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6일, 낙동팀 일원으로 산행에 나섰다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바다구경(二妓臺 탐방)으로 나섰기에 낙동정맥이 바다로 간 결과가 되었고, 다시 이를 산으로 되돌리기 위해 혼자서 [개금역-엄광산-구덕산-시약산-대티고개] 구간 산행에 나섰다. 지난번에 무리해서라도 산행하는 동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기대로 가는 바다구경 팀에 휩싸여서 바다 구경은 잘 했었다.
그러나, 바다구경 하느라 산행을 못 했으니 혼자서라도 정해진 구간 산행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동안 계속 비가 내려서 결행을 못 하다가 추석 연휴에 날씨가 좋아져서 10월 2일 새벽 6:32,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아침 일찍 남행열차를 타려하니 2016년 여름까지 15년여를 월요일 아침이면 울산행 KTX를 타고 직장으로 향하던 때가 생각이 나서 추억에 젖어 보았다. 같은 새벽여행에 즈음하여, 그 때는 생계에 매여 있어 마음이 조급했지만 지금은 연금생활로 마음이 느긋하다고 느꼈다. 차창 밖으로 해가 비추는 걸 보니 산행할 시간에 날이 좋을 징조이다.
부산역에서 내리니 옛날보다 광장에 건물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부산역을 통과한지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오래 되었던 것 같다. 지하철 1호선을 부산역에서 타고 서면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개금역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 것이 10시 12분경이었다.
우선 제일 목표는 해발 505m의 엄광산 등정이다. 큰 길을 따라서 경사로를 따라가는데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이 앞에 나타났다. 언덕에 높고 흰 건물군이 보였다. 시가지를 지나가니 숲이 시작되었고 포장된 임도가 나와서 우측으로 따라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다시 정상을 향해 좌로 트니 엄광산을 향한 오솔길이 나타났다.(GPS 트랙을 따라 갔다.) 길을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니 힘이 들었다. 다행히 기온이 몇일 전보다 낮아졌고 바람도 불어주어 쾌적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숲길을 가다 뒤로 돌아보니 8월달에 올랐던 백양산이 뚜렷하게 보일 듯도 했는데 분명하지 않게 산군이 나타났고 멀리 낙동강이 좁은 각도로 보였다.
부산은 이름 그대로 가마솥 모양으로 주변을 에워싸는 산들이 만든 도시로 본다면 금정산(8-2m), 상계봉(638m), 백양산(642m), 엄광산(505m), 구덕산(565m) 등 낙동정맥을 이루는 산들과 동쪽에는 달음산(587.5m), 철마산(605m), 개좌산(445m), 일광산(388m), 장산(634m) 등이 있고 낙동강 서쪽에도 굴암산(662m), 봉화산(329m), 연대봉(429m)등이 솟아 있으며, 시내 가까이 황령산(427m), 금련산(425m)도 있어 가히 산의 도시라고 할 만 하다.
따라서 부산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경치를 자랑하고 있어, 높은 산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는 경치가 볼 만하다. 그런데 지난 7월에 낙동정맥 팀이 부산지역으로 남하하여 금정산(고당봉)에서 부산의 최고봉을 올랐으나 날이 궂어서 낙동강이나 남해 바다 등 주변의 경치를 볼 수가 없었다. 그 다음 8월에는 백양산에 올랐으나 역시 비가 내려서 수려한 원경을 보지 못 했고 9월에서야 구덕산에서 잠깐 먼 경치를 엿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때 바다로 갔기에 보지 못하고 아쉬워하면서 상경하였었다. 따라서 오늘 오랜만에 처음 대하는 낙동강변 경치를 보는 심정은 유달리 감격적일 수밖에 없었다.(여러 해전 고당봉에서 낙동강을 바라본 적이 있었고 진짜 경치는 몇 시간 후 구덕산 정상에 올라서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숲길을 따라 열심히 올라가서 11:48, 첫 번 째 목표인 엄광산(嚴光山)에 도착했다. 정상이 완만한 지형이고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하여 먼 경치를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다음 목표는 구덕산(九德山)이다. 산길은 두 세 갈래를 이루며 넓게 퍼진 채 아래로 내려가는데 제법 경사가 있다. 길 양편으로 낙엽송이 곧고 높게 도열해 있었다. 높고 곧은 것에 대한 경외심으로 옷깃을 여미는 심정으로 걸어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숲길을 힘들이지 않고 혼자 조용히 걸으니 지나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1969-70년 쯤 바위를 가르쳐 주시던 선배,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하셨다가 거기서 돌아가시니 그립고, 이런 저런 상념이 꼬리를 문다. 명상까지는 아니겠지만 조용한 생각 속에 잠겨보니 나 자신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숲 가운데로 난 넓은 길을 다 내려가자 도로가 나오고 집들이 나타났는데 구덕령이다.(12:15) 이 곳은 해발 230m 정도의 고개인데 엄광산과 구덕산을 잇는 안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음식점들도 여럿 있었고, 주변이 산지이라서인지 도시사람들이 찾는 휴양지의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엄광산 자락을 지나 구덕령을 지나 구덕산 자락으로 올라가는데 공원이 하나 나왔다. 제법 잘 꾸며 놓았는데 "구덕문화공원"이라고 한다. 공원을 돌아 볼 여유가 없어 인공 폭포를 잠시 본 다음, 길을 찾아 구덕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두 번째 목표인 구덕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높이가 565m나 되어 만만치 않다. 그런데 경사도가 엄광산에 비해 조금 약했고 길이 차도 다닐 수 있는 너비의 콘크리트 포장길이어서 걷기에 편했다. 이 길에 차의 통행은 막고 있었지만 비상시를 대비한 임도인 듯 했다. 이 콘크리트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기온이 오르고 바람이 잦아들어 더위를 느꼈다. 힘이 들면 길 옆에 설치된 성곽의 여장을 닮고 노란 페인트를 칠한 난간 대신 설치한 키가 작은 콘크리트 기둥 위에 앉아서 몇 번을 쉬었다.
산의 9부 쯤 올라가니 작은 광장이 나오고 우측으로 쉼터로 가는 길이 있어 쉼터까지 가서 평상에 잠시 앉았다가 돌아와서 앞쪽 경사길을 따라 구덕산 정상을 향했다. 차도를 힘들게 올라가니 정상 바로 밑인데 송신소 철탑 2개가 서있고, 정상은 거기서 좌로 꺾어서 조금 더 올라가야 했다. 13:21, 해발 565m라 쓰여진 구덕산 정상석 앞에 섰다. 주변 나무가 조금 가리긴 했지만 낙동강변과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처였다. 산의 높이가 더 높고 주변이 정리되었다면 더 나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그런대로 경치를 감상할 만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낙동강은 이 산의 서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두 물줄기 가운데가 삼각주 평야를 이루고 있어 그 옛날 학교에서 배운 지리학의 내용이 생각났다. 이 산의 남쪽으론 시가지가 펼쳐진 아래로 항구와 바다가 보였다. 산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부산인지라 부러운 자연의 조합이라고 생각되었다.
늦었지만 식사를 하기 위해 배낭을 열었다. 입맛이 없어서 포도 반 송이를 먹고 소세지 두 개로 때웠다. 집을 떠날 때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준비했으나 입에 당기지가 않아서 배낭에서 꺼내지 않은 채 다시 가지고 산을 내려와야 했다.
구덕산을 내려와 큰 길을 따라가니 바로 기상관측소가 나오는데 6층 건물 위에 공 모양의 둥근 형상을 얹어놓은 형상이었다. 기상관측소 뒤로 돌아가니 해발 510m의 시약산이 나왔다. 여기서도 남쪽으로 항구 쪽을 바라보는 경치가 좋았다. 파노라마 사진을 한 장 찍어 보았다. 내려가는 길은 이제 좁은 숲길이고 경사도 제법 세다. GPS로 확인해 보니 아까 엄광산 올라올 때와 비슷하게 제법 심한 경사였다.(사후에 대략 계산해 보니 12도 정도의 경사도였다.)
곧은 나무, 구부러진 나무들이 도열하여 인사하는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산동네가 나오고 길은 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로 통과한다. 큰 길을 만났는데 해발 고도가 110m 정도이고 대티역과 서대신역 사이의 대티고개였다.(14:28) 오늘 산행은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 11월에 마지막 구간(대티고개 - 몰운대)을 가는데 이제 낙동정맥길도 마지막 13km 정도만 남았다.
인근의 서대신역으로 걸어가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노포역까지 간 다음,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16:15 출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 수 있었다.(명절 끝나기 전 날이라 부산 내려가는 하행선 KTX 표는 구할 수 있었지만 서울로 상경하는 표가 귀해서 상행선 KTX 표는 구할 수가 없었고, 다행히 고속버스 상행표는 구할 수가 있었다. 5시간 반 정도 걸려서 서울 반포터미널에 도착했다.)
연휴를 이용하여 못 했던 숙제를 마쳤다. 부산까지 홀로 가서 산길을 걸으며 만감에 젖어 보았다. 산에 의탁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산행을 해 온지도 어언 50년이 넘었고 최근엔 산악문학에 심취해 나 나름대로 산행기와 소설, 시도 써가며 노력한다 해보지만 과연 얼마나 그 문학을 성취했는지? 점점 약해져 가는 체력도 걱정되고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그래도 산에 대한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그 사랑이 금번 부산 단독 원정 산행을 감행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 후기 -
힘든 산행을 했으니 시가 하나 없을 수 없다.
낙동정맥 엄광산, 구덕산 산행에 부쳐서
낙동정맥도 이제 33번 째
한 구간만 더 하면 졸업이다
지난 번 비 때문에 바다로 간 정맥길
오늘, 산으로 돌려 놓으러
천리 길 멀다 않고 다시 왔다
산엔 바다에 없는 게 많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새가 있다
더 중요한 건 오르막길이 있다
오르는 건 힘들지만
정상에 서면 바다를 볼 수 있다
505m 엄광산 정상
나무에 가려 바다가 없다
그러나
565m 구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바다가 있어
산은 바다와 하나가 된다
산엔 숲이 있어 좋다
숲속 길 아래 혼자 걸으면
추억이 밀려 왔다가 밀려 간다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가늠해 본다
바다에 산을 더하면 부산이 된다
그래서 부산은 두 배로 아름다운 곳
불원천리 찾아 온 나그네
무념무상 산길 걷는데
잘 차려놓은 경치가
눈을 붙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