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 송림과 서천 갯벌을 지나는 여름 한나절의 유혹
(#55-56)
2023. 6. 25 (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24~28도
거리 : 19.8km 6시간 동행 : 귀연산우회 21명
금강하굿둑 유원지-장항도선장-송림-월포해변-송석리
<장마>
내리는 저 비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습니다.
고통 없이는 당신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버틸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가슴에 궂은 비 내리는 날은
함께 그 궂은 비에 젖어주는 일.
내 마음에 흐르는 냇물 하나 두었더니
궂은 비 그리로 흘러 바다로 갑니다.
-홍수희-
금강하굿둑 관광지 단체 촬영
충남 서천군 마서면 당선리에 있는 금강하굿둑 관광지는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들을 볼 수 있는 명소다.
금강하구둑은 장엄하게 흐르는 금강이 바다를 만나 품을 넓히는 곳에 만들어진 대규모 수리시설로,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을 잇는 교량 역할도 하고 있다.
드넓은 갈대밭과 농경지를 품고 있는 금강하구에는 가창오리, 청둥오리를 비롯해 검은머리물떼새 등 희귀 조류와 수만 마리 철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도 좋고, 해 질 무렵 낙조와 함께 바라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김인전은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 제4대 의정원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금강하구(군산)
고려해도원수 나세 진포 대첩비 : 고려말, 조선 초의 나주 출신 나세 장군은 홍건적을 격파하고, 최영과 제주도 목호의 난을 평정했다.
우왕 때 왜적을 격파하고 진포(금강하구)에 들어와 노략질하던 왜군을 해도원수(海道元帥)가 되어 심적부, 최무선과 함께 화포로 수장시킨 대첩을 거두었다. 역사적인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세운 것이다.
금강하구와 동백대교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원수리와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동을 잇는 동백대교는 길이 3.19km의 교량으로 2018년 12월 27일에 개통되었다.
다리의 이름이 동백대교로 확정되기까지 군산시의 시화와 서천군의 군화 양쪽 모두 동백꽃으로 양 시군의 동질성을 나타낼 수 있는 이름임에 의미가 있어 '동백대교'로 최종 선정되었다.
음식문화특화거리
문화예술창작공간(구 미곡창고)
서천 구 장항 미곡 창고(문화예술 창작공간)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쌀을 수탈하기 위하여 만든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독특한 건축기법과 역사 교육 자료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건축 원형을 보존한 채로 리모델링하여 지역문화 예술인,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55코스와 56코스 안내도
<장맛비를 피해 서천으로>
목포로 가는 서해랑길 여정이 장맛비로 코스를 바꿔 장항과 서천으로 향한다.
참석자가 21명이나 되어 바뀐 일정이 만족스러울지 걱정되지만, 송림과 해변 그리고 뒤풀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걷는다.
장항은 코로나19로 많은 상처가 나 있음이 분명하다.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문을 닫았고, 공단도 활력을 잃었는지 조용하다.
하굿둑과 김인전 공원을 지나 진포 대첩비가 있는 당개산을 바라보며 회색빛 뿌연 금강하구 너머 군산이 다가온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폐철로에는 야생화와 쓰레기들이 나뒹굴어 횅하다.
화려한 자귀나무, 동백대교, 갈대밭, 특화거리를 지나며 뜨거워진 도로 위를 걷는 힘든 여정이 계속된다.
원수리를 지나 만나는 창고 건물은 예전 쌀 창고였는데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지방 예술가들의 노력을 느껴본다.
도선장 입구는 56코스의 시작 지점이다. 오늘 시작한 하굿둑이 여기서 5.6km이기에 전체 거리가 19.8km로 꽤 긴 거리다.
덥고 습한 날씨에 일행들이 잘 적응해서 무사히 도착지까지 가기를 기대하며 도선장 공원과 장항항을 지나니 제련소 굴뚝이 잘 보이는 바닷가 공원에서 잠시 쉬며 시원한 물을 마신다.
홀로 서해랑 길을 종주하는 분이 목포에서 승용차로 이동해 우리와 동행이 되었는데 벌써 위 지방 여러 코스를 걸었다고 한다.
혼자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의 용기와 끈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장항은 충청남도 서천군 서남부에 있는 읍이다. 장항읍의 이름은 서천군의 옛 남부면 지역에 있었던 장암리와 항리를 합쳐 만든 서남면 장항리에서 유래하였다.
전망산과 후망산이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졌기에 장암(長巖)이라 하였고, 항리는 금강의 입구를 뜻하는 마을 이름이다.
장항 도선장 공원
장항 도선장 공원은 서천과 군산을 잇던 장항 도선장의 멋진 배 모양의 조형물들과 작은 공연을 열 수 있는 야외무대와 바다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있어 쉼터가 되어준다.
가을이면 이곳에서 문화예술의 공연도 열리며, 저녁에는 공원을 붉게 물들이는 멋진 해넘이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도선장 철길은 도로변에 방치되어 무성한 잡초만이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구 장항제련소(LS 메탈)
LS 메탈(구 장항제련소)(전망산) : 예전 장항제련소로 굴뚝이 유명하다. 맑은 날 대둔산에서도 보인다.
구리를 생산하는 제련소로 유명했으며 구조물은 철거하지 않고 남아 있는데 지금은 LS 메탈 장항공장으로 운영된다.
서해랑길 56코스
장암진성
장암진성은 백제시대부터 군사요충지로 수군의 진영성이였다. 종4품인 만호가 관장했으며, 백제시대 기벌포, 고려 때 장암진, 조선시대에는 서천포 장암진으로 불렸다.
백제의 부흥군과 나당연합군과의 백강전 투와 고려 때 진포대첩의 승전이다.
나당연합군이 상륙한 곳이며, 백제가 함락된 후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출전한 왜의 수군과 나당연합군이 장항 앞바다 금강에서 최후의 해전이 벌어졌는데 왜군이 패한 백강 전투 지역이 장암진성이다.
고려 우왕 6년(1380) 8월 장암진이 있는 금강하구에 왜구가 500여 척의 선단으로 부두에 정박하고 노략질을 하였는데 나세장군과 최무선이 화포로 승리한 역사적인 곳이다.
장암진성은 돌로 쌓은 석성이며, 조선 중종 6년(1511) 9월에 쌓기 시작하였다가 중지되었고, 1514년 완성되었다. 장암이란 지명은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장항제련소를 건립하면서 부지확보를 위해 장암진성의 석축을 허물어 물막이 공사인 축항공사재로 활용하여 지금의 장암진성 앞 성곽은 사라졌는데 요즘 터널 옆에 새로 쌓아 관리되고 있다.
전망산과 후망산의 이름은 장암진성이 두 산의 아래에 군사시설이 주둔하며 산 위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망루 역할을 하였기에 망산(望山)이 되었다.
후망산은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운영되어 오다가 서천 남산의 봉수대가 설치되면서 후망산 봉수대는 폐지되었다.
호수에 비친 전망산과 LS 메탈 굴뚝
송림산림욕장
송림과 맥문동
가장 기대가 되었던 장항 장항송림 솔바람 숲(산림욕장)은 서해안 해변을 품고 있는 인공 소나무 숲이다.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바닷가에서 날리는 모래와 바람으로부터 학교와 주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한 숲이다.
숲의 면적은 약 27.7ha에 이르고 길이는 해변을 따라 약 2km에 이른다. 50년이 넘은 해송인 곰솔이 13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또한 숲 가득 자라는 맥문동은 바닷바람에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이다.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피는 맥문동의 보라색 물결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맥문동과 송림 그리고 잘 만들어진 야영장과 편의시설들이 많은 사람이 오기에 충분하다. 바닷가도 함께 있어 가족들이 하루를 넉넉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옥남방조제를 지나 솔리마을 원두막에서 일행들과 점심을 들며 충분한 휴식을 한 후 옥남마을을 지난다.
마을에는 온갖 멋진 꽃들이 심어져 나그네를 반기고, 밭에서는 강황과 해바라기가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는 발걸음 가벼운 여정이 계속된다.
스카이워크와 서천갯벌
장항 스카이워크 : 2015년 설치된 스카이 워크는 송림 산림욕장 일원에 자리한다. 높이 15m, 길이 250m에 철재로 만들어졌다.
전망대 입구인 ‘스카이워크 인포타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요금은 성인·청소년 2,000원인데, 특이한 것 중 하나가 입장료를 내면 그 금액을 서천 사랑 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는 점이다.
스카이워크가 있는 금강하구 일대가 기벌포인데 동북아 최초의 국제전과 해상 함포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양식장과 송림 해변
장항송림 바닷가 서해랑길
태산목
옥남방조제 민물이 갯벌로 흐르는 모습
충남 서천군 마산면과 시초면 사이에 있는 봉선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일제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금강하구에 간척사업을 벌여 1924년 옥남 방조제를 만들었다.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논의 농업용수를 확보하려고 1926년 길산천 상류에 저수지를 축조한 것이 오늘의 봉선지다.
솔리마을(송림마을)
솔리천(솔리 마을) : 서천군 마서면 솔리천을 끼고 있는 송림 마을이다.
초가마을 천하대장군 장승
초가마을 해바라기
남전리
<서천 갯벌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월포 해변>
지금은 그 형상이 깨져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매바위 월포 해변을 걷는다.
서천 갯벌은 자연생태의 원시성을 유지하며, 펄과 모래갯벌이 조화롭게 조성되어 다양한 저서생물과 풍부한 수산자원 생물이 서식한다.
검은머리물떼새, 황조롱이, 노랑부리저어새 등 가치가 뛰어나 갯벌을 보전 관리하기 위하여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매바위(철새 나그네길)는 바위가 매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바위 윗부분이 무너져 내려 지금은 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매바위 공원 앞 바다에는 칼바위, 먹섬, 한목 등의 이름을 가진 갯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매바위’란 공원 이름은 공원 한가운데 있는 집채만 한 갯바위에서 따온 것이다.
매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는데, 둥근 바위의 형상에서는 도대체 매를 떠올릴 수 없다.
매를 닮았던 이 바위는 어느 해인가 태풍으로 목과 머리 부분이 훼손됐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매바위 앞 갯벌에는 칼바위, 먹섬, 한목 등의 이름을 가진 갯바위가 늘어서 있다.
매를 닮아 붙여진 매바위공원을 제대로 보려면 썰물 때를 맞춰야 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과 까마득한 갯벌 가운데로 이어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일대의 갯벌은 죽산리 어민들이 관리하는 가무락과 동죽, 굴, 바지락 양식장이다.
매바위공원 앞 죽산리 갯벌에는 경운기가 수시로 드나든다.
죽산리의 어민들은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배를 띄울 수 없으니 경운기에 배를 싣고 갯벌 끝까지 가서 바다에 배를 띄운다.
돌아올 때도 경운기를 끌고 가서 얕은 바다까지 온 배를 싣고 나온다. 해 질 무렵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월포해변(멀리 보이는 곳이 갈목해변과 송석해변)
월포해변(매바위와 군산 공단)
아목섬 갈림길
아목섬
아목섬으로 이어지는 경운기 길은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다. 엔진 높이를 배로 높여 바닷물에 잠기지 않게 설치한 지혜에 감탄한다.
월포 해변을 벗어나 넓은 들판을 2.5km가량 걷는다. 서천은 바닷가이면서 수산자원이 풍부하며 들판이 넓어 논농사도 많이 한다.
그래서 서천에 부자가 많은가 보다.
예전 고등학교 동창이 나씨인데 시초면에 살았는데 넉넉한 생활을 했던 이유를 지금 걸으며 실감한다. 멀리 대전까지 유학을 왔으니 잘 사는 집이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송석리 들판
56-57코스 안내도
갈목해변
코끼리 마을꽃과 야생화가 가득한 길목 해변에서 싱싱한 꼴뚜기회로 뒤풀이를 풍성하게 진행했다.
비록 예정되었던 목포 갓바위와 삼학도 일정이 변경되었지만, 우리 고장 장항과 서천의 진면목을 충분히 만끽한 하루여서 좋았다.
가까우니 대전에 돌아가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 해지기 전에 도착했다.
힘든 여름철 바닷가 걷기에 동참해 주었고, 발이 아프면서도 완주한 일행들에게 멋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장맛비가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해갈에 도움을 주는 이쁜 녀석으로 지나가기를 빌며 무사히 하루를 빛낸 동행들에게 '멋진 인생'이라고 외쳐 주고 싶다.
갈목해변 쉼터(코끼리 마늘)
천호마을의 개태사
개태사(천호마을 둘레길) : 개태사(開泰寺)는 936년(태조 19)에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를 제압하고 세운 사찰이다. 최근 법당 등을 복원한 개태사 구역과 원래의 개태사지로 구분된다.
개태사지는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이 있는 현재의 개태사로부터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개태사에 전하는 문화재로는 석조삼존불입상과 오층석탑, 철확 등이 있고 개태사지에서는 석조공양보살상과 석조(石槽) 등이 수습되었다.
개태사 마당에 세워져 있는 오층석탑은 개태사지에서 옮겨온 것인데, 원래는 석조공양보살상과 한 짝을 이루고 있었다.
즉 이 석탑 앞에 석조공양보살상이 탑전 공양보살상의 형태로 놓여 있었다. 현재 석조공양보살상은 개태사지 부근에 위치한 용화사 법당에 봉안되어 있다.
석조공양보살상은 두부가 결실되어 있으며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형상이다.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이 세워져 있는 현재의 개태사 구역은 936년 태조의 명으로 창건되기 시작하여 940년 완공되었다. 개태사 북쪽에 있는 개태사지는 태조 사후에 정비된 지역이다.
첫댓글 ''여름한나절의 유혹' 제목이 멋집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20km 넘는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유혹'이었습니다.
'6월 한나절의 유혹'에 빠진날이었습니다.
장항하면 학교에서 배웠던 제련소만 알고 있었는데 청산님 글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약간 덥긴 했지만 이야기 나누며 걷는 길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비도 맞지 않아서 더 좋았습니다. 하여간 나는 참석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합니다.
우리가 아목섬 앞을 지날땐 갯벌에서 불길이보여서 걱정과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청산님이 통과할땐 불길이 없었나봅니다..저희가 걷지못한길은 후기글로 만족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아!
그래서 경찰차가 와 있었나보네요.
왠 경찰차가 있지 하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뭐 잘못한 건 없나' 하며 쫄아서 지나쳤는데
이리 불이 났군요
진정한 트레커들에게 '걷기'는 인생의 무한한 가치를 느끼게 한다고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장항과 서천은 이런저런 일들로 많이 찾던 곳인데 실제 서해랑 길을 걷다보니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온 듯 합니다!
장맛비를 피했더니 땡볕 햇살이 일행들을 괴롭혔군요. 양반곰 님도 힘들게 했고, 꼬모 님도, 중봉 님도, 감나무 님도.....
무사히 종점에 도착하는 모습을 반기며 '여름 한나절의 유혹'은 안심의 한숨으로 끝났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