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나무 그림자 길이가 길어지는 것을 보니 가을이 멀지 않는 것 같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숲 속에 쌓여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는 것도 행복이리라.
나이가 들어감인지 몸이 찌뿌둥하다. 아마도 며칠 전 요트를 타고 사모아, 통가, 피지 아일랜드, 바누아투, 뉴칼레도니아, 등 남태평양을 한 바퀴 돌고 온 여독 때문인 것 같다.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올라온다.
“회장님, 오늘 아침상은 제주도에서 지금 막 올라온 옥돔과 전복입니다. 남해안의 해수 온도 상승으로 자연산 전복도 구하기 어렵답니다. 샥스핀과 푸아그라도 수입 금지되어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워 김 비서를 통하여 프랑스지사에서 구매하여 익스프레스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프랑스 명품 리네로제 소파에 앉아 정 회장이 쿠바 여행 중 사다 준 시가를 물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회장님, 좋은 여행 스케줄이 있습니다.”
은행의 VVIP 담당 이 부장이다.
“회장님,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입니다. 인구는 약 30만 명 정도이고 화산 활동으로 온천이 많아 즐기기 좋습니다. 국가가 부도나서 높은 환율로 경비부담이 없습니다. 특히 북극에 가까워 햇볕이 많지 않아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습니다. 일정은 약 2주 정도이며 돌아오시는 길에 그리스에 잠시 들르셔서 사인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스가 지금 어려워 섬들까지 팔고 있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흥청망청의 씨앗은 눈물의 섬 세일입니다.
그 중 회장님께서 사실 곳은 스코르피오스(Scorpios)섬입니다. 이 섬은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소유입니다. 1968년 오나시스와 재클린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가 1억 5천만 유로에 사려는 것을 저희가 작업을 하여 1억 유로(약 1200억 원)에 에스크로 오픈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는 아직 매물이 많습니다. 회장님의 스위스 은행계좌에 있는 자금은 이자가 많지 않아 이번에 잘 이용해 보려 합니다. 김 비서와 자금담당 이사와 얘기를 끝냈습니다. 그리스가 끝까지 버티다가 독일의 압력으로 이제 할 수 없이 국영항공사와 은행, 카지노 등 국가지분을 모두 판다고 합니다.
진짜 알짜는 미술품과 역사적 건축물입니다. 독일이 여기에 아주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알았네, 전화를 끊고 시가 한 모금 빨자 김 비서가 출근시간이라고 재촉한다.
37층 회사사옥에 도착하여 간단히 보고를 받고 박 사장을 불렀다.
“박 사장, 그리스가 역사적인 건축물까지 판다는데, 파르테논 신전을 우리가 사서 한국으로 옮기는 거야, 그러면 관광객을 많이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아, 회장님, 정말 좋은 아이디어이십니다. 그리스 건축물을 모조리 사오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야, 소문 안 나게 추진하라고, 이건희 씨 알면 또 초칠 거야, 그 애들은 별 짓을 다하는 애들이니까, 에버랜드 어쩌고 하면서 말이야.”
“어이, 김 비서, 옆집에 사는 천신일 회장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네, 다이아몬드 반지 2개, 금 목걸이 1개 등 수억 원어치라고 합니다.”
“그까짓 거 얼마나 된다고 언론에서 떠들고 그래, 지난해 내가 가사도우미에게 사준 것보다 적은 금액이잖아, 그런데 말이야, 뒷집에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 집이 48억 원에 경매로 넘어갔다며?”
“네, 맞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얘기를 했었어야지, 내가 사서 자네를 비롯하여 우리 집에 사는 11명의 도우미가 살도록 할 것을… 그나저나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야, 그 양반 노태우 전 대통령하고 사돈 맺더니 딸이 이혼을 하게 되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는 동서지간으로 마당발을 넓히더니 노태우 비자금에 얽히면서 타격을 받았지, 한 때는 해표 식용유가 유명했는데 그것마저 CJ(제일제당)에 넘어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군,
자고로 기업인은 한눈팔면 안 되네, 대표적인 것이 두꺼비 진로 소주야,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생겨났지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아까운 회사가 바로 진로 소주야! 이론은 간단하지, MBA 과정에 봉이 김선달 이론이 나온다고. 그냥 맑은 물 퍼서 감자 썩혀 알코올 원액 만들어 물에 타서 팔면 그만이야, 클레임도 없어, 술 취한 사람이 무엇을 알아, 술이 술을 마시는데, 처음처럼이니 참이슬이니 다 필요 없어, 이효리냐 하지원이냐 차이야, 광고비 차이라고, 이렇게 좋은 사업을 아버지 장학엽 씨가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한 회사를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영등포 신길동에 설립하여 탄탄하게 경영해 오다 1985년 폐암으로 81세에 사망하자 아들인 장진호가 넘겨받아 미국의 쿠어스사와 합작으로 카스 맥주회사를 만들어 잘 나가나 싶더니 유통회사를 비롯한 수 십 개의 계열사를 만들어 결국 망하게 되고 말았지, 건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남태평양의 코딱지만 한 섬나라 통가왕국에다 호텔을 짓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어휴 머리야, 골이 띵하네, 어이 김 비서, 오늘 오후에는 골프약속 취소하고 머리 안 쓰는 사람들과 가볍게 운동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아보게.”
“네, 회장님, 김영삼 대통령과 가볍게 배드민턴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심이 어떨지요.”
“그 양반하고는 대화가 안 돼, 두 문장이 넘어가면 비서가 써 줘야 해, 칠푼이라,”
“그러면 전두환 대통령과는 어떨까요.”
“그 양반도 안돼, 29만 원밖에 없다고 맨날 내가 저녁 사야 해.”
“이번에 그러면 좀 젊은 사람으로 할까요? 철수 씨는 어떻습니까?”
“그 양반 요즘 영희가 근무하는 회사에 밤에 찾아갔느니 안 갔느니 시끄럽던데, 젊은 사람들이 갈 수도 있지 정말 흠잡을 게 너무도 없나 보네, 인생을 어떻게 기스 안 나게 살 수 있나? 여하튼 그 사람은 햄릿의 마지막 페이지를 아직도 닫지 못하고 있다네. ”
“회장님, 그럼 테니스는 어떻습니까?”
“젊은 시절에 좀 했는데, 앨보가 생겨서, 누구 같이할 사람 있나?”
“네, 박근혜 후보입니다.”
“그 양반 요즈음 눈코 뜰새 없이 바쁠 텐데 운동할 시간이 있겠나? 그네가 바꾸네 어쩌내 하고 야단 이더구먼. 그렇잖아도 전화가 왔었네, 좀 도와 달라기에 이렇게 말했네. 공직을 원하는 사람의 자세로서 아버지를 전직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도울 의향이 있다고 했네.”
“회장님, 오늘은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회장님 운동상대가 이젠 없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 있는데 이 사람과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
“하반기에 무대에 나오려고 몸을 풀고 있는 강호동입니다.”
“알았네, 내가 이 나이에 샅바 잡을 일은 없고, 차라리 견디기 힘들다는 최시중 이나 면회 갈라네. 견디기 힘들다고 서울 구치소 옷걸이에다 거미줄로 목을 감고 생 쇼를 하면 어쩌겠나! 같은 처지의 상득이 형님이 알면 마음만 아프겠지.”
그나저나 경기는 언제 풀리려나. 국민 절반이 나는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한다는데 큰일이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확인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선진국은 무엇을 말하는고?
다수 국민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누구를 대표하고 누구를 대변하는가? 국민이 잘 모른다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나 치는 부끄러운 정권이야.
한국경제의 신규 취업자 창출능력을 경제성장률 1%당 6만~8만 명 정도로 보는 것이 정상인데 올해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2%대 중 후반 정도로 예상되므로 이 계산법대로라면 올해 취업자 증가 수는 많아야 15만 명에서 20만 명을 넘기기 어려워. 그런데 47만 명이나 증가했다고 뻥을 치고 있어. 이 사람들을 보면 마치 봄날 산에 오를 때 어미 꿩이 새끼를 품고 있다 화들짝 놀라 달아나면, 새끼들은 머리만 풀숲에 처박고 궁둥이는 다 내놓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단 말이야.
빚내서 아파트를 산 어느 40대 가장의 저주스러운 집이라는 한탄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가?
한국인 98%가 계층상승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회,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길거리에서 멀쩡한 사람을 칼로 휘두르는 미쳐가는 사회. 이 모두가 강남과 강북을 물리적으로 연결한 다리 때문이야. 물리적인 다리가 아니라 마음의 다리를 지도자가 놓아야 하는데 시멘트로 굳어진 불쌍한 영혼 때문에 불가능할 것 같다. 경제는 심리적인 것으로, 대통령이 할 일은 국민이 좌절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품도록 진심으로 호소하는 것인데 자기자랑만 해대니 안타까울 뿐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경제를 바꾼다고, 같은 사물도 부정으로 인식하면 매사가 부정적으로 보인다.
푸른 밤하늘에 빛나는 새벽 별도 춘원 이광수가 연기 자욱한 골방에서 밤새도록 노름하다 소변보러 나와 쳐다보는 샛별은 허무와 좌절의 별이겠지만, 밤을 새워 연구한 과학자가 보는 새벽 별은 환희와 기쁨의 별일 것이다.
에이, 오늘은 몸도 찌뿌둥한데 운동보다는 몸을 풀어야 할 것 같다.
“어이, 김 비서, 오늘은 집에 가서 피로를 좀 풀어야 할 것 같으니 핀란드에서 온 도우미 자꾸지 양에게 자꾸지 물 온도 좀 올려놓으라고 하게, 그리고 오늘 저녁은 미국 메인 주에서 공수해 온 랍스터 요리를 좀 하라고 하게, 그런데 미국인 쉐프는 항상 랍스터에다가 버터를 너무 많이 처바른단 말이야, 오늘은 간단히 찌기만 해서 조선간장에 히로히토 상표의 와사비를 넣어서 찍어 먹고 싶네, 담백하고 향긋한 독도의 맛을 즐기고 싶어, 아일랜드산 기네스 흑맥주 한잔도 잊지 말게.”
저녁을 먹고 자꾸지에 몸을 풀고 나니 눈이 스르르 감긴다. 아, 나는 무슨 복으로 이렇게 행복할까?
잠에 깊이 빠진다. 한참을 자다 보니 누군가 옆구리를 툭툭 차는 바람에 눈을 떴다.
눈을 돌려 올려다보니 제복을 입은 경찰이다.
“여기서 자면 안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울역 지하도다.
아, 일장춘몽이었구나! 어쩐지 찬기가 올라오고 몸이 찌뿌둥하다고 느꼈는데 결국, 꿈자리가 사나웠구나!
오늘 밤은 좀 더 따뜻하게 잔다고 비싼 라면 박스 신라면 블랙을 깔고 잤는데 찬기는 라면 가격과 관계가 없나 보다.
박스라도 잘 만들었으면, 신라면 블랙이 실패하지 않았을 텐데…
아! 하느님, 저를 깨운 경찰이 너무 밉습니다.
하느님, 제에게도 복을 주세요. 수입의 10%를 투자하면 엄청난 복을 주신다는데 하느님 사업도 철저한 자본주의인가 봅니다.
만들어진 신의 사회에서, 차라리 신 없는 사회를 꿈꾸는 어느 홈리스가 가을로 가는 서울의 깊은 밤에 씁니다.
서울역 지하도를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하느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