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만등가로 향했다. 우선 서문아가 입을 만한 옷과 그녀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그 런 후에 그들이 향한 곳은 만등가의 철방이었다. "이곳엔 뭣 때문에 온 겁니까?" 남궁성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적무강의 과거를 모르는 그로서는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적무강은 간단히 대답했다. "도를 하나 만들려고. 그리고 몇 가지 더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그런데 여기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별 로 신통치 않아 보이는데요." 남궁성의 말에 서문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다. 적무강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훌 륭한 장인 중 한 명이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만들어진 도나 물건이 아니라 질 좋은 쇳덩이뿐이라는 것을. 서문아의 생각대로 적무강은 진열된 무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 다. 대신 그는 철방 안으로 들어가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았 다. 깡깡깡!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후끈한 열기.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적무강이 제일 행복했었던 때는 쇠를 두드릴 때였다. 그 저 한 덩이의 쇠에 지나지 않던 광물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 들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마 음의 고향이란 어쩌면 쇠가 타는 냄새가 나는 철방일지도 몰랐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기라면 밖에 있는데......" "무기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구하시려 합니까? 보다시피 저희는 그저 시골의 허 름한 철방에 지나지 않아 대단한 물건들은 없습니다. 밖에 있는 도와 검도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놔둔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구하려고 하는 것은 양질의 쇳덩이입니다." "쇠를요?" 늙은 장인이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적무강을 바라봤다. 그러자 적무강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얼마 전까지 장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쇠를 조금 다룰 줄 압 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제야 늙은 장인의 얼굴이 펴졌다. 무식한 무인들일 줄만 알았는 데 쇠를 다룰 줄 아는 장인이라니 반가운 것이다. 늙은 장인의 웃음 에 적무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서는 어떤 재료를 씁니까?" "시골에 좋은 재료야 있겠습니까? 그저 쇠라도 좋은 것 쓰겠다는 생각으로 신철(薪鐵)을 쓰고 있습니다. 정철(精鐵)을 쓰면 좋겠지만 이런 시골에서 정철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고 해서 일부러 정련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철 한 근을 정련하면 정철 너 냥이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면 신 철의 정화를 추출한 것이 정철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정철을 추출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이라서 일 반 철방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정철을 가지고 있 는 철방은 무척 드물었다. 적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철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돈만 준다면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요." "그럼 신철 백 근만 부탁드립니다." "아이쿠! 그렇게나 많이요?"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겁니다." 적무강의 미소를 본 늙은 장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침 얼마 전에 들어온 좋은 신철이 있으니 그것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화로는 있습니까? 물건을 만들자면 화로가 필요할 텐데." "물론입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가지고 나올 테니까." 늙은 장인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남궁성이 다가와 말했다. "아니, 형님! 화로가 어디 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소림에도 사람을 따로 두어 계도나 선장 등을 만드는 조그만 철 방이 존재한다. 단지 그 규모가 작고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 알지 못 할 뿐이다." "그래요?" "네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누구도 철방의 존재에 대해서는 심 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 역시 철방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 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적무강의 말에 남궁성이 수긍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늙은 장인이 젊은 장정 두 명과 같이 나왔다. 젊은 장정들 은 서로를 마주 보고 낑낑대며 나무상자를 들고 나왔다. 쿵! 나무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에 들은 게 모두 신철입니다. 그런데 목적지가 어디십니까? 이 것을 갖가려면 힘이 꽤 들 텐데요. 정 가져가기 힘들면 마차라도 불 러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가져가는 것은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값은 얼마나 쳐 드리면 되겠습니까?" "값이라고 해 봐야 그저 쇳덩이일 뿐인데요. 그냥 재료값이나 주십 시오. 은 두 냥이면 되겠습니다." "하하~! 남는 게 너무 없지 않습니까? 은 서냥을 드리겠습니다. 이 익을 남겨야 철방도 운영하실 게 아니겠습니까? 이것 받으시고 혹여 다음에 제가 또 오게 된다면 좋은 철 좀 주십시오." "아이쿠! 이렇게나 많이......" 늙은 장인이 황송해 했다. 사실 무인들에게 무기도 아닌 쇳덩이를 판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려 많이 부르지 못했는데 알아서 더 값을 치러 주니 황송한 것이 었다. 적무강은 미소를 지으며 나무상자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날 오후, 적무강 일행은 다시 소림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내려갈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오솔길로 올라왔다. 거처에 돌아오니 그들이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요하던 곳에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남궁성이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 우리가 보았던 무당파의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우 리 거처의 옆 건물을 무당파에게 내준 것 같습니다." "음!" "하지만 건물이 독립돼 있기 때문에 주의만 하면 지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알았다. 우리는 무당파와 별 상관없이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 니 혹여 문제가 생긴다면 네가 알아서 처리해." "알겠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남궁성이 자신의 가슴을 쾅쾅 치며 호언장담했다. 적무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너희 가문에서 다른 사람은 오지 않느냐?" "원래는 아버지가 오시려 했는데 다른 일이 생겼답니다. 때문에 저한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전서를 보내오셨습니다. 뭐, 그런 이유로 남궁세가에서는 저 혼자입니다. 젠장! 그래도 누가 뒤를 받쳐 줘야 체면이 사는데 혼자서 뭘 하라는 것인지....... 쩝!" 남궁성이 입맛을 다셨다. 다른 문파들은 모두 제자들을 대동하고 장로급 이상의 인물들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남궁세가에서는 딸랑 남궁성 혼자였다. 그러니 남궁성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그러나 남궁성의 엄살이 말 그대로 엄살임을 아는 적무강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구파의 회합이 언제지?" "뭐, 불사에 맞춰 가지게 되니 아무래도 모레쯤이 아닐까 생각합 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사에 모아질 때 모처에서 은밀히 회합을 하겠죠." "그럼 이틀의 시간이 있군. 알았다. 이제부터 나는 소림의 철방에 있겠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곳으로 오라구." "알겠습니다. 그러죠. 참!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 "무공 말입니다, 형수님 말로는 소림의 장경각에서 무공을 익히신 다고 하던데 진전은 있으신 겁니까?" "후후!" 적무강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남궁성의 미간이 대번 찌푸려졌다. "또, 또, 저 웃음! 하여간 자신에 대한 것은 하나도 대답하지 않으 려 한다니까." "미안하다. 하지만 아직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처지라서 말이야." "쳇! 하여간 음흉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남궁성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투덜거렸다. 그에 서문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이 적무강을 향했다. 그러자 적무강이 어색한 웃음을 지 으며 말했다. "앞으로 피곤해질 테니 좀 쉬어요. 난 철방에 갈게요." "알았어요." 적무강이 쇠가 든 상자를 어깨에 걸머지고 자리를 떴다. 서문아는 한참 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거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실마리를 찾았을 거야.' 그녀는 적무강이 달마삼검에서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냈다고 생각 했다. 어쩌면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인지도 몰랐다. 소림승과 적무강은 태생부터가 달랐다. 자비를 근간으로 하는 소림 승과 파괴와 살육의 무공을 익힌 적무강. 어쩌며 그들은 달마삼검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림승들이 놓친 그 어떤 부분을 적무강은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이 말 을 하지 않으니 그의 성취가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서문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남궁성이 그녀의 뒤를 따르며 외쳤다. "어라? 형수님은 무언가 아는 것 같은데 혼자만 알지 말고 좀 말 해 줘요. 도대체 형님 어떻게 된 겁니까? 옛날보다 더 강해진 건가 요?" "나도 몰라요. 그 사람은 나에게도 그런 사실은 말하지 않으니까 요." "에이, 설마요!" "후후!" "엑! 웃음마저 형님을 닮아 가는 겁니까?" 남궁성의 목소리만이 공터에 울려 퍼졌다. 장생원은 일선에서 은퇴한 장로들이 모여 참선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소림 방장과 같은 원자배라 할지라도 특별한 직책이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은퇴한 장로들이 모여 있는 장생원이야말로 소림 최후의 보루였 다. 이곳에는 특별히 경계를 서는 무승도, 진법도 펼쳐져 있지 않 다. 그래도 이곳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마당을 쓸거나 불상을 닥으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승들이 실상은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만약 소림에 특별한 일들이 생긴다면 그들이 나설 것이다. 지금 장생원에서는 소림과 무당의 은밀한 회합이 이루어지고 있었 다. 다른 장소도 많았지만 이곳이야말로 소림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 였기 때문이다. 원광대사가 청송진인을 맞았다. "아미타불!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청송진인." "무량수불! 한 십 년 만인 것 같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비록 거리가 멀어 왕래가 잦지는 않았지만 소림과 무당의 사이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십 년 전에 이미 만난 기억이 있었다. 청송진인이 자신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했 다. "이 아이들은 저의 제자인 고운과 고엽이라고 합니다. 아직 부족 함이 많은 아이들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허허~! 정말 대단한 기재들을 제자로 두셨군요. 무당의 앞날이 밝습니다." 원광대사가 고운과 고엽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무당의 제자 고운이라 합니다. 소림의 방장님을 뵙습니다." 고운과 고엽이 포권을 취했다. 원광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 했다. "아미타불! 이 아이는 저의 제자인 백선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아이는 무비라고 합니다." "오! 그럼 이분이 차기 소림의 방장으로 지명되었다는 백선 스님 이시구려. 그리고 이분이 수대 만에 탄생했다는 철혈나한이구려. 반 갑소!" 원광대사의 등 뒤에 조용히 서 있던 백선과 무비가 인사를 했다. "무당 제일의 고수이신 청송진인께 인사를 드립니다. 불초 말학 백선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 무비라고 합니다." "어허! 반갑소. 내 소문은 많이 들었다오." 청송진인이 흐뭇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른들의 인사가 끝나자 제자들끼리 인사를 했다. 앞으로 소림과 무당을 이끌어 갈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미리 안면을 터놓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앞날을 위해서라도 좋았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차가 식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지요." 원광대사와 청송진인이 자리에 앉고서야 제자들도 정해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래, 오시는 길이 불편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소이다." "무량수불! 저희가 불편할 게 무에 있겠습니까? 단지 천하의 인심 이 피폐해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아미타불!" "사천성에서 십자성과 천왕성이 격돌하는 바람에 인근 성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사재기에 들어갔고, 물건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관에서도 이번 일에 신경을 바짝 곧추세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때문에 백성들만 고달파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단지 인근의 성에 국한된 문제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천하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일개 무림문파들이 격돌하는 여파가 천하를 흔들고 있었다. 때문에 관에서도 일련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단지 사천성의 일개 총타에서 부딪친 것이 이 정도인데 본격적으로 그들이 부딪친다면 얼 마나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인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미타불! 천기의 흐름도 심상치 않소이다. 이대로 두고 본다면 필경 천하에 큰일이 생길 것이오." "저희 장문인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울러 이 말씀을 전 하라 하셨습니다. 무당은 소림의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더불어 이제 산문을 열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고마운 말씀이시구려." 십자성과 천왕성의 등장으로 입지가 좁아진 것은 소림만이 아니었 다. 무당파를 비롯한 구대문파 전체가 강호에서의 주도권을 잃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번 기회를 빌려 강호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주도권도 다시 가져오고자 했다. "다른 문파들도 무당처럼 협력을 해 준다면 좋겠소만." "그들 역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힘을 모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소림과 무당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미타불!" 원광대사와 청송진인은 앞으로 소림과 무당이 나아갈 방향과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구대문파의 회합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의 논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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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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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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