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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전재 재배포 금지라지만, ㅡ,.ㅡ.. 차 사진이 많아 재미 있어서 올려 봅니다.
문제되면 자삭 할께요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carlife&wr_id=22041
26살, 이제 뭔가 좀 배워 한창 꿈을 펼칠 나이다. 1984년 국내 첫 자동차전문지로 태어난 <자동차생활>이 26살이 되었다. 우리네 인생처럼 굴곡 많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6년 동안 국내 모터리제이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해왔다는 사실. 26주년을 돌아보는 의미에서 혹은 함께 축하하고 싶은 의미에서 메이커별 26년 전의 모습과 오늘을 조명해 봤다.
현대
1984 Pony Ⅱ
2010 Sonata / Avante
포니를 앞세워 현대는 70년대 말 국내 소형 승용차시장의 80%를 차지했다. 여기에 맞서 새한자동차가 82년 1,400cc 제미니의 외형을 변경하고 제동력과 등판력, 연비 등을 개선한 업그레이드 모델을 준비하자 현대는 6년 만에 포니를 개선한 포니Ⅱ로 대응했다. 결과는 현대의 완승. 여세를 몰아 26년 전인 84년 포니2 픽업에 커버를 씌운 포니2 픽업 컨버터블탑을 개발, 9월 17일부터 판매했다. 포니2 픽업의 선택사양으로 추가된 모델로 특수 처리된 비닐로 만들어진 반영구적인 주름파이프의 지붕을 필요에 따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 날씨에 관계없이 쉽고 안전하게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한편,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대는 86년까지 승용차 연간 생산량을 39만3,000대로 늘렸다.
90년대 초부터 현대는 중형차 쏘나타, 준중형 아반떼 독주체제를 굳혔다. 두 모델은 국내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현대의 성공가도를 이끌었다. 쿠페 스타일의 파격적인 모습으로 2009년 9월 데뷔한 6세대 쏘나타는 여전히 현대의 핵심 모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훌쩍 커버린 경쟁 모델들의 거센 도전으로 예전 만큼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아반떼도 6세대 쏘나타의 디자인 흐름을 물려받은 5세대로 거듭났다.
광고로 보는 포니 그때 그 시절
1. 74년 토리노모터쇼에서 포니에게 쏟아진 뜨거운 관심을 실은 75년 1월 1일 광고
2.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임을 강조한 75년 1월27일 신문광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칼라 광고였다 3. 80년 5월 포니 3도어 자동변속기를 달다. 5도어 오토매틱은 그보다 두 달 앞서 출시되었다 4. 82년 2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포니2가 탄생했다. 계기판 디자인을 바꾸고 뒤쪽을 약 40mm 넓혀 뒷좌석공간과 트렁크공간을 개선했다. 5. 83년 2월 등장한 포니2 LPG 전용 택시. LPG와 가솔린 겸용이었던 택시 모델을 LPG 전용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6. 캐나다 수출형인 포니2 CX를 84년 5월 국내에 출시했다. 5마일 충격흡수식 범퍼를 달아 화제가 되었다
기아
1984 Bongo
2010 K5
정부의 자동차공업합리화조치로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던 기아를 살린 차가 바로 봉고(1981)다. 봉고는 국내 원박스카의 선구자로 이후 베스타, 프레지오, 봉고Ⅲ 버스 등으로 진화하며 2005년 6월까지 명맥을 이었다. 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는 아프리카 산양이라는 뜻을 지닌 봉고는 당시 제휴관계에 있던 마쓰다의 봉고 트럭과 봉고 승합버스의 설계와 이름을 그대로 들여와 쓴 것이다.
1980년대 기아의 베스트셀러카로 자리잡은 봉고는 기아에게 경영 정상화라는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봉고가 데뷔와 동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실용성과 키에 비해 롤링이 적은 안정감 때문이다. 또 미니버스로 등록되었지만 밴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톤 트럭의 섀시로 제작된 봉고는 화물을 싣기에 좋았다. 도어도 슬라이딩식이었고, 뒷문을 해치백으로 해 다양한 영업에 이용하기 편한 차종이었다. 84년 기아는 봉고 코치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2종 보통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봉고 나인(9인승)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승승장구한 RV시장과 달리 세단시장에서 기를 펴지 못했던 기아는 2010년 6월 야심작 K5로 이 클래스의 터줏대감인 쏘나타에 도전장을 냈다. K5는 쏘나타와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지만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중형차시장의 새 강자로 떠올랐고, 최근 쏘나타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GM대우
1984 Royal XQ
2010 Lacetti Premiere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대우자동차는 ‘중형차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라인업으로 시장을 리드했다. 78년 레코드 로얄과 80년 로얄 살롱, 83년 로얄 XQ와 로얄 프린스 등 연이은 히트작 덕분이었다. 당시 대우를 대표하는 로얄 시리즈는 오펠 레코드를 바탕으로 한 모델로서 유럽 스타일의 세련된 차체와 넓고 편안한 실내, 안정된 달리기 성능을 겸비하며 국내 중형차 만들기의 표본이 되었다.
85년 10월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중형차시장의 수요가 크게 늘 것에 대비하기 위해 로얄 XQ와 로얄 프린스의 앞뒤와 사이드미러를 변경한 모델을 내놓았다. 로얄 디젤은 소음방지 기능을 강화하고 내장을 고급화하는 한편 로얄 XQ LPG도 만들어 택시시장을 노렸다.
98년 쌍용을 인수한 대우는 이듬해 부체누적으로 법정관리, 2000년 최종 부도처리되는 수모를 겪다 2001년 GM에 매각되면서 지금의 GM대우로 새롭게 태어났다.
2008년 10월 라세티 후속으로 데뷔한 라세티 프리미어는 GM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첫 준중형 모델이다. 차체를 키워 준중형급 이상의 실내공간과 편의성을 지녔고 볼륨감 넘치는 디자인으로 좋은 평을 듣고 있다. 국내에서는 1.6L와 1.8L 가솔린, 2.0L 디젤로 라인업을 이루고 있으며 수출형에는 1.4L 가솔린 터보 엔진이 추가되었다.
쌍용
1984 Korando
2010 Chairman W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지프는 합작사인 미국 AMC의 결별선언으로 79년 신진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81년 이름을 거화로 바꾸고 생산 중이던 지프에 코란도(KORANDO)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코란도는 ‘Korean can do’에서 따왔다.
거화 코란도는 각국의 딜러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군용 4륜구동 자동차에 의존하던 수출시장에 민수용 4륜구동 자동차를 더하게 되어 사세확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거화는 84년 회사 경영권을 놓고 내분이 일어나 ‘흑자도산’이라는 비운을 맞았다. 85년 대시보드와 스티어링 휠 등을 승용차 타입으로 부드럽게 바꾼 모델을 내놓았지만 결국 동아자동차에 인수되었다.
동아는 거화를 인수한 뒤 코란도의 조립라인을 부산에서 동아의 본거지인 평택으로 옮겼다. 동아는 86년 차체의 모서리를 다듬고 작은 타이어를 신겨 날렵한 느낌을 주는 뉴 코란도를 내놓았지만 같은 해 11월 다시 쌍용그룹에 인수되었다.
쌍용그룹 산하로 들어간 동아자동차는 88년 쌍용자동차공업으로 개명되었고 이때부터 코란도에 대한 본격적인 개선의 손길이 더해졌다. 코란도는 88년 5단 수동변속기를 처음 얹고 91년에는 이스즈의 2.2L 72마력 엔진 외에 푸조에서 공급받은 2.5L 79마력 엔진을 더했으며 각종 편의장비를 꾸준히 늘려나갔다.
88년 말 쌍용은 국내 최초의 4WD 스테이션 왜건인 코란도 훼미리를 내놓으며 큰 성공을 거뒀지만 91년 현대정공이 미쓰비시 파제로를 갤로퍼로 판매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93년 영국 RCA 켄 그린리 교수가 디자인한 멋진 스타일로 등장한 무쏘를 앞세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했다.
SUV 전문 메이커로 성장해온 쌍용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승용차 개발을 단행, 97년 체어맨을 선보였다. 벤츠 E클래스 플랫폼을 활용한 체어맨은 중후한 국산 프리미엄 세단으로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아 쌍용이 종합 메이커로 발돋움하는 데 공헌했다. 2003년 페이스리프트(뉴 체어맨)를 거쳐 2008년 3월 풀 체인지 모델(체어맨 W)이 등장하면서 기존 모델은 체어맨 H로 다운그레이드되었다. 쌍용의 기함 체어맨 W는 국산차 처음으로 7단 자동변속기를 얹고 국산 세단 처음으로 네바퀴굴림을 시도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을 내세웠다.
아우디
1984 Audi 100
2010 R8
아우디는 개발담당 중역이던 페르디난트 피에히(현 폭스바겐그룹 이사회 의장)의 지휘 아래 1982년 혁신적인 디자인의 새 아우디 100을 론칭시켰다. 공기저항계수 0.30의 유선형 보디는 당시 등장했던 경쟁 모델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골든 스티어링 휠과 카 오브 더 이어 등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83년 가을 해치백과 왜건이 추가되었고 84년 콰트로 시스템 탑재, 85년 보디 전체 아연 도금 등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아우디는 26년 사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만큼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R8은 이런 아우디가 2007년 내놓은 정통 미드십 스포츠카다.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한 R8 레이싱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을 만큼 모터스포츠 노하우가 발휘된 걸작. 낮은 노즈, 싱글 프레임 그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은 날카로운 헤드램프, 짧은 오버행 등 아우디식 스포츠카 만들기 공식을 정립했다. 초기 모델은 V8 4.2L 420마력 엔진을 달고 나왔다. 43.9kg·m의 최대토크를 바탕으로 최고시속 299km의 성능을 냈다.
2008년 12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V10 5.2L 엔진을 525마력으로 디튠한 V10 모델을 추가해 라인업을 보강했다. R8 V10은 최고시속 314km, 0→시속 100km 가속 3.9초의 고성능을 내며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을 옵션으로 제공한다.
BMW
1984 6 Series
2010 5 Series
스포티함을 강조한 BMW는 모든 모델에 다이내믹한 요소를 심었다. 특히 매니아적인 향기가 짙은 쿠페 모델을 전략적으로 내세워 재미를 봤다. 대표적인 모델이 1976년 데뷔한 쿠페 6시리즈. 1983년에는 고성능 모델 M635CSi가 추가되었다 78년에 활약했던 M1 레이스 머신에 쓰인 엔진을 손봐 얹었는데 M88 엔진은 촉매가 없는 하드코어 버전이었다. 싱글 타이밍 체인을 달고 압축비가 10.5:1이었으며 286마력의 고출력을 냈다. 반면 미국시장의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촉매 컨버터를 단 엔진을 S38이라 불렸다. 더블-로 타이밍 체인을 썼고 압축비를 9.8:1로 낮춰 최고출력이 256마력으로 조금 낮았다. 변속기는 게트락 5단 수동이고 25% LSD를 기본으로 달았다.
M635CSi의 뒤를 잇는 모델이 M6으로, 2005년 등장한 507마력 M5 엔진과 SMGⅡ 반자동변속기를 달아 고성능 럭셔리 쿠페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올해 BMW 라인업의 이슈는 단연 5시리즈. 2009년 코드명 F10으로 거듭난 6세대 5시리즈는 데뷔와 동시에 전세계 프리미엄 중형차시장을 점령했다. 7시리즈와 같은 F01 플랫폼, 직렬 6기통 터보와 V8 트윈 터보 유닛, ZF 8단 자동변속기 등 호화로운 파워트레인으로 무장해 라이벌을 압도하고 있다.
벤틀리
1984 Mulsanne
2010 Mulsanne
르망 24시간을 제압했던 영국의 초대형 그랜드 투어러, 벤틀리의 역사는 19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경제대공황의 파고에 휩쓸려 1931년부터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었고, 그후 무려 50년 이상을 ‘롤스로이스 스포츠형’으로 살아야만 했다. 뮬산이 대표적인 케이스. 1980년 데뷔한 뮬산은 동시대의 롤스로이스 플랫폼과 엔진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둥근 그릴과 대형 트윈 헤드램프를 제외하면 실버 스피릿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뮬산이라는 이름은 르망이 열리는 사르트 서킷의 최장 직선로 이름.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V8 6.75L이지만 82년 추가된 터보형은 출력이 50% 정도 향상(당시 롤스로이스/벤틀리는 출력을 공개하지 않았다)되어 정지상태에서 8초 안에 시속 97km(60마일)까지 가속할 수 있었다.
1998년 벤틀리와 크루공장을 인수한 폭스바겐은 독일 특유의 하이테크와 영국의 전통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고성능 호화 설룬 아나지를 풀 모델 체인지하면서 뮬산의 이름을 부활시켰다. 1991년 단종 후 19년 만의 일. 롤스로이스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던 아나지와 달리 신형 뮬산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되었으며 쿠페와 컨버터블형이 추가되어 브룩랜즈와 아쥐르도 대체할 예정이다. 크루공장의 숙련된 장인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V8 6.75L 512마력 엔진의 강력한 파워가 조화를 이룬다.
크라이슬러
1984 Dodge Caravan
2010 Jeep Grand Cherokee
1970년대 석유파동과 베이비 붐 세대의 결혼으로 큰 차체, 뒷바퀴굴림 설계 등의 한계를 안고 있던 기존의 대형차 위주의 제품 구성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를 반영한 크라이슬러의 첫 모델이 1983년 데뷔한 K카다. K카는 연료절약형의 자동차로 가벼우면서도 6명의 가족을 태울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은 차로, 출시 첫해에만 50만 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닷지 캐러밴과 플리머스 보이저는 실내 바닥을 낮고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앞바퀴굴림으로 설계되었다. 슬라이딩 사이드도어와 탈착식 뒷좌석으로 편리하게 승차하고, 짐을 싣고 내리기 쉬워 패밀리카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둘의 성공으로 인해 크라이슬러의 수익성은 크게 나아졌다. 1984년 상반기 순수입은 4,010만달러로 1년 전인 1983년 상반기 순수입인 2,410만 달러에 비해 66.4%나 늘어났다. 크라이슬러 미니밴은 84년 출시부터 현재까지 세계시장에서 1,000만 대 이상 판매되었으며 현재까지 그랜드 보이저로 명맥을 잇고 있다.
84년 탄생한 크라이슬러의 또 하나의 역작 체로키. 지프 브랜드의 첫 모노코크 SUV로 태어나 캐주얼 지프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010년의 기대주는 맏형인 그랜드 체로키의 몫이다. 2009년 뉴욕모터쇼를 통해 첫선을 보인 새 그랜드 체로키는 풀 사이즈로 볼륨을 키워 한 단계 윗급을 겨냥하고 있다. 파워트레인은 새로 개발한 V6 3.6L, V8 5.7L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크라이슬러 부흥을 이끈 리 아이아코카
리 아이아코카는 혁신적이고 과감한 리더십으로 적자투성이의 크라이슬러를 기록적인 흑자로 돌려 세운 인물이다. 원래 그는 포드 인물이었다. 전설적인 머스탱도 그의 품에서 탄생한 역작. 헨리 포드 2세와의 대결에서 밀려나 포드를 떠난 리 아이아코카는 78년 크라이슬러의 지휘봉을 잡아 1983년 상환기간이 7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정부 구제금융을 일시에 상환했으며, 7억달러의 순이익을 남기는 신화를 일구어냈다. 1년 뒤, 닷지 캐러밴과 플리머스 보이저를 통해 미니밴시장을 개척, 큰 성공을 거두었고 92년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크라이슬러를 떠났다.
페라리
1984 Testarossa
2010 458 Italia
페라리는 환상 속의 스포츠카임에 틀림없다. 그 사실은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 하지만 당시에는 창업자 엔초 페라리가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 페라리 팬들에게 있어 되돌아가고 싶은 페라리의 황금기임에 틀림없다. 70년대 말부터 페라리는 현대적 감각의 미드십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해 308과 208 시리즈, 2+2 구성의 몬디알 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1984년이 되자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모델을 등장시킨다. 그룹 B 레이스 규정을 위해 태어나 후에 F40의 밑거름이 된 288GTO 그리고 또 하나가 아름다운 미드십 기함 테스타로사였다.
테스타로사는 페라리가 초창기부터 사용해온 이름이다. ‘붉은 머리카락’을 뜻하는 이태리어로 붉은색 헤드커버에서 유래되었다. 84년 가을 파리모터쇼가 열리기 직전 샹젤리제 거리의 클럽 리드에서 처음 베일을 벗은 테스타로사는 피닌파리나가 창조한 아름다운 보디의 미드십에 180。 V12(수평대향과는 다르다) 5.0L 390마력 엔진을 얹고 있었다. 팝업식 헤드램프로 노즈를 매끈하게 다듬었고, 차체 양옆 대형 흡기구에는 일명 ‘치즈 절단기’로 불리던 5개의 핀이 달려 있었다.
최고속도 290km, 0→시속 100km 가속 5.8초의 성능은 당시 치열했던 람보르기니와의 자존심 경쟁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512BB의 메커니즘을 발전시켰지만 단순히 빨리 달리기 위한 수퍼카로서 뿐 아니라 고급차로서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다.
26년 전의 페라리는 초고급, 호화 모델이 주력으로 베이비 페라리라 불린 입문형 모델이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베이비 페라리의 역사는 1968년 등장한 디노 시리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혈통을 이어받은 458 이탈리아는 ‘베이비’라는 애칭이 무색할 만큼 고성능 모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신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라리의 미래는 599나 612보다 458 이탈리아에 걸려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엔초 페라리 사망 후 페라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몬테제몰로 사장은 그런 의심을 불식시키며 페라리를 굳건하게 이끌고 있다. 환경대응을 위해 직분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 중. F1에서는 슈마허와 함께 새로운 황금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200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등장한 458 이탈리아는 서킷 랩타임에서 엔초 페라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달리기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독특한 헤드램프와 엔초 페라리를 연상시키는 브레이크램프 등 피닌파리나가 창조한 새로운 디자인은 ‘미래적 페라리’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직분사 시스템을 갖춘 V8 4.5L 엔진(570마력)으로 CO₂ 배출량을 줄였으며 듀얼 클러치를 갖춘 7단 반자동변속기와 전자식 디프록(E-Diff), F1 트랙션 컨트롤 등 서킷에서 배양된 첨단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포드
1984 Thunderbird
2010 Taurus
1955년 시보레 콜벳에 맞서 등장한 2인승 로드스터 선더버드가 83년 9세대 모델로 거듭났다. 에어로다이내믹 보디와 터보 쿠페도 발매되어 퍼스널 럭셔리카로 변질(?)되었던 컨셉트를 되살렸다. 포드 머스탱 플랫폼이었던 FOX 플랫폼으로 개발되었으며 2.3L 터보 엔진을 올려 젊은층을 겨냥했다. 변속기는 4단 자동과 5단 수동이 쓰였다. 85년에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모델이 발매되었다.
지난 26년의 세월 동안 포드의 승용 주력 모델 역할은 토러스가 담당해왔다. 85년(모델이어 86년형)에 처음 등장해 현재 6세대 모델로 거듭났다. 유러피언 키네틱 디자인에 미국적인 요소를 가미한 새 디자인 언어는 지금까지의 미국 포드 디자인과 달리 간결하고 미래지향적이다. V6 3.5L 듀라텍 263마력 엔진과 고성능 365마력 V6 3.5L 에코부스트 엔진(네바퀴굴림)에 6단 자동변속기를 물렸다.
캐딜락
1984 Seville
2010 CTS
70년대 석유파동을 이후 크고 화려한 차만 만들던 캐딜락에도 변화가 일었다. 1975년 등장한 세빌(56년과 57년 엘도라도 컨버터블에도 같은 이름을 썼다)은 캐딜락 역사상 첫 스몰카로 불린다. 지금 기준으로는 미드 사이즈 세단이지만 당시 캐딜락이 만들었던 차들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올즈모빌 V8 엔진을 달고 등장한 세빌은 벤츠를 비롯한 유럽의 소형 프리미엄 모델들과 대적하기 위해 태어나 성공을 거뒀다. 80년 앞바퀴굴림으로 돌아서면서 디젤 엔진과 버틀백 세단 모델이 추가되었고 85년에는 미연방 정부가 규정하는 AFE(메이커별 전차종 평균연비 기준)에 맞추어 크기를 줄이고 경량화한 3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2003년 5세대를 끝으로 뒷바퀴굴림 STS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90년대를 지나면서 캐딜락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흐름은 유럽 고급차와의 경쟁을 위한 품질개선과 소형화. 디자인도 전통적인 미국 취향을 버리고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CTS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02년. 스텔스 전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에지 디자인으로 캐딜락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2007년 북미모터쇼를 통해 2세대로 거듭났으며 4도어 세단에 이어 왜건(2009)과 쿠페(2010), V8 6.2L 556마력 엔진을 얹은 고성능 CTS-V(2009) 등 가지치기 모델을 내놓으며 독일 프리미엄 미드 사이즈 모델에 맞서고 있다.
혼다
1984 Civic
2010 Accord
혼다 앞 엔진 앞바퀴굴림(FF)의 성공적인 스타트라인이 된 시빅은 72년 등장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듬해 12월 미국에 상륙한 첫 모델은 복합와류 속도조절 연소(CVCC) 기술로 촉매장치를 달지 않고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배출가스규제였던 ‘머스키법’을 통과했다.
84년 3세대 시빅이 등장했다. 5도어 해치백과 별도로 4도어 왜건이 나왔고 2인승 쿠페 스타일의 CRX도 소개되었다. 콤팩트한 차체에 가벼운 몸무게는 시빅의 가장 큰 장점. 직렬 4기통 1.5L D타입 엔진이 주력이었고 일본 내수용 고성능 Si 모델에는 1.6L DOHC ZC 130마력 엔진을 얹고 서스펜션을 하드하게 세팅했다. 반면 미국 사양의 3도어 Si와 CRX Si에는 91마력 SOHC 엔진을 사용했다. 84년에는 네바퀴굴림 버전도 추가되었다.
26년이 지난 2010년 혼다의 메인은 누가 뭐라 해도 어코드다. 어코드는 1976년 5월 1.6L 엔진을 달고 시빅을 키운 듯한 중형 3도어 해치백으로 등장했다. 1977년 10월 4도어 세단이 등장했고 1979년 10월 혼다매틱(Hondamatic)으로 불리는 자동변속기를 3단으로 개선해 얹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토요타 캠리와 함께 미국시장에 일본 중형 세단의 붐을 일으켰다. 현행 모델은 2007년 데뷔한 8세대. 직렬 4기통 2.4L DOHC i-VTEC 엔진과 V6 3.5L SOHC i-VTEC 엔진(J35A)을 달았다. 일본에서는 5세대 ‘인스파이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2009년 4월에는 부동의 베스트셀러 포드 F시리즈를 제치고 미국 월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에서 승용차가 픽업을 누른 것은 어코드가 처음이다.
재규어
1984 XJ-S
2010 XJ
1972년 라이온즈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재규어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존 이건이 재규어를 이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라이온즈처럼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던 그는 의욕적으로 새차를 내놓으면서 재규어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75년 전설적인 E타입의 뒤를 이어 등장한 XJ-S는 기함 XJ와 차별화된 모습의 그랜드 투어러(GT)로, 1996년을 끝으로 XK8에 자리를 물려주었다. V12 5.3L 엔진을 달아 최고시속 229km의 성능을 냈다. 80년 내외장을 다듬고 295마력 엔진을 얹은 HE(High-Efficiency) 모델이 나왔고 83년 뒷좌석을 과감히 없앤 2인승 오픈카인 XJ-SC가 데뷔했다. 초기 XJ-SC는 타르가와 비슷한 형태의 오픈 모델(88년에 완전 오픈으로 바뀜)이었으며 직렬 6기통 AJ6 3.6L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
2009년 재규어는 기함 XJ의 새 모델을 론칭했다. 클래식 재규어를 대표하는 MK2와 오리지널 XJ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디자인과 100% 알루미늄 차체를 써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상급 수퍼스포트에 510마력 V8 5.0L 수퍼차저 엔진을 얹었고 그 아래에 V8 5.0L와 V6 3.0L 디젤 라인업을 두었다.
랜드로버
1984 Defender
2010 Discovery 4
랜드로버는 48년 전후 피폐해진 영국인들이 농사용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프 형태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다루기 쉽고 험로 주파성이 뛰어나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시리즈Ⅰ에 이어 데뷔 10주년이 되던 1958년 시리즈Ⅱ가 나왔고, 1971년 다시 시리즈Ⅲ로 발전했다.
1983년 랜드로버 100(휠베이스)이 등장해 시리즈Ⅲ을 대신했고 이듬해 숏 버전인 90이 데뷔했다. 이때 결정된 휠베이스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차체 강성이 높아져 앞 유리가 한 장짜리로 바뀌고 서스펜션도 코일 스프링으로 변경되었다. 파워 스티어링(옵션)과 영구 4WD를 쓴 것도 이때부터다. 90년부터 디펜더란 이름을 사용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90과 110을 디펜더의 뿌리로 본다.
2010년 랜드로버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디스커버리의 역사는 89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레인지로버로 상위 클래스를 커버하고 있던 랜드로버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그보다 값싼 모델이 필요했고 코드명 ‘프로젝트 J’를 진행해 디스커버리를 탄생시켰다. 2009년 등장한 4번째 디스커버리 모델이 최신작. V8 5.0L 가솔린(LR-V8), V6 3.0L 디젤(LR-TDV6), V6 2.7L 디젤(TDV6) 엔진과 ZF 6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5개의 카메라로 차 주위를 360도 볼 수 있는 서라운드 카메라 기능과 샌드런치 컨트롤(Sand Launch Control) 기능을 추가한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Terrain Response) 등 첨단장비로 무장했다.
미니
1984 Cooper & Cooper S
2010 Countryman
26년 전의 미니는 유럽 석유파동 시기(1959년)에 태어난 오리지널 미니였다. 오리지널 미니는 2001년 데뷔한 BMW MINI(대문자로 구별한다)의 원형이지만 훨씬 작고 친서민적인 모델이었다. 이를테면 플라스틱 보디에 모터사이클 엔진을 얹은 버블카나 이세타와 비슷한 컨셉트의 모델이었다. 당시 BMC의 총수 레오날드 로드 경은 독일산 소형차에 대응하기 위해 알렉 이시고니스에게 작고 값싼 모델을 주문했고 그 시작이 미니의 시발점이었다.
이시고니스는 2년 1개월의 노력 끝에 1959년 첫 미니를 세상에 내놓았다. 길이 3,050mm, 너비 1,410mm, 높이 1,350mm에 불과한 차체였지만 어른 넷이 타기에 충분했다. 엔진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수랭식 4기통 848cc 34마력 엔진을 가로로 놓았고 10인치 초소형 휠을 네 귀퉁이로 몰았다. 작고 예쁜 미니는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미니 모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쿠퍼와 쿠퍼S는 이시고니스의 친구이자 1950년대 말 F1에서 이름을 날렸던 레이싱 컨스트럭터였던 존 쿠퍼에 의해서 탄생했다. 애초에 이시고니스는 미니의 기본 컨셉트(효율과 실용성)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고성능 모델을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쿠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BMC의 경영진을 설득해 61년 미니 쿠퍼에 이어 63년 쿠퍼S를 탄생시켰다.
밴, 픽업, 왜건 등 다양한 변형 모델이 등장했지만 초대 미니의 큰 틀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과정에서도 BMW 미니가 등장하기 바로 전인 2000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2001년 BMW 품에서 등장한 새 미니는 브랜드와 디자인만 가져왔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른 프리미엄 소형차로 변신했다. 현대적인 디자인에 BMW가 보유한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면서 오리지널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0년 미니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4개의 도어가 달리고 네바퀴를 굴리는 컨트리맨이 그 주인공. 컨트리맨은 커다란 그릴과 툭 튀어나온 헤드램프, 곧추선 윈도 스크린, 원형 계기판과 송풍구 등 미니의 디자인 유전자를 그대로 수용한 SUV로 미니 추종자들에게 유틸리티성까지 선물했다. 뒷좌석을 접을 경우 화물공간이 1,170L까지 늘어난다. 네바퀴굴림을 빼면 파워트레인은 미니 형제들과 같다. 주력이 될 컨트리맨 S의 심장은 1.6L 트윈 스크롤 터보로 최고출력 184마력을 내며 6단 수동 또는 자동변속기가 물린다.
람보르기니
1984 Countach
2010 Gallardo
베르토네 시절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카운타크는 당시 기준에서 충격 그 자체였다. 고전적이고 우아한 곡선의 스포츠카가 대세였던 1970년대 초 간디니는 쐐기형 직선과 잭나이프식 도어를 갖춘 미드십 수퍼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페라리를 꺾어보고자 했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경영악화로 1970년대에 이미 주인이 바뀌었지만)의 창업 이념은 카운타크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적 디자인과 거대한 V12 엔진, 드라이버를 괴롭히는 뻑뻑한 클러치 등 평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였다. 74년부터 1990년까지 2,042대가 생산되었다.
람보르기니는 경영 부진으로 여러 번의 매각을 거치다가 1987년 크라이슬러로 넘어간 데 이어, 다시 인도네시아 메가테크를 거쳐 1998년 폭스바겐/아우디그룹에 안착했다. 당시 그룹 회장이었던 F. 피에히는 람보르기니를 아우디 디비전에 배치하고 신차개발을 독려했다.
카운타크는 디아블로를 거쳐 현재 무르시엘라고로 이어졌지만 지금의 람보르기니 주력 모델은 베이비 람보르기니인 가야르도다. 2003년 데뷔한 가야르도는 무르시엘라고 축소판 성격으로 미드십에 V10 엔진을 얹고 네바퀴를 굴린다. 쐐기형 노즈와 높은 뒷부분,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E기어로 불리는 반자동 변속기를 얹어 편의성을 높였다. 베이비 람보는 큰 인기를 끌어 데뷔 7년 만에 1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 이것은 람보르기니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올 3월 등장한 최신형 LP570-4 수퍼레제라는 V10 5.2L 엔진의 출력을 570마력까지 높여 0→시속 100km 가속 3.4초, 최고시속 325km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로터스
1984 Esprit
2010 Evora
천재적인 경주차 디자이너이자 로터스 창업자였던 콜린 채프먼은 1982년 심장마비로 54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한 사람의 힘으로 성장해온 메이커는 이런 경우 구심점을 잃고 어려움을 겪기 마련. 당시 로터스에는 엑셀과 에스프리 두 가지 라인업이 있었다. 하나는 당시 교류가 많았던 토요타의 부품을 많이 사용한 엑셀, 또 하나는 미드십 GT 성격의 에스프리였다.
온통 직선으로 구성된 에스프리의 디자인은 전위적이면서 미래적 감각으로 가득했다. 데뷔는 1975년 파리오토살롱. 백본 프레임에 파이버글라스 보디를 얹고 미드십에 4기통 2.0L 엔진을 얹었다. 160마력(유럽형 140마력)이었던 출력은 대단치 않았지만 1톤 남짓한 무게 덕분에 순발력을 뽐냈다. 후에 터보 엔진은 물론 V8 3.5L까지 얹어 페라리, 포르쉐와 경쟁했던 에스프리는 2004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어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말레이시아 프로톤 소속인 로터스는 여전히 본사를 영국에 두고 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모델은 2008년 영국 모터쇼에 공개한 후 2009년 양산을 시작한 에보라. 95년 엘리제 이후 플랫폼 공유와 마이너 체인지만으로 버텨 오던 로터스가 오랜만에 선보인 완전 신모델이다. 뒷좌석과 편의장비를 다느라 무게가 1.4톤 가까이 늘었지만 V6 3.5L 280마력으로 0→시속 100km 5.1초, 최고시속 261km의 성능을 낸다.
메르세데스 벤츠
1984 W123
2010 E class
자동차의 아버지 칼 벤츠가 창업한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창업한 다임러는 1926년 손을 맞잡았다. 회사명은 다임러 벤츠가 되었지만 자동차 브랜드는 다임러사의 모델명이었던 메르세데스를 사용해 지금의 메르세데스 벤츠로 불렸다. 오랜 역사와 프리미엄 이미지에 혁신적인 기술 탐구, 화려한 레이싱 전적까지 갖춘 메르세데스 벤츠는 드높은 브랜드 가치를 자랑해왔다.
프리미엄시장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못했던 1980년대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위상은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었다. E클래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W123은 1970년대 메르세데스 벤츠의 엔트리 모델에서 발전되었지만 1982년 콤팩트 세단 190E(지금의 C클래스)가 발표되면서 미들 클래스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전작인 W114/115는 270만 대 판매되었을 만큼 높은 인기와 판매대수를 자랑하는 매우 중요한 모델이었다. 그런 만큼 세단, 쿠페, 왜건 등으로 만들어졌고 엔진 선택권도 다양했다. 다만 이름은 지금처럼 E클래스가 아니라 엔진 배기량에 따라 280E, 240D, 300D 등으로 불렸다.
W123은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충돌 테스트를 통해 충격흡수구조를 갖추었고, 1981년에는 ABS와 에어백을 옵션으로 준비하는 등 당시 가장 안전한 차로 손꼽혔다. 1980년 판매대수(20만2,252대)가 동시기 골프 판매량(20만892대)을 앞섰으니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W124에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240만 대 가까이 생산되었다.
26년이 지난 지금, 4번의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치면서 E클래스로 이름을 바꾸고 스타일도 완전히 새로워졌다. 2009년 등장한 현행 E클래스(W211)는 고전적인 네 개의 눈을 직사각형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보디라인도 직선을 강조해 한결 공격적이고 스피디한 감각으로 거듭났다. 기존 디자인과 차별화된 모습이지만 시장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에서도 판매 1위를 달리며 8,000대 가까이 팔려나갔다. 가솔린 직분사 엔진 CGI와 블루이피션시 기술을 사용한 직분사 디젤 CDI 엔진으로 성능과 연비, 환경성능을 추구했고, 네바퀴굴림 4매틱과 AMG의 고성능 버전 외에도 쿠페와 카브리올레 등이 준비되었다.
강성이 30% 높아진 섀시와 운전자의 주의력 저하를 모니터링하는 어텐션 어시스트, 액티브 헤드레스트 넥프로, 액티브 보닛 등 오랜 안전 노하우와 첨단기술을 집약한 결과 미국 도로안전보험협회(IIHS)로부터 사고 사망률이 가장 낮은 차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변속기가 5단 자동에서 7단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미쓰비시
1984 Galant Σ
2010 Lancer
미쓰비시자동차는 1870년 해운회사 츠쿠모상회의 자동차사업 부문에서 시작된 만큼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50년 회사가 분리되면서 자동차 부문이 중일본공업이 되었지만 1964년 분할되었던 3사가 합병하면서 미쓰비시중공업이 되었다. 이렇게 미쓰비시 자동차는 1970년 그룹에서 분리될 때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대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80년대 미쓰비시의 주력차종은 갤랑이었다. 원래 콜트의 가지치기 버전으로 1969년 등장한 이후 인기에 힘입어 독립 모델로 발전을 거듭한 갤랑은 해외시장에도 진출하며 미쓰비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83년 풀 모델 체인지된 5세대는 시리즈 최초의 FF차로 휠베이스가 2.6m로 늘어나 당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84년 추가된 가변 밸브 기구가 달린 4기통 터보 엔진은 200마력의 최고출력으로 직선 가속에서는 닛산 스카이라인이나 페어레디Z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또 이듬해 독일에서는 권위 있는 골든 스티어링 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갤랑은 현재 9세대를 선보였지만 최신 갤랑은 미국시장에 주력한 모델로 일본과 한국 등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미쓰비시의 최근 라인업은 데보네어나 디아만테 등 고급차 혈통이 사라진 것이 사실. 회사의 상황이 좋지 못해 경쟁력 있는 중소형차와 크로스오버 쪽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미쓰비시 주력모델은 누가 뭐래도 랜서(일본에서는 ‘갤랑 포르티스’로 팔린다). 슬랜트 노즈의 날렵한 얼굴을 가진 현행 랜서는 랜서 에볼루션X의 이미지를 담은 스포티한 디자인이 매력 포인트다.
닛산
1984 Bluebird
2010 Altima
1980년대 일본 메이커들은 연비 좋고 값싼 중소형차로 미국시장 점유율을 올려가고 있었다. 당시 닛산의 주력차종은 79년 데뷔한 6세대 블루버드. 블루버드의 마지막 FR형이었던 910형은 93년까지 무려 14년간 생산되었으며 데뷔 후 27개월간 일본시장 1위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주력시장으로 떠오른 미국을 의식해 수출형 맥시마가 추가되었고, 초대 맥시마 G910형(1981년)에 이어 84년에 U11형이 데뷔했다. 2세대 블루버드 맥시마는 미국형은 물론 일본시장용에도 V6 버전을 추가해 점차 고급화되는 소비자 요구에 대응했다. 맥시마 라인업은 87년부터 맥시마로 개명하고 독립 모델이 되었다.
26년 전에 비해 닛산 라인업은 한층 다양화되었지만 블루버드의 혈통은 현재 알티마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수출 첨병이었던 알티마는 지금도 미국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생산은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진다.
블루버드 SSS를 베이스로 93년 데뷔한 알티마는 사이즈를 꾸준히 키워 현재는 길이 4.8m가 넘는 당당한 중형차로 성장했다. 2007년 데뷔한 지금의 4세대는 3세대 알티마의 날렵한 노즈와 쿠페 느낌의 루프라인을 유지했고, 최근 마이너 체인지로 범퍼를 부풀린 결과 전체적으로 밸런스 좋은 모습이 되었다. 엔진은 4기통 2.5L와 V6 3.5L 두 가지. 토요타에서 제공받은 기술로 하이브리드 버전을 추가했고 쿠페 버전도 있다.
푸조
1984 205
2010 308
205은 푸조 역사상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부흥을 이끈 모델로 1979년 이후 로봇을 이용한 푸조의 현대적인 생산 시스템에서 생산된 첫 작품이다. 길이 3.7m의 콤팩트한 크기에 이태리 피닌파리나 디자인의 실용적인 해치백 보디를 얹었다.
작은 크기는 유럽의 복잡한 도심에 안성맞춤이었고 실내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앞바퀴굴림을 채택했다. 45마력 1.0L, 1.1L, 80마력 1.3L 가솔린 엔진과 50마력(이후에 60마력으로 업그레이드) 디젤 엔진을 사용했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모델은 84년 데뷔한 205 GTI. 골프 GTI를 겨냥해 등장한 3도어 고성능 해치백으로 1.6L 105마력 엔진을 얹어 0→시속 100km 가속 9.5초, 최고시속 190km의 성능을 냈다. 허나 젊은 스포츠 매니아들은 출력보다 GTI의 민첩한 코너링 성능에 더 매료되었다. 기본형과 차별화하기 위해 휠도 13인치에서 14인치로 키웠다.
실용성을 추구한 푸조의 2010년 핵심 라인업은 308이다. 307의 뒤를 이어 2007년 X08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열면서 데뷔했다. 같은 플랫폼이지만 307에 비해 볼륨을 키우고 내외장을 고급스럽게 다듬었다. 3도어와 5도어 해치백, 왜건(SW), CC(쿠페 카브리올레) 등 다양한 모델로 선택의 폭을 넓혔으며 독특한 펠린룩과 HDi 디젤 엔진의 높은 효율로 사랑받고 있다.
WRC를 달군 205 T16
푸조는 205 발표와 함께 랠리 참가를 강조했다. 그러나 양산차 그대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장 토드(현 FIA 회장)의 지휘 아래 배기량을 1.8L로 키우고 터보를 붙이면서 네바퀴굴림으로 변신시킨 205 T16을 개발했다. 그룹 B의 호몰로게이션 규정에 맞춰 200마력 로드고잉 버전이 나왔지만 랠리 머신의 출력은 400마력 이상이었다. 205 T16으로 푸조는 85년과 86년 WRC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롤스로이스
1984 Silver Spirit
2010 Phantom
경영부진에 시달리던 롤스로이스가 비커스사에 팔린 것이 1980년. 1984년 당시 롤스로이스에는 실버 스피릿, 카마르그, 팬텀과 코니시 등이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스텐더드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실버 스피릿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그릴과 당당한 크기의 차체, V8 6.75L 엔진을 결합한 실버 스피릿은 당시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세단이었다. 이 플랫폼을 바탕으로 실버 스퍼와 실버 돈, 리무진 등이 제작되었고, 산하에 있던 벤틀리에서는 뮬산과 에이트 시리즈가 태어났다.
롤스로이스는 90년대 말 BMW와 폭스바겐의 인수전쟁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폭스바겐이 벤틀리와 전통의 크루공장 그리고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다. 하지만 엔진을 공급하며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BMW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BMW가 롤스로이스 항공분야가 가지고 있던 브랜드 네임 권리를 사들임으로써 반쪽짜리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이름표 한 장 달랑 받아든 BMW는 영국 굿우드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고 신모델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등장한 모델이 2003년 공개된 팬텀. 완전히 새로 개발된 신세대 롤스로이스의 등장이었다. 전통을 이어받은 그릴과 플라잉 오브 엑스터시, 6.75L의 배기량을 고수한 반면 알루미늄 섀시와 V12 엔진 등 신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휠베이스에 따라 두 가지 버전이 있으며 플랫폼을 공유하는 쿠페와 드롭헤드 쿠페(컨버터블)도 추가되었다. 첫해 300대에 불과했던 생산량이 점점 늘어 지금은 연간 1,000대 이상 만들어지고 있다.
포르쉐
1984 911 Carrera
2010 911 Carrera
천재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창업하고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성장시킨 포르쉐는 ‘스포츠카’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첫손에 꼽히는 브랜드. 사실 포르쉐를 지금과 같은 존재로 성장시킨 주인공은 페르디난트의 큰아들 페리와 911을 디자인한 그의 손자 부치 포르쉐였다. 부자간의 합작품인 911은 1964년 처음 등장했는데, 작고 귀여우면서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디자인은 물론 RR 스포츠카라는 독특한 구성에 뛰어난 성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포르쉐의 성공은 바로 911이라는 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틀-356에서 이어받은 리어 엔진 리어 드라이브 레이아웃에 2+2 시트 구성으로 GT카의 성격을 갖추었다. 게다가 엔진을 수평대형 6기통으로 만들어 356의 성능을 손쉽게 능가했다.
911은 여러 번의 모델 체인지가 있었지만 1977년에 내외장을 크게 손보고 모델 라인업을 SC와 터보 두 가지로 축소했다. 이때부터 시리즈2로 분류하는데 여기에는 911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FR 모델 928을 주력 모델로 밀고자 하는 경영진의 계산이 담겨 있었다. 84년형부터는 배기량을 3.0L에서 3.2L로 키우고 당시 최신예 엔진제어 시스템 DEE를 얹었다. 1975년 스페셜 버전에 처음 쓰였던 카레라(Carrera)라는 명칭도 이때를 기점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포르쉐를 이끈 CEO는 바로 벤덜링 비데킹. 그는 베이비 포르쉐의 혈통을 잇는 복스터는 물론 폭스바겐/아우디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SUV 카이엔, 4도어 세단 파나메라를 개발해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비데킹의 정책은 회사의 재무구조를 살찌웠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때 64억달러라는 엄청난 순이익을 믿고 폭스바겐 인수를 시도한 포르쉐는 미국발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부채가 급증, 결국 폭스바겐에게 역전 인수되는 처지가 되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포르쉐의 핵심 모델은 역시 911. 현행 911은 2005년 풀 모델 체인지된 형식명 997이다. 납작하게 누웠던 헤드램프를 조금 세워 전통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직분사 시스템으로 CO₂ 배출을 줄인 신형 엔진, 듀얼 클러치 반자동 변속기 PDK 등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진보되었다. 기본형 카레라가 3.6L 325마력, 고성능 카레라 S가 3.8L로 355마력을 내고 여전히 뒷바퀴굴림과 4WD인 카레라4 두 가지 구동계를 고를 수 있다. 911 터보는 3.6L 트윈 터보 480마력 엔진으로 0→시속 100km 가속 3.7초, 최고속도 310km의 성능을 자랑한다.
토요타
1984 Camry
2010 Camry
2008년 경제위기 속에서도 892만2,000대를 판매하며 세계 최대 메이커에 올랐던 토요타. 미국에서 불거진 리콜 문제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미국정부의 계산된 압박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다시 기세를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이하쓰와 히노 외에 스바루의 대주주가 되면서 거느린 브랜드도 늘어났다. 특별히 모나지 않으면서 무난한 토요타의 차 만들기는 ‘80점주의’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성공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토요타 세계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캠리는 1980년 처음 등장했다. 발표 당시의 이름 셀리카 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셀리카의 가지치기 모델. 82년 등장한 2세대는 구동방식이 FF로 바뀌면서 차체 사이즈를 키워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수출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캠리의 역사는 무척이나 화려한 전적을 남겼다. 일본에서는 마크 시리즈의 위세에 눌렸지만 미국에서는 혼다 어코드와 함께 승용차시장 베스트셀러 자리를 다투어 왔다. 세계적으로 누적판매대수 1,000만대를 넘어선다.
현행 캠리는 2006년 등장한 8세대로 2.5L 175마력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얹고 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한국 판매를 시작했다. 함께 발표된 캠리 하이브리드는 엔진과 모터가 196마력의 시스템 출력을 내고 19.7km/L의 뛰어난 연비를 자랑한다.
볼보
1984 760/740
2010 S60
스웨덴 태생의 볼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갈고닦은 안전철학을 자랑으로 삼아온 브랜드다. 창업은 1927년. 안전분야에 쏟은 노력에 있어서만은 메르세데스 벤츠에 비견될 정도다. 1998년 64억달러에 포드에 인수된 후 포드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활동해왔다.
80년대의 볼보를 떠올려 보면 ‘크고 각지다’라는 두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700 시리즈가 대표적. 종이공작이나 레고를 연상시킬 만큼 보닛과 캐빈, 트렁크가 선명하게 구분된 3박스 형태를 보여주지만 그 덕분에 실내공간이 여유로웠다. 2.3L 터보와 V6 2.9L, 2.4L 디젤 엔진이 있었고 핸들링 성능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84년에는 장비를 간소화하고 2.3L 엔진을 추가한 염가형 740도 추가되었다.
볼보는 최근 미국의 경제위기 영향으로 포드가 매각을 결정하면서 중국 질리자동차의 일원이 되었다. 새로운 체제의 볼보에서 주력 모델은 700 시리즈의 혈통을 이어받은 S80이 아니라 중형 세단 S60. 올 봄 공개된 2세대 S60은 기존 볼보의 무덤덤한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한 감각적인 얼굴과 스포티한 보디라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BMW 3시리즈, 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등과 경쟁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 4기통과 6기통 가솔린 디젤, 4/5기통 직분사 디젤 터보 엔진을 얹고 장애물을 자동 감지해 차를 멈추는 페데스트레인 디텍션 시스템 등 첨단 안전장치로 무장했다.
폭스바겐
1984 Golf Mk1
2010 Golf Mk6
토요타의 위기를 발판삼아 최근 세계 최대 자동차 자리를 노리는 폭스바겐. 그 시작점은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히틀러의 요청으로 개발한 국민차였다. 폭스바겐이라는 사명은 ‘국민차’를 뜻하는 독일어. 2차대전 동안 군용차로 개조되었던 이 차가 종전 후 양산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무당벌레를 닮은 모습 때문에 ‘비틀’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비틀은 193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2,152만9,464대가 생산되어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비틀 이후 폭스바겐 대표 모델 역할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골프다. 1974년 등장한 1세대(Mk1)는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2박스형 해치백 보디에 수랭식 4기통 엔진을 얹고 있었다. 당시 폭스바겐은 잘 사용하던 바람 이름 대신 걸프스트림(멕시코만류)에서 골프라는 이름을 따왔다. 골프는 높은 효율성과 품질 및 성능으로 큰 인기를 끌어 단번에 인기차 대열에 등극했다. 더구나 때마침 불어닥친 석유파동이 골프의 미국시장 성공에 순풍이 되어주었다. 폭스바겐은 1976년 골프에 디젤 엔진을 얹어 승용 디젤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시켰고, 1.6L 108마력 엔진을 얹은 고성능형 GTi로 핫해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소형차로 아우토반에서 BMW, 벤츠를 추월하는 것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에게 꿈과 같은 일이었다.
1984년은 1세대 골프가 풀 모델 체인지를 앞둔 시기. 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골프가 무려 6세대로 발전했다. 그동안 4반세기가 흘렀지만 골프의 인기는 여전하며, 유럽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 2008년 파리모터쇼에서 공개된 최신 골프는 5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며 디자인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차는 지난해 유럽에서만 57만 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엔진을 모두 모으면 10여 가지에 이른다. 대표적인 것으로 기본형 1.4 80마력과 트윈 차저 방식의 1.4TSI 160마력, GTI의 2.0 직분사 터보 210마력과 골프 R의 2.0L 터보 270마력 등이 있다. 디젤 쪽도 1.6L 블루모션부터 GTD의 2.0L 170마력까지 5가지. 1.6 TDI 블루모션은 연비 26.3km/L(복합)에 km당 CO₂ 배출량이 99g에 불과하다. 5/6단 수동 변속기 외에 자동은 대부분 트윈 클러치 방식의 DSG로 교체되었다. 한때 한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골프는 수입차시장 확대에 힘입어 점점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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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겨찾기 해놨다가...저녁시간날때, 천천히 볼께요!! 지금은 근무시간..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