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과제로 올린 글은 작년 감응의 글쓰기에 올린 글입니다. 이제니 시인의 '밤의 공벌레'를 읽고 나와 첫 아이의 관계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어요. 오늘 서우가 학교에 다니며 처음으로 수련회를 가느라 집을 비웁니다. 잘 지내고 올지 걱정 한 가득이어서 일도 잘 안되더라구요. 여전히 저는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지만, 좀더 나은 내일을 믿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른 글을 쓰고 싶었는데 못쓰고 같은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학인들에게 저희 아이 이야기도 솔직히 터놓고 싶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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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급식은 맛있는 게 많이 나왔다.
오늘도 우리학교 아이들은 나물반찬만 빼고 다 받아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홀로 왕따인
나물반찬을 많이 퍼갔다.
그런데 배가 불러서 그 나물 반찬을
결국엔 다 먹지 못했다.
나물은 맛있고 몸에도 좋은데
왜 버려지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려고 태어난 것처럼
그 나물도 누군가 먹으라고 만들어진 건데 말이다.
오늘도 나물은 왕따다.
첫째 아이의 개별화교육 상담이 있는 날, 나는 공교롭게도 코로나에 확진되어 가지 못했다. 특수학급 선생님과 전화로 상담을 마치고 난 십 분 뒤, 담임 선생님께 서우가 2학기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국어시간에 썼다는 이 시와 함께. 왕따인 나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받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마치 나물이 우리 서우인 것만 같아서. 서우가 그걸 알고 쓰는 시인 것만 같아서. 아니면 서우가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워인가, 이런 마음을 가진 서우를 내가 너무 모질게만 대한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 때문인가. 뭔지 모르는 마음이 마구 섞여 눈물이 되었다. 아이는 자꾸 자라는데 왜 내 마음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지 모르겠다.
서우가 조금씩 다른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은 3살 무렵이다. 어린이집은 물론이고, 주말에 가끔 시댁에 들리면 한 살 어린 시누의 딸을 자꾸 밀치고 때렸다. 그럴 때 마다 죄인마냥 죄송하다 읊조리고 서우를 많이 혼냈다. 아이를 울리고, 때리지 말라고 다짐을 받고. 그게 내가 하는 일의 최선이었다. 어느 날 시댁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었고 시아버지는 내게 진지하게 물으셨다.
“서우가, 평범한 것 같지는 않다. 보통 이런 경우는 유전적인 게 많은데 혹시 집안 쪽에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나?”
순간 ‘이게 나의 잘못이고, 우리 집안의 잘못이라는 소리인가?’ 싶어 너무 당황해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경우는 없는데, 있다면 오히려 남편 사촌의 아들들이 더 문제가 아닌가요? 이런 반감(남편 사촌 조카 중에도 한 명이 자폐 아이가 있다.) 이 들었지만 그냥 말을 삼켰다.
네 살에 어린이집 선생님의 권유로 지역 아동 언어심리센터 같은 곳에 가서 검사를 받고 놀이치료, 언어치료, 또래 사회성프로그램치료 등을 받았다. 조금씩 크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도 꾸역꾸역 다녔다.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 전 겨우 예약하고 간 세브란스 소아정신과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동안 검증도 안 된 곳에 엄마가 치료를 받는다고 다니셨네요.”
아, 나는 그렇게 병원을 늦게 데리고 온 자폐스펙트럼 장애아 엄마가 되었다.
남편은 도무지 서우를 인정하지 않는다. 서우는 사회성이 떨어져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감정조절이 잘 안되며, 청각이 예민해서 노래 특히 아이돌 가수 노래를 너무 싫어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남편은 왜 다른 중학생처럼 행동하지 않냐고. 밖에서도 그럴까봐 걱정된다며 집에서만 엄청 걱정을 한다. 단 한번 자기가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을 만나보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기어코 딸려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너무 속싸개를 꽁꽁 감싸 키웠다. 애가 그러면서 이상해진 거다. 시댁 식구들 앞에서도 한 번씩 십년이 넘는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정말이지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 나는 다시 말한다. 십년 째 말한다. 이건 기질적인 문제이고. 태어날 때 타고난 걸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게 태어났는데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나조차 가끔 그러지 못하는 걸. 남편은 더더욱 이해를 못하겠지.
2010년 서우가 태어나 출산 휴가를 쓰고, 바로 복직하면서 혼자 열심히 키우려고 노력했다.(남편은 일 때문이라며 거의 매일 늦게 들어왔고 출장이 잦았다.) 친구가 권해준 외국 육아책을 보며 ‘모유를 먹이면서 재우지 말고 놀아주어라. 그리고 칭얼대면 졸리는 것이니 잠을 재워라. 절대 먹이면서 재우지 말아라.’ 라는 문장을 무슨 종교처럼 받아들였다. 속싸개를 하고 잠을 재우고 모유를 먹다 잠들면 또 열심히 깨웠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게 잘못이었나.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돌아본다. 내가 틀린 맞춤법을 갖다 댄 것 같아 반성의 시계바늘을 돌린다. 눈을 적게 맞추고 책을 열심히 읽어준 나의 육아방식이 잘못이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육아책을 밑줄 긋고, 모유량을 늘리기위해 싫어하는 돼지족을 먹으면서 모유를 먹이고, 놀게하다 잠을 재우고, 이유식을 만들며 온 힘을 다해 살아냈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나.
아이가 14살이 되도록 나는 나의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가끔 꺼내며 혼자 있는 방안에서 운다. 내가 혼자 아이를 키워내도록 아빠인 너는 뭐 했냐고 남편에게 속시원하게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내 앞에서 자기 딸들 교우관계를 실컷 자랑하는 시누에게 부럽다는 말만 해 대면서. 누구에게 말 못하고 일주일에 한 번 교회를 다니며 기도를 한다. 속으로만 계속 후회를 새로 고침 한다. 그 때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서우가 치료센터와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받는 동안 나도 함께 상담을 받았다. 누구보다 내가 서우를 제일 잘 이해하고 안아주어야 하는 사람임을 안다. 하지만 난 아직도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동생들을 때리고, 집중을 못하고 자꾸 실수한다며 서우를 다그친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께 안 좋은 전화가 오면 한없이 초라해 진다. 참고 참다 감정의 둑이 무너져 버린 날엔 내가 너무 비참하다. 서우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 감탄하고, 서우가 좋아하는 게임시간을 조금 더 허락하며 서우를 그대로 이해해주는 엄마, 넉넉하게 모든 것을 감싸주는 엄마이고 싶은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몇 달 전 서우가 학교에서 진로시간에 자기가 한 설문결과가 맘에 안 든다고 소란을 크게 피웠다고 전화가 왔다. 너무 놀라 그 후 그동안 식욕부진 때문에 먹이기를 주저했던 집중력과 관련된 아침약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진료를 보러 가서 약 복용량을 늘렸다.(서우는 저녁에 1회, 아침에 1회 약을 복용한다.) 다행인지 서우는 학교에서 부정적인 말이 많이 줄고 수업시간에도 조용히 있나보다. 대신 밥량도 줄었다. 약의 부작용이긴 하나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서우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내기 위해 선택한 약과 병원진료는 지금의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제 또 이것이 틀린 맞춤법이 될지, 언제 누군가로부터 나의 책임을 묻는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겠지만, 이젠 더 이상 호주머니에 꽁꽁 넣어두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내가 서우와 아이들에게 모나게 굴고, 모진 말을 하는 것을 조금씩 적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화를 내고 후회하고, 어떤 날은 울고 아파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나의 잘못이 아니다, 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고 싶다. 온 힘을 다해 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내고, 어렵지만 부끄러움을 부지런히 기록할 것이다. 글을 적으며 다짐하는 나(엄마인 나)는 어제의 그렇지 않은 나(엄마인 나)보다 분명 더 나아진 사람이 된다는 걸 믿으면서.
밤의 공벌레 - 이제니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첫댓글 아이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 애틋함이 모두 느껴져요. 안타까운 마음에 혹시 그때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다르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상황이 있죠. 사실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마음은 주변에 나누기 어려우니 더욱 혼자 끌어안고 가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해요. 어려운 마음 글로 풀어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적어주신 밤의 공벌레 글도 잘 보았어요. 변주님 글 아래 이어서 보니 무척 먹먹하게 다가오네요.
먹먹하네요. 감정이입이 많이 됐어요. 갑자기(?) 말씀드리자면 저는 조울증, ADHD가 있어 매일매일 처방받은 약을 먹고(저도 아침에 한번, 자기전에 한번 먹어요)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 가는데요. 약을 먹고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문득 감정과 사고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힘들때가 많아요. 인간관계도 어그러진 적도 있고, 기분장애 당사자다 보니 일상 속에 기분이 개입하지 않는 구석이 없어서 매번 어렵고 힘들기도 하고... 갑자기 이런 사적인 얘길 많이해서 죄송한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사람은 다양하고 조금씩 다르고 사회의 정상성 기준과 보편의 기준과는 다르기도 한 사람들도 있고.... (쓰고 나니 너무 뻔한 말씀 드리는 것 같네요 ㅠㅠ) 한 인간의 어머니로서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감정이 전달돼요. 정말 변주님 잘못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 상황에서 잘못된 것도 없구요. 어떤 환경과, 사회와, 인간은 그럴 수 있어요. 횡설수설해서 죄송해요... 담주에 포옹한번....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변주님의 고민과 아픔을 서우도 충분히 느끼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네요. 분명히 진실되어서 값진 글이었습니다.
제목이 '틀린 맞춤법'이면 어떨까요? 변주 글 읽고 이제니 시 읽으니까 더 좋네요. 변주의 2학기 주제는 아이 이야기 르포식으로 써보면 좋겠어요. 지금 글만 봐서는 자폐스펙트럼 아동에 대한 정보가 없는 독자는 이토록 멋진 시를 쓰는 아이와 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아이 상이 통합적으로 잘 그려지지가 않아요. 서우라는 아이의 메모를 잘 활용한 변주의 글을 기다릴게요.
와... 눈이 빨개진 채로 읽었어요. 처음에 서우가 쓴 아름다운 시에 한번 놀랐고(변주님이 쓴 건 줄 알았어요), 직접 인용하신 말들에 (남편, 의사) 또 한번 놀랐네요. 칼로 베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말에 제대로 반응도 못하고... 그걸 다시 삼키는 밤이면 너무 괴로운데, 엄마라는 이름으로 꿋꿋하게 넘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의 제 모습도 겹쳐 보이고요!
그 자폐스펙트럼에서 청각 과민 이슈는 저도 몇 개 들은 게 있는데 정말 일상이 괴롭겠더라고요. 서우가 어떤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엄마의 담담한 관찰이 있으면 눈이 빨개지는 것을 넘어서 눈물이 나오는 글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