 변기에 조금의 여유를 가져
본 때가 아닌가한다.
지금은 밖에 나가서 모든 곳이 수세식 변기지만 좌식 변기가 아닌 쪼그려식 변기는 이제 영 어색하여
좌변기 쪽으로 가는 나를 보고는 생활의 변화가 삶의 형태를 바꾸는구나.를 느낀다.
개요.
1)중학교소개와 신축교사 자랑
2)처음 본 중학교 수세식화장실
3)그동안 경험한 화장실
4)처음 사용해 본 수세식화장실과 현제의 생각
습작노트
이 선배님의 가슴에 담아 둔 고운 글만 계속 공짜로 읽다보니 선배님에게도 미안하고 또 나도 한번 다시
댓글 비슷한 글이라도 써 보자라고 마음먹고 써 보았지만 역시 나 한데는 댓글이 딱 인 것 같다.
그래도 옛 시절 그때 그 시절을 한장 한장 써 간다면 이거 또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 이 선배님과 함께 가기위해, 함께하면 더 멀리 오래 갈 수 있기에.
둘째, 나의 인생 스토리텔링을 완성하고
셋째, 그리고 내가 현재 봉사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 인성공부와 한자공부를 시킬 때 이야기 소재로
삼으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