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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양심
아파트 입구에 커다란 비닐보따리 하나가 며칠째 방치되고 있었다. 투명한 비닐이어서 속에 들어있는 헌 이불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겉에 붙여 논 A4 용지에 “양심주머니, 분리수거대상 제외품목”라고 써 놓았다. 누군가가 헌 이불을 쓰레기장에 버렸는데 아파트 관리자가 보고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과거 90년대부터 시행되어왔기에 이제는 누구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정착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버리는 쓰레기양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박스와 그 많은 비닐과 플라스틱들은 모두 물건을 포장하는데 사용된 것들이다. 조금만 손을 보면 사용할 수 있는 전기제품이나 싫증이 나서 버리는 멀쩡한 가구들도 많다.
우리 집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는 지금까지 아내 몫이었다. 은퇴를 하고나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부터는 내가 그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대체로 집에서 어느 정도 구분해서 쓰레기를 모으기 때문에 분리수거 장소에서 이곳저곳 정해진 통에 버리는 식이다. 그때마다 재활용이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약간 애매한 쓰레기가 있다. 그럴 때는 도로 들고 들어오지 않고 대충 비슷한 곳에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찜찜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면 뻔뻔한 사람이라고 한다. 양심은 얼굴에 나타나는데 얼굴 거죽이 두꺼워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다. 속은 보이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들을 속이기에 더 유리하다. 속마저 잘 감추는 사람도 있다. 현대과학이 자랑하는 거짓말 탐지기도 그런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 된다.
약속을 어기는 거짓말도 있다. 물론 처음부터 거짓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을 더 선호해서 그 약속을 어겼다면 거짓 약속이 되어버린다. 이웃과 협동하지 않는 일, 상호부조에 역행하는 이기심도 거짓의 한 종류다.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도 있다. 가끔 신문에 보면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에 살기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양심을 고백하는 기사도 볼 수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이런 거짓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더 이기적으로 변하여 오늘날을 가리켜 타락한 양심, 도덕 불감증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양심을 그 시대에 맞추어 조금씩 무디게 스스로 만들어간다. 나보다 열배 백배 더 큰 도둑질을 하고도 사람들은 태연히 살아가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자기 합리화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데 그 자체가 다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거짓은 자신의 양심이 증명한다. 그 양심이 무디어지면 세상은 점점 더 거짓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거짓은 나쁘다는 것만으로는 고쳐질 수 없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게 유리하다는 문화가 우리사회에 정착되어야 한다.
아파트 입구에 놓여있던 투명한 비닐속의 헌 이불은 누군가 잘 못 알고 버린 것이라 생각된다. 헌 옷은 되지만 헌 이불은 안 된다는 사실은 분리수거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혼동할 수도 있다. 그 후로는 나도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늘아침에도 쓰레기장으로 가기위해 대충 이리저리 쓰레기를 구분하는데 아내가 커피믹스 봉지는 분리수거가 아니라고 지적해준다. 에고 이를 어쩌나! 2014.09.15. 石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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