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압운(押韵)'이란 무엇인가?
'압운'이란 시가에서 어떤 구들의 맨 끝 글자를 같은 운모(韵母)나 비슷한 운모의 글자를 사용하여 운을 밟는 것을 말한다. 운모란 주요원음(主要元音)과 운미(韵尾)를 가리키고, 압운한 글자는 운각(韵脚)이라고 한다. 압운이란 시가에 음악미 즉 음률미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다. 시가는 본래 압운을 하는 운문에 속하는데, 구마다 압운을 하거나 한 구 걸러서 압운을 했다. 절구와 율시는 모두 한 구 걸러 즉 짝수 구마다 압운을 한다. 그런데 종종 첫 째 구에도 압운을 하는 것들도 있다. 절구와 율시는 모두 평성운으로 압운하는데, 드물게 측성운으로 압운한 것들도 가끔 있다.
고대인들은 한자의 평성(平声) · 상성(平声) · 거성(平声) · 입성(入声)의 4가지 성조(声调)에 따라 같은 운(韵)의 글자를 한 데 모아 하나의 부(部로) 만들어서 그것을 운부(韵部)라고 불렀다. 운서(韵书)인 『평수신간운략(平水新刊韵略)』에는 106개의 운을 수록하고 있다(이 중에 평성운은 30개, 상성운은 29개, 거성운은 30개, 입성운은 17개임). 이 106개 운을 통상 사람들은 '수평운(水平韵)'이라고 부른다. 절구와 율시는 반드시 같은 운부의 글자로 압운해야 하며, 다른 운부의 운으로 압운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유명한 운서(韵书)로는 수대(隋代)의 육법언(陆法言)이 기원 601년에 지은 『절운(切韵)』이 있다. 당대(唐代)의 손면(孙愐)은 이 『절운』을 수정하여 『당운(唐韵)』을 편찬했다. 이 『절운』과 『당운』은 본래는 압운을 위해 지은 책은 아니고 주로 글자의 음을 달고 분석하기 위해 지은 책이었으나, 당대 사람들은 시가를 지을 때 이들을 사용하여 압운을 했다. 송대(宋代)에 들어와 진팽년(陈彭年), 구옹(邱雍)이 『절운』과 『당운』에 근거하여 『광운(广韵)』을 지었는데, 이 운서는 26,100 여자를 수록했고 유명한 관운서(官韵书)가 되었다. 후에 북송(北宋)의 정도(丁度)는 『광운』에 근거하여 『집운(集韵)』을 지었으며, 다시 이를 과거 시험의 수요에 맞추어 간력한 『예부운략(吏部韵略)』을 지었다. 『집운』에서는 5만여자가, 『운략』에는 9천 여자가 수록되어 있다. 남송 때 수평(水平) 사람 유연(刘渊)이 실제 발음에 근거하여 『예부운략(吏部韵略)』의 운의 분류를 정리하여 『임자신간예부운략(壬子新刊吏部韵略)』을 만들었는데, 이 책에서는 107부의 운으로 나누었다. 이와 비슷한 때에 금대(金代)의 평수서적(平水书籍: 산서[山西] 평수[平水] 지방에서 도서의 인쇄와 출판을 관리하던 관리) 왕문욱(王文郁)은 『평수운략(平水韵略)』에서 106운으로 분류했다(상성의 정운[拯韵]을 경운[迥韵]으로 합병). 그는 평수서적의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후대인들은 그의 운서를 『평수운(平水韵)』이라고 불렀다. 금 시대의 과거 시험의 시작(诗作)에서는 『평수운』을 사용했다. 『평수운』이 후대까지 전해져서 명대(明代)와 청대(清代) 사람들이 시가를 지을 때는 이 『평수운』을 가지고 압운을 했다. 명대에 비록 『홍부정운(洪武正韵)』이 있었지만 널리 통용되지 못 했고, 청대에는 이 평수운에 근거하여 『패문시운(佩文诗韵)』를 지었는데, 모두 106운의 계통을 그대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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