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정보부대의 발자취
제 20 특무전대
국군정보사령부 펌
1. 개요
과거에 존재한 대한민국 공군의 첩보 부대 통칭 AISU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1990년에 대한민국 국군 의 각군의 첩보부대를 국군정보사령부로 통합하기 전까지 각 군별로 첩보 부대가 있었다 .
이 부대 역시 육군 첩보부대인 HID ,해군 첩보부대인 UDU 등과 같이 첩보 임무를 맡았고 북파공작원을 양성 했다 .
육군의 HID 는 규모가 가장 컸고 ,해군의 UDU 는 6.25 전쟁 전인 1949년 6월 창설돼 가장 오래된 북파공작대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
그리고 공군의 제 20특무전대는 북한지역 내부에 가장 깊숙이 침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
2. 구성
제 20특무전대는 대북 정보 활동을 하던 23 정보대 와 25 첩보대 , 국내에서 대공수사를 주로 하는 26 수사대 로 구성돼 있었다 .
26 수사대는 대공분야라고 하는 특수수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 특수수사대 )로 불렸는데 , OSI 의 명성이 커지다 보니 OSI 를 공군의 대북정보부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후에 공군 보안 부대로 독립)
그러나 1954년 제 20특무전대가 대북공작 임무를 떠맡으면서 26수사대 (OSI)는 오류동에서 여의도 비행장으로 옮겨갔고(공군 보안부대로 독립) , 이로써 23 정보대와 25첩보대만 남게 되자 이때부터 제 2325전대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3. 역사
(* 공군 첩보부대에 대한 자료가 워낙 적고 언론 자료도 중구난방이라 신빙성이 떨어져 이하의 내용은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한다는 정도로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
23정보대 (제 5382 부대 )는 '공군본부 정보국 제 4과 '에서 '공군본부 통신대 제 3파견대를 통합한 '진청대 '(정보 통신대 )가 제 20특무전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
25첩보대 (제 5392부대 )는 '공군본부 정보국 제 3과 예하 분견대 ','공군 특무대 ','제 90 특무부대 '를 거쳐 제 20특무전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
26수사대 (제 8263부대 )는 '공군 방첩대 '가 제 20특무전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 내용은 군인연금법시행규칙 별표 1 을 참고하였다 .)
3.1. 제 90 특무부대
공군본부 정보국에서는 직속 첩보대로 제 3과를 운용하였고 , 제 3과에서는 첩보공작을 위해 조치원지구 , 인천지구 등 6개의 분견대를 운용하였다 .
1951 년 5 월 15 일 제 3과는 독립하여 공군본부 직할 특무대로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 1952년 1월 1일 제90 특무부대 로 개편되어 예하에 제 191특무대 , 제 192특무대 , 제 193특무대 , 제 194특무대 , 제 195특무대를 두었다 .
제 90특무부대는 후술할 제 6004 항공정보근무대대 제 2분견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하였고 , 후에 제 20특무전대로 개편되어 제 6006 항공정보근무대대 예하로 배속된다 .
3.2. 제 6006 항공정보근무대대
미 극동군에서 운용하던 첩보부대로 제 6004 항공정보근무대대 (6004th Air Intelligence Service Squadron : AISS)가 있었다 .
본부는 일본의 시모후사 항공기지에 위치 했으며 ,한국에 전쟁이 끝날때까지 총 4 개의 분견대 를 배치했는데 , 이 중 두 분견대는 1951년 중순부터 설치 되었다 .
제 1분견대
적군 포로들을 모아서 심문하거나 , 적 항공기에서 투하된 물품이나 항공기 파편 등 , 적군 군수품을 수집하는 계획을 세워 , 한국의 주요 공군기지에 있는 부대를 유지했고 ,요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아 항공사진 같은 정보를 분석하는 역할을 했다 .
제 2분견대
포격선 북쪽이나 적의 전선 뒤쪽으로 예하의 분견대를 침투시켜 ,적 장비를 조사하고 적군 탈영병을 심문하는 역할을 했다 .
제 3분견대
1952년 6월경에 설치되어 , 적지에 쓰러진 UN군 공군 인원을 구조하기 위해 도피 및 탈출 활동을 계획했다 .
적지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미군들에게 정보를 얻어 ,요원들에게 도피 및 탈출 방법을 전수하고 ,적외선 및 통신 장비로 쓰러진 병사의 위치를 추적하는 훈련도 했다 .
제 5 분견대
한국전쟁 막바지에 있던 포로교환으로 인해 1953년 6월 설치되었다 .
북한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친절하게 심문하여 , 전략적인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
6004th AISS 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0월 일본 군마현 오타시 미군 기지내에 공작원 교육대를 설치하고 차출된 교육대원을 원정 교육 실시하는 한편 , 인천 지역앞 도서 제부도에 교육대를 설치하여 공작원 교육을 실시해 , 엄청난 수의 북파공작원을 적진에 투입시켜 첩보 공작을 전개 했다 .
강화지구 Howk Unit (호크부대 ) 부대장 김재원 (로버트 김 ), 연평지구 Owl Unit (아울부대 ) 부대장 홍순배 , 교동도 지구 Eagle Unit (이글부대 ) 부대장 김동현을 단위 부대로 편성하여 운영하면서 북파공작 업무를 전개 했다 .
1946년 도널드 니콜스 는 미 극동공군사령부의 ‘K 분견대 ’ 특별요원으로 한국에 처음 파견됐다 .
그는 1950년 6월부터 1951년 5월까지 특별 수사장교로 근무했고 , 1951년 5월 11일부터 정전까지 6006th AISS 의 부대장 으로 있었다 .
서울 종로구 소재 안국동에 주둔하다 작전상의 불편으로 부대를 서울 오류동으로 이전했고 , 6004th AISS 제 2 분견대는 한국 공군 제 90 특무부대와 혼성부대로 주둔하면서 대북 첩보공작업무를 수행하였다 .
이때 니콜스는 제90 특무부대의 고문관 이었다 .
1953년 도널드 니콜스를 부대장으로 6004th AISS 제 2분견대는 제 6006 항공정보근무대대 (6006th Air Intelligence Service Squadron : AISS)로 개편되었고 , 동시에 제 90특무부대도 1953년 3월 1일 제 20특무전대로 개편되면서 6006th AISS 의 예하부대로 배속 되었다 .
6006th AISS 는 일명 네코부대 라고도 불렸다 .
1954년 9월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철수함으로서 6006th AISS 도 같이 철수하자 , 대한민국 공군의 제 20특무전대가 6006th AISS 의 임무를 떠맡게 되었고 ,이런 이유로 서해상에 있던 많은 섬들이 공군 관할로 넘어왔는데 이중 하나가 실미도 였던 것이다 .
이후 6006th AISS는 1955년까지 존속하다 제4499 부대로 개편 된다 .
여담으로 니콜스는 1950년 2월 28일에 이미 6 월 25 일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 했다 .
3.3. 제 2325 전대
제 2325 전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 대북공작부대를 유지하며 유사시 공군 작전에 필요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
그런 와중인 1968년 북한군 의 대남공작부대인 124군 부대가 청와대 를 습격하는 1.21 사태 가 일어났다 .
북한 무장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서울까지 진출한 이 사건은 정권 핵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은 각 군에 기존의 첩보 부대와는 별도로 후방에 침투해 김일성 등 수뇌부 암살을 시도할 새로운 형태의 북파공작 기획을 지시 한다 .
제 2325전대는 실미도에 공작대를 배치해 훈련시켰는데 이때 실미도 부대 에게 부여된 명칭이 제 2325전대 209 파견대였다 .
1971년 8월 23일 209 파견대 에서 훈련받던 북파공작원들은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 노량진까지 진출했다가 유한양행 현 본사 옆에 있던 당시 유행양행 본사 앞에서 폭사했다 .
이것이 유명한 실미도 사건 이며 , 이후 제 2325전대는 제 6546전대로 명칭을 변경했고 , 1990년에 국군정보사령부 로 육 ·해 ·공군의 대북공작부대가 통합 되었다 .
1991년 정보사는 오류동에 있던 부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땅을 매각함으로써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있다 .
4. 기타
육 ·해 ·공군의 정보부대가 정보사로 통합되었다고 해서 해군과 공군이 대북침투부대를 전혀 갖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
통합된 정보사는 육군적 성격이 강한 부대이다보니 해군과 공군은 통합 이후에도 그들의 작전에 맞는 대북침투부대를 소규모로 유지했다 .
공군의 경우 , 적진에 침투해서 기상 정보를 수집하거나 현장에서 항공기 유도 를 하는 공정통제중대 (CCT)[3], 그리고 북한군에 격추되어 비상 탈출한 전투조종사 들을 구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적진으로 침투하는 , 조종사를 구출해내는 것을 주 임무 로 하는 전대급 특수부대 를 현재도 운용하고 있다 .
조종사를 구출하는 일은 육 군의 특전사 나 해군의 UDT 가 수행해내기 어렵다 .
당연하지만 그게 전문이 아니기 때문 . 이 임무는 공군 사정에 밝은 공군만이 제대로 해낼 수 있다 .
정보사 통합 이전까지는 일명 오류동 정보부대 로 불리웠고 , 공식적인 통상명칭은 제7069 부대 로 추정된다 .
20특무전대로의 공식적인 명칭 변경은 1953년으로 추정되며 , 1951년5 월부터 공군본부 정보국에서 특무부대로 독립하여 본격적으로 혼성부대를 지휘하여 북파공작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