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기쁘고 자유롭게 가게 하소서.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걸리지 말고 얽히지 말고
가늠할 수없는 빛이 가는 길, 즐기게 하소서.
그 길에 나란 존재에 진실한 참빛이 여지없이 다하고
올곧고 올바르게, 무한한 빛으로 영롱하게 하소서.
2023. 10. 22 오후 08:10
나는(2023. 06. 21)
나란 저마다가 각자의 시초란 것에서 시작되고
각자란 한톨도 거슬러오르면 언젠가 이전에는 하나로 시작이라 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기 저마다에게 있어서의 나라는 나의 시발점이 다르다 할 것이니
그 나란 나는 단순한 하나의 형체인듯 나라는
그 안팎에는 보이나 보이지않는 나라 할 나로,
그 나로 이루어지기까지 이미 현생이란 삶과 또, 셀 수 없는 많은 삶이 끝도 없이 흐르고 있으며
나라는 하나에는, 형체 비형체라 할 것과 셀 수 없는 각기 저마다란 나들이 함께한다 할 것이니
인간이 태어나 이 생을 산다 할 때에 이 생의 나란 나는 나라는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되
그 안팎에 보이지않는 수많은 업과 업식들로 형태형상의 일합상들과 존재자, 비형태형상적 존재존재자들이 수도 없이 모여서는 드나들고 생사소멸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을 살고 있다 할 것이니, 그것이 이 나라하는 나이면서
하나와 여럿이 들어 셀 수 없이 많음이 함께 하고
셀 수 없이 많음에 각기 저마다가 그 무엇이냐를 보느냐에 따라 많음이다부터 하나다 할 것이니,
하나의 세상이란 하나란 언제인지 모를 시초의 시작을 선두하여 가늠할 수 없이 오가며 생사를 번복했을 생애주기에서 합치와 분리로 이동하며 변모변천, 다시 태어나길 반복했던 생사의 나로 돌고돌았던 그 생애주기의 연속의 과정의 나란,
나란, 무엇을 시작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의 시작이라 이름지을 뿐 헤아릴 수 없음이요.
나의 속성이자 나의 본성이며,나의 본성이며 나의 속성, 나의 속성에 있는 나의 본성, 혹은 나의 본성에 있는 나의 속성이라는 수도 없는 조건적예측불가한 숱한 상황속에서 이미 셀 수 없는 영향에 속해 있다 흩어져 다시 생명을 담은 각각의 객체로 모이거나 흩어지고 달라져 가니
나라 이름짓고 나라 지칭할 나란 결코 같음이랄 게 없고, 고정된 항상성이라 한다 할 게 없으니
멈춤없이 흐르는 생의 과정에 차마 다 살필 수 없는 섬세한 움직임이란 흐름들과, 생사란 그 과정전체가 언제인지 시작도 끝도 모를 것에
나란 나는 가늠하되 가늠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되 가늠할 수 있는 게 나라 할 수 있겠으니
정형적비정형적시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
나 하나로 시작하여 흩어져 나란 경계를 지은 업식과 업과 습, ... 나 자신이란 구분적 요소,
그리고 나의 지복적 요소, ... 다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인연적 요소가 나와 이어지고 복잡정교히 또 나와 얽혀있다 할 것이니 이 또한 헤아리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여서 각자 저마다 자신에게 나라는 나를 헤아림에 있음이로다.
이 모든 생, 생이 있는 삶, 사가 있는 삶, 생사가 있는 삶,생사를 구분지을 수 없는 삶,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드나드는 삶을 다 통틀어보며 존재하는 나라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각기 저마다의 나라는 나를 볼때에 헤아림속에 헤아릴 수 없음이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음속에 헤아림이 있다고 하겠다.
나란 또 나라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각자 저마다의 인연적 요소가 있다 할 것이니
그 또한 헤아리는 이가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따라 아주 좁음부터 헤아릴 수 없음까지도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각기 저마다 나란 것은 헤아릴 수 없음에서부터 나란 나라 구분짓는 것에 드러나되 그 드러남이라하면
드러남과 드러나지않음이 곧 함께 있음이요,
헤아릴 수 있고도 헤아릴 수 없다는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설키고 어우러지고 만나고 헤어지면서 합치고 분리되고 변해가고 그러한 다 헤아릴 수 없는 과정이란 과정이 드러남과 드러나지않음에 각기 저마다의 나라 칭하는 그 나와 함께 있으니
바로 보임과 보이지않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드러남과 드러나지않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헤아림과 헤아릴 수 없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구분지음과 구분지을 수 없음이 함께 할 것이고
하나란 것과 하나라 헤아릴 수 없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하나의 본성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속성이 각자의 나라는 나와 함께 있다 할 것이며
위의 내용을 포함한 실로 이르는 모든 것들에 있는 나라는 나란, 각기 저마다 나열해 일일이 나열하려면 거론할 수 있음과 도저히 거론할 수 없음이 저마다의 나란 나와 함께 한다 할 것이니
각자 저마다에게서 있어서 나로서 하나의 삶을 연다는 것은 하나의 삶을 열었다란 것과 함께 이미 수도 없는 하나의 삶의 열림이 함께 있고
각자 저마다에게서 있어서 나로 하나의세상을 연다는 건 하나의 세상을 열었다와 함께 이미 수도 없는 하나의 세상의 열림이 함께 있으니
나란,
각기 저마다 보는 ' 나 ' 가 단지 나요.
그래서 각자 인식하는 나가 나이며
각기 저마다 생각하는 나가 나이며
마음자리에 요동치며 내키는 나가 나이며
이름하여 부르는 게 나란 나라 할 것이니
각기 저마다의 나란 것도 이것이 나라함에 의미란 또 같음과 다름이 함께 함이로다.
각자란 나라는 그 자신이 좁게 보면 볼수록
저마다에게의 나란 표현안의 나란 의미는
그 경계가 두텁고 좁고 작고 적어질 것이며
각자란 나라는 그 자신이 넓게 보면 볼 수록
저마다에게의 나란 표현 안의 나란 의미는
넓기에 그지없이 가늠할 수 없다 할 것이며
나라는 나에 스스로가 매우 간결한 하나와 여럿이란 복잡이 또 함께 한다 할 것이니
보이는 형태형상으로 또 보이지 않는
형태형상내지 형태형상이랄 게 없는
크고 작다 할 수많은 존재존재자들이
세상 세계과 내 안팎에 흩어져있으며
나라는 나로 오고드나듬을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 다 헤아릴 수도 예측할 수도 없으니
나라 구분짓지 않는 것에 나란 게 드러나지 않되 드러남이 있고
나라 구분짓는 것에 나란 게 드러나되 드러나지 않음이 있도다.
위와 같은 헤아릴 수 있고도 헤아릴 수 없다는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설키고 어우러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합치고 분리되고 변해가고 그러한 다 헤아릴 수 없는 과정이 끊임없이 흘러 나란 게
드러남과 드러나지않음에 계속해 함께 있으니
나란 보임과 보이지않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드러남과 드러나지않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헤아림과 헤아릴 수 없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구분지음과 구분지을 수 없음이 함께 할 것이고
하나란 것과 하나라 헤아릴 수 없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고 나란 하나의 본성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나란 나라하는 속성이 함께 있다 할 것이고
위와 같은 모든 것들이 하나씩 나열해 일일이 나열하려면 거론할 수 있음과 또 도저히 다해 거론을 헤아릴 수 없음이 함께 한다 할 것이니
각기 저마다 보는 나란 것이 단지 나이요.
각기 저마다 보는 너란 것이 단지 너이다.
그래서 인식하는 나가 나이며, 생각하는 나가 나이며, 이름하여 부르는 나가 나라 할 것이니
이또한 인식하는 너가 너이며, 생각하는 너가 너이며, 이름하여 부르는 너가 너라 할 것이니
각기 저마다의 나란 너란 것도 각자 저마다에게 있어 그 스스로가 같음과 다름이 함께 함이로다.
위와 같은 걸 일일이 살피려되 살피려 할수록 복잡정교미묘하여 차마 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풀어낼 수 있음과 다 헤쳐 풀어낼 수 없는 나란 것을 글로 나열해 풀기에 간단치 않아 대략에 간결히 풀은 위의 내용을 찬찬히 살피어 보되,
나를 바라보는 것도 보는 각처와 소견에 따라 그 각자 저마다의 나란 나가 모두 다르다 할 것이니
너를 바라보는 것도 보는 각처와 소견에 따라 그 각자 저마다의 너란 너가 모두 다르다 할 것이니
뭐가 옳다 그르다하며 구분지음과 옳고 그름을 구분지을 수 없다가 늘 함께 존재하고 있음이니
각처의 시선을 각자 저마다가 나라는 나로 받아들여 지혜로 곧 새로움이란 또 하나의 세상을 열고, 개국함이 있고, 피어내는 것은,
나란 자신 스스로가 올곧음이란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갖추어 있느냐, 혹은 그러한 자질이 얼마나 있느냐와 스스로의 변화에 따라서
그 나란 안팎구분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마음, 생각, 의식, 사고방식, ...이란 업식,
그 나의 인연들과 기회들에 영향받으며
각자 자신 스스로가 나라 스스로 구분짓는 업등에서 나란 경계가 생겨 두터워져가니
그런 수많은 것들을 포함한 것들이 오고감에
나에게 순수히 열려있거나 혹은 나에게 열려 있지 않음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 할 것이니
각처 각자 그 저마다에 따라 나라 이름지어 질 수 있고 나라 불려질 수 있고 나라고 할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얽히어 이어져 함께 흐른다 할 것이며,
또 이와 같은 것들은 나라는 나 뿐만이 아니라
각처 각자 그 저마다에 따라 너라 이름지어 질 수 있고 너라 불려질 수 있고 너라고 할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얽히어 이어져 함께 흐른다 할 것이다.
어찌 나라 하고
어찌 너라 하느냐
그것은 올곧이 그 각자의 몫이로다.
향천 빛꽃천 *** 향 향 출 출
구분 경계빛 *** 향 출 향 출
빛체 올곧음 *** 향 성 향 성 하거라.
2023. 06. 21 00: 15
나란 이란 선사님의 글에 생각이 일어 써보다.
이전에 나는 나란 어떻게 보았는가 다시 읽고 수행란에 옮겨 써 보다.
2023. 10월 최근 생각
내가 있고 없고 없고 있고를 초월하듯 살아도
존재함은 피할 수 없다.
존재 또는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 인간으로도
위 세계의 무엇으로도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놓고 놓아도 위 세계로 오르면 오를수록 계속 해서 새로운 듯 일어나고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무명과 업식을 풀어 나가는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진 위 세계와 아래 세계의 가늠할 수 없이 오랜 시간의 인연들을 풀고 또 푸는 것이다.
2023. 10. 21 12:25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다.
2023. 10. 21 12:33
믿음이시여! 네, 언제나 저로 그대로 하나이소서.
당연하지요. 래현님이 놓기 전엔 그럴 겁니다.
한 길에 가도 나의 결따라 흐르듯 흘러가야 하는
모든 것들을 지혜로 바르게 해 가길 기도합니다.
빛으로 가는 길에서 흐르며 겪어 가는 모든 것들은
위아래세계에 존재하여 존재로 흐르는 것 뿐이다.
나 빛길에 믿음을 사랑하며 한낱 두려워하지 않길,
매순간순간 존재로 예측 모르게 흐르는 날들을
맑게 깨어 보며 그 어떠함에도 움츠려 들지 않길,
진리는 언제나 그대로이고 순수하고 무결하다.
가늠할 수 없고 다가가려 해도 만질 수 없는 진리여,
진리 역시 어디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오를수록 그렇듯
나 역시 어디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러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언제나 따뜻한 빛으로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희망과 꿈을 믿고 사랑하며 흐르길 기도합니다.
2023. 10. 23 오후10:35 000진리란 완전함이다. ( 2023. 10. 25 의식이 또 깨어 바뀌다.)
진리를 따지거나 나누거나 틀에 맞추려 하는 순간
이미 어긋난다.완전함을 진리를 알기 위해 단편적으로 자꾸 보려 한다면
단편에 빠져들어 그것이 옳다 그르다가 될 것이다.
부분부분을 스치듯 그런가 보다 구경하듯 살피되
단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점점 더 오르는 위 세계의 다양한 존재의 결들을
전체로 보고 품어서 커져가는 무한한 존재가 된다.
2023. 10. 19 오후 10:10 000
2023. 10. 24 오전 12:10 000
자려다 쓴 글이 생각나 다시 읽어 보다 덧쓰다.
오늘도 모두 감사합니다.
1년 전인가 걷는데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3년 전, 5년 전도 그랬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한 집 가족들이
내게 넘어야 할 큰 산이고 힘든 산이었지만
부딪힌 그 순간이 지나면 잊고 함께 쉬는 산이었다.
5년 전일까 하루는 집 근처 스쿨존 거리에 사거리 신호등을 걷는데
퇴근 길 오고 가는 사람들이 어깨에 작은 날개가 달린 착각이 들었다.
퇴근 길 어느 아빠가 아내와 마시기 위해 들고 가는 커피 캐리어 백,
어느 여인이 식구들과 먹기 위해 든 시장 장바구니, 걷는 사람들, ... 학생들, 아이들, 자동차들, ...
생김새는 희미하게 흩어지고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다.
햇살은 너무 부드럽게 살아 나와 놀고 있었고
나는 생의 아름다움에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생동감 있는 사람사물들 사이 나는 평화와 환희에 젖어 있었다.
언제나 데리고 다니던 내 아이와 함께...
1년 전 즈음인가 선사님께 문의드리며 카톡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다.
전 지구 이곳도 너무 아름답고 좋아요. 그래도 위세계를 꼭 가야 하나요? 이런 질문인 듯 하다.
선사님 답변은 위 세계는 이곳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또 잊고 흘러간 날들...
지금 오늘도 나의 삶은 흘러가고
외부와 상관없는 나는 여전하나 또 흐르고, ...
외부 안팎의 나는 선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노약자, 심약자, 어린이는 위험하다는 지구의 롤러코스터는 사라져가고, 남녀노소 즐기는 놀이동산의 아마존 보트체험으로 프로그램흐르듯 완만해지는 날들...
지구보다 더 아름답다시던 위 세계들,
그 세계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곳 지금 여기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나의 삶,
여전히 아름다움과 환희가 눈물이 나는 때가 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 10. 22 12:25 000
내가 있고 없고 없고 있고를 초월하듯 살아도
존재함은 피할 수 없다.
존재 또는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 인간으로도
위 세계의 무엇으로도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놓고 놓아도 위 세계로 오르면 오를수록 계속 해서 새로운 듯 일어나고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무명과 업식을 풀어 나가는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진 위 세계와 아래 세계의 가늠할 수 없이 오랜 시간의 인연들을 풀고 또 푸는 것이다.
2023. 10. 21 12:25 000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다.
2023. 10. 21 12:33 000
이 생각이 맞는 건가요?
칠통 조규일 선사님: 틀리지 않다 하겠습니다.진리란 완전함이다. (2023. 10. 25 의식이 또 깨어 바뀌다.)
진리를 따지거나 나누거나 틀에 맞추려 하는 순간
이미 어긋난다.완전함을 진리를 알기 위해 단편적으로 자꾸 보려 한다면
단편에 빠져들어 그것이 옳다 그르다가 될 것이다.
부분부분을 스치듯 구경하듯 살피되
단지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전체를 바라보는 허공의 눈과 마음이 되지 않을까?
2023. 10. 19 오후 10:10
갑자기 생각이 들어 쓰다.
모두 감사합니다.
믿음이란
(2023. 8월의 생각글)
믿음이란
바른 것을 향하는 곳에 바른 것에 대한 믿음이고,
바른 것을 보려 노력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고,
바른 것을 행하려 애쓰는 것에 대한 믿음이고,
바른 것에 대한 바른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또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쓰는 것이 또 믿음이고,
바름 위의 바름, 바름 위의 바름 위의 바름,...
계속해서 바름을 정진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고,
바름 위의 바름, 바름 위의 바름 위의 바름,...
계속해서 바름을 정진하며 애씀이 바름이자 믿음이고,
그 과정을 사랑하며 그 과정의 자기 스스로를 누구보다 믿는 것이 믿음이고,
자기 스스로를 누구보다 믿으며
그 믿음이 바름을 향해 한결같이 들어 있는 것이 또 믿음이고
그러한 그 과정들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가 있음을 믿는 게 믿음이고,
있는 그대로의 믿음이란
그 믿음으로의 애씀이 믿음의 행이고, 믿음으로의 행을 애씀이 또 믿음이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믿는 것이 믿음이고, 뜬 눈을 뜨고, 다시 뜬 눈을 또 뜨고, 뜨고 뜨며...
계속해서 깨어나는 믿음으로의 행이 믿음이고,
그러한 믿음으로의 행을 애씀에 한결같음과
한결같고자 애씀이 믿음으로의 행이자 믿음이고,
바른 것에 연관되어진 모든 성주괴공하는 일시적인 변모변천하는 형태형상이 있되,
그러한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며 바른 것을 보는 것이 믿음이고,
바른 것에 연관되어진 것보다 바른 것인 핵심을 우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고
바른 것을 우선적으로 보며 연관되어진 것들은 있는 그대로 보려 애쓰는 것이 행이란 믿음이고
믿음이고,
그러한 형태형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그 길로 향하는 길에 있어서
연관지어 드러나는 물든 나란 아상의 소유적 비교적 탐진치적,...
그 모든 물든 나와 물들어 바른 것이 아닌 것을 샅샅이 바르게 보며 찾으며 죽이고 버려가는 게
또 믿음으로의 믿음의 바른 믿음이고
믿음의 바른 행이고
바른 것에 대한 믿음이자 바른 것에 대한 행이자 믿음의 행이고 또 믿음이다.
그 과정에
수도 없는 물든 내가 덜 깨어난 내가 인식하는
제한적인 것, 자성경계의 것,형태형상적 성주괴공함에 빠지거나 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가는 것이 믿음이고
있는 그대로 보려 애씀이 또 믿음이고
바른 것을 향해 애쓰며 감에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믿음이고
바른 것을 향해 애쓰며 감에 있는 그대로를
보려 애쓰는 행이 믿음이고 행이고 믿음의 행이고 믿음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나라할 게 없이 두루해
천지 사방곳처를 비추는 밝은 빛 그자체를 믿는 것이 믿음이고,
그 믿음을 따르려 애쓰는 것이 또 믿음의 행이고 믿음이고,
그 모든 믿음과 믿음의 행을 애쓰는 과정에 있어서
숱하게 드러나는 내 안팎의 수도 없는 물듦의 시험들에 있어서
언제나 바른 것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말고 믿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믿음이고
바른 것에 가고자 올곧고 올바르게 애쓰는 행이 또 믿음이고
그와 같은 모든 관문이자 시험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또 믿음이고
있는 그대로 보려 애쓰는 행이 또 믿음의 행이고 믿음이고
그 믿음을 올곧고 올바르게 하려 애쓰고 가며
믿음에 있어서 믿음들이 더해지고 믿음의 행들이 더해지며
그 믿음들이 빛들이 마치 단계단계별로 더 크게 크게 더 높게 높게 이루어지고 커져가며
스치는 하나의 밝은 빛을 시작으로
나를 밝히는 밝은 빛을 더해가고,
그 빛들이란 빛이 곧 안팎을 밝음으로
밝혀 가는 게 믿음의 행이고 행의 믿음이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믿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것들이 과정을 거치며
알게 모르게
행하며 이루어지고 이루어지고 행하며
바른 것에 대한 믿음이 한결같다.
2023. 08. 03 11:40 마음으로 체득해가는 것들을 스치는 생각으로 덧붙이다.
바르기 위해 나 스스로가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나를 바르게 보고 깨어나려 애쓰는 것이 또 믿음이고,
바른 것에 대한 가르침이나, 글, 이야기등을 들었을 때
올곧게 열려 듣고 받아들여
깨어나려 스스로가 행하고 변하며 또 행하고 변하려 애쓰는 게 믿음의 일부가 아닐까,
윗세계에 올라갈수록
나란 한덩어리를 보고 파헤치고 파헤치며
업식을 바로 보고, 또 보기 위해 애쓰고
나를 내려놓고 버리고
물든 나를 죽이고
물든 나라할 모든 것을 계속 버려갈 적에
나라는 일합상들이 맑아져가고 깨어나감으로 가나니,
또 영청을 들으면 들을 수록 경험상 도움이 된다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사님 말씀대로
나란 한덩어리를 보고 파헤치고 파헤치며
업식을 바로 보고, 또 보기 위해 애쓰고
나를 내려놓고 버리고
물든 나를 죽이고
물든 나라할 모든 것을 계속 버려가고
맑아지고 깨어나며 숨어 있다 드러나듯,
혹은 업식에 의해 다시 또 고개를 드는 물든 나들을 바르게 보고
샅샅이 죽이고 버려가며 또 그리하려 애쓰며 쉼없이 갈 적에
나라는 일합상들이 계속 맑아져가고 깨어나감으로 가는 것이다.
깨어날 수록 저마다의 개체가 되고
그 과정에서 한결같던 信이 있어야 하고
흐트러짐없이 올곧고 올바르게 하려 나 스스로
세우고 지켰던 信은
결국 나 스스로를 바르게 일으키고 나의 안팎을 바르게 일으키고,
나의 가까운 인연자들은 점점 더 바르게 일으키고,
서서히 나와 나이외의 이들을
행복의 날로 현현시키는 절대적 절대자의 힘이
(각기 개인과 인연의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지)
믿었던 신이란 信은 윗세계로 올라갈 수록
( 의식이 높아지는 바른 세계로 올라갈 수록)
신神처럼 기적을 현현시키는 나로 됨을 이르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계속 흐를 의식에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내 현재의식이 이것이니
글이 보이고 내 가슴에 들어와 크게 감동과 울림이 된다는 것도, 말로 잘 정리가 안되지만
무언가가 일어나고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모두 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감사함 쓰는데,
윗세계언어가 갑자기 들려 씁니다.
성통향일 공청공심로 공빛청빛 출사하니
공상처빛 처일처향일 금일출향 향청성출
하는도다.
향꽃천 꽁빛청 청빛출꽃 꽃성청 성꽃 향출
빛꽃향 향성빛 빛향천빛 성향꽃 꽃천 출빛
하여
빛성 빛명광경천 빛꽃서서 열독열람 열천하여
향일 향천빛성광 공심즉심 핵공심처 향꽃향천
향향 천일천향천 천빛출꽃 형성천자 천빛해자
하여
꽃천 빛꽃성일꽃 꽃출귀천 귀향본일 본성천하
천하 행성의념성 절차탁마 천험성통 통성천향
하여
빛빛빛빛천 성꽃꽃꽃 꽃귀향일 만유성본 본디 있는그자체 청체향념 향빛청일 일사천리 성성
하거라. 예.
2023. 08. 01 23:49 김래현
생각일어나는 대로 바로 적고 마치려는데
영청이 들려 윗세계 언어 들린대로 씁니다.
핵중심공천 공천중심성본 성본빛천
천향출빛천 천꽃성황천황 성꽃황천
빛천꽃천황 빛여천상꽃상 꽃성본향
성본빛천향 처곳처본성처 빛출황향
춘꽁천성빛 빛천천빛성향 향꽁향출
성천 빛꽃성빛 빛출생빛 빛 되거라.
예.
2023. 08. 02 오후 09:10 김래현
천천빛꽃 빛꽃성 성성빛꽃 천천향출 꽃천향하니
향꽃천지 천천향 빛꽃천향 만송천하 천빛천이니라. 예.
2023. 08. 03 11:45 김래현
빛 천 빛천 빛 천 천천 천 향 향 천 천 향 꽃 천
향 빛 성빛 빛 꽃 성황 꽃 향 빛 향 향 꽃 천 빛
빛 출 성향 성 빛 본곳 핵 처 향 빛 빛 천 천 꽃
꽃 빛 빛꽃 꽃 곳 처빛 처 향 빛 성 황 향 빛 성
성 곧 빛성 성 향 천꽃 천 끝 상 꽃 본 향 꽃 천
빛 태 성찬 통 천 천지 성 천 들 향 천 지 빛 출
꽃 천 성꽃 꽃 천 꽃빛 빛 꽃 천 향 향 빛 성 황
빛천꽃성 꽃빛출향 향본빛성 향본체빛 성황하거라. 예.
2023. 08. 03 11:58 김래현
향천빛천 빛성천황 천빛꽃체 천황천꽃천황하니
꽃빛향성 성빛총황 황처빛성 빛숭신천빛천이다.
나이고 너이고 모두를 향하는 길이구나.
나는
사랑이요. 맑음으로의 흐름이요, 믿음으로의 길이요.
그것에 대한 행이요.
그 과정의 참견이요. 참관이요.
물듦에서 맑아지는 참이요.
맑아짐에서 물듦이 죽어가는 진리요.
바른 것 그 자체의 일부요.
바른 것 그 자체의 일부란 그 자체의 또 하나의 나요.
나는 곧 하늘의 부름이요. 땅에서 심어져 자라나는 꽃이요.
나가 있는 모두의 공향이고 공꽃이요, 성황꽃이요, 성꽃이요.
나로 하여 밝은 빛이 빛꽃 꽃빛이요. 꽃향이요. 꽃빛향이요, 성꽃향이요. 성빛꽃빛이요.
나는 어디에 있든 있되 소리없이 사라지는 무요, 공이요.
흩어지되 찾을 바 없으나 어디라도 신출귀몰 드러나는 그것이요.
이런지 저런지 변모변천이 변화무쌍한 꽃이요. 빛이요.
걸리면 걸림으로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허요.
공이요. 여요.
여가 여로 태어나고 자라며 여가 여로 태어나고 자라며 여여가 되었다가
다시 여여가 여여로 죽고 죽어가며 여여가 여로 죽고 죽어가며 여가 있다없다 사라지는,
있되없되 가늠할 수조차 없는
작은 소리없음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그러함이로다.
너는 믿음이요. 바름이요. 법과 진리요. 진리의 참됨이요.
세계세상을 잇는 힘이요. 모든 존재의 본이요. 일부의 나란 나의 전체요.
전체를 넘어 천체전부 총체적 황을 잇는 하나요. 끝없는 탄생의 비밀이요, 빛이요. 빛의 생성이요. 빛의 생황이요. 빛의 향성이요, 빛의 그자체니라.
이것은
스타게이트 황궁의 천황천빛 입성꽃 꽃빛천황 천빛천천 천향출꽃 빛천황이 전하는 말이로소이다.
2023. 08. 03 오후 03:01 김래현
죽는 다는 건 노래 / 김래현
죽는다는 건 죽도록 힘들라는 소리가 아니고
또 죽을만큼 힘들게 하라는 소리가 아니고
죽은 듯이 물든 나를 없애버리라는 소리야.
죽고 나니 세상에서 인간으로 없는 것처럼
없어 져서 소리없이 잠시잠깐 숨지도 말고
아예 사라져서 그 물든 나란 실체랄 게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야.
그러려면 확연히 달라져야 해.
그와 관련됨이 사라져야해.
그 죽은 내가 일으키고 관여하고 생각하고 언행했던 것들이
그 내가 죽음으로서 아예 사라지듯 소리없이 기억조차 잊혀져 가야해.
그것이 죽이고 죽고 버리는 것이야,
다른 사람이 아닌 나는 나인데,
물든 나란 것들의 일부가 죽는다는 것이야.
죽이고 죽고 죽고 죽이고 버리고 버려도 계속 나오는 것처럼
물들었던 거를 뭉뚱그려져 못 보이게 덮어버린 것들을
바르게 보고 찾아내는 족족 죽여버리고 안되면 스스로 죽어버리고 버려버려버린란 말이야.
절대로 진짜로 목숨을 끊고 나를 해치는 게 아니란 말이야.
나를 살리고 나를 구하는 거란 말이야.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와 나이외의 이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에 반대되는 나라 할 것 중에서 물든 나를 다 죽여버리란 말이야.
나의 일합상을 괴롭히고 죽이란 소리가 아니라,
일합상을 이롭게 하는 나란 이들을
깨우고 살리란 말이야.
깨우고 살리되, 즐겁고 행복하게 하란 말이야.
그냥 물들어서 빠져서 즐겁고 행복하게란 소리가 아니라
물든 나를 죽이고 죽어서,
일합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깨어나게 살리란 말이야.
그 행복의 빛이 나를 번져나가 주변까지 비추게 환해지게
둘러 싼 물든 나들을 찾는 족족
죽이려 애쓰고 죽으려 애쓰고 버리려 애쓰고
깨우려 애쓰고 살리려 애쓰고 구하려 애쓰는 것이야.
두려움 없이가 두려움이 없다는 게 아니고
두려움이 있어도 두려움이 있고없고 없고 있고 넘어서서
망설임을 일으키는 생각이 있고없고 없고 있고 그냥 넘어서서
그럴려면 그러한 생각들을 다 끊어 죽이고 죽여버리란 말이야.
서슴치 말고 애쓴다 할 생각도 죽여버리고 그 너머를 넘어
머리보다 가슴으로 행하고 저절로 행해질 때
나도 너도 살리고, 구하고, 깨어나고 한다는 거지.
그런데 그 과정이 하나가 아니라 숱한 것들을 반복해서 뚫어 나가
한통속으로 꿰가며 완성을 향해 쉼없이 간다는 거지,
그것이 수행이라는 거지,
또 수행이라는 모든 것의 일부란 거고
일부들이 자꾸 모여서 수행을 향해 완성을 향해 간다는 거지,
가는 바람이 먼저 인가,
먼저 있는 바람이 먼저 인가
그 바람이 저 바람과 하나인가
하나인게 저 바람인가 이 바람인가
알수 없다는 거지,
그냥 다 끊어버리고 죽은듯이 지나쳐버린다는 거지,
그것이
생이고 활이고 공이고 본을 향해가는 길이고
천향 공향이고 성이고 성황이고 성향이고
성꽃들의 황이고 성향들의 총이고 성빛들의 빛황이고
빛황들의 빛천향이고 빛천향들의 천황빛천이고
천황빛천들의 천향빛천꽃이고 천빛향출이고 천빛향출총황빛천이고 빛천꽃천황꽃성천황천꽃천이고, 성황빛출향빛출황출꽃들이 들향빛향꽃성하면서 빛천꽃성출향쫑황천빛천꽃성황꽃출빛천한다는거고, ....
계속 가는 거지, 어디까지인지 모르게, 잇고 이어서 갈 때까지 가는 가는거지.
2023. 08. 03 오후 04:15
산다는 게 멀티다.
산다는게 멀티다.
그런 모두가 산다는 게 모두 멀티다.
나라 이어지고 드나드는 세계세상의 멀티이고 과거현재미래라 규정지음의 시공간의 멀티고
나란 나들의 행하고 일으키고 생각하고 의식을 갖고 움직이고 결정하는 멀티이고
나란 경계에서 너를 바라보는 무수한 상의 멀티이고
나와 연이 닿는 즐비한 차원들의 멀티이고
기회이자 알 수 없는 흐름들에 부딪혀 행하든 행하지 않든 선택하는 멀티이고
각각의 저마다들의 멀티가 각자 스스로에게 영향되어지고 사는 것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나와 이어지는 인연자와 사이의 멀티이고 일어나는 인과 연그리고 결과의 멀티이다.
지금 뜨거운 불앞에 혼자 나와 멍하니 저녁밥상을 짓되,
일어나는 소리없는 소리와 세계세상의 소리없는 소리들을 알게모르게 선택하는 것이 멀티고
그 일어난 생각들을
수시로 후라이팬을 뒤적거리고 뜨거운 세탁실 보조주방에서 요리하며
세탁기건조기의 굉음아래에서 머리로 글을 그리며 휴대폰에 급히 메모 쓰는게 또 멀티이고
나란 이 존재도 요리하는 존재, 엄마라는 존재, 아내라는 존재, 여자라는 존재, 도반이라는 존재, 글을 쓴다는 존재, 물들었다는 존재, 맑다는 존재, 맑아져간다는 존재, ...
시공간, 차원, 의식, 생각, 마음, 언행, 현실이란 현실에서의 멀티이고 이어짐이고
부딪혀 더욱 뭉치거나 또는 흔적없이도 흩어지는 생이고
더하고 빼고 보수하고 응용하고 변화하며...
수도 없이 흘러가는 멀티고
못 보면 무명이고 보면 스치는 빛인
멀티로 살아가는 이들의 영원한 다름없는 그것이
한통속이라는 희미한 흔적이고 자취이고 찰나찰나 반짝이는 고귀한 밝음이다.
2023. 08. 03 오후05:25
멀티는 각각이 각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필요로 한 부분과 일어나는 것들을 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과 대두되는 것을 중점으로 멀티하는 것이되
하고자 해도 자신의 능력밖에 있는 것은 멀티하기가 어렵다.
능력밖의 것을 멀티하려 그러면
다른 것들이 흔들리기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막힌 차원과 세계세상, 의식에서는 멀티를 할 수가 없고,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흘러들고 나가는 차원의 멀티는 자신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 의해 멀티의 차원이 높은 곳에서 부터 여러 차원이 멀티하되 차원의 폭이 넓고,
또 높은 차원쪽이 중점적으로 멀티 할 수 있고,
또 낮은 차원쪽이 중점적으로 멀티할 수 있고,
스스로의 의해 단촐한 차원에 갇힌 것처럼 폭좁은 곳에서 단촐하고 낮은 차원의 나들이 주를 맡고 이루며 멀티하며 살 수 있다.
그것이 열려있는 차원들의 각기 저마다의 멀티이자 함께 영향짓는 서로와 우리의 멀티이고 선택에 의한 멀티이고 행이고 결과로 이어진다.
그것이 그와 함께하는 그들의 차원들에서의 참이고 그들의 세계세상들에서의 참이고
깨어나며 산다는 건,
어떠한 멀티속에서도 올곧되 바름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한결같이 믿음을 보되
그것이 열려있는 차원들의 각기 저마다의 멀티이자 함께 영향짓는 서로와 우리의 멀티이고
그와 함께하는 차원들에서도
차원을 떠난 혹은 차원들에 그대로 있는 바른 것을 보는 게
참이고 그 바른 것을 보는 것이 견이고 그러한 견을 보되
자기 스스로에 있는 차원들의 멀티를 잠시 끊고 차원을 떠난 혹은 차원들에 그대로 있는 바른 것을 보며 보려 애쓰며 염두에 두고,
있는 그대로 항시한 것을 보려 하는 것이 관이 아닐까?
2023. 08. 03 오후 05:34
저녁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일어나 쓰다.
8월의 글까지 덧붙이며, 나는 누구인가로 일으킨
글들을 최근 글과 함께 정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첫댓글 고생했느니라 해주랍니다. 위 세계 엄마라고도 이야기 해주세요. 합니다.
선사님() 제 빛방의 모든 게 선사님의 가르침, 에너지, 글, ...모든 게 하나같이 은혜고 그에 관한 모든 인연의 덕분이예요.
전해 주시는 말씀에 또 힘이 납니다. 위세계 엄마 위세계 부모님께도 살펴주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치지 말고 차근히 언제나 올곧고 올바르게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갈 수 있길 생각합니다.
선사님 감사합니다. ()()()()()
모두 감사합니다. ()()()
담윤 담윤 한담윤
참 고운 이름입니다!
엄마와의 인연으로 윗세계는 물론이겠지만
현실의 담윤이도 건강하고
빛같이 밝은 어른으로 성장하길 기대해봅니다.
행복한 수행길 걸으시길 바래요
덕분에 많이 배움을 얻네요
환절기 건강하시길요.....()^^
정현권 선생님 안부주셔 좋아요.
빛방에서 선사님의 가르침 빛길 따라 저와의 인연이 이롭고 좋으시기만을,
선생님 나날이 좋은 날 되시길 저도 바래요.
정현권 선생님 늘 따뜻한 말씀 온화한 결, 감사해요.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