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가발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
우리가 몰랐던 가발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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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의 역사는 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발을 착용한 최초의 사람들이다.
수세기가 지남에 따라, 가발은 특히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필수적인 패션 액세서리가 되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모발의 모방은 어떻게 진화했으며,
누가 그것을 가장 즐겨 착용했을까?
가발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을 클릭으로 알아보자.
가발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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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머리를 밀었다.
최소한 그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 하지만 태양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모두 가발을 썼다.
초기의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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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발의 최초 사용 기록은 기원전 3400년경이다.
파라오는 귀한 가발이 없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정교한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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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이집트인들은 정교한 가발을 쓰고, 그 위에
동물성 지방이 함유된 향긋한 머리뿔을 쓰는 습관이 있었다.
이 원뿔은 연고같은 성분으로, 녹으면서 향수를 내뿜었다.
스타일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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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사진), 클레오파트라, 하텝수트, 그리고 네페르티티는
역사상 최초의 스타일의 상징들이었다. 모두 땋은 가발과
호화로운 긴머리로 그들의 외모를 향상시켰다.
원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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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두께를 더하기 위해
양털을 땋아서 머리카락을 만들었다.
사람의 머리카락과 식물성 섬유도 사용했다.
그리고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밀랍을 기초로 사용했다.
로마의 허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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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은 고대 로마에서도 유행했는데, 과시의 표현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의례적인 목적으로도 쓰였다.
연극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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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발은 나라 시대인 710년부터
서기 794년까지 필수 패션 액세서리가 되었다.
가발은 또한 일본 전통 연극에서 중요한 소품이었다.
시마다 게이코 스타일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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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에는 최초의 여성 게이샤가 등장한다.
이들 일본 전통 연희 예술가들의 등장은 기모노의 뒤를 이은
긴 형태의 기모노와 오시로이 화장, 완벽하게 치장된
시마다 게이코 스타일의 가발이 특징적이었다.
가발이 인기가 없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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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은 중세 시대에 인기를 잃었다. "중세의 모습"은
길고 떡진 헝클어진 머리나,
짧게 잘라 모자 아래에 숨긴 스타일이었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군주와 귀족들이 필요했다.
왕족의 유행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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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16세기 유행을 선도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풍성한 헤어스타일을 좋아했다.
본인의 원래 머리는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9세의 나이에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은 후,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빨간 머리 대부분을 잃었다. 그래서 그녀는
귀중한 보물들로 수놓아진 정교한 가발들을 쓰기 시작했다.
지위의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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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장식용 가발들은 궁정들과 귀족들에 의해 유럽땅을 가로질러 유행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가발들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가발들은 양의 털로 만들어졌지만,
덜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페리 가발 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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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는 가발을 쓰는 것이
놀랍도록 새로운 단계로 올라갔다.
루이 13세가 1624년에 가발을 쓰기 시작하면서,
페리 가발의 시대를 열었다.
가발착용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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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프랑스의 루이 13세의 머리가 돋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부터 대머리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패션 악세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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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방대하고 과장된 것은 루이 13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루이 14세가 착용한 가발이었다. 프랑스의 "태양왕"은
이 가발을 유럽 전역에 퍼트리며 유행을 선도했다.
계급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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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을 건너 찰스 2세가 왕위를 되찾으며
페리 가발은 왕실의 승인을 더 얻게 되었다.
여기 커다란 가발을 착용하고 행복했던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사실, 가발은 한 세기 이상 동안 독특한 계급의 상징이 되었다.
즐겨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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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여성들도 가발을 썼지만, 남성들보다 그 빈도는 적었다.
한 가지 예외는 찰스 2세의 오랜 정부였던 넬 그윈이었다.
그녀는 기분에 따라, 다른 색깔의 가발을 착용했다.
구별된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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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상류사회를 떠도는 많은 저명한 사람들이 가발을 착용했는데,
그중 유명한 일기작가이자 해군 행정가인 사무엘 페피스가 있었다.
가발 장인들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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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랑스에서는 1665년에 최초의 가발 장인 길드가 설립되었다.
곧이어 유럽 전역의 도시에 비슷한 단체들이 생겨났다.
연예인들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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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은 17세기 후반 남성 패션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유명인들의 사진처럼,
누구나 유명한 예술가가 그들의 모습을 화려하게 담아내기를 원했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스 드 라길리에르는 '가발을 쓴 젊은 남자의 초상'과 같은
프랑스 귀족들의 초상화로 유명해졌다.
베르사유의 "보트 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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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정은 여성이 착용하던 크고 정교하며 테마가 있는
가발들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포마드, 파우더, 그리고 다른 장식들로 무겁게 빗어 올린
머리인 "보트 푸프"가 특히 유행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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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응원단장은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이미 높은 푸프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던 그녀는,
혁명의 열기가 프랑스를 사로잡자,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하얗게 샌 뒤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치장은 프랑스 귀족들의 퇴폐의 상징이 됐고,
1789년 프랑스 혁명 초기부터 이런 스타일의 가발은 유행을 타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의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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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은 식민지 미국에서 18세기에 처음 유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펜실베니아 주를 설립하고, 푸른 회색빛이 도는
가발을 착용한 윌리엄 펜의 초상화가 있다.
가발 파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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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 파우더는 오렌지 꽃, 라벤더 또는
오리스 뿌리로 향을 내어 곱게 간
전분으로 만들었다.
법조계의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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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동안, 남성들의 가발은 더 작고 더 격식을 차리게 되었다.
영국에서, 법조계의 가발의 착용은 판사와 변호사의 법정 드레스의
일부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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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애덤스(사진)는 18세기의 구식 스타일대로 곱슬곱슬한
가발을 쓴 네 명의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
제임스 먼로와 존 퀸시 애덤스는 어릴 적부터 가발을 착용했고,
토머스 제퍼슨은 가끔 가발을 썼다.
더 이상 유행을 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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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와 20세기 초, 여성 가발은 유행을 타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 질병이나 노령으로 머리카락이
빠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품이었다.
새로운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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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헤어스타일링 기술 또한 진보했다.
헤어 익스텐션은 주류의 일부가 되었고,
가발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풍성한 머리의 인상을 주기 위해 볼륨과 컬을 만들었다.
60년대의 스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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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는, 큰 머리가 유행했다. 벌집 모양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10년동안 사이키델릭 시대에 맞춰 진행되면서,
모든 색깔의 합성 가발과 머리 연장술이 태어났고,
유행했고, 스타일에서 사라졌다.
연예인들의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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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와 같은 연예인들은 종종 무대 공연의 일부로
가발을 착용하기 때문에 오늘날, 가발업계는 큰 산업이다.
그리고 이상할수록 좋다!
큰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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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가발과 익스텐션의 품질은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
그 어느 때보다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실제로
많은 가발들이 100% 사람의 머리카락을 사용하여 제조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