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장 罷羅魔宮의 最後
파라마궁 내에 자리잡은 어느 전각(殿閣)---! 그 전각 깊숙이 위치한 은밀스런 정실 안에 원탁
(圓卓)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인물이 마주앉아 있었다. ---천지무극쌍존! 파라마궁의 좌우호
법인 천무극존과 지무극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두 광세고수의 안색은 웬 일인지 백납같
이 굳어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대체 무슨 이유길래 태풍이 불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천무극존과 지무극존의 안색이 이토록 침중한 것일까. 이때, 천무극존이 무거운 음성을 토했
다. "지무극존, 아무래도 궁내의 동향이 심상치 않소. " 지무극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
이오. 더욱이 궁주께서 전권을 위임한 것은 더욱 의혹스럽소. " 천무극존이 맞장구를 쳤다.
"잘 보셨소. 노부도 은밀히 소궁주를 살펴본 결과 그의 근래 동정에 몹시 의심스러움을 발견했
소. " 지무극존의 안색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게 정말이오? 무슨 구체적인 확증이라도..."
천무극존이 그의 말을 막았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잡지 못했으나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군데
가 아니오. 하나 그보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궁주님의 신변이 아니겠소? " "그렇소. 우선은
궁주님을 만나뵙고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아본 다음 조치를 취하도록 합시다. 노부의 예측에 불
과하지만 이번 일은 심상치 않소. 까딱하면 궁의 흥망성쇠까지..." 일순, 지무극존은 말을 끊고
천무극존을 응시했다. 번쩍!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뜨겁게 합쳐졌다. 다음순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갑시다1 " 한데, 바로 이때였다. 돌연 정실의 문이 세
차게 열리며 세 줄기의 인영이 빛살처럼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감찰존사1 수라존사! 북
령존사! 그들이었다. 천지무극쌍존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들은 역시 일세를 풍미하던 고인들
답게 그 찰나적인 순간에도 삼인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당황함을 본 것이다. "웬일이오? " 천
무극존이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감찰존사가 온통 경악으로 물든 음성으로 무엇인가
쫒기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말했다. "크..큰일 났습니다. 야귀존사가..." "야귀존사가 어떻게
됐단 말이냐? " "주..죽었습니다." "무엇이? " 천지무극쌍존은 아연실색했다. "누구에게 당
했느냐? " "모..모르겠습니다. 후원 앞뜰에 토막난 채로...정말 끔찍한 죽음이었습니다." 천지
무극 쌍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가자! " 동시에, 그들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돌연 북령존사가 냉혹한 음성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잠깐...갈 필요 없소! " 갑자기 일변한
북령존사의 태도에 천지무극쌍존은 일순 멍한 시선을 북령존사에게 던졌다. "무엇 때문이냐? "
바로 그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였다. 번쩍! 한 줄기 흰빛이 천무극존쌍존의 목을 가른 것은...
그리고, 감찰존사, 아니 변장한 십지매가 한 줄기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담담한 음성을 내뱉았
다. "왜냐하면 야귀존사를 죽인 것은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찰나, 천지무극쌍존의 숨이
끊어져 가는 안색에는 아연함과 경악이 함께 떠올랐다. 그들은 동시에 물었다. "무...무섭게
빠른 쾌검(快劍)...네놈들은 대체..." 십지매가 그들의 말을 받았다. "잠영살막." 순간, 천지
무극쌍존의 안색은 더욱 경악으로 물들었다. "네..네놈들은 주...중원의...살수...들..그..그랬
었..군.." 그들이 피보라를 뿌리며 무너진 것은 동시였다. 스스스... 십지매 등의 모습은 이미
정실에 없었다.
× × ×
같은 시각, 파라마궁의 광장(廣場)! 꽈꽈꽈---꽝! 퍼--펑! "으---악! " "크--아--악! " "모
조리 죽여가!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고 깡그리 씨를 말려 버려라---!" 각양각색의 소음이
난무하고 있었다. 대혈투(大血鬪)! 일대 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파라마궁의 인물
들과 무림팔대광자들의 피튀는 대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아(彼我)를 구분할 수 없었다. 천
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은 그저 뒤어킨 채 죽기 살기로 대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피(血)! 싯뻘
건 선혈이 튀고 수급(首級)과 팔다리가 허공에 난무했다. 이미 광장바닥에는 소속을 알수 없는
백여 구의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일순, "크핫핫핫... 이 거랑말코 같은 놈들아! 감히 네
놈들이 인자한 본 불자(佛者)의 심성을 긁어 놓고도 살기를 바란다면 큰 오산이다. 본 불자를
희롱한죄 대자 대비하던 부처님의 이름으로 네놈들을 극락세계로 보내주리라! 빌어먹을타불..."
금불요승! 그는 여전히 부처를 기만하며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본노의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것일까.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잔인한 혈수(血手)를 펼치고 있는 금불요승! 그것은 잔인하다
못해 피의 공포였다. "크아--악! " "으엑! " 금불요승의 손속이 한 번 휘둘러지면 한꺼번에
열댓 목숨이 피떡으로 변해 갔다. 그때, "공자께서 가라사대 성자(聖者)의 인내도 그 한계가
있다하셨거늘...어찌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본좌의 비위를 그토록 긁었느뇨? " 미친 학자--백치
학사! 살인을 행함에 웃음을 잃지 않으며, 죽어가는 자에게 공자의 말씀을 되뇌인다는 그는 과
연 그 전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그의 신형이 번뜩일 때마다 여지없이 수 개의 머리통
이 허공으로 솟아올랐으며, 이어 그는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들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뭐
라고 연신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결코 본 성자를 원망치 말지어다. 이것은 곧 불가에서 말하
는 업보일지어니..." 쐐--애--액! 시꺼먼 묵광(墨光)이 춤을 춘다. 그와 더불어 터지는 비명
들이 사방에서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크--아--악! " "캐--액1 " 터져 나오는 비명과 튀는 피
보라 속에 유독 미친 듯 날뛰는 한 인물이 있었으니... 혈관마백! 지금 그는 광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목숨처럼 여기던 혈관이 아닌 밤중에 홍드깨 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과거
십전대부에 의해 부서졌던 혈관을 눈물을 머금고 새 것으로 갈았던 그, "이놈들아! 자식이 과
거 내 관을 박살냈을 때도 겨우 참았거늘... 네놈들까지 천하의 못된 악행을 되풀이 해서 내 비
위를 뒤집어 놓다니.." 결국 그는 십전대부에 대한 화풀이까지 이곳에서 터뜨리고 있었다. "으
--악! " 그저 파리 잡듯 이리저리 날뛰며 분통의 봇물을 터뜨리는 그에게는 오직 상대를 주살시
키는 일뿐이었다. 곡왕천노! 그는 지금 이 순간 제일 신이 났다. "아--이--고...이놈들아...
어쩌자고 몹쓸 짓을 벌여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느뇨...끼이이..." 모처럼 그 누구에게 구애를
받지않고 목이 빠지도록 곡성을 터뜨릴 수 있겠기에... 연신 죽음의 귀신을 부르는 듯한 곡성을
터뜨리며 좌충우돌하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혈귀(血鬼)와도 같았다. "아이고...이놈들아! 죽을
려고 한다면 고이 죽여줍쇼 하지 어찌 노부가 애지중지하는 곡상봉을 잃게 만들었으뇨.." 그와
더불어, 지옥의 마화(魔火)와도 같은 핏빛 강기가 여지없이 좌중을 뒤덮었다. "으--아--악--!"
"커어억! " 곡왕천노의 귀곡성 속에 남는 것은 오직 처참한 시체들이었다. 파라마궁의 제자들,
지금 그들은 크나큰 의혹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인물,
천수도괴! 파라마궁의 열댓명의 제자들은 분명 천수도괴를 향하여 통천절륜의 합공을 펼쳤었다.
그들이 각기 쥔 한 자루씩의 검날에서는 어느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엄밀한 검광이 폭사되어
상대를 격살하였다. 한데 그것은 단지 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
그들의 손--그곳에는 분명히 뽑아든 검이 없었다. 단지, 기겁을 하여 시선이 닿는 곳에는 무엇
인가 어지럽게 눈앞을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 뿐이었다. 바로 천수도괴의 양 손이었다. "엄마
야..저자의 손에 우리들의...검이..." 그렇다. 그의 양손에 자신들의 들고 있어야 할 검들이
쥐어져 있지 않은가. 하나, 천수도괴! 그가 누구인가? 십병광자의 일인임은 물론, 천하제일의
대도수(大盜手)가 아니던가. 돌연 천수도괴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번지며 양손이 허공에 뿌려
졌다. "으--악! " "꽥--! " 파라마궁의 인물들, 어느틈엔가 그들은 목줄기에 자신들의 검이
깊숙이 박힌 채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자신들의 물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것들
이 감히 본좌 앞에서 깝죽거리다니...히히히..."
× × ×
타오른다. 뜨겁게 타오른다. 걷잡을 수 없는 대살상(大殺傷)의 현장이 천지를 뒤덮으며 맹렬히
타오른다. 광활한 파라마궁의 대광장, "으--악! " "카악! " "크--아--악! " 허공을 뒤덮는
아비규환의 귀곡성! 피(血)... 대지를 온통 뒤집어 씌울 듯 뜨거운 피가 뿌러진다. 그와 더불어
썩은 짚더미처럼 쓰러져 가는 인영들...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몰골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대광자들의 아귀같은 도살(屠殺)은 쉬지 않고 전개되고 있었다. 쐐애애앵! 슈--슈
--슈--아--앙! 태산(泰山)이라도 박살낼 듯한 가공할 살공은 수천 갈래로 갈라놓고 있는 것이었
으니... 혈육난비(血肉亂飛)! 광풍탄육(狂風彈肉)! 아수라구천지옥(阿修羅九泉地獄)! 파라마
궁의 최후는 이렇게 서서히 그 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