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인의 눈물
강 대 식
작은 키에 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여인이 살며시 사무실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녀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는 몹시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웃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써 웃어 보이려는 반쪽 웃음에 수심도 가득해 보였다.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수줍은 듯 살며시 걸어와 자리에 앉더니 가방을 열고 무엇인가 서류를 하나 꺼내 놓는다. 직감적으로 그 서류가 소장임을 알았다. 서류 가장자리에 붉은 테가 선명하게 찍힌 원고가 보낸 소장이었다. 외국 여자가 붉은 테가 선명한 소장을 가져왔다면 분명 이혼사건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것처럼 그 서류는 이혼 소장이 분명했다. 그녀의 한국말 수준은 매우 떨어졌다.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하는데 잘 듣고 앞뒤 말을 맞추어 보아야 겨우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의사소통은 잘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장을 살펴보니 어느 정도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팜티푸엉으로 23살의 베트남 출신이었다. 그녀는 2010년 5월 결혼중개업체를 통하여 나이가 19살이 더 많고 재혼인 남편을 소개 받고, 바로 결혼했다. 한국에 온 후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혼 소송을 당한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돈을 많이 가져다 사용했으며, 시부모를 공양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폭행하여 더 이상 혼인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혼 소송은 유책 배우자가 누구냐에 따라 이혼 청구가 가능할 수도 있고 청구가 기각될 수도 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타국에 시집와서 낮선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는데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이혼을 당한다면 그녀는 고통만 안고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남편의 주장이 맞는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그녀의 주장이 맞는지 살펴보았다. 그동안 혼인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내용을 말해보라고 시키고 메모하면서 들어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장의 내용과는 달리 오히려 남편과 시어머니가 그녀를 돌보지 않고 심한 부당한 대우를 했으며, 두 사람은 평소에 수시로 부친을 폭행했다고 하였다. 말을 마친 그녀는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동영상 속에는 남편이 천륜(天倫)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주먹과 발로 사정없이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세상이 변하고 수없이 많은 패륜아(悖倫兒)들이 생겨나지만 실제 부모를 학대하는 동영상을 보니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이혼 소송보다는 존속폭행죄로 형사고소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자신의 부모를 무자비하게 폭행할 수 있을까. 아무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려 애써도 쉽게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이혼을 당할 사람이 오히려 남편으로 보여 졌고, 유책 배우자는 그녀가 아닌 그녀의 남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아직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는데 이혼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유책배우자가 되어 이혼을 당하면 국내에서 추방되기 때문이다. 국적 취득 요건이 강화되어 지금은 단순하게 한국국적을 가진 배우자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혼인생활에 파탄이 온 것이라고 자인(自認) 하여도 법무부는 쉽게 국적을 내주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국적취득을 목적으로 편법을 써 왔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다. 그녀에게 남편이 잘못하여 이혼하는 것으로 판결을 받으면 국적취득이 가능하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서 금방 화색이 돌았다. 사무실에 막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얼굴빛이 달라졌다. 사람의 얼굴 표정이 이렇게 순간적으로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했다. 꼭 승소하여 억울하게 베트남으로 쫓겨 가는 일이 없도록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남편의 소장기록을 반박하며 몇 일간 반소장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였다. 한 달여가 흐른 뒤 첫 공판기일이 지정되었다. 이혼사건은 첫 공판기일을 조정으로 지정한다. 그만큼 이혼소송은 조정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다. 조정 당일 나는 그녀에게 “조정에 나가 절대 조정에 응하지 말고 판결을 받자”고 알려 주었다. 조정이나 화해로 이혼이 결정되면 나중에 국적 취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도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소장에 대하여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하였다. 나는 그녀가 휴대폰으로 촬영해 놓은 동영상을 증거물로 만들어 법원에 제출하였다. 자신이 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녹화된 동영상을 본 그녀의 남편은 금방 태도가 달라졌다. 펄펄 뛰던 반박서류와는 달리 빨리 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고 싶어 했다. 그 날 오후 조정에 나갔던 변호사가 조정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나는 너무 놀라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변호사는 “그녀가 무슨 일인지 남편의 잘못으로 이혼하는 것이라는 문구를 화해조서에 넣고 이혼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여도 괜찮다”고 하여 조정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분명히 조정에 들어가기 전 그렇게 조정을 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는데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가슴이 답답했다. 조정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변호사가 아니고 당사자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개중에는 빨리 이혼소송을 종결시킬 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을 알면서도 조정에 응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조금 더 확실하게 조정의 내용을 이해시키고 조정에 응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몰려든다.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떠난 기차를 세울 수 없듯이 이미 조정으로 결정 된 사항이라 다시 재판을 할 수도 없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 법률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가장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겁다.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해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며칠 후 그녀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눈에는 이미 한가득 눈물이 고여 있다. 말을 걸면 금방 소낙비를 쏟아 붓듯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조정으로는 국적취득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도 알아보고 낙담하여 찾아왔던 것이다. “왜 조정을 했느냐”고 묻자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어깨를 흐느끼며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5년을 타국에 시집와서 힘들게 참으며 살아왔는데 한국 국적조차 얻지 못하고 쫓겨 갈 생각을 하면 무척이나 두렵고 아쉬울 것이다. 시어머니는 매일 그녀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시아버지를 폭행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늘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매일 눈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내가 무엇을 위해 대한민국에 왔는지, 이렇게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내가 살아가는 삶이 진정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인지 회한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오직 남편 하나 믿고 와서 남편에게 외면당하고 시어머니에게 늘 꾸지람과 무시와 학대를 당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 아팠다고 울먹이는 그녀가 더 작아 보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내가 숨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이 한 행동이 내가 저지른 일인 것처럼 부끄러웠다. 세계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 배우자를 학대하고 강제로 이혼을 하려는 사람을 믿고 한국에 왔다는 그녀에게 한국인인 까닭에 너무나 민망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너무 싶게 외국의 여인을 수입하듯 데려와 결혼을 하고 너무나 차갑게 물건 버리듯 이혼을 청구하는 사람들이 같은 하늘아래에서 호흡하고 산다는 것이 싫어졌다.
그녀에게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국적을 취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국적만은 꼭 취득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미움을 가지지 않도록 해 주고 싶었다. 그녀가 결혼 전 꿈꾸어 왔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환상을 잃지 않도록 보듬어 주고 싶었다. 법무부 소속인 청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을 문의하였다. 사실관계를 이야기 하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물어 보았더니 먼저 국적취득심사를 청구하면 검토해 보겠다고 한다.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믿었다. 국적 취득 신청서를 만들고 첨부서류로 조정조서와 남편이 부친을 폭행하는 동영상을 CD에 복사하여 건네주었다. 그리고 신청서를 접수해 보고 국적취득이 허가 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알려 주었다. 조금은 마음이 놓였는지 그녀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주섬주섬 서류를 챙겨 가방에 넣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사무실을 나섰다.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힘없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말 못할 아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딸 또래의 그녀가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할 아픔도 느껴진다. 그녀의 가슴에 아픔을 남겨준 그녀의 남편에 대한 증오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나 스스로 부끄럽다는 죄책감이 몰려든다.
이제 다시는 이 땅을 기회의 땅이라 여기고 찾아와 한국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수많은 다국적 여인들의 눈에 그녀의 눈물과 같은 서러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처지의 외국 여성들의 이혼소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첫댓글 다시는 이 땅을 기회의 땅이라 여기고 찾아와 한국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수많은 다국적 여인들의 눈에 그녀의 눈물과 같은 서러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처지의 외국 여성들의 이혼소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