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사에서 아이아코카가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의 일화다. 그는 덮개가 없는 자동차인 '컨버터블카'를 개발하기 위해서 기술책임자에게 모형을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기술책임자는 표준 운영 절차를 검토해 9개월 안에 신제품을 만들어보겠다고 답변했다. 표준 절차대로라면 9개월도 더 걸리겠지만 회장의 지시라서 최대한 단축하겠다고 한 답변이었다. 그때 아이아코카는 화를 벌컥 내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아직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군. 당장 가서 차 한 대를 구해 가지고 윗부분을 쇠톱으로 잘라내란 말이야!" 결국 아이아코카는 그가 원하는 시제품을 즉시 갖게 되었다. 그는 직접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반응을 조사했다. 반응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그는 그 차의 생산을 지시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한동안은 빨리빨리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우리의 고속 성장을 이룬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한다. 특히 속도가 생명인 21세기의 환경에서는 생각의 속도를 높이고 행동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광고 카피를 기억한다. 가전 제품 하나를 살 때도 선택을 고민하는데,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선택으로 10년을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10년씩 사용하던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와 달리 요즘은 기껏해야 1~2년을 쓰는 전자 제품도 많다. 휴대전화 · MP3 · 미니 노트북 등은 새로운 기능을 갖춘 최첨단 제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1~2년만 지나도 구식이 되어버린다. 개인들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디자인도 빨리빨리 바뀌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한 번의 선택이 더 이상 10년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사람들이 속도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신중하고 진지한 것'과 '가볍고 감각적인 것' 중에 창의성과 더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신중하고 무거운 것보다는 가볍고 감각적인 것이 창의성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한국 축구는 골 결정력이 낮다는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골 결정력이 낮았던 이유를 다음 둘 중 하나에서 찾는다면 어느 쪽이 더 맞는 분석일까?
- 선수들이 신중하게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에 - 선수들이 지나치게 신중하게 플레이하기 때문에
신중함은 현대 축구에서 미덕이 아니다. 생각의 속도가 경기 속도로 이어진다. 빠른 판단을 넘어 감각적인 판단만이 빠른 축구를 가능하게 한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공을 차려고 해서는 빠른 판단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주저하면 이미 때는 늦는다. 과거에 한국의 공격수들이 골 결정력이 약했던 이유도 빠른 경기 흐름 속에서 한 박자 빠른 판단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빠른 판단과 감각적인 플레이는 오랜 연습과 자신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우리는 과거에 너무 진지하게 축구를 했다. 특히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애국심을 발휘하며 축구를 하다 보니, 진지하고 신중한 플레이만 하게 됐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치게 신중하고 진지한 것이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축구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업무를 지나치게 신중하게만 처리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감각과 창의성을 발목 잡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둘 수 있다는 충고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장고를 하다 악수를 두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장고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악수인 셈이다. 신중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속도 · 직관 · 감각이다. 신중하면서도 자신을 믿으며 용기를 갖고 자기 마음과 직관이 하는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신중함이 그보다 중요한 것들을 가로막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략적 직관을 발휘하라 한편 직관에 따른다며 무턱대고 행동하다 보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면 직관은 어떻게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도 충분한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테니스를 배울 때 분명 손목과 팔꿈치 · 무릎 · 발 · 허리 등 각각의 자세와 라켓을 휘두르는 방법을 상세하게 배운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다고 해도 우리가 정말로 노력하지 않으면 실제로 테니스를 칠 수 없다. 상대방이 친 공을 받아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해야 한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친 공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 과정이 반복되면 그러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공을 받아낼 수 있게 된다. 영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어를 듣고 의미를 파악하고 문장의 논리적 구조를 생각하며 영어를 사용하지만, 좀더 익숙해지면 논리적인 생각이나 분석 없이도 자신도 모르게 영어를 말하게 된다. 영어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화하게 되는 것처럼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도 비슷하다. 개그맨이나 유명 MC들은 즉흥적인 애드리브나 수난적인 재치를 발휘하여 남을 웃기거나 분위기를 끌어간다. 사회를 보는 것도, 의도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의 과정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준비 과정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에 내제되어 있던 것이 발휘되는 것이다. 창의력도 마찬가지다. 보기에는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준비와 학습을 통해 마련되었던 직관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관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고, 또한 자신의 직관을 믿는 용기다. |
첫댓글 한국 축구에 골결정적인 문제는 신중함에 문제가 아니라 수준에 문제라 생각함,,,
단순히 슛팅을 보아도 왜국에 선수들에 킥을보면 완전히 강한 유효 슛팅인 반면에 우리나라 선수들에
슛팅은 느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뻥슛,,,,,
센터링을 보아도 외국서선수들은 슛인지 구분 못할정도에 빠르고 예리한데..
우리선수들은 수비가 다 알아보는 느린 센터링....
.........아무리생각해도 수준에 차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