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에 대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지인이 메일로 전한 것인데 하루 동안에 엄청난 매출이 오르고 정말 50% 이하 할인이 많아서 그 전날에 필요한 물건이 있는 곳에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줄을 대신 서주는 알바가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우리도 '코리아세일페스터'라는 할인 행사를 시작했지만 그 반응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고 샀건만…봉이 김선달하고 뭐가 다른 겁니까? 이거 사기입니다.”
11번가가 11일을 맞아 진행한 ‘11번가의 날’ 행사에서 불만을 가진 소비자(아이디 bobi***)가 이날 행사상품 반품을 요구하며 11번가에 게시한 글이다. 11번가는 SK텔레콤이 지분의 80.3%를 보유한 SK그룹 계열 이커머스(e-commerce·전자상거래) 기업이다.
11번가의 날은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미국 최대 세일 기간)’를 표방한 제5회 ‘2019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 행사의 일환이다. 코세페는 지난 1일부터 22일까지 내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다양한 할인·판촉 행사를 진행 중이다.
국내 최대 쇼핑 축제가 중반으로 접어들었지만 소비자는 일부 유통기업 상술에 불만을 터트린다. 11번가는 11일 SPC그룹의 제빵 매장 파리바게뜨에서 1만원 상당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을 판매했다(89% 할인). 상품설명서에 혜택·할인이라는 단어는 11번 나오지만 정작 최소주문금액·주문방식제한 등 할인 조건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별도 애플리케이션 2개 설치하고 2개사에 가입해서 개인정보 넘겨주는 과정을 거쳐 할인쿠폰을 구하면, 이번엔 배달애플리케이션에서 1만2000원 이상을 배달할 경우에만 2000원 상당의 쿠폰 1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쿠폰을 등록해야 하는데, 쿠폰을 등록하고 나면 환불조차 불가능하다. 이 쿠폰을 산 소비자가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욕이 튀어나오더라”며 하소연한 배경이다. 이 상품은 11일 오전에만 100명이 넘는 소비자가 반품을 요구했다.
정가를 올려서 할인하는 수법도 여전하다. 또 다른 이커머스 쿠팡은 11일 정가 29만9000원짜리 패딩을 8만9900원에 할인·판매했다. 코세페때 사면 69%를 할인받고 배송비도 면제에, 별도로 899원을 적립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상품은 코세페 전인 10월부터 네이버쇼핑에서 원래 5만9900원에 판매하던 제품이다. 코세페 기간 구입하면 원래 가격보다 150%(3만원) 비싼 가격에 덤터기를 쓰는 셈이다.
코세페가 한창인 11일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국가 최대 쇼핑 축제(광군제)가 개막했다. 코세페와 비교하면 만족도는 천지차이다.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온라인쇼핑몰(알리익스프레스)를 애플리케이션 설치하고 시험 삼아 결제했다. 일단 첫 가입 고객에게 1달러(1200원)에 1개의 제품을 제공했다. 정가 1만원 이내의 저렴한 제품이긴 하지만, 일단 아이디 당 1개의 제품을 거저 주는 셈이다. 선택할 수 있는 1달러 제품의 가짓수는 대략 수천가지다. 정확한 개수를 세어보려고 수 분간 화면을 드래그하다가 애플리케이션이 다운됐을 정도로 많다.
배송 정책도 합리적이다. 불과 몇백 원짜리 제품도 최대 2달 이내의 배송기간을 감내한다면 무료배송이 가능하다. 제품을 빠르게 받아보고 싶다면 일정 금액의 배송비를 지불하면 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제조사·이커머스가 배송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쿠폰 혜택도 실질적이다. 한국처럼 특정 카드만 이용하라거나 배달앱을 사용하라는 둥 제약이 별로 없다. 또 업체가 발행한 쿠폰과 이커머스가 발행한 쿠폰을 중복 할인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보다 실용성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당연히 광군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알리바바는 11일 하루만에 매출 2684억위안(44조8000억원)을 달성했다.
이에 대해 코세페추진위원회는 “인구 규모(14억)가 다르고 시장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코세페는 할인율보다 다양한 제품을 비교·선택하는 합리적 소비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11번가에서 89% 할인하는 파리바게뜨 쿠폰을 산 소비자 중에서 비슷한 쿠폰을 재구매하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최소한 배신감은 주지 말아야 코세페가 말하는 합리적 소비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중앙일보, 문희철 산업1팀 기자.
작년에도 중국 알리바바의 광군제 하루 매출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우리 코세페는 여러 제한이 많아서 비교가 불가하다는 얘기를 내놓더니, 이번엔 합리적 소비 기회를 제공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나 봅니다.
물론 직접 비교로 매출을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소비자들이 대하는 불랙프라이데이, 광군제와 우리 코세페는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기간에 무엇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이 없습니다. 괜히 언론에서만 떠드는 유령 행사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