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종교, 무교(巫敎)
한국의 전통종교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가장 먼저 무속을 생각하지만, 무속을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하지 종교라고 생각하지를 않는다. 그러면 우리의 전통종교는 존재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전통종교는 삼신을 창조신으로 받드는 신교(神敎)에 뿌리를 둔 무속(巫俗), 즉 무교(巫敎)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종교인 '굿'은 시베리아 북방민족과 같은 샤마니즘이 아니며, 개인의 기복만을 추구하는 저급 기복신앙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 무교(巫敎)는 인류 창조의 신(神) 인 삼신(三神)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유인시대를 거쳐 한인시대에 우리의 조상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행한 것은 하늘에 감사의 뜻으로 올리는 천제(天祭)였다. 한웅 시대에 와서는 참교(眞敎)라는 이름으로 삼신사상이 활짝 피어나, 소도(蘇塗)를 비롯한 무교의 근간이 되는 많은 형상과 이론이 정립되었다.
무교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절대적 힘을 지니고 있는 유무형(有․無形)의 존재 즉, 자연의 힘에 대하여 간절히 기원하므로 인간에게 초복축사(招福逐邪)를 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상고시대엔 '요천(繞天)'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요천이란 멀리 지나간 일을 되새겨서 근본에 보답함은 곧 금생(今生)을 거듭하여 뒤에까지 계속하여 보전코자 하는 가르침이라 했다. 이것이 바로 예맥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마한의 소도(蘇塗)라는 제사의식이다. 이것들을 종합하면, 소도라는 신성한 곳에서 동쪽을 향하여 재물을 바치고 북을 치며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서 뜨는 해와 달을 맞이하는 요천의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굿의 기원이며, 지금도 무당들이 행하고 있는 일월맞이 굿이다.
이렇게 시작된 무교는 인간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어서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 마을 단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우리 민중들과 함께하여 왔다. 이렇게 민중들에게 굿을 통하여 무교의 가장 큰 근본인 '생생지생(生生之生)'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며 실천해 온 것이다.
생생지생(生生之生)이란, 우주의 만물에는 모두가 생명이 있으며 각자 서로의 생명을 중요시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정신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있는 모든 사물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사물을 존중하여 신(神)으로 승화시킨 말이 바로 '만신(萬神)'이며, 이를 섬기는 사람 즉 무당을 만신이라고도 부른다.
굿이 종교적 가치로써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마을의 도당굿이나 부군굿을 할 때 굿의 중간이나 또는 굿을 다 마치고 난 뒤, 무당과 그 굿판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한마당 걸쭉하게 춤을 추고 즐긴다. 우리는 이렇게 굿판 마지막을 함께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같은 민족으로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면서 굿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이웃 간에 생긴 반목과 개인 간의 오해와 갈등을 모두 한 순간에 다 풀어버리고, 서로 협력하여 마을의 발전과 개인의 번영을 위하는 상생(相生)의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굿을 통하여 화해동참(和解同參)과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이루어 냄으로써 민족 대동단결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여 온 것이 과거 일제로부터 탄압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무교를 속된 풍속이란 뜻으로 무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 무교의 추락은 외래종교인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김유신이 천관녀 집을 찾은 백마(白馬)의 목을 칼로 내려칠 때, 벌써 무교는 그 시대의 중심세력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한다. 천관녀는 기생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무당이었다. 그 당시 불교를 중시하던 신라의 시대 흐름에 반하여 무당인 천관녀(天官女)와 관계를 계속 가지는 것은 귀족사회에서 일탈하는 행동으로, 출세를 위해 천관녀와 관계를 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무교가 외면받기 시작한 것은 권력의 중심세력이, 호국불교 즉 왕권강화라는 명목을 들고 온 불교가 생생지생을 강조하는 무교보다 입맛이 맞았기 때문이다.
종교의 경전은 타민족을 동화시키는 '사상 주입서'라고 할 수 있다. 무교의 몰락은 바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무교의 탄압이 극에 달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를 돌이켜 보라. 그 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시대는 우리 것을 생각할 수도 없는 남의 정신으로, 남의 시각으로 살아가던 시대란 것을 알 수 있다. 즉 남의 종교 즉 타민족의 이념과 사상으로 물들어 버린 우리들은 우리 것을 폄하하고 매도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전통문화라고만 생각하는 굿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살아 숨쉬는 민족종교라는 것임을 인식할 때, 민족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진정한 자주국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남의 정신으로, 남의 시각으로, 남의 잣대로 우리의 민족종교인 굿을 미신이라고 매도하고 무교를 믿고 따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교가 지니고 있는 민족종교로써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우리 스스로 무교를 인정하고 그 위상을 세워줌으로써 무교와 굿은 이 땅에 영원히 계승 발전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무교는 바로 오랜 세월 우리 어머니들의 삶 그 자체였고, 생활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 글; 조 성 제,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상고사> (민속원)
출처: 사랑산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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