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 혈통
조성자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나하고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대학병원 암 병동 입원실에서 아버지가 내 눈을 보고 하신 말은
''베짱이처럼 살았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적절한 응답의 말도 여럿 떠오르건만 그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고만 있었는지 후회된다. 하기야 부모님 떠나시면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던가.
베짱이.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그 풍류객. 개미가 쉬지 않고 일할 때 시원한 그늘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던 캐릭터. 추운 겨울, 따뜻하고 풍요롭게 지내는 개미 집 대문을 노크하는 배고픈 예술가. 이야기는 그렇게 되어있다.
좋다, 베짱이처럼 사셨다 하자. 그게 뭐 어때서. 나의 아버지는 베짱이식으로 우리 오 남매를 키우셨다. 현재에 충실하며 인생은 즐거운 것임을 보이셨다.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고 이런저런 악기도 꽤 다뤄봤다. 내 동생들도 음악과 미술을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가족 여행도 거의 정기적으로 다녔다. 여수 만성리 모래사장, 고하도와 목포 앞 섬들. 어린 시절 가족과의 추억은 아름답게 남아있다. 부모님과 본 하춘화 쇼도 생각나고 김대중 연설장에도 가보았고 아버지와 함께 영화관도 여러 번 갔다. 1960년대에 집에 텔레비전도 두고 살았다. 외국산 초콜릿도 먹고 장난감도 가졌다. 개미의 자식들에겐 불가능한 풍요와 여유다. 행복을 주신 것이다. 베짱이가 아닌 개미 아버지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우리 5남매가 개미 아버지 밑에서 컸다면 인생은 백팔십도 달랐으리라. 개미네 아이들은 <황야의 무법자>를 모르고 큰다. 비틀즈를 엘피로 들어보지 못한다.
개미는 자식들에게 베짱이처럼 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일하고 저축하는 동안 자식들의 웃음을 빼앗고 예술 소질은 뭉개고 현재의 행복은 나중을 위해 생략한다.
인생 말년에 ''아, 나는 개미처럼 살았고 안 쓰고 평생 저축했더니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개미는 의미 없다. 평생 즐거울 줄 모르는 자가 인생 말년에 갑자기 느긋해져서 행복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가족과 자식들에게 개미 아빠는 빵점이다.
서머싯 모옴의 단편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두 형제만큼 극단적인 비교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인생살이에 멋과 행복과 예술과 현재의 웃음을 다 버리고 먼 미래만을 향하여 자신을 혹사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동생은 평생 일만 하고도 여전히 가난하다. 베짱이 형은 그리 놀고도 말년에 돈복이 찾아온다. 우리 삶에 이런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고 보면 정답은 없는 문제인 듯하다.
지금의 생각은 이래도 나의 삶은 개미 쪽에 가깝게 산 것 같다. 우리 7080세대들이 거의 그렇듯 열심히 일을 했다. 주말에도 일하고 늦은 시각에도 일하고 그야말로 일하러 태어난 것처럼 부지런히 뛰었다. 베짱이처럼 노래하고파도 안 하고 못 했다. 이렇게 성실 근면하게 개미로 살다 보면 세월이 지나도 베짱이 흉내를 못 낸다.
뒤늦게 깨닫고 베짱이 라이프 스타일로 즐겨보려 해도 몸도 말을 듣지 않고 함께 놀 친구들도 별로 없다.
워라벨하는 요즘 세대들이 옳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도 적당히 일하고 자기 행복을 위한 시간을 더 가지려 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개미 짓을 최소화하고 베짱이처럼 살겠다고 하는 내 자식들이 나보다 더 인생을 잘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개미처럼 살아온 엄마로서 나는 아마 나중 어느 때 말하게 되리라.
''베짱이처럼 살고 싶었어.''
2023 가을 [광주문학]108호 에 실린 글
첫댓글 멋진분이셨네
내부모님들께서는 개미처럼 나도 개미처럼 살아온거같아
지금껏 살아온 습성 바꾸기가 쉽잖겄제
개미처럼들 살았제. 다들 그리 살았으니까..쫌 슬프네.
@땅바닥 언젠가 아버지 발등을밟고 왈츠를 췄다는이야기들음서 부러움을 느낀적이있어
아~ 남의 부모님 멋지시당 ~
일찍돌아가셨다우.ㅠㅠ
나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산적도없고 그렇다고 베짱이는더욱아닌데 꼭 개미와베짱이로 나눠야하나?
정 무엇인가로 말하자면
큰욕심내지않고 편하고가볍게 날아다니는 나비정도?
ㅎㅎ
타고난 나비라면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