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첫 시상...팝,클래식,성가 등 84개 부문
1989년 신인상 '밀리 바닐리'립싱크 들통나 수상 취소
2012년 시상식 전말 휘트니 휴스턴 숨져 '충격'
2019년 빌리 아일리시, 19세로 역대 최연소 5관왕
조수미, 클래식 오페라 공동수상...황병준 녹음기술상
지휘자 솔티 31개 최다 수상...2017년 비욘세 '만삭 공연' 최고 화제
BTS, 팝부문 亞 첫 후보에...흑인 '위켄드' 외면에 또 백인잔치 논란
방탄소년단이 미국 최초 권위의 음악상인 그레미어워즈(Grammy Awards)의 높은 벽을 뚫었다.
지난달 25일 후보자 발표에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기록을 다시 썼다.
한국 대중가수로서도 처음이고, 아시아권 가수로서도 유례가 없다.
그래미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빌보드 뮤직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시상식으로 통한다.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NARAS.레코딩 아카데미)가 매년 우수한 레코드와 앨범에 상을 주고 있다.
후보 지명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했지만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 영화계의 아카데미상에 비견돼 있다.
역사
1959년 5월 4일 처음 열렸다.
콜롬비아, MGM, 케피톨 등 미국 서부의 대형레코드사들이 1957년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다음 해 1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그래미는 '그래미폰(Gramophone.축음기)'에서 따온 말이다.
수상자에게는 나팔이 붙은 축음기 모양의 기념패가 수여된다.
지금까지 수여된 트로피는 약 8000개, 노미네이트된 곡들을 추려낸 컴필레이션 앨범이 매년 1월쯤에 발매된다.
지급까지 62회가 개최됐다.
62회의 주인공은 만 19세의 신예 빌리 아일리시였다.
역대 최연소로 5관왕을 차지했다.
제63회는 내년 1월31일(한국시간 2월1일) 열린다.
레코딩 아카데미
팬 투표 시상이 있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나 판매량 데이터에 기반한 빌보드 뮤직어워즈와 달리,
그래미는 음악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아카데미 회원은 약 1만3000명이다.
아티스트,제작자,작곡가,프로듀서,엔지니어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매년 음악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회원 등록 신청을 받지만 승인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티스트의 경우 본인의 이름으로 발표한 트랙이 12개 이상 있어야 한다.
방탄소년단과 방사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이 아카데미의 회원이다.
지난해 추가된 1340명 중에 포함됐다.
올해부터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투표 방식
84개 부문별로 후보를 접수해 스크리닝한다.
약 350명의 분야별 전문가가 접수된 후보가 해당 부문에 적합한지 검토한다.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의 1차 투표로 부문별 5명의 후보를 발표하는데 회원은 자신의 장르에서 최고 15개 부문에 투표가 가능하다.
물론 4대 본상도 함께 투표한다.
투표의 전반적 관리는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가 담당한다.
최고 수상자는 2차 투표로 결정된다.
그러나 시상식 당일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결과를 아는 건 오직 딜로이트 담당자뿐이다.
이런 엄격한 방식 때문에 그래미는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워하는 전통이 생겼다.
시상 부문
1회 시상식 때는 28개 부문이었다.
그러나 이게 차츰 늘어나 100개를 넘었다가 현재는 84개다.
부문이 다양한 만큼이나 음악의 장르와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팝, 리듬앤드블루스(R&B). 힙합, 랩, 컨트리는 물론 재즈와 클래식, 복음성가까지 아우른다.
장르별로 레코드, 앨범, 노래, 가수 등으로 세분해 상을 준다.
이 중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신인가수'가 소위 4대 본상으로 불린다.
'레코드'는 싱글과 앨범에 관계없이 가수.프로듀서.엔지니어가 수상하고, '앨범'은 가수.프로듀서,
'노래'는 싱글과 앨범의 작사.작곡가, '신인가수'는 그해 데뷔한 가수나 그룹이 대상이다.
또 본상 외에 기술적 공헌도가 높은 엔지니어에게 주는 '테크니컬 그래미', 음악 교육가에게 주는 '음악 교육가',
공로상에 해당하는 '평생공로'와 '그래미 레전드' 등이 있다.
'평생공로'상은 1963년 빙 크로스비를 시작으로 프랭크 시내트라(1965), 루이 암스트롱(1972), 냇 킹 콜(1990), 데이비드 보위(2006),
비틀스(2014) 등이 받았다.
'그래미 레전드'는 1990년부터 수여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1990), 마이클 잭슨(1963), 루치아노 파바로티(1998), 엘튼 존(1999), 비지스(2003) 등이 받았다.
방탄소년단 수상 가능성
방탄소년단이 오른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는 4대 본상은 아니지만, 주요 부문에 속해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같이 후보에 오른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제이 발빈.두아 리파, 저스틴 비버, 레이디 가가,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다.
베팅업체 골드더비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즈 온'은 이 중 3위를 달리고 있다.
베팅 87, 확률 26%다.
1위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액사일'이다.
베팅 664, 확률 28%로 현재 최고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이들 후보 중 누가 수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중성과 예술성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최다 수상
60여 년간 그래미의 최대 수상자는 게오르그 솔티다.
솔티는 관현악과 오페라의 지휘자다.
독일 바이에른주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 시카고 교향악단 같은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1962년과 1992년 사이에 클래식 음반으로 31개의 그래미를 거머쥐었다.
그 다음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와 '위 아 더 월드' 등을 만들었던 작곡가 퀸시 촌스(28회),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앨리스 크라우드(27회),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블레즈(26회), 스티비 원더(25회) 등이다.
현역 여가수 중엔 비욘세가 23회로 가장 많다.
내년 그래미에 최다인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또 다른 기록 경신이 예상된다.
그룹으로서는 U2가 22회, 비틀스가 9회를 수상했다.
화제의 공연
그래미는 시상식이지만 환상적인 축하 무대로도 명성이 높다.
영국 매체 이브닝 스탠다드가 꼽은 역대 최고의 공연은 비욘세의 무대. 2017년 비욘세가 쌍둥이를 임신한 만삭으로 출연해 노래하고 춤췄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가 합성된 몽환적 무대에 만삭의 비욘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2001년 엘튼 존과 래퍼 에미넴의 합동 공연도 기억에 남을 만한 공연으로 꼽혔다.
'부조화의 조화'라는 별칭이 붙었다.
빌보드는 최고 공연으로 2010년 가수 겸 배우 핑크의 공연을 꼽았다.
핑크는 천장에 달린 줄에 의지한 채 공중부양해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라이브로 노래했다.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쳤다.
하지만 대중의 뇌리에 가잘 강하게 남아 있는 건 1988년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다.
잭슨은 당시 특유의 '문 워크' 동작을 선보이며 '더 웨어 유 메이크 미 필'과 '더 맨 인 더 미러' 등 2곡을 열창했다.
코러스까지 등장하는 10분간의 공연은 잭슨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사건,사고
1998년 밥 딜런 공연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딜런이 공연하던 중에 백댄서 중 한 명이 무대 중앙으로 난입해 이상한 춤을 췄다.
상반신을 탈의한 상태였으며 가슴에는 '소이 밤(Soy Bomb)'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이를 본 딜런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행히 그 이상의 큰 사고는 없었으나 가슴 졸인 순간이었다.
'희대의 립싱크 사기극'도 연출됐다.
1989년 데뷔 앨범 한 장으로 3곡의 1위 곡을 터뜨린 독일의 팝 듀오 밀리 바닐라는 당연히 그해 신인가수상을 받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이들이 립싱크만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수상이 취소됐다.
2012년에는 그래미가 큰 슬픔에 빠졌다.
이해 시상식을 앞두고 전야제 날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이 갑자기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줬다.
다음 날 시상식은 그대로 휴스턴의 추모제가 됐다.
한국과의 인연
방탄소년단과 그래미의 인연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이해엔 방탄소년단이 시상자로 참석했다.
레드카펫에서 정장을 입고 스타일을 뽐냈다.
올해 초엔 무대 공연을 했다.
닐 나스 엑스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올드 타운 로드'를 불렀다.
그리고 내년 초 드디어 후보자의 한 사람으로 초청됐다.
방탄소년단 이외에 대중이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클래식이나 엔지니어 부문에서 한국인이 수상한 적은 있다.
성악가 조수미는 1993년 게오르그 솔티와 녹음한 '그림자 없는 여인'으로 클래식 오페라 부문에서 공동 수상했고,
레코딩 엔지니어인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가 2012년 클래식 부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받았다.
그래미 소화이트(Grammy SoWhite)
그래미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지만 보수적인 투표 결정과 백인 중심적 성향으로 한동안 비판받았다.
주로 흑인 가수나 여성 가수들이 소외됐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에 '오스카소화이트'에 빗대 '그래미소화이트'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를 의식한 듯 제60회 시상식부터는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됐다.
60회는 사실상 흑인들의 잔치로 불렀다.
그래미 60주년을 기념해 열렸는데 브루노 아스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등 3개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이번 63회 후보 발표에서도 이런 비판을 감안한 듯 인종차별 문제를 직접 거론한 비욘세의 '블랙 퍼레이드'를 최다인 9개 부문 후보로
지명했으나 현재 가장 뜨거운 흑인 가수 더 위켄드는 단 한 부문에도 후보 지명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