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燕雀: 제비와 참새)이 홍곡(鴻鵠: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어찌 알리오. 천주께서 부르실 때는 필시 큰 쓰임이 있어서일 것이다. 애석하고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욱 경건하고 엄숙하게 장례에 따른다.
2016. 9. 21. 새벽, 빛나는 고장(光州), 빛나는 산(光山), 근본이 어진 동네(本良)의 큰 별, 민주화의 거목이고 증인이셨던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비오(조철현) 신부님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선종하셨다. 장례식은 23일 광주 임동 성당에서 신자와 시민 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또 23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광장)에서는 선종한 신부님의 노제가 거행됐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는 등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신 때문이리라. 노제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노래는 광주 오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으니 지역민과 민주인사들의 애틋하고 따스한 애정이 느껴진다.
생전에 민주화, 통일, 시민사회 문제 등을 깊이 고뇌하고, 현대사의 큰 고비 때마다 모든 종교를 초월하여 종교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한 목소리로 집약하는 등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게 하였다. 특히 기독교 강신석목사와 불교 지선스님과의 각별한 우정 등은 인구에 회자된다.
또 신부님은 1976년 계림동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장애인복지시설 소화자매원과 인연을 맺어 갈 곳을 잃은 부랑자와 폐결핵 환자를 돌봤으며 1997년에는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생활시설인 소화 천사의 집을 열었다. 신부님은 어쩌다 돈이 통장에 들어오면 모두 가난한 이웃과 소화자매원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해 통장에는 남는 잔액이 없었다 한다.
뜨겁던 광주의 오월을 냉정한 이성으로 잠재우고, 지역민들에게 큰 뜻을 솔선수범하며 하느님의 신장(神將)으로서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베푼, 확고한 정의와 사랑 나눔 실천은 가히 ‘귀감’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친조카인 조영대(광주 용봉동 주임신부)에게 선종 전 “내가 세상을 뜬 뒤 조화나 부의금은 받지 말고 소화자매원의 장애인을 위한 쌀은 받아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정신지체장애인 200여명을 돌보는 소화자매원 이사장이던 신부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화자매원의 재정 문제를 걱정했다니 올곧은 ‘큰 그릇․큰바위 얼굴’의 진면목이리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비오 신부 장의위원회는 신부님의 선종 이후 고인의 유지를 기려 조화 대신 쌀 화환만 받았으며, 신부님의 유품은 평소 애독했던 책과 옷 몇 가지뿐이지만, 고인의 유지대로 소화자매원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시대의 성자(聖者), 국가의 동량지재, 민주화의 거목이 스러짐에 대한 애석함과 고향 대선배와의 이승에서의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아울러 시급히 대체 인재의 출세(出世)를 고대하는 조급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6. 9. 24. 새벽. 신열 문준선 배상.
첫댓글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이 시대의 성자이신
조비오 신부님의
가심은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는것이 아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극락왕생 하시옵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아있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울림을 주신분 조비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