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06 16:47 수정 : 2019.09.06 18:07
“작년 이맘때 개업한 그 식당, 건재합니다!” 자영업 1년, 식당 운영의 단맛과 쓴맛을 고루 맛본 삼계탕집 식구들이 안부 인사를 전했다. 왼쪽부터 운영 담당 장주희씨, 조리 담당 최웅수씨, 서빙 아르바이트 김원종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1년 전 자영업자들의 잇딴 폐업
경향신문 토요판은 그 와중에
창업한 웅수씨 이야기를 실었다
꼭 1년 전,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크게 증가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최저임금제 개선을 촉구하는 자영업자들의 집회도 열렸다. 2018년 9월8일자 경향신문 토요판은 ‘폐업이 화두인 시대 그래도 난 개업한다’ 라는 제목으로 자영업자 최웅수씨(32)의 식당 창업기를 실었다. 2019년 2분기 현재 외식산업경기지수에 따르면 전년도 동기 대비 매출액 감소업체가 증가업체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영업자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의 회원 수는 1년 새 2배가 늘었다. 시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개업 1년을 맞은 서울 종로구 소재 최씨의 식당을 다시 찾았다. 이 기사는 식당 창업 성공기가 아니다. 지난 1년을 버텨낸 31만692개(한국외식산업연구원 2019년 8월 외식산업 통계) 한식 음식점 업체 중 한 삼계탕집의 생존기에 가깝다.
■ 달콤쌉싸름했던 첫 복달임
1년 후 다시 찾은 삼계탕집
시장은 여전히 안갯속이고
웅수씨도 대박 나지는 않았다
1년 전 복날, 비장하게 임했고
매출도 짭짤했다, 그러나
약 150마리 주문 취소의 ‘악몽’
‘마음을 채우는 삼계탕’의 문을 열자 동업자이자 운영 담당 장주희씨(33)가 환한 얼굴로 반겼다. 최씨가 바로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했었다고 하자 장씨가 호방하게 웃었다. “무사해요.”
삼계탕집은 ‘복날대전’을 치른 후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요리 담당 최웅수씨는 “지난 1년은 모두 복날을 위한 준비였다”고 할 정도로 비장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초복엔 오전 11시부터 손님이 밀려들었다. 맛집의 상징이라는 줄도 늘어섰다. 초복 150마리, 중복 100마리, 휴일이었던 말복은 50마리가 나갔다. 지난 인터뷰에서 장씨가 염원했던 ‘법(인)카(드)’ 손님들도 빛났다. “특문어삼계탕 10그릇” 주문은 주방장도 춤추게 했다.
‘첫 복달임’은 달콤하면서도 짜디짰다. 말복을 앞두고 두 건의 큰 배달 주문이 들어왔다. 인근 드라마 촬영장에서 삼계탕 100마리, 공연장에서 45마리를 주문했다. 그러나 두 건은 모두 당일 ‘노쇼’가 됐다. 출연 배우가 복날을 맞아 스태프들에게 삼계탕을 ‘쏘기로’ 했는데 촬영 스케줄이 취소됐고,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의 팬들이 하필이면 삼계탕 ‘조공(팬들이 스타 및 관계자들에게 선물이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했다는 전갈이었다. 계약금 한 푼 받지 않은 상태였다. 최씨는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기나” 푸념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며칠 뒤 광화문 모 기관에서 주문이 들어왔는데, 50% 선결제 안 하시면 배달 못하겠다고 했어요. ‘불안하면 100% 결제하겠다’고 해서, ‘알겠습니다!’ 하고 배달해드렸죠.”
삼계탕집의 겨울과 여름. 첫눈이 내린 날(왼쪽)과 여름이 오자마자 본격 삼계탕 시즌을 알리는 배너를 걸었다.
■ 5월에 맞은 보릿고개
봄철의 보릿고개에 월세 인상
공부도 SNS도 많이 했다
배달은 은근히 보탬이 됐고
단골 손님도 생기기 시작했다
19세 때부터 요리 경력을 쌓은 최씨는 친구 누나인 장씨와 의기투합해 삼계탕집을 차렸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인 장씨는 부모가 운영하는 삼계탕집에서 음식점 운영을 익혔고 때마침 권리금이 8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떨어진 지금의 가게를 발견하자, 바로 계약했다. 장씨는 “창업 초기에는 회사 다닐 때와는 달리 상사도 없고 결정한 일이 번복되는 일도 없어서 그저 매일 설레고 신났다”고 했다. “대학 축제에서 주점을 차리는 느낌이랄까. 방송으로 치면 처음에는 <삼시세끼> 같았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치열한 <쇼미더머니>로 변해갔습니다.”
지난해 9월 개업해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던 삼계탕집은 해를 넘긴 올 5월 보릿고개를 맞았다. 일찌감치 더위가 찾아오자 사람들은 뜨거운 삼계탕을 찾지 않았다.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이전 점주가 공들여 시공했다던 투명 지붕 인테리어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 아래 앉으면 덥다 못해 “돋보기에 지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던 손님이 그 온기에 뒷걸음치며 나가기도 했다. “선팅필름을 사다가 직접 아크릴에 붙이고, 광목천으로 그늘을 만들었어요. 낡은 에어컨도 교체했고요. 5, 6월은 그냥 포기하고 여름을 잘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자, 했죠.”
보양식 시즌이 시작되면서 매출은 올랐지만 미수금 갚고 한시름 덜만 하자 임차 계약 만기가 도래했다. 건물주는 기다렸다는 듯 월세를 올렸다. “돈이 고일 만하니까 가게 얻으며 받은 대출이 1년이 되어서 원금도 갚아야겠더라고요. 월세도 5%나 올랐고요.”
삼계탕집 골목에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와 미니 커피숍이 들어서긴 했지만, 상권에 큰 변화는 없었다. 인근 익선동의 기세가 여기까지 확장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길 건너 대기업이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체제로 바뀌며 저녁 장사는 더욱 힘들어졌다.
■ 삼계탕집의 자구책
‘각 식당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콘셉트의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 2년차이지만 여전히 성업 중이다. 장씨도 그 프로그램을 보고 많이 배운다고 했다. 삼계탕집 식구들은 어떤 방안을 찾았을까.
1년 전 최씨의 창업기 기사에는 2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알루미늄 솥이 아닌 스테인리스 솥을 써야 한다, 원가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등의 훈수가 대부분이었다. 최씨는 “기사에 난 솥이 바로 스테인리스 솥이었다”고 웃으며 운을 뗐다. “저희도 초반에는 원가 계산을 엄청 했어요.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 원가를 g단위까지 철저하게 따졌어요. 보통 평균치라고 말하는 원가보다도 저희 원가가 낮더라고요. 버리는 재료가 거의 없었거든요.”
삼계탕, 닭곰탕, 닭죽, 닭개장에 닭튀김류까지 주방에서 한 명이 소화하기에는 메뉴가 많지 않나 싶었는데 최씨는 재고를 최소화하고 혼자 만들 수 있도록 최적화한 것이라고 했다. 삼계탕용 닭은 매일 받아서 삶고, 남은 닭은 뼈를 발라내 닭죽이나 닭개장으로 판매한다. 채소는 닭개장용 숙주, 버섯 정도를 쓰는데, 그날 판매할 양만 시장에서 사온다. 대형 냉장고가 못 들어가는 좁은 주방의 문제는 식재료 당일 구입, 당일 소진으로 해결했다.
유동인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입지의 단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배달로 뚫었다. 장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메뉴 공지와 이벤트를 진행한다. 덕분에 저녁에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절반 정도 된다고 했다. 맛집 방문을 위해 일부러 길을 나서는 요즘 젊은층을 공략한 것이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배달은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쏠쏠하다. 찹쌀밥이 살짝 불으면 오히려 먹기가 좋은 삼계탕은 의외로 배달용 음식이었다. 닭죽은 인근 대형병원,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인기고, 광화문 관공서에서 조찬 메뉴로도 찾는다고 했다. 장씨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삼계탕집 중에서 죽 평점이 제일 높다”고 자랑했다.
창립 멤버 3인방이 변함없이 가게를 지키는 점도 ‘단골’을 만드는 데 주효했다. 홀에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겸업하는 연극배우 김원종씨의 최근작 <집시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장씨는 “(김씨에게) 시급 1만원에 주휴수당까지 주고 있다”며 “일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주면 더 줬지, 시급이 비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내 장사다
그러던 어느 날, 노신사 손님께
조미료를 안쓴다고 자랑하자
손님이 즐기는 식당을 하란다
화두를 얻은 듯…
모든 걸 손님 위주로 바꾸었다
확장 이전을 앞둔 웅수씨
1년 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손님과 소통이 제일 중요하단다
장씨는 ‘내 장사’라는 실전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어느 날 어르신 손님께 서빙을 하며 삼계탕과 반찬에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설명을 드렸는데, 그분이 장사는 조미료를 쓰고 안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즐기고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닭발과 엄나무 등으로 푹 우려낸 육수가 들어가는 대표 메뉴 삼계탕.
낙지젓·김치와 함께 제공되는 인기 반찬 무샐러리장아찌.
젊은 시절 종로 최초의 경양식집을 운영했던 노신사의 조언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장씨는 “내 가게, 내 사업이니까 내 위주로 세팅했던 것들을 손님이 즐거운 기억을 갖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다”고 했다. 손님들이 닭곰탕에 양념장을 넣어달라기에 닭개장을 만들었고, 단골을 위한 적립 시스템을 도입하고, 주인이 아닌 손님들이 식사할 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선곡했다.
두 사람은 요즘 새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맛에 대한 보장만 있다면 손님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입지가 조금 나쁘더라도 월세가 낮고 넓은 곳을 찾고 있다. 26석이 50석 규모로 늘어나도 손발이 잘 맞는 3인방이라면 무리 없이 운영 가능할 거라는 계산이다.
1년을 이끌어온 주인 입장에서 예비 식당 창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오래 고민하던 최씨는 “요리 유행도 바뀌고 사람들의 입맛도 바뀌는 시대”라며 “소신은 가져도 좋으나, 고집은 내려놓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장씨는 “뜻대로 되지 않는 장사에 쉽게 지칠 수 있지만 그런 우울감이 손님에게 전해지면 매장은 활기를 느낄 수 없다”며 “손님과 동료와 항상 소통하고 그들의 반응에 집중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61647005&code=940100#csidx12e462eeb272af8a6fbae87c9444287
고찰
최웅수씨의 빛난 창업 성공담을 읽고 보니 삼계탕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반대로 특정일 날에만 찾게 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삼계탕의 단점을 살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달서비스도 시작하고, 인 스타 그램(온라인 사진 공유 및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으로 홍보를 해서 이벤트도 펼치며 젊은 층을 공약해 한 끼 식사로도 거뜬한 메뉴로 자리 잡았습니다. 옛날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저희 집 외식 메뉴는 항상 돼지갈비였습니다. 제가 사는 정관 안에서 가깝고, 맛있는 돼지갈비 집을 찾아 이집 저집을 다녔습니다. 한 번은 양념갈비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돼지갈비 색상이 아니고 생고기에 가까운 고기를 가져왔습니다. 주인에게 이제 막 절인 갈비냐 물었더니 아니라고 드셔보라는 겁니다. 아이들도 배고프다 해서 빨리 구워 먹는데 간도 안 되었고, 비주얼도 달라 보여 이건 생고기를 시켜서 소금간해 먹는 것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습니다. 주인을 불러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니 딴 집처럼 캐러멜색소를 넣지 않았고, 우리는 그런 재료를 쓰지 않는다며 면박을 주셨습니다. 저도 요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건강 생각해서 색소는 넣지 않았다는 것도 좋지만 맛 자체가 생고기였다는 거였습니다. 사람들이 평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인지 생각한다면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부분을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며 큰소리로 그렇게 손님을 대하진 않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입맛에 싱거우면 양념장이라도 드릴까요? 라는 식으로 대응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사람들이 양념 돼지갈비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가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고기이기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몇 달은커녕 5개월도 안되어서 폐업을 했습니다. 그곳도 고집을 내려놓고 맛을 개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떠오르는 시간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