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선생 묘(경기 기념물 106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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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곤선생 묘역 전경 |
성격이 너그럽고 풍채가 좋아 복옹(福翁)이라 불려짐
조선 세종 때 명망 높은 윤곤(尹坤 ?~1422)선생의 묘로 본관은 파평(坡平), 시호는 소정(昭靖)이다. 윤곤은 고려말 때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동생 향(珦)과 함께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높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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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와 정려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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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려각 안쪽 상단에 정려가 걸려 있습니다. |
뿐 만 아니라 풍채가 매우 좋은데다가 성격이 너그럽고 후해서 ‘복옹(福翁)’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졌다. 조선 정종 2년(1400)에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날 때 동지총제(同知摠制)로서 이방원(李芳遠)에게 가담하여 협력한 공으로, 태종 원년(1401)에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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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 입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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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 입구 주변 및 담장 너머로 바라 본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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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 좌측에는 재실인 듯... 입구에는 용지병사(龍池丙舍) 현판이, 안쪽 건물에는 명학당(鳴鶴堂)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태종 6년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로 있을 때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파평현에 귀향을 갔다가 세종 즉위년(1418) 세종이 즉위하자 평안도 관찰사로 기용되어 기생의 풍류를 폐지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등 여러 공적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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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에서 우측 산자락을 끼고 개울을 쭉 따라가면 작은 다리가 나옵니다. 다리를 건너서 계단을 오르면 묘역이 나타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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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다 올라서 바라 본 묘역 입구 모습 |
이로 인해 이듬해 이조판서(吏曹判書)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고, 그 뒤 우참찬(右參贊)까지 역임하였다. 묘역 규모는 300㎡이고, 봉분의 규모는 높이 2m, 둘레 30m로 묘역은 사성(莎城)을 둘렀으며 근래에 와서 사군자(四君子)를 조각한 방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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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곤선생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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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과 정면에서 바라 본 윤곤선생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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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비에 윤곤선생 이름만 새겨진 것을 보면 이 묘역은 선생의 단묘이며, 부인은 다른 곳에 묻히신 것 같습니다. |
배계절(拜階節 : 무덤 앞 계절 밑에 절을 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든 땅)에는 약간 왼쪽으로 4각의 장명등(長明燈)이 배치되어 있고 그 좌우로 문인석을 세워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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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내 석물 모습. 상석과 장명등 그리고 봉분을 두른 호석은 근래에 조성된 것 같습니다. |
전체적인 석물들은 양식상으로 보아 조선 후기 묘비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묘역 아래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윤상익(尹相翊)이 짓고 윤조영(尹祖榮)이 썼으며 윤용식(尹容植)이 머리글을 썼다. - 파주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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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곤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윤곤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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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부분의 다리를 건너서 계단을 오르면 윤곤선생 묘역에 오르게 됩니다. 소재지 : 경기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산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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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하단의 시작 지점에 윤곤선생 사당이, 지도 상단의 A 지점에 윤곤선생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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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상단의 A 지점에 윤곤선생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 하단의 연풍초교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