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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잠이 안 온다. 이러다 또 밤 꼬박 새는 것 아냐? 약물제조 할 때 잠이 왔는데, 그때 그냥 잤어야 하는데…”
후회하면 뭐하겠는가, 여전히 잠은 들지 않고 이리저리 뒤척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때 갑자기 카이맨님이 일어나더니 벽을 더듬는다. 한참을 더듬거리는 것이 마치 몽유병환자인 것도 같다.
‘어, 뭐하는 거지? 저러다…. 혹시….’
그랬다. 언젠가 만취한 고등학교 선배와 여관에서 자게 되었는데 잘 자던 이 선배가 갑자기 일어나 벽을 더듬더니 소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카이맨님은 한참 벽을 더듬다 마침내 문을 찾아 화장실에서 무사히 거사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리곤 다시 바로 드러렁… 코고는 소리…
여러 명이 함께 자면 코를 고는 것도 나름대로의 리듬이 있는 듯 하다. 세계일주님이 저음 모드로 가면 카이맨님이 고음으로, 카이맨님이 저음으로 가면 세계일주님이 고음으로 바뀌면서 입으로 야릇한 소리까지 낸다.
날 이토록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은 카이맨님과 세계일주님의 코고는 소리가 아니다. 아마도 대회의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평소엔 생각도 나지 않는 많은 것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망할 놈의 휴대폰 액정도 맛이가 세계일주님의 폰을 보니 2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그렇게 잠들기는 틀렸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일어나세요.”
그래도 2시간은 넘게 잤겠다. 비행기에서 부지런히 잔 것이 조그만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몸은 많이 처지지만 하루 잠 제대로 못 잤다고 제주대회를 접을 순 없지 않는가. 조심스레 컨디션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 본다. 짧은 연습수영이었지만 컨디션이 최소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시작 30분 전에 몬스터밀크를 마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보급을 시뮬레이션 해 본다.
수영 1랩 후 파워젤 하나 먹고, 물 한잔하고, T1에서 호두과자 12개와 우유를 마신다. 출발하는 잔차엔 약물(파워젤 10포+칡즙2포)와 유바물통이 있으니 보급소 마다 물 한 병씩만 보충하면서 스페셜푸드까지 간다. 주최측 스페셜푸드엔 우유와 호두과자 12개, 클럽 스페셜푸드엔 우유와 호두과자 12개, 포도캔, 약물(파워젤 10포+칡즙2포)을 맡겼다.
완주 다음으로 중요한 목표. “다 먹자”
‘그래, 수영만 하고 나면 나머진 땅에서 하는 거니 먹고 마시면서 달리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쾌조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1시간 10분 그룹에서 출발한다. 일단 깡통님 피를 빨기로 작정하고 뒤에 붙었다. ‘고마운 깡통님, 몸빵까지 해 주면서 참 잘나가신다.’ 주제 넘게 깡통님 수영동영상에 댓글을 단 게 미안하게 느껴진다. 병목현상 구간인 반환점에서 깡통님을 놓쳤으나 한 사람 한 사람 무리하지 않고 따면서 드레프팅을 이어간다. 1랩 후 파워젤을 먹고 물을 마시며 2랩은 당겨 보기로 한다. 해운대 보다 탁한 느낌의 바닷물과 선수들을 헤집고 첫 번째 부표를 확인하고 좀 더 당기려는 순간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등에 있던 슈트 끈이 쑤욱 내려간다. 순간 당겨진 몸의 어깨까지 짚어 온다. ‘용서 못해!’ 그 놈의 발을 잡는 순간 눈 앞이 번쩍! 볼에 걸친 수경을 수습하며 앞을 확인하니 서너 명이 엉켜 있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젠장, 이 뭔 일이란 말인가.’
급하게 슈트 끈을 수습하고 다시 수영을 시작하지만 목 뒤로 홍수가 난 듯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다시금 슈트를 여미고 출발하지만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확실히 내가 따는 사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고 나간다. 흐트러진 폼이 첫 부표를 돌면서도 수습이 되질 않아 다소간의 몸싸움을 감안하고 로프를 따라 돌기로 한다. 다행히 로프 쪽엔 예상 외로 사람들이 별로 없다. 조류로 인해 다소 휘어진 길을 가더라도 헤드업 없이 오른쪽 호흡만으로 가니 비로소 다시 편해지기 시작한다.
발 끝, 아니 손 끝에 잡히는 모래 감촉은 언제나 부드럽고 반갑다. 손이 닿을 때까지 수영을 하고 샤워기에서부터 슈트를 벗으면서 뛴다.
----- 수영 1시간 18분
불의의 사고로 수영에서 지체한 시간을 만회하자니 서둘러야 한다. 일 초라도 빨리 보급품을 받고픈 마음에 사백일번을 외치면서 갔다. 다행히 한 순간의 버려짐도 없이 내 손에 전해지는 바이크백.
경기복 하의로 전 경기를 치르기로 한 건 정말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빕숏을 포함에 필요한 모든 용품들을 물품백에 챙겼다. 새로 산 고어저지와 떙떙이저지까지… 귀챦지만 옵션이 많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비록 몇 미터지만 탈의실까지 들어가지 않고 보도턱에 주저앉아 우유와 호두과자를 먹으며 발을 씻으려 생수를 따려는 순간,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 1.5리터 물병을 들고 있다. 일단 내 물은 아끼자. “저기요, 물 좀 써도 될까요?” 그렇게 얻은 물로 발을 씻고 호두과자 6개에 우유를 폭풍흡입하고 아껴 둔 물은 여분의 케이지에 담고, 호두과자 6개는 주머니에 담고 출발을 한다. 이 짧은 순간의 판단은 경기 내내 아주 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무게가 다소 늘긴 하였지만 어차피 몇 백그람의 추가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 장거리 라이딩 동안 가지고 있는 든든한 보급과 2군데나 준비한 스페샬푸드는 참으로 여유 있는 라이딩이 가능하게 해 주었다.
----- T1 6분 4초
최대한 빠른 속도로 사이클 출발선으로 향했다. 마음은 동영상에서처럼 달리면서 바로 안장에 뛰어 오르고 싶었으나 항상 마음 뿐이다. 안장이 언제 배신을 때려 엉덩이를 찔러올지 알 수가 없기에 여느 때처럼 출발선에서 얌전히 안장에 올랐다. 그리곤 일단 왼발을 페달링을 시작하면서 클릿을 끼우는데 당최 결합이 되질 않았다.
‘줸장~, 역시 수영에서 멘붕이 왔던건가?’
몇 번을 더 클릿을 결합하기 위해 애쓰다 신을 보니, 아뿔사, 클릿보호커버가 있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커버를 벗겨 주머니에 넣고 그제야 페달링을 시작했다. 역시 아니라 해도 대회의 긴장감은 여기저기서 실수로 나타난다. 다만 아직 경기력에 영향을 주고 있는 수준은 아니니 다행일 뿐이다.
잔차와 주머니가 두둑하다. 유바물통에 가득 찬 물, 조제약물 1통, 500ml 생수1통. 주머니엔 호두과자 6개와 여분의 파워젤 4개, 클릿보호커버. 마음까지 든든해 진다. ㅠㅠ
화순해수욕장에서 중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에 접어드는데 땡떙이저지를 입은 국도님이 추월해 나간다. 중문까지 이어지는 얕은 오르막을 가뿐히 오르는 국도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드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웜엄을 위한 페달링을 계속 했다. 중문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에선 절대 무리하지 말자고 내내 생각을 했었던 터라 케이던스, 속도 무시하고 심박만 모니터링 하면서 가려는데 이건 또 뭔 초보자다운 실수인가. 심박계를 차지 않고 나온 게 아닌가. ‘줸장, 혹시 또 뭐 빠뜨린 건 없나?’짧지만 경험을 믿기로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호흡이 거칠어 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기로 하고 라이딩에만 몰두해서 달렸다.
중문을 지나 내리막을 얼마쯤 가다 보니 어라, 저기 멀리서 떙떙이저지가 보이는 것 아닌가. 국도님이다. 호흡이 편안한데 국도님을 벌써 만나다니… 혼자 가느니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국도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붙었다. 한참을 그렇게 국도님을 따라 가는데도 별로 무리가 되질 않았다.
첫 보급소. 보급에 들어가는 국도님을 뒤로 하고 계속 달린다. 난 이미 많이 가지고 있질 않은가. 계획한 데로 약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 호두과자를 하나 까먹고 물을 마시며 계속 달린다. 이제 신이 나기 시작한다.
곧 날 추월해 가는 국도님 뒤를 계속 따르는데 국도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을 하신다.
“칵테일님, 무리하지 마시죠.”
뭔가 대답을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컨디션이 국도님을 따라갈 만 하여 계속 붙어서 갔다. 그렇게 국도님 뒤를 따르며 다른 선수들에게 따이고 따면서 한참을 달리는데 국도님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신다. 유바를 도무지 잡을 수가 없다고… 그랬다. 난 그냥 나쁜 컨디션은 아니고 수준에 맞는 라이딩을 하고 있는데 국도님의 컨디션 문제로 함께 달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 하늘이 나의 도전정신에 감응하여 국도님을 애꿎은 몸빵으로 만들어 주신 거구나.’ 더욱 열심히 달렸다.
아!,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
쇠솟깍, 남원을 지나 해변도로로 접어 드는 순간, 해변에 펼쳐진 검은 갯바위와 그기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 비 오는 날씨답게 바다물도, 하늘도 색깔이 다양하다.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 형언하기 힘든 시원함을 만끽하며 주제 넘게도 가끔, 아주 잠깐씩 국도님을 앞서 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뒤를 따를 때도 나름의 자존심을 세우며 완전한 피빨기 보다는 살짝살짝 비켜 서서 달렸다. 사실 젖은 노면을 뒤따르자니 앞에서 튀어 오는 물을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컸다.
보급소를 지날 때마다 약물을 마시고 호두과자 하나 먹고 물 한모금을 마셨다. 유바물통이 비워지는 만큼 생수를 채워 넣고 생수통이 비면 그제야 보급소에서 달리는 채로 생수병을 받아 들었다. ‘캬~ 달리는 잔차에서 물병을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전달 받았다. 역시 난 참 대단해! ^^’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목례라도 하면서 달렸다.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느낌.
그렇게 스페셜푸드존에 도달할 때까지 약물을 거의 소진하고 스페셜푸드에선 수박 한 조각과 맡겨 둔 우유와 호두과자만 먹고 바로 출발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안개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젖은 노면에 안개까지… 일 때문에 제주는 작년부터 자주 왔던 터라 제주의 안개가 어떤 지는 이미 알고 있다. 더구나 중산간도로에서 안개를 만났다면, 도로까지 젖어 있는데…
한참을 달려도 돈내코가 나타나질 않는다. 몇 번의 언덕을 만난 것 같은데 돈내코를 지나버린 걸까? 살짝 후회가 되었다. 클럽 스페셜푸드에서 좀 쉴랬는데… 그렇게 짙은 안개 속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돈내코가 시작 되었다. 심박이 150을 넘어가는 느낌이 들며 호흡이 다소 거칠어지지만 돈내코 초입에서 잠시 주춤했을 뿐 25T로 계속 오를 수 있었다. 이건 곰내재 보다 못하지 않은가. 많은 끌바의 추억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언덕이란 언덕에서 끌바를 안 해 본 곳이 없는데 돈내코를 이토록 여유롭게 오르다니…. 짙은 안개가 야속하다. 이런 자랑스런 모습이 안개에 가려지다니…. 짙은 안개 속에서 연이어 터져 나오는 파이팅 소리와 ‘이제 다 왔어요.’라며 격려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페달링을 했다.
그런데 오를수록 엄습해오는 불안이 있었다. 도무지 우리 자봉차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트럭도 왔을 텐데… 혹시 지나친 건 아닐까? 보급을 하고 쪼매 쉬고 가야 하는데…’
승합차는 모두 은색에 허 번호판이었다. 도무지 우리 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불안함에 재미로를 외치며 달리는 데, 저기 멀리서 비로소 트럭이 보였다. 아, 그 기쁨이란…
오롯이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세상에 그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아마 성민이, 달공주님, 햅번님, 소피님도 안개 속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것이다.
마치 완주를 한 듯한 마음을 추스르며 짙은 안개 속에, 나무 그늘에 숨어 소변을 보고 콩국수 한그릇을 받아 들고 맛있게 먹긴 했지만 어제 산 콩국이 많이 불어 있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준비한 우유를 마시고 호두과자 12개는 주머니에 넣고 다시 출발했다.
아, 그런데 또 빠뜨린 게 있는 것이 아닌가. 주먹밥은 혹시 목이 매일까, 혹시 그래서 다른 보급품도 못 먹게 될까 패스했는데 포도통조림을 두고 그냥 온 것이었다. 역시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최대한 많은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여기저기 심어 놓고 준비해 놓으니 한 두 개 빠트려도 부담이 되질 않는다.
다시 울리불리를 향해 열심히 페달링을 하는데 언젠가 카이맨님께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내리막 탄력을 이용해 한꺼번에 오르려는데 안되더군요.’ 그랬다. 눈에 빤히 보이는 11개의 언덕이었지만 결코 짧지 않았고 경사도도 만만찮은 곳들이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었다. 울리불리 이후 20 여km에 이르는 내리막에서 회복을 하더라도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과 이어지는 마라톤.
이제 국도님을 놓아드리기로 한다. 그렇게 국도님을 보내드리고 혼자가 되니 비로소 실수였다는 걸 깨닳고 뒤늦게 속력을 내 보지만 더 이상 국도님은 보이질 않았다. 페달이 점점 무거워진다고 느끼는데 대여섯 명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추월해 갔다. 잠시 뒤를 따르다 보니 모두 만만한 사람들이었다. 스페셜푸드 이후에도 새로 받은 약물과 호두과자를 보급소를 지날 때 마다 먹었다. 호두과자는 외롭게 느껴지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하나씩 까 먹으며 달렸다.
그렇게 몇 개의 언덕을 넘고 나니 나를 포함한 세 명이 함께 라이딩을 하고 있고, 긴 내리막에선 단 한명의 추월도 허락하지 않고 추월을 하며 달렸다. ‘캬~ 역시 내가 내리막에선 쫌 달리지. ^^’ 저지를 지나 중문으로 향하는 일주도로에 접어들어서도 계속 한 명씩 추월하며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실망스러운 광경인가. 라이딩이 그 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마라톤 코스엔 이미 많은 선수들이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히 사이클에서 추월 당하기 보단 추월하면서 온 것 같은데, 주로는 선수들로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점프 했나? 많아도 너무 많챦아. ㅡㅡ^’
드디어 마주 친 사이클 하차 지점. 진행자가 내 배번을 큰 소리로 외쳐 준다.
“401번 선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감격의 연속이다. 지난 세 차례의 올림픽코스에선 한 번도, 단 한 번도 배번이 불리운 적이 없었는데, 벌써 세 번 째다.
----- 사이클 7시간 28분 30초
사이클 골인 직전까지 호두과자를 까먹고 약물을 마셔 보급은 충분하였기에 해 받은 런백에서 급히 양말과 신을 신고 고운 피부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선크림을 가진 진행요원에게 부탁하여 얼굴과 팔에 선크림을 도포하였으나 땀 때문에 겉돌기만 하였다. 내려지지 않는 경기복 등 쪽을 부탁하여 내리고 마라톤을 시작하는데 다시 불리는 나의 배번…
“401번 선수가….. 수박을…. 다.”
갤러리들도 길을 따라 쭈욱 늘어서서 너나 할 것 없이 선수들을 응원해 준다. 컨디션이 최소한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래, 다는 못 뛰더라도 절대 팔은 내리지 말자.’
그렇게 달리다 보니 카이맨님, 세계일주님, 국도님, 깡통님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칠복스님이 보이질 않는다. ‘이 사람 설마 벌써 골인한건가?’
카이맨님은 연신 “대박”을 외쳤다. 그랬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대박이었다.
세계일주님은 “끝까지 뜁시다.”라며 격려해 주신다. ‘그래, 정말 대박 내 보자.’
국도님은 물통 주변에서 “힘들다.” 하는데 표정은 별로 힘들어 보이질 않는다. 설마 나를 견제하는 걸까? 혹시 물방울이 신에 닿을까 물통을 빙 돌아 한모금의 물로 입만 적시고 얼음 세 개를 받아 하나는 입에 물고 양손에 하나씩 쥐고 계속 달렸다.
그리고 만난 깡통님, 걷고 있었다.
‘칠복스님, 카이맨님, 세계일주님, 국도님은 앞서 달리고 있고, 깡통님을 딴다면…. 5등이네. ㅎㅎ... 쭈꾸미... ^^’
두 바퀴째를 시작하니 그래도 10분 정도는 줄어든 것 같았다. 망상은 2랩을 나로 하여금 뛰게 만들었다. ‘끝까지 뛰면 마지막에 승부를 볼 수도 있겠다.’
이어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무척 힘들었지만 계속 달렸다. 2랩을 시작하는데 저기 인도 쪽 나무그늘로 세계일주님이 걸어가는 게 아닌가. ‘흠, 역시 철인이야, 걸을 땐 팬들의 눈을 피해 인도로 가야 하는구나.’ 그러나 나중에 알았다. 그 순간 나는 세계일주님을 딴 것이었다.
3랩 째, 내리막을 내달리는데 왼쪽 엄지발가락이 또 다시 혼자 춤을 춘다. 지난 경주벚꽃마라톤 때 35km를 지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보조에 따라 엄지발가락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였다. 최대한 통제범위로 끌어 당기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한참을 함께 가던 옆 주자를 보니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사람과 나란히 뛴(?) 지 오래 됐는데… 난 뛰고 있는데… ㅡㅡ^
“걷는 거나 뛰는 거나 속도가 같네요.” 말을 내뱉자 마자 그 선수가 파안대소를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걷는다고 편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뛰어도 힘들고, 걸어도 힘들고, 웬일인지 속까지 거북하고 불편해지기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마라톤 연습이 참으로 부족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걷는 것도 속도가 다르다. 걷는다고 다 같이 걷는 것이 아니었고 뛴다고 다 같이 뛰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 열심히 뛰어서 한 시간 빨리 가서 쉬느냐, 쉬면서 완주하느냐의 짧은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비로소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달려도 깡통님 따라잡기 어렵듯, 계속 “칵테일님 대단합니다.”를 외쳐주던 견리사의님이나 부상에도 불구하고 철인정신을 보여주는 칼페님도 나를 딸 수는 없을 것이다. 으름장님께 따이는 순간(주로에서 으름장님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5등은 물 건너 갔지만 그래도 7등은 하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다만 걷는 것도 처지는 나의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 하지만 후회한들 어쩌겠는가, 이제 마라톤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다.
힘든 마음에 달공주님께 엄살을 부리며 받아 든 밀감을 맛있게 먹으면서 달공주님의 말을 따라 보기로 했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앞만 보고 뛰세요.”
명심, 또 명심하면서 내리막임을 위안 삼아 달렸으나 이미 짙게 드리운 어둠은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 그냥 쉬면서 완주만 하자. 내일 일도 해야 되잖아.’
마지막 바퀴를 돌아 골인지점으로 향하다 다시 마주친 칼페님, 이미 해 맑은 모습은 사라지고 파이팅을 외치는 나에게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있지만 뛰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질주였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보급소에서 자봉하시던 아주머니들의 격려, 마지막 체크포인트를 지나는 순간 진행요원이 건네는 인사… “이제 끝났네요. 축하합니다.” 나지막했으나 참으로 온 몸을 감싸오는 따스한 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점. 기대했던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결승점 양 옆에 늘어선 예닐곱 명의 선수와 자봉들, 그들의 손을 일일이 마주치면서 들어가니 결승테이프도 있었다. 번쩍 치켜든 손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햅번오빠님과 소피블루님, 그리고 성민이.
그랬다. 비록 철인다운 모습의 완주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는 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 마라톤 6시간 49분 15초
----- 종합 : 15시간 46분 48초
철인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강인한 체력과 멘탈.
오랜 시간 일상 생활 속에서 훈련을 하고 대회가 끝나면 바로 일상으로 복귀한다.
칠복스님이 하루 빨리 당신의 레이스를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길 바라며, 함께 뛴 회원님들과 물심 양면으로 응원해 주신 회원님들, 무엇보다 으름장님의 든든한 아들 성민이와 자원봉사를 해 주신 달공주님, 햅번오빠님, 소피블루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제가 후기를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듯, 길지만 저의 글이 대회를 준비한 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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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내년엔 꼭 도전해보겠습니다
여주 찍고 제주로 고고씽~ ^^
정말 대박입니다.
우병수 철인님!
철인 등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년에는 대야도 함께 하겠습니다.
대박까지는 그렇고 내년에 함께 뛸 생각하니 벌써 흥분이 되네요. ^^
집중력의 대가이십니다!!
입문 일년반만에 철인등극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우철인님 힘!!
칼페님이야말로 집중력의 대가! 내년엔 해 떨어지기 전에 들어가요. ^^
아주 자세한 상황과 심리묘사가 일품입니다. 철인이 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글이 너무 길었지요? 오래 달리다 보니 적을 거리도 많네요. ^^;
수고하셨슴니더~흠....호두과자^^, 저도 천안서 주문쩜 해야겠네요
참고로 견리사의님은 호두과자 실패. 호두과자도 미리 맛 보셔야 할 듯...
알렉님도 여주 찍고 제주도서 함께 달려요. ^^
철인등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저의 아나고 협찬이 한몫하였지요?ㅋㅋ 많은분들이 완주에 걱정하실때 전 완주는 당연히 호기록까지 내다봤습니다.암튼 부럽고 대단하십니다. 칵테일님 열정에 큰 박스드려요^^히~~임!!
호기록을 내서 아나고값 해야했는데 부끄럽습니다.
큰박스는 언제 어디로 받으러 갈까요? ^^
잔차는 나하고 비슷하네요.ㅡㅡ"
내년 동마에서 같이 뛰봅시다.나인님말처럼 저력을 보여주엇군요. 철인등극 축하합니다^^
잔차야 으르장님께서 워낙 페이스를 낮추신 게지요.
마라톤은 10월에 경주동아와 내년 4월 경주벚꽃 예정입니다. ^^
내년에 정말 대박이 기대됩니다 칵텔님 화이팅!
내년엔 정말 대박 내겠습니다. ^^
철인등극 격하게 축하드리며 이분위기로 내년까지 간다면 일진엉아로 변신할듯합니다 ㅎㅎ 라이딩내내 저를 괴롭혀주셔서 감사합니다 ^^
ㅋ~ 국도님 덕에 편한 라이딩 했죠 ^^
계속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릴테니, 국도님도 긴장하세요 ^^
우병수 철인님...축하드리고 존경합니다.ㅎ
하이고~ 축하야 당연한데, 존경은 아직 아닌 듯,,, ^^;
그래도 대단은 하죠?! ^^
2014 제주..
제1편: 삼국의 정립 편.
(부제:전쟁의 서막)
벌써 내년이 기대됩니다..^^
ㅋㅋ~ 운동 열심히 하고 계시죠? 내년엔 저도 마라톤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숨은 인재가 칵테일님이네요...
즐거운 대회 마친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회복 잘하세요...
어제 lsd로 3시간 달렸는데 송이님의 조언 많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귀찮게 해도 내치지 마세요 ^^
우와~이 모든 음식의 칼로리합이 얼마인지 알고 시퍼요ㅋㅋ 완주의 기쁨을 호두와 함께 오래도록 누리셔요^^
이글을보고저는칵테일님의
팬이되어버렸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