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레이로 두 번째 도전도 실패한 왕시루봉을 대신한 지리산 서북 능선

[雲峰]

<2018년 10월 7일>

'성삼재 → 노고단 대피소 → 돼지령 → 문수대 → 질매재 → 문바우등 → 왕시루봉 → 구산리'의 19km, 9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1

만복대[萬福臺]

높이: 1,438.4m

위치: 전북 남원시 주천면

만복대는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만복대라는 이름은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또한 만복대 능선은 경사가 완만해 나이든 산악인도 무난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펑퍼짐한 시골 아낙의 엉덩이처럼 풍만하고 넉넉해 보이는 만복대는 산을 찾는 이들을 심성 좋게 품어준다. 가을이면 온 능선을 뒤덮는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억새 사이를 걷노라면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진다.

정령치(鄭嶺峙)

1.172m

정령치(山內面 德洞里, 해발 1,172m)의 표기는 정령치(正嶺峙)로 표기하기도 한다. 아직도 옛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넓은 산상 주차장과 휴게실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만복대(1,420m)의 등반기점이기도 하다.

정령치는 서산대사의 "황령암기(黃嶺岩記)"에 의하면,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이곳에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고단 입구의 성삼치(姓三峙)와 바래봉 남쪽의 팔랑치(八郞峙)도 각각 각성바지 3명의 장군과 8명의 병사가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정령재 정상에 올라서면 바로 눈앞에는 유순하게 흘러내리는 만복대가 다가오고, 운봉 평야가 멀리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꾸불꾸불하게 포장된 정령치 도로도 보인다. 반야봉의 큰 덩치가 시야에 잡히기도 하여 사방의 전망이 탁 트인 게 시원하다.

작은 고리봉, 큰 고리봉

지리산 서북릉에는 지형도상에 고리봉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정령치 너머의 고리봉(1,304m)을 큰 고리봉, 또 하나는 성삼재와 묘봉치 사이에 있는 고리봉(1,248m)으로 큰 고리봉보다 낮다 하여 작은 고리봉으로 불린다. 고리봉하면 큰 고리봉을 말하는데, 일명 환봉이라 한다. – 한국의 산하

등산방에 설악산 공룡능선에 대해 환상을 가진 친구가 몇 있어 8월 초에 "그래, 가자 공룡!"이라는 산행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세울 당시 설악산 단풍철을 10월 중순으로 생각해 그 시기를 피한 10월 첫 주말인 6일~7일 1박 2일 여유롭게 다녀올 생각이었다. 물론 10월 9일이 한글날로 휴일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자 1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내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대피소 예약을 하면서 바로 밝혀졌다. 당연히 오픈 시기에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을 거로 생각했는데, 단풍철 성수기라는 이유로 추첨으로 예약을 받았다. 그나마 선착순은 자신이 있었는데…. 산행 의사를 밝힌 거의 모든 친구가 추첨에 참여했으나, 흥수만 유일하게 선택 받았다. 10여 명의 참여 인원 중 우리가 확보한 대피소의 자리는 4 자리에 불과한 상황이다. 일단은 플랜 A로 당첨은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든 결제를 하지 않은 빈자리를 선착순으로 확보하는 것! 당일 또는 하루 전에 취소하는 자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플랜 B로 체력이나 산행 경험상 비박이 어려운 친구는 대피소에서 자고 나머지는 비박을 하기로 했다. 비박 초보자의 경우 그에 대한 환상이 있어 오히려 그것을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몇 친구는 산행을 취소하기도 해 동숙, 명신, 진아, 서기, 인형, 주행, 창우, 흥수, 희제, 나 최종 10명이 산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플랜 A의 대피소 자리 확보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매일 매시간 국립공원 관리공단 예약 페이지를 방문해 취소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중에도 플랜 B의 비박을 원하는 친구에게 가성비 좋은 필요 장비에 관해 소개했다. 그렇게 설악산 공룡 단풍산행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데, 10월 초 "콩레이"라는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기상청에 의하면 콩레이는 우리가 설악산을 방문하는 딱 그 시기에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설악산이 속해 있는 강원 영동 지역의 예상 강우량이 100~300mm로 적지 않다.

일단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벨 것이라 다른 예약자가 취소하기를 기다려 예약할 생각이다. 아쉽지만 우리 10명 중 몇 명은 체력과 건강을 생각해 이번 산행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관리공단에서 태풍을 이유로 산을 폐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비한 플랜 C도 만들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어쨌든 막상 출발하는 당일까지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의 눈으로 대피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10월 4일 11시 37분 소청 대피소 대기 신청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 바로 4명 대기에 올렸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갑자기 설악산만 대피소가 "예약 불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해서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대피소를 폐쇄한다는 것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이번 설악산은 틀렸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는 순간, 정확히 12시 49분에 "[예약전환] 소청 2018-10-06(4명) 결제:2018-10-05, 22:00까지"라는 문자가 왔다. 다시 공단으로 전화를 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일단 결제를 하란다. 취소하더라도 별도의 수수료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볼 것도 없이 바로 결제하고 일말의 희망을 품고 추이를 지켜보는데, 1시 49분에 대피소 결제 취소 메일이 날아왔다. 상황 종료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고 10월 둘째 주인 13~14일에 도전할 예정이다. 당일 영남알프스 1박 2일 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참여 인원에는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그리고 예약 페이지의 상태는 예약불가로 바뀌고, 곧 이어 지리산 대피소도 예약 불가로 바꼈다.

어쨌든 10원 첫째 주 산행을 무산 시킬 수 없어, 지난 겨울 심설에 포기해야 했던 왕시루봉에 도전하기로 했다. 다른 팀은 토요일 우중 강변 걷기를 하기로 했다. 다만 나도 초행이고 코스가 길지만 특별한 탈출로가 없어 별도의 공지 없이 몇몇 신뢰할 수 있는 친구에게만 연락해 산행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7일 일요일 지리산은 콩레이의 영향권을 벗어나 날씨가 좋은 것으로 예보하고 있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7일까지도 대피소 예약 불가라는 것으로 이 뜻은 산행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믿고 왕시루봉을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토요일 막차를 수원파인 낙진, 창우는 수원에서 나는 용산에서 타고 가기로 했다. 그때까지 흥수는 일 때문에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다.

2 - 1

생각보다 버스가 빨라 기차 출발 20여 분 전에 역에 도착해 멤버십 라운지에 앉아 있는데 흥수로부터 차표가 매진이라는 연락이 왔다. 매진인 이유는 용산에서 수원으로 가는 마지막 차라 그 구간만 매진이고 수원 이후는 텅텅 빈다고 일러주었다. 해서 흥수가 역으로 오는 동안 내가 미리 표를 사기로 했다. 매표소 직원도 수원까지만 입석이라며 그래도 사겠냐고 물어보았다. 말이 필요 없이 당연히 표를 사서 흥수를 기다렸다. 도착한 흥수와 차에 타 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다. 어디서부터인지 기억에 없지만, 텅 빈 기차 좌석 두 개를 차지하고 누워서 잤다.

구례구역(求禮口驛)에 도착한 기차에서 다른 칸에 있던 낙진, 창우와 인사 후 바로 성삼재행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다. 3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4시 15분경 성삼재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버스에는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몇 없고 대부분 애를 동반한 아빠였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이 산을 통제한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신중하게 들었어야 했는데, 흘려듣고 등산 장비와 복장을 정비 후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4시 18분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랜턴을 켜고 오르는 길은 콩레이의 영향인지 계곡 물소리만 요란했다. 5시 3분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대피소 LED 전광판에 "지리산 주 능선 10월 8일까지 통제"라는 글이 지나가고 있었다. 해가 뜨면 통제가 풀리겠지, 아니면 월담하지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대피소 취사장에 짐을 풀고 각자 볼일을 본 후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었다. 5시 40분경 대피소를 떠나 노고단 고개에 도착한 시각이 5시 52분이다. 그런데 노고단 고개를 향해 올라가는데 우리가 아침을 먹는 동안 노고단에 갔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가족 단위의 가벼운 복장의 사람은 그러려니 했는데, 등산복 차림으로 배낭을 멘 사람이 내려오는 모습에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자 주 능선 쪽은 통제의 금줄이 처져있고 관리공단 대장쯤으로 보이는 요원이 길을 막고 있었다. 말이 먹힐 거 같지는 않았지만, 요원에게 다가가 우린 반야봉을 거쳐 뱀사골로 하산할 것이라고 일단 얘기는 해보았다. 요원이 폭풍으로 탐방로에 나무가 쓰러진 구간이 많아 그 정리가 끝나야 통제가 풀리니 폭풍의 피해가 없는 만복대를 가라고 했다. 아니면 노고단이나 탐방하라고….

일단 알았다고 하고 다시 성삼재로 향하는 것처럼 지름길이 아니라 큰길을 따라 내려갔다. 가면서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랜턴은 꺼버렸다. 왕시루봉을 향하는 다른 길인 중계소를 우회해서 갈 생각이었다. 흥수는 차라리 노고단에서 눈치 보다 문수암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는데, 길 자체가 뚜렷하지 않고 노고단 탐방 예약 시 기록하는 이름, 그리고 목에 걸고 가야 하는 명패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중계소 갈림길에서 중계소를 향해 20m가량 올라가자 갑자기 환하게 전등이 켜지며 출입금지 구역이니 돌아가라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왔다. 깜짝 놀라 다시 돌아서니 전등은 꺼졌다. 좀 떨어진 전망대로 가 CCTV가 실시간 감시인지 아니면 녹화만 하느냐를 가지고 설왕설래했다. 그리고 중계소 밑으로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길처럼 보이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로 갔다간 우리 예상보다 2~3시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였다.

흥수나 나나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낙진, 창우는 초행이고 다른 선택지가 없어 서북능종주를 하기로 하고 다시 성삼재로 내려갔다.

2 - 2

성삼재로 다시 내려와 달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만복대 입구에 도착한 시각이 6시 48분이다. 두 시간 반 정도를 성삼재 노고단 구간에서 보냈다는 얘기다. 어쨌든 입구에서 지도를 리뷰한 후 지리산 서북 능선 종주를 시작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삼재가 아니라 노고단 고개에서 시작한 제대로 된 서북 능선 종주이자 노고단에서 큰 고리봉의 백두대간 산행이다.

비록 전날 오후에 비는 그쳤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이틀에 걸친 비로 나뭇잎은 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 헤치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복장은 마치 비를 맞은 듯 젖었고. 우리에 앞서간 등산객이 물을 좀 떨어뜨려 주기를 바랐지만, 나뭇잎에 물이 워낙 많았다. 해서 뒤따라 오는 낙진에게 만약 우리가 그나마 길도 제대로 없는 왕시루봉 쪽으로 갔다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을 거라고 농담했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노고단 운해를 구경하며 고리봉에 도착한 시각이 7시 23분이다. 정상에서 인증을 찍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만복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예보 대로 해는 떴지만, 주 능선 상의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고 다만 구름이 환하게 빛났다.

8시 6분 묘봉치를 지나자 오늘의 1차 목표인 만복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만복대 주변의 억새를 헤치고 정상에 도착한 시각은 8시 52분이다. 산꾼? 사진꾼 사이에선 만복대가 일출이나 운해를 찍는 명소로 유명하다. 해서 불법이지만, 비박을 하며 천왕봉 옆으로 떠오르는 해를 찍는 사람이 꽤 많다. 비박을 하지 않으면 성삼재에서 만복대까지의 5.5Km를 해가 뜨기 전에 올라야 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도 몇 명의 사진꾼이 비박을 했던 거 같았지만, 원하는 장면이 연출 되지 않아 작품을 남기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 한 사진꾼의 말에 의하면 워낙 기상이 좋지 않아 내려가던 중 날이 좋아지는 징조가 보여 좀 전에 다시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상에서 우리가 인증을 찍고 나니 다시 구름이 몰려와 사진 찍는 걸 방해했다. 우리야 사진꾼이 아니라 별 상관이 없는데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참 힘든 과정일 것이다.

원래 계획은 흥수가 구례 터미널에서 산 막걸리를 만복대 정상에서 마실 생각이었지만, 바람이 강하고 날이 추워 자리 잡고 앉을 상황이 아니었다. 해서 정령치 쪽으로 10분 정도 내려가 데크 작업을 하기 위해 재료를 운반하던 포대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는 우리에 앞서 간식을 먹고 있던 산꾼이 한 명 있었다. 그 산꾼 뒤에 앉아 품격을 위해 테이블을 깔고 막걸리와 낙진의 복분자를 김치와 된장에 버무린 고추 안주로 마셨다. 마침 구름도 걷혀 멀리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바래봉도 보였다.

한 시간가량 먹고 마시며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정령치를 향해 10시 14분에 출발했다. 10분가량 가니 데크로 이루어진 길이 나타나고 수 명의 인부가 부서진 부분을 수리하고 있었다. 분명 작년 5월 서북능 종주 시에는 없었던 시설이라 인부에게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물어보니 올해 설치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1년도 안 돼 수리한다고? 그때 정령치 쪽에서 만복대를 향하는 산악회 등산객이 몰려들어 많은 얘기는 못 하고 정령치를 향해 빨리 움직였다. 서울에서 7시에 출발했으면, 정령치에 도착 후 산행을 시작했을 시간이기는 하다. 지리산 서북 능선 중 봄에는 능선 끝 바래봉 철쭉이 가을에는 시작 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만복대의 억새가 유명하다. 바래봉은 운봉에서 바로 올라가면 되고 만복대는 성삼재에서 올라가면 5.5km이지만, 정령치에선 2km에 불과해 산악회를 가장한 관광회가 정령치에서 올라가 원점 회귀하는 산행을 많이 주선한다.

정령치가 가까워지자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짜증도 몰려오기 시작했고. 뭔가 하고 정령치에 접근하니 천막이 설치되어 있고 수많은 자전거가 정령치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구글링을 해보니 "2018 남원시장배 전국 지리산 힐클라임대회"였다(쾌 큰 대회 같았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여기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다니. 한 젊은 친구는 자전거를 들고 우리가 있는 등산로까지 올라와 온갖 폼을 다 잡고 모친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 폼생폼사! 그런데 여기에 모친이 왜 따라왔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2 - 3

천막에 가 점심이나 얻어먹고 갈까 했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고리봉(큰)에서 해 먹기로 했다. 그리고 이정표를 확인하니 500m를 가면 "개령암지(開嶺庵址)"와 "마애불상 군(磨崖佛像 群)"이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못 봤는데. 고개를 연 절? 마애불을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라 등산로 상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마애불상 군을 보러 갔다.

마애불상 군 가는 길에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고 그쪽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정령치 습지'가 나타났다. 아니 여기에 습지도 있었다고? 습지를 대충 훑어보고 불상 군으로 갔다.

불상 군은 낙석 조심이라는 팻말이 있는 문으로 막아 놓았고 좀 떨어진 곳에 불상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래된 마애불에 어떤 불상은 조각 상태가 불량하고 전망대마저 바위와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흥수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12개 불상을 하나씩 찾았다. 12개를 다 찾은 후 인사를 하고 문을 원위치하고 나왔다. [불상 더 보기]

지쳐 전망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배를 먹고 있던 낙진과 창우를 독려해 다시 고리봉을 향해 올라갔다. 등산로 직전에 그물망으로 둘레를 막아 짐승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 둔 잘 다듬어진 묘가 있었다. 요란한 석재는 없었지만, 후손의 정성이 보이는 묘로 갑자기 그 후손과 주인이 궁금해지는 무덤이었다. 해발 1,000이 넘는 고지라 더욱.

앞에서 언급했듯이 만복대 억새, 바래봉 철쭉이 유명해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은 등산로의 상태가 좋고 좀 위험한 곳은 데크를 설치해 놓았지만, 정령치에서 팔랑치에 이르는 구간은 서북 능선 종주 산꾼이(1년에 몇 명이나 될까?) 아니면 찾지 않는 곳이라 등산로 상태가 아주 불량하다. 과거 겨울에 관악 친구 몇 명을 이 구간에 끌고 갔다 먹은 욕이 엄청나다. 그나마 정령치에서 고리봉(큰)은 백두대간 구간이라 작년에는 없던 계단도 설치하고 길도 정비해 놓았다. 11시 50분에 고리봉 정상에 올라서자 중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 능선이 한눈에 보였다. 고리봉 정상에서 백두대간 여원재로 향하는 고기리와 바래봉으로 향하는 세동치로 길이 갈린다.

정상 부근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할 밥 먹을 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아 10분 정도 내려가 등산로 옆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낙진이 정령치에서 만난 (지리산 주 능선이 통제된다는 사실도 모르는) 요원이 우리 뒤에서 톱을 들고 따라오고 있다고 했다. 정령치에서 우리에 앞서갔고 우린 불상 구경하느라 많이 지체되었는데도 우리 뒤에 있다고? 내 생각에 그 요원은 퇴근을 위해 고기리로 빠질 거 같아 주저 없이 점심 준비를 했다. 테이블을 깔고 창우가 가져온 비빔밥 재료와 밥으로 밥을 비비는 사이 낙진이 싸 온 주먹밥도 있고 해서 라면을 세 개만 끓였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 비운 생수통엔 만약에 대비 흔적을 없애기 위해 이슬로 채웠다. 예상대로 요원은 오지 않았고, 만복대을 오르기 위해 정령치에 왔다가 만복대를 버리고 고리봉에 올라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온 등산객 몇 명 있었다.

이슬이(대부분 흥수와 내가)와 배 터지게 점심을 먹고 바래봉을 향해 다시 출발한 시각이 1시다. 바래봉까지 8.6km 남았고 현재의 속도라면 4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었다. 다만, 잠을 못 잔 상태로 이미 15km 정도의 산행을 한 후라 다들 많이 지쳐있었고, 앞으로의 길 상태는 지금까지의 상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다. 풀린 다리에 넘어져 상처를 입기도 하며 길을 재촉해 세걸산에 도착한 시각이 2시 51분이다. 지쳐 사진도 찍기 싫다는 친구를 독려해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 능선을 배경을 인증를 찍고 잠시 휴식 후 세동치로 내려갔다. 점심을 먹고 고리봉(큰)을 떠난 지 2시간 12분이 걸린 3시 12분에 세동치에 도착했다. 3.5km를 2시간이 좀 더 걸린 것이다.

흥수가 가져온 맥주를 나눠 마시며 계속 갈 것인가 여기서 하산할 것인가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10여 킬로미터 길 상태로 봐서는 5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럼 8시가 넘는다. 우리가 예매한 기차는 남원발 7시 48분이고. 차편이야 다른 걸로 변경하면 그만인데 친구들의 상태가 산행을 계속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18km 이상 걸었고 세동치에서 '전북학생교육원'으로 탈출해도 오늘 하루 20km 넘는 산행을 했다. 흥수와 나는 더 가고 싶었지만, 굳이 무리할 이유도 없고 부상자도 있고 해서 학생교육원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3시 51분에 세동치를 떠나 거의 수직 하강해 교육원에 도착한 시각이 4시 38분이다. 구글링을 통해 운봉 택시 번호를 확인 후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계속 내려가 교육원 본부 앞이자 입구에 도착해 산행을 끝낸 시각이 4시 54분이다. 다만, 남는 기차 시간은 지역 맛집에서 지리산 똥돼지와 보내기로 했다..

3

도착한 택시 기사에게 남원 맛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기사가 어차피 남원 식당에 갈 거라면 운봉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남원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일리가 있었다. 택시 안에서 지리산 흑돼지에 대해 얘기를 하니 기사가 똥돼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과거의 추억이니 어쨌든 흑돼지 맛있는 집으로 안내를 했다. 기차 시간이 7시 48분이니 7시까지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하고, 택시 트렁크에 우리 배낭은 그대로 두고 '황산토종정육식당'에 들어갔다. 그 시각이 5시 15분경이다. 대략 1시간 40분의 시간이 있다. 산행 후 뒤풀이 시간이 이렇게 길었던 것도 오랜만인 듯했다.

일단 삼겹살 4인분을 시키고 소주, 맥주, 막걸리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총 6인분의 삼겹살을 먹고 입가심으로 순대국 하나를 나눠 먹었다. 그리고 6시 50분경 우리를 데리러 온 기사와 7시 5분에 식당을 떠나 남원역으로 향했다. 우리기 예매한 무궁화는 이미 도착해 있어 기차에 타고 출발을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에 도착해 출발할 KTX를 기다리느라 출발이 많이 늦었다. 볼 것도 없이 일어나 막 도착한 KTX로 갈아탔다. 수원파는 KTX가 정차를 안 해 탈 수가 없었고 흥수도 갈아탈 생각이 없어 혼자만 갈아탔다. 그 와중에 사서 처음 사용한 삼각대를 잃어버린 거 같다.

배낭을 짐칸에 두고 승객석으로 가 비어 있는 자리에 잠깐 앉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누군가 깨워 일어나니 기차는 종착역인 용산역에 이미 도착했고 승무원이 내리라고 날 깨우는 중이었다. 바로 배낭을 들고 KTX에서 내려 대기실로 이동하며 배낭을 확인하니 삼각대가 없었다.

애초 계획과는 달리 "성삼재 → 노고단 대피소 → 노고단 고개 → KBS 중계소 전망대 → 성삼재 → 만복대 입구 → 고리봉(작은) → 묘봉치 → 만복대 → 정령치 → 고리봉(큰) → 세걸산 → 세동치 → 전북 학생 수련원"의 20.31km, 이동 시간 8시간 30분, 휴식 시간 4시간 8분의 총 12시간 38분이 걸린 산행이다.

동행한 친구의 기록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왜 내 휴식 시간이 그렇게 긴가 생각을 해보니 앱이 앞서가다 뒤따라 오는 친구를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잡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결과적으로 설악 공룡 실패, 지리산 왕시루봉 실패, 지리산 서북능도 실패다!

폭풍 다음의 쾌청한 공기 속에 한 지리산 노고단 고개에서 세동치까지의 아주 즐거운 산행이었다.

성삼재에서 두 번 시도한 왕시루봉은 두 번 다 실패했기에 다음은 들머리와 날머리를 바꾸어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못한 세동치 바래봉 구간은 '내년 삼월 춘삼월에 꽃피고 새가 울제' 하는 걸로!

[雲峰]

ㅋㅋㅋ
왜 중도에 하산했는지 알겠지?

[이창우 Dori]

세동치에서 난상토론 끝에 하산 결정하고 나서 찍은 셀카..^^
내가 너무 속이 보였나? ^^

[이창우 Dori]

기존 왼쪽 무릎 바깥쪽 땡기던 증상은 안나타나네..^^
그런데 좌우측 무릎 전체가 약해진건지 그제 힘들었고.. 긴 산행 탓이겠지하고 오늘 방콕하면서 경과를 보는 중..^^

[이창우 Dori]

우하하...^^

[성낙진]

난 휴식시간이 38분 25초 ??!! 누군 놀며가고 누군 세빠지게 간겨??

[雲峰]

그 앱이 너무 민감해

[雲峰]

잘 다녀와라

[성낙진]

곧 공항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