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6751 | |
장모님 이야기---(1)
내가 맨 처음 장충체육관을 찾던때가 1966년이니 아마도 43년(현50년)전이 아닌가 싶다. 학업을 잠시 접고 금의환향의 목표로 처음 서울와서 취직한게 서대문 창천동에 소재한 "흥진기업사" 란 전축회사였다. 난 음항기기쪽에 형님은 나무로 무엇이든지 가능한 목공부쪽으로---그리하여 당시 형제간에 원대한 꿈(?)을 이뤄보자고 다짐하며 둘 다 공장 한모퉁이의 빈 합판조각에 이불을 깔고 잠자고 밥은 기숙사식당에 대놓고 먹는 처지였다.
그런데 상경한지 일주일도 못돼 그공장은 부도가 났고 기술있는 형님은 선금받으면서 같은 그계통 의 공장인 신설동에 취직이 되었지만 난 당분간 취직될때까지 별 수 없이 사촌누님댁서 기거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만해도 돈암동까지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동소문동의 누님댁은 꽤 잘 나가는 집이었고 높은 직책의 매형께선 언제나 고급승용차가 태우러 오곤했으며 당시 대신중학교를 상당한 뒷돈을 대고 들어간 조카를 내가 취직될때까지 당분간 공부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의 누나도 진명여중 3 이었으나 내가 담당하긴 다소 버거웠기에 국민학교 3학년짜리와 둘이만 담당하게 되었다. 얼마전까지도 서울대니 연대나 고대등의 가정교사를 두기도 했으나 아이들 성적이 별로 올라가지도 않았거니와 방하나 따로주고 적잖은 과외비주고 끼니때마다 반찬 신경써야지 남을 한가족처럼 대하기가 보통 골치꺼리가 아니었던차 내가 기거하고난 후 부턴 모든게 팽팽 돌아갈 정도였다. 특히 집안일하던 부엌누나가 누구보다 날 좋아 하였다.
쓰레기를 치우던가 궂은 일등은 도맡아 놓고 도와주니 그럴수밖에---또한 공부만 잘해선 안된다며 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합기도 도장도 다니게했고 집안에서 탁구도 가르쳤다. 한동안 홍하사가 왼손으로도 웬만한 사람과도 대적할 수 있음도 그당시 조카를 가르치면서(오른손으론 웬만큼 쳤었 기에)왼손으로 칠때였기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홍하사가 강남 신사동에서 탁구장을 할때 복식조가 와서 상대해 달라면 왼손,오른손 교대로 치며 두사람 몫을 혼자서 감당해 준적도 적지아니했다.
그런데 그 보결로 들어간 조카를 두달만에 1등으로, 그리고 16등짜리 여자아이를 9등으로 다시 한달만에 2등으로 끌어올리니 누님댁은 경사가 날 수 밖에---또한 남도아니고 열심히 조카들을 가르치니 게다가 누님의 심부름을 곧잘해서 시간,돈 등을 단숨에 벌어주니 비서처럼 계속 머무르기를 바랬다. 당시 조카가 다니던 大新中(당시 배구대회는 언제나 대신고교와 인창 고교가 라이벌 관계였고 전국을 재패하던 때 였으며)을 홍하사는 응원하는 그를 따라 장충 체육관을 몇번 가본적이 있었다.
지금은 뉴우질랜드에서 살고있으며 틈만나면 꼭 외삼촌을 초청해서 관광한번 꼭 시켜주고 싶다지만 내가 도저히 여유가없다. 그시절엔 장충체육관에서 경기를 볼 정도라면 맘을 먹어야 들어갈 정도였고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바람이 몹씨 불거나 비가오면 경기를 중단하는 운동장에 서만배구를 하다가 그처럼 으리으리한 체육관에서 경기를 막상보니 바람의 영향을 이용하는 슬라이스 서어브등은 별로 효과가 없겠다고 느꼈다.
홍하사가 쬐그만 키에 배구를했다면 아무도 믿지못할것이다. 지금은 6인조(국제식)로 우선 키가 커야하지만 당시엔 9인조(극동식)로 하프센터나 빽센타의 포지션은 거의가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리베로(전문수비수)가 있긴 하지만---(각설하고)
며칠전에 모처럼 어머님께 바람을 쐬어 드리려고 한달전에 예약한 mbc 마당놀이를 공교롭게도 전날 동창회에서 얼굴한번 안 보여주면 인연을 끊겠다는 공갈에 좀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오전중으로만 도착하면 되려니하고 下邱했다. 모처럼의 기대를 저버릴수는 없는노릇---내가 좀 무릴해서라도 실행을 하지않음 아니되었다.
오래전부터 이미 약속했기에 추운바깥에 떨고계실(내가 차 끌고가도 언제나 미리 바깥에 서 기다리 신다.)어머님과 언약했기에 그전날 팔공산 자락의 한 모임장소에서 새벽일찍 아침밥먹고 오전중으로 의정부 도착해야 차질이 없는데---울 동창생들은 한결같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언제 이시간에 동대구 역가서 ktx 타고 서울역 도착해 의정부 우리집가서 차몰고 처남댁가서 장모님모시고 장충체육관을 갈 수 있느냐는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Little Big Man"(작은 거인), '천하의 홍하사'가 아닌가? ㅎㅎ 재빨리 뛰어가고 숨차면 걷고 또 택시타고---추운 길거릴 뛰다가 후둘후둘 떨리는 발걸음으로 몇분차이로 간신히 열차에 오르니 느닷없이 에이취~소리가 연발된다. 자꾸 옆자리의 손님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신종플루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덕분에 KTX 352열차의 12호차량의 휴지는 내가 절반을 쓸 정도였다.
여느사람만 같아도 서울역에서 바로 장충체육관을 직행할테니 숙이가 어머님 모시고 전철타고 오라고 해도 될테지만 그럴순 없는 노릇---좌우간 장모님께 실망시켜 펑크 낼수는 없지않은가?
잘 나가는 큰사위는 세탁기다 김치냉장고다 가끔 목돈을 쥐어준다던가 하지만 여유없는 홍하산 기껏 장모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효도라곤 이따금 절에 모셔간것이 유일하다. 포천 아트 밸리, KBS 방송국, 예술의 전당, 정동극장, 제주도 등에 틈틈히 모셔간적은 있지만 시간많은 작은 사위가 몸 으로 때우는 수 밖에 별수있나?
언제나 새벽 4시면 정한수 떠놓고 기도하시는 장모님은 얼마나 절에 열심이신지? 우리가 주는 용돈을 거의 다 절에 갖다바치신다. 거기만 다녀오심 그렇게 평화스러울 수 가 없다하신다. |
아빠가 모처럼 가장 좋아하는 스웨덴 보컬그룹 "ABBA"의 "Dancing Queen" 한곡 듣는다.
김영배: 글자를 좀 크게해서 올리시길...장모님이 저렇게 젊으시니 홍하산 좋으시겠습니다.키가 작다니요."초고리는 작아도 꿩만
잡는다" 는데...전에 대신고 배구 선수중에 유재학 이라고 .. 배구 선수론 큰키는 아닌데 점프력이 대단했던걸로 압니다.(하도 출중히
잘해서 선수 이름이 기억났습니다.)홍하사도 그 이상의 실력이 있었던걸로 벌써부터 짐작 하고 있었답니다. -[12/26-00:58]-
안영일: 좋은글을 적어주셨읍니다, 재미나게 읽어나가며 다음을 기다림니다,, 좋은 연말을 지내십시요. -[12/26-03:44]-
윤특방: 작은 거인(?)인 형님도 멋지시지만, 오우, 말로만 듣던 장모님께서도 멋쟁이 할머니십니다. 형님, 즐거운 연말연시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12/26-08:28]-
김세원: 홍진흠전우님은 팔방미인 이셨군요...어쩐지 바리바리 하시더니.~~~얼마나 좋으세요 장모님 건강하시고 불공드리시며
건강한 삶을 보내시는데 부럽군요..26일 토요일 아침에 눈발이나리는 하늘을 보며 재미나게 봤어요.... -[12/26-08:48]-
홍석진백마66: 준비를 열심히 하셨네요. 안성 남사당 풍물단이 눈에 들어옵니다만 안성에 그곳에는 매주 토.일요일을 개방하여
나이드신 어른들을 같이 동참하여 같이 뛰고 춤추며 놀이 마당을 펼처가며 노인들을 효도 관광으로 모시기는 안성 마춤인듯 합니다.
옛날부터 풍물단이 신명나게 꽹과리.북.징.장고.소고.등 장단을 마추다 보면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다 보면 구경꾼들도 같이 덩실 덩실
춤을 추는것이 우리 고유의 풍물이 아닌가 합니다.안성에 오시면 어른들의 구경꺼리로는 일품인가 합니다. -[12/26-08:56]-
서대문구 창천동은 신촌역이 있는 동네고 6.25때는 개울물도 흐르던 동네 였습니다. 다음 얘기가 기다려 집니다. -[12/26-09:14]-
백동기: 그당시 고등학교 배구로는 대신과 인창이 쌍벽을 이루었고 지방고등학교로는 부산동성고가 제일이였서 제미가 있었죠.
요즘 실업팀 유명감독들 모두 이 학교 출신들 입니다. -[12/26-09:58]-
홍 진흠: Saigon Kim님! 제가 공부가르치는 기술이있은게 아니구요 원래 조금은__ 다시말해 맹탕이아닌 조카들이기에 가능했
지요. 남산입구에 있은 리라국교(노랑 교복입는 학교)출신의 남자조카는 꽤 괜찮은 학교를 시험쳐서 불과 몇점차이로 아깝게 떨어졌
기에---여자애는 지금은 서울사근동에서 꽤 큰 유치원 원장을하는데 압구정동에 살고있답니다. 더운월남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하시믄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관령의 김영배님은 오늘도 꽤 시원하시겠습니다. 조금전에 천보산을 내려왔었는데요.
금년의 마지막 등반이라고 울회원들이 33명이 참석-홍하사는 얼굴도장만 찍고 약수터까지만 가고 혼자 하산하여 이곳 종친회모임과
송년횔 참석하려고 오는중에 도봉역 버스정유장에서 백하사님과 멀리서 인사를 나누게되었답니다. 역시 전우애란 대단한것인지?
제가 강렬한 메시지를 보낸게 텔레파시이로 연결됨이었는지 차창밖의 백하사님께 전달되어 서로 손을 흔들게 되었답니다. 글씨는
이정도면---선배님이 안경을 끼셔야될듯합니다. -[12/26-12:29]-
권신기: 홍 전우님 대단 하십니다 장모님 사랑도 참전 전우님들 사랑도 다른 사람 보다 한수 위인것 같네요 앞으로도 많은 사랑
베풀어 주시고 항상 좋은 일만 있스시길 바랍니다 -[12/26-12:40]-
홍 진흠: 미국의 안영일선배님! 요즘도 코큰사위가 여전히 잘 해 주시겠지요? 손자,녀들의 재롱속에 멋진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를 보내시며 조금은 비루(beer)를 적게 마시었음합니다. 엊저녁에 전 못마시는 술이었지만 식구넷이서 잔을 부딪치는 행사로
말미암아 쬐금 마셨더니~암튼 이국땅에서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이곳서 전우애를 나눴으면 합니다. 윤특방 아우님! 울장모님
소릴 내가 자주했었나부지요? 올해까지만 좀 피알하구 내년부턴 좀 자중해야지. ㅎㅎ 수뢱이가 제댈했으니 이제 한시름 놨겠으요.
멀리서 오시는 형님이 오시는중이기에 잠시 들렀다우. -[12/26-12:43]-
영원해병: ㅋㅋ홍하사님이 장모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절에 갔어도...불법(佛法)과 연결 고리가 맺어진 셈이군요^^ 예전에 어떤
젊은 부인이 연노하신 보살을 대동하고 항상 사찰에 나왔는데...그 젊은 부인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인 인데
시어머니가 불심이 돈독 하셔서 년노하신 시어머님을 부축해 드릴려니 자연 절에 나오게 되는데...법당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찬송가 소리를 흥얼 거리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그것은 교회에 다녔던 습성 때문에 그런 것이니...괜찮다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후에 그 부인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절에 나왔는데. 나중에 시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그 젊은 부인은 혼자서도 틈틈히 절에 나왔는데....아마도 내 생각엔 그 젊은 부인은
종교간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오직 진리만 추구하는 고단위 신앙인이 되었을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의 모든 종교는 이런
젊은 부인 같은 신앙인 으로만 가득 채워지는 지구촌이길 기원해 봅니다^^ -[12/26-12:47]-
김병장(김 영): 홍하사님의 글을 읽고 눈물이 납니다....36년전 딸을 달라고 찾어 뵜을때 다소곳이 장인어른 옆에 앉으셔서
아담한 모습으로 조용히 한말씀도 안하시던 장모님... 그동안 맏사위에게 무심한듯하신 장모님이 치매에 걸리시고 딸들을 요양원에
모실때 마음이 아팠는데...일년만에 찾어 뵜을때 막내처남도 놀랄 정도로 맏사위를 알아 보시고 옷깃을 여미시는 것을 보고 뒤돌아
올때 많이 울었습니다...평상시에도 찾어뵈면 "안동권"씨 무남독녀 답게 조용히 "왔나"
하시면 말이 없이 조용하시던 나의 장모님.....장인(해병대1기 한국전 참전용사))이 돌아 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크게 울지
않으신 장모님....딸이 흰머리가 보인다고 노인을 만들었다고 요양소에서 사위인 저를 힐책하신 우리 장모님...(맏사위지만 씨암닭
다리도 구경 해본적이 없습니다)...홍하사님은 너무 너무 행복하십니다....부럽습니다...항상 건강하십시요. -[12/26-14:04]-
김병장(김 영): 둘째줄 "딸들을" 을 "딸과 아들들이(5남매)" 로 수정합니다. -[12/26-14:07]-
최현득: 우리 장모님의 박대통령과 동갑이시니 구십삼세 이십니다 딸 사위가 좋아하면 무엇이 든지 맛이 없어 잡수시질 못하십니
다 예를 들면 저가 칼치를 좋아하면 우리장모님은 비린내가 난다면서 잡수실 생각을 아예하시질 않고 못먹고 버린다면 버리지 못하게
하시고 잡수시는 분이시지요 40에 혼자 되셔서 먼 안동장 60리길 왕복 120리를 걸어다니시면서 점심도 굶어시고 고생을 하셔서 지금
도 허리가 90도를 굽어 있습니다.
몇년전 부터는 거동도 불편해 하시고 움직이시질 못하시지만 우리내외를 위하는 마음은 천국박물관에라도 전시를 해야 되시는것
같아 저는 박물관할매라고 말을 합니다 아들 내외가 주일마다 왔다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장모님의 기력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 지십니다 년말이라 모임들이 많고 자리를 뜰때가 많으면 아예 밥을 자시질 않으실려고 하시고 시간적인 감각이 없어셔서
우리가 애를 먹지만 주일과 수요일 예배를 꼭 참석 하시길 윈해서 휠체어로 모십니다 우리세대와는 달리 특별히 더 많은 고생을 하신
장모님이 더 건강해지시길 바랄뿐입니다 홍 하사님 장모님 자랑에 집에 계시는 장모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2/26-21:32]-
홍 진흠: 김세원님! 이것저것 손대다보니 제대로 한가지도 못하믄서---다시 인생을 살 수 만있다믄 잘 할수있을것 같은데 지난
세월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남은 인생이나 열심히 잘 살아야겠지요. 지금 의정부에도 눈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내일 출근이
걱정되네요. 안성마춤이란 말이 생긴고장 안성의 백마 홍석진님! 며칠전 장총무님의 장례식장을 찾았을때 어쩜 그곳 안성에 계신
선배님과 제가 선착순으로 영안실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그러면 두 홍하사가(물론 백마와 맹호의 같은 시기는
아니었지만)일이등으로 테입를끊을것 같았기에 말입니다. 그 이튿날 오셨드군요. 요즘엔 어떤 농삿일을 하시는 중인지요? -[12/27-22:42]-
홍 진흠: 최성영님! 맞습니다. 신촌역 부근에있는 창천동,옥천동등은 제가 잠시 머물던 서울의 첫명소이었지요. 당시 슬리퍼신고
이불보따리 하나 달랑 어깨에 질머지고 십이열차로 서울역에 도착한 홍하사는 새벽 부시시한 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레! 나도이젠
서울의 하늘아래서 호흡하는 사람이되었구나. 꼭 성공해서 내려가자" 고 다짐을 했건만~ 그후 두달만에 누님댁을 도망나오다시피
빠져나와 당시 서울대학교(이화동)앞에서 "윤 진흠"(얘기하자믄 사연이 김)으로 이름까지 바꾸고 서점에 취직되었고~
다시 한달도 채 못 버티고(몸에 이상이생겨)눈물을 머금고 대구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답니다. 백동기님의 지방학교론 부산동성고와
이리남성고(?)가 알아주었던것 같습니다. 경북,대구지방에선 경북공고가 제일 알어주었는데 제가 주경야독하던 회사에서 배구를
처음할때 그 고교선수 두사람이 우리팀으로 등록해(그들은 현장실습으로 등록한 우리회사이니)대구에서 중소기업연맹에서 주최한
배구대회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요. -[12/27-23:17]-
홍 진흠: 권신기님! 그다음날 제가 만약 함께갔다믄 어쩜 님의 차량을 얻어타는 신세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언제나 전우님
들에게 차량을 제공해주시는 님에게 "고맙습니다" 로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그날 회사에서 어떻게 그사실을 용케알고(평소엔
근무시간중에 인터넷을 거의 들어가지 않을뿐만아니라 회사에서 차단시킴)재빨리 집에다 파킹시킨후에 집앞에서 버스로 장암역까지
그리고 7호선으로 고속터미널로~
다시 3호선으로 남부터미널로 시외버스로 안성까지 그곳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로 병원을가게되니 도합 여섯번을 각기다른 운송수단
으로 간 결과였답니다. 물론 올땐 맹호수색대(이상수님)의 수고로 편안히 왔습니다만 전 별로 그러고싶지않았지만 심사령관님왈 이왕
이면 함께 얘기도하면서 情도쌓고 나중에 수고비조로 연료를 한번 넣어드리던가 술한잔사면 되잖느냐고 하셨습니다만--- -[12/27-23:47]-
홍 진흠: 영원해병님! 저는 언제나 불당앞에선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로 자비를 베풀수있게 해 달라고 빌고 교회에가면 하느님에게
기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랑과 봉사를 실천할 수 있게 해 달라구요. 또한 만약에 성당에간다면 성모마리아님께 빌게 되겠지요. 요즘 가끔
석가탄신일때 기독교를 대표한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함께 석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온누리에 자비로 동참한다거니 성탄절에
스님들이 함께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모습-이얼마나 좋습니까?
영원해병님의 좋은 글월-언제나 제겐 위안으로 삼고 큰힘이 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격려의 말씀과 칭찬 부탁드립니다. 김병장
(김영)님의 장모님의 사랑-어느 누구라도 장모님을 위한 사랑과 장모님의 사위사랑을 모를리가 있겠습니까만! 저도 살아계실동안 울부
모님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 해 드릴려고 노력은 하건만 참으로 제살기가 바빠서 십분의 일도 못 해 드리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부디
자주 찾아뵙고 전화라도 수시로 해 드리기로 우리 함께 약속합시다요. 홧팅! -[12/28-00:08]-
홍 진흠: "울며헤진 부산항"
작사:추미림 작곡:박시춘 노래:남인수
1. 울며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니 연락선 파도넘어 사라진 항구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을준 사람끼리 음음음음~
2. 달빛아래 허허바다 물새만울고 부산항 간곳없는 수형선 천리
이별만은 무정트라 이별만은 어렵드라 더구나 못잊을 사람끼리 사람끼리
장모님을 향한 최장로님의 사랑은 이미 울베트벳에서 알아주지 않습니까? 어딜 못가시는것도 장모님
때문이라는것도 잘 알고있고 재미있는 여행기행문이 요즘에 뜸한 사연도 우린 익히알고 있답니다.
홍하사가 지금 현득님에게 할 수 있는거라곤 부디 장모님이 더 악화되시지않고 오래 건강하시어 함께
이세상 다하는 날까지 하느님말씀 섬기며 천국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언제나 관심 고맙습니다. -[12/28-00:41]-
박용환:
서대문에 위치한 대신중고와 인창중고는 배구에는 일가견이 있는학교입니다.ㅎㅎ장모님이야기 2편이 기다려지네요.. -[12/28-10:29]-
심대흥: 홍하사님께서 제 얘기를 언급하셨으니 그날 장전우님 상가에 갔다가 이전우님 차량에 동승하여 상경하면서 있었던 얘기를
합니다. 제가 물었지요,"저야 사업이랍시고 수십년을 매달려 있었는데 홍하사님은 무슨일을 하시며 오늘에 이르렀습니까?" 했더니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내 얘기는 이미 이 홈에 다 써 놨는데 못보셨어요?" 가슴이 뜨끔했지만 얼른 둘러댔지요. "에이~왜 못봐요.
그러나 요새 깜빡깜빡해서 그기 생각나겠습니까? 다시 올려 주시지요"
ㅎㅎㅎ오늘 장모님 얘기를 쓰시면서 1966년도 젊은 시절 일화를 쬐끔 언급하신건 아마도 그런 배려에서 다시 옛얘기를 시작하실 모양
이라고 여깁니다.글솜씨 좋은 양반이니 앞으로 흥미진진한 추억들이 나올겝니다.그러다 보면 당근 예쁜 사모님과의 로맨스도 다시
리바이벌 될꺼이구....걸 기대입니다. -[12/28-10:42]-
김병장(김 영): 홍진흠 전우님 말씀 고맙습니다...맏딸로 직장(석탄공사)에 다니며 어린 네동생을 보실피고 살림 밑천인 어린 23살
맏딸이 저에게 코가 끼여서 결혼한다고 하였으니 장모님이 저를 이뻐하실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당시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병대 출신이신 장인 어른 한테 속전속결로 결혼승락을 받았습니다...치매로 태백시립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을 위해 우리
부부는 하루에 한번 꼭 기도하며 삽니다...항상 건강하십시요. -[12/28-12:34]-
홍 진흠: 박용환 전우님! 사실 울장모님은 넘 남을 위해 베풀다가 지금은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않으시니 상당히 눈높이를 낮추고
계시답니다. 그걸 모르시는 스님께선 왜 자주 오지않으시냐고? 제대로 알려드리지도 못하고---장모님을 위해 우리네가족이 달마다
얼마식 갹출해서 일부는 식사하고 일부는 저축하여 1년에 한번 몫돈을 드리는데---(울부부가 영원한 총무)
그자리서 손자,손녀들에게 일부는 나눠주고 나머진 절에 몽땅 다 갖다준답니다. 심대흥님! 배려해서 젊은시절 일화를 언급한게 하니구
요 할말은 많은데 쓸게없어서 괜히 이런저런 얘길 갖다부치는것이랍니다. 다른사람들은 재미있는 얘길 잘도 쓰시는데---누구말마따나
소재는많은데 재주가 메주라서 영 파입(3.14)니다. -[12/29-18:10]-
홍 진흠: 김병장(김영)님! 그레도 언젠간 제가 말씀드렸듯이(아마도 이상수님의 "마음고쳐먹기"-부엌 일 거든다는 이야기인듯)여태
살아계시다는 자체가 복받으신겝니다. 저의 경운 부모님을 거의 기억조차 못하는 어린나이에 돌아가셨기에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답니
다. 누군 식물인간으로라도 있어줘도 만족한다지만 사실은 그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겠습니까? 말도 못하지요. 약속시간이 되어서~
그럼 전우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또 뵙지요. 홍하사는 내일 뱅기타고 어야 휙 갑니다. 단결!!! -[12/29-18:21]-
류지현: 홍하사님께서 발이 넓으시며 봉사활동 많이 하시는 이유가 있으셨군요, 팔방미인이신 안방마님이 계시면 처가쪽의 말뚝도
예쁘게 보인다 했는데 울숙이 하시는 분을 낳아주신 장모님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멋쟁이 장모님께 잘하셔야 겠습니다. 보기 좋은 글과
사진입니다. -[12/29-20:12]-
홍 진흠: 울淑이가 동네 淑이가 돼 버린듯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론 좀 조심하겠습니다. 올해까지만 너그럽게 봐 주이소. 단결!!
류공수님. -[12/30-03:27]-
차경선: 예전 우리네 삶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그리신게 흥미롭습니다.
장충체육관하면 전 김기수선수가 생각납니다. 1966년도일겝니다만......벤베누티와의 챔피언전이...........
장모님 얘기에 깜짝 놀란 표정입니다. 신년연휴땐 꼭 한번 찾아 뵈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소서~~~!!
-[12/30-10:48]-
홍 진흠: 예 그렇습니다. 66년 6월 25일날-바로 장충체육관에서 이태리의 니노 벤베누티와 김기수 선수가 세계쥬니어 미들급참피온
결정전이 있었지요. 당시 참피온을 초청해서 2:1로 판정승을 거둠으로 울선수로썬 역사상 세계참피온이 처음 된 김기수선수는 사이스
포 였지요. 그날 무지 비가 쏟아졌는데 홍하사가 누님댁서 기거할때였습니다. -[01/01-18:55]-
홍 진흠: 사우스 포(south-paw=권투,야구등의 왼손잡이 선수)의 오타였기에 바로 잡습니다. -[01/03-20:41]-
고재목: 저런 것을 다 기억해 둔 것인가요? 아니면 기록해 둔 것인가요?
홍전우님은 그 전에 쓴 꽁까이 이야기며 참전기도 그렇고 참으로 감탄입니다. -[01/05-11:00]-
"장모님 이야기" 를 쓰던 중 뜻밖에 KBS로 부터 취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당시에 2편 썼을적인듯, 지금은 7편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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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댓글 김성찬(백마 공수특전단)선배님 글이 복사 불가하여 대신 올린다. 김성찬: 1등으로? 야~대단하네요.16 등에서
9등으로 또2등까지 실력을 향상시켰다니 정말 대단 합니다. 다음 야그가 기대됩니다요. Saigon에서. -[12/26-00:16
노숙자 같은 생활하시면서 모든 역경 이겨내시어 현재의 홍하사님은 두 아드님
잘키우셔서 지금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아들이잔아요 자식농사 잘하시고
현재로선 성공하셨네요 앞으론 꽃길만 걸으실 겁니다 사연 잘보았습니다.
신들의 섬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맘마미아(Mamma Mia)는 아바(ABBA)의 신나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뮤지컬 맘마미아을 영화화 했는데 주연에는 '메릴 스트립'과 007 영화 '제임스 본드' 역활을 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인공이죠. 특히 Pierce Brosnan 역활을 아들인 연일이가 맡아 나중 오해가 풀리고 결혼에 골인하죠.뮤지컬 맘마미아를 영화화 했는데 주연에
아들아! 아들아글과 아바의 댄싱퀸 영상 잘 보았습니다
'메릴 스트립'과 007 영화 '제임스 본드' 역활을 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인공이죠. 특히 Pierce Brosnan 역활을 아들인
연일이가 맡아 나중 오해가 풀리고 결혼에 골인하죠.또한 울아이가 부른 ABBA 의 힛트곡 S.O.S를 비롯 Fernando,Honey
Honey, The name of the game, Chiquitita, One of Us, Gimmie!Gimmie!Gimmie!, Ring Ring 많은 걸작품들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전에 최진현 사이트에 올렸든 내용이네요.
비슷한 내용이지만 조금씩 틀리게 편집했습니다. 읽었던 내용이라도
다시한번 강조하는 의미에서~또 이곳 전우님들은 모르는 사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