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두오모와 피렌체 전경>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기업 구조는 오늘날 한국의 재벌 구조와 너무나 닮아 있다. 실제로 코시모 메디치는 2퍼센트 정도의 지분으로 메디치 기업들을 이끌었고, 메디치 기업에 투자된 98퍼센트는 투자자들의 돈이었다. 메디치 그룹의 지배 구조는 한국 재벌들처럼 '다단계식 또는 순환출자식' 구조였다.
피렌체의 은행들을 그룹의 중심축으로, 메디치 가문은 이 은행의 지분을 반 이상 쥐고 있었다. 그리고 지사를 차릴 때마다, 은행 고객이 입금한 돈을 이용하여 50퍼센트 이상의 지분 참여를 하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투자금을 끌어왔다.
예컨대 피렌체에 새로 원단 공장을 짓는다면 코시모의 개인 돈으로 5퍼센트, 피렌체 은행 돈으로 46퍼센트를 투자한다. 나머지 지분은 투자자를 모집해 채운다. 이렇게 신공장에 대해 51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다. 피렌체 은행 지분의 절반은 코시모의 것이므로 전체 투자금액 중 28퍼센트 만이 코시모의 돈인 셈이다. 그리고 이 원단공장 아래에 다시 원단 유통 자회사를 세운다면 은행자본 10%, 원단 공장이 45%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투자자나 기존 사업파트너에게 전가한다. 유통자회사에 대해서는 실제 지분은 약 15% 정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55%의 투표권을 갖는다. 이런 식으로 새끼를 치면 코시모는 투자하지 않고도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자회사가 생긴다.(한국은 자회사의 자회사, 즉 손자회사까지만 허용한다.)
자회사를 피라미드 구조로 형성해 적은 돈으로 전체 경영권을 쥐는 한국식 재벌 구조는 600년 전 이탈리아의 코시모가 발명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이 부상하기 전, 이탈리아에는 바르디라는 재벌가가 있었다. 이 재벌은 한 대기업이 직접적으로 작은 지사들을 거느리는 형식을 취했다. 바르디 은행의 한 지사가 돈을 잃거나 빚을 지면, 다른 바르디 회사들이 이 빚을 갚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메디치 재벌 구조는, 각 자회사가 법적으로 독립되어 있어 자회사가 초래한 손실을 그룹 전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
메디치의 이러한 사업 구조는 400년 후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에 의해 부활한다. 록펠러가 실제로 경영권을 행사하던 회사는 수많은 자회사의 지분을 사고파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러한 회사를 주식과 경영권을 '쥐고 있다'는 뜻으로 홀딩그룹(지주회사)이라고 부른다. 이 방식은 지금 한국의 재벌그룹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다.
메디치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사장들을 엄격하게 다스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코시모 메디치의 사업이 절정기에 있던 1458년의 사규를 보면, 자회사의 사장은 어떤 이유로든 선물을 받을 수 없었다. 모든 자회사 사장들은 매년 3월24일에 회사의 수익과 손실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그룹 회장에게 제출할 의무가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쓰던 달력에는 3월 25일이 새해였기 때문에 보고서는 당해 마지막 날 제출하는 일종의 결산서였다.
<수태고지:시모네 마르티니와 리포 멤미>
그림 정중앙 상단에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비둘기가 마리아를 향해 있는 힘껏 성령을 불어넣고 있다. 그 아래 놓인 화병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 꽂혀 있다. 천사 가브리엘의 날개는 공작의 날개로, 공작은 죽어서도 살이 썩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곧 예수의 부활을 상징한다. 막 하늘에서 내려앉은 가브리엘의 망토는 바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는 듯 펄럭이고 있다. 손과 머리에 있는 올리브나무 가지는 승리를 상징한다. 그림은 놀라우리만큼 세밀하지만, 어쩐지 인물들은 양감을 잃은 듯 지나치게 야윈 모습이다. 이는 이들이 영적 세계의 존재임을 강조하는 중세적 취향의 결과로, 빛의 색인 황금색 배경으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기독교 전설에 의하면 3월25일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그녀가 그리스도를 낳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날이다.(일명:수태고지) 즉, 그날은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의 뱃속에서 생명을 받은 날로 이를 1년의 시작으로 정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계 증권시장에 상장한 수많은 기업들이 3월 25일을 전후해 1년의 사업보고서를 공개한다. 이것은 유럽에서 가장 큰 투자기업이었던 메디치 은행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몰락은 다단계식 소유 구조가 불완전함을 보여준다. 특히 그룹 회장이 자회사 사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망하기 쉬웠다. 코시모가 죽고, 손자 로렌초가 교황과의 싸움에 휘말리자 자회사 사장들은 개인적 야욕을 드러낸다. 특히 런던과 브뤼헤의 지사 운영을 맡아온 포르티나리가 메디치 가문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포르티나리는 이전부터 메디치 은행의 돈으로 개인 무역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본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선박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배값도 못 뽑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그는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만들어 메디치 그룹의 원단 사업도 빼돌렸다.
포르티나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야망이었다. 그는 메디치가 정한 대출 한도의 3배 가까운 돈을 프랑스 브르고뉴 공작에게 빌려주고 유럽 최고의 권력가인 그의 개인 자산관리자 역할까지 한다. 그러나 공작은 빚을 갚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담보와 보증없이 돈을 빌려준 메디치 은행은 큰 손실을 입는다. 결국 1478년, 브뤼헤 지사는 문을 닫게 되었는데 회계장부를 살펴보니 자그마치 7만 피오리니(약 3조원)나 되었다. 그것도 포르티나리가 가짜로 꾸며놓은 장부(분식회계!!)에서 나온 결과였다. 메디치는 이 장부를 근거로 소송을 해 손실을 포르티나리의 개인 재산으로 갚도록 한다. 결국 포르티나리는 파산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시설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그의 자손들은 그의 빚과 불법적인 사업관계를 이어받기 싫다는 이유로 상속조차 거부한다.
그러나, 몰락은 포르티나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후 메디치 가문은 명반 광석 투자에서 손실 10만 피오리니(약 4조원), 브뤼헤 지사에서 손실 7만 피오리니(약 3조원) 상당의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기 시작한다. 1478년 브뤼헤 지사에 이어 1494년 밀라노 지사도 파산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메디치 가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가고 바로크 시대가 오면서 국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의 힘이 약화되고 국가의 권한이 커지는(절대왕정) 역사적 변화와 괘를 같이한다.
하지만 진짜 부자는 돈보다 부자 마인드를 상속한다는 말이 있다. 메디치 집안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자 마인드를 상속받아 곧 부활한다. 메디치 후손들은 전수받은 부의 비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수많은 공작과 자작은 물론 두 명의 교황까지 배출한다. 또한 카테리나 메디치는 프랑스의 여왕이 되어 메디치 가문의 영광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