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삼시세끼는 언제부터? 우리 조상들의 끼니

[* 라일락 *]

삼시세끼는 언제부터? 우리 조상들의 끼니


하루 세 끼가 익숙한 현대인. 하지만 과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점심을 즐기게 됐을까? ‘끼니’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관념은 언제부터인지 살펴보자.


점심은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아침이나 저녁을 안 먹거나 못 먹는 사람이 많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전체의 4분의 1에 이를 만큼 많다.
그럼에도 ‘하루 세 끼’라는 말을 관용어로 쓰고 있다.

세 끼 관념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에 입각하여 본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끼니는 하루 두 끼였다.
물론 상황에 따라 식사 횟수는 다양했지만 주된 식사는 조석(朝夕) 끼니라고 일컫는 아침밥과 저녁밥이었다.

그렇다면 낮에는 점심을 먹지 않았을까?
그 의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점심이란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보자.
‘점심’은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명나라 시기의 문헌인 『칠수유고』의 기록
“당나라 정참이 강회유후로 있을 때 집안사람이 부인의 새벽밥을 준비하니,
부인은 그의 아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는 치장을 아직 마치지 못했고
나는 밥 먹을 시간이 아직 못 되었으니, 점심을 먹도록 하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 초 『태종실록』에 처음 보이는 말이다.
‘점심(點心)’은 마음에 점화(點火)한다는 뜻의 말로서, 허기가 져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마음에 불이 반짝 붙을 정도로 간단하게 먹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 중국에서는 간단한 다과, 간식을 ‘뎬신(點心)’이라 부른다.
작은 만두 몇 개 정도의 먹을 것을 지칭하는 ‘딤섬’은 뎬신의 남방 광둥어이다.

따라서 애초에는 낮에 먹는 밥이라는 의미가 없었다.
16세기 『묵재일기』를 보면 주인공 이문건은 점심을 새벽에도 먹고 낮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었다.
그런데 간단한 점심을 주로 낮에 먹었기에 그것이 낮의 식사를 뜻하는 말로 변해서 굳어진 것이다.

예전에도 점심식사를 뜻하는 오반(午飯) 또는 주반(晝飯)이라 쓰는 ‘낮밥’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점심이라는 말에 자리를 빼앗겨 사라지고 말았다.

낮의 식사를 가리키는 영어의 런치(lunch)도 알고 보면 점심과 같은 뜻의 말이다.
런치는 얇게 저민 고기 한 조각을 뜻하는 스페인어 롱하(lonja)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원래는 낮의 식사가 아니라 간단한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02.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에 5홉을 먹으니하루에 한 되를 먹는다”라는 문장이 있다.
아침과 저녁만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하루 두 끼만 먹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 도시 공장 근처에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토스트 정도의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 나이트 런치 왜건(night lunch wagon)이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런치가 아침식사 뒤에 먹는 간단한 식사로 개념이 바뀌었고,
다시 정식으로 낮의 식사로 변한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외에 아침 식사 전에 먹는 이른밥도 있었다.
이른밥은 한자로 조반(早飯)이라 쓰는데 부잣집에서 겨울에 먹었던 밥이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저녁을 먹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아침밥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출출할 때 간단하게 죽 따위를 먹는 것을 이른밥이라 불렀다.
이른 밥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서 먹는다는 뜻으로 ‘욕식(褥食)’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은 ‘자릿조반’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서양의 ‘브렉퍼스트(breakfast)’도 이른밥과 개념이 비슷한 식사이다.
중세 유럽에서도 하루 끼니는 두 끼였다.
다만 우리는 아침과 저녁에 밥을 먹었지만 유럽에서는 낮과 저녁에 식사를 했기에
저녁을 먹고 난 후 다음날 점심까지는 마치 단식을 하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긴 시간을 공복으로 보냈다.

그래서 아침에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를 단식을 뜻하는
패스트(fast)와 깨뜨린다는 브레이크(break)를 붙여서 ‘브렉퍼스트’라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끼니는 상황에 따라 달랐다.
여름에는 해가 길고 또한 농번기이기도 해서 하루 두 끼에 간단한 낮점심이 덧붙여졌다.
그러므로 대개 춘분 전후부터 추분 전후까지는 세 끼를 먹었는데 낮에 중간에 먹는 양이
매우 적어서 굳이 말하자면 2.5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 때 사학(四學)의 생도들에게도 해가 긴 여름에는 점심거리를 지급하고
해가 짧은 겨울에는 불을 밝힐 등유(燈油)를 지급했다 한다. 또 끼니 수는 활동량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활동량이 많은 여름 농번기에는 간단한 점심을 포함해
세 끼를 먹고 활동량이 적은 겨울 농한기에는 두 끼만 먹었다.
여행객도 먼 길을 가다 보면 쉽게 허기가 지므로
냇가 그늘 또는 주막에서 낮밥을 먹었고,
왕이나 고위 관원들도 먼 길을 갈 때에는 주정소에서 든든히 한 끼를 챙겨 먹었다.

지금은 부자나 가난뱅이나 하루 세 끼 먹기는 마찬가지라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세 끼를 먹기는 어려웠고,
관에서도 높은 관직에 있는 관원에게만 점심을 제공하여 지위에 따라서도 끼니 수가 달랐다.

조선 전기에는 일정 품계 이상의 관원에게는 여러 명목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점심을 지급하기도 했지만 나라 살림살이가 점점 어려워지자
16세기 선조 때부터는 일부 고위 관원을 제외한 일반 관원들은
점심을 굶든지 각자 해결하라고 하여 계집종들이 관아로 점심상을 나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세 끼라 하더라도 낮점심이 간단한 소식이라서 2.5끼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온전히 세 끼를 먹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 예전에는 농산물 생산력이 미약해서 모자라는 식량으로 세 끼를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식량 수입이 가능해지면서 세 끼를 온전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사람들의 활동량이 매우 많아졌다.
조선시대에는 산업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지금처럼 바쁘게 살지 않았고 에너지 소모도 적어서 많이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일거리가 많아지고 활동량이 많아진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히 많이 먹어야 한다.
셋째로 해가 긴 여름 농번기와 해가 짧은 겨울 농한기의 구분이 사라졌다.
전기조명의 발달로 해가 길고 짧은 것도 의미가 없어졌고,
농가인구는 전체의 5%에도 못 미치므로 여름, 겨울의 끼니 수가 다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끼니는 두 끼로서 상황에 따라
낮에 간단한 점심을 먹기도 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가 20세기에 접어들어
도시 노동자의 증가로 세 끼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되고
하루 세끼가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역시 20세기 후반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글. 정연식(서울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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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많이 굶고 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