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민씨(뒷줄 왼쪽) 가족이 충남 예산에 위치한 농장에서 허브 화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예산=현진 기자
[농촌 Zoom 人] 3대 함께 귀농한 유경민씨 가족
750평 규모서 로즈메리 등 재배 다년생에 생명력 좋아 부담 적어
카페·외식업체 수요 급증 한몫
아내는 ‘판매’…어머니는 ‘수확’ 각자 맡은 역할 충실히 해내
유휴지에 글램핑장 사업 계획 숙박·허브체험 공간으로 조성
“농사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냐 지역 청년 구심점 역할 할 것”
“치킨 배달이 안되고 택시가 잘 안 오려고 하는 것만 빼곤 우리 가족 귀농살이는 대만족입니다.”
10일 충남 예산군 응봉면 건지화리에서 부모님이 기거할 새집을 짓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유경민씨(42)에게 귀농하길 잘했느냐고 묻자 엄지를 치켜세웠다.
유씨가 이사 오면서 주민이 80여명에 불과한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유씨를 포함한 6명의 대가족이 새로운 주민이 됐기 때문이다. 두 아들 또한 이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이다.
유씨는 2018년 아내와 자녀는 물론 부모님까지 모시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는 현재 시설하우스 4개동을 합쳐 약 2500㎡(750평) 규모에서 로즈메리·커먼타임·레몬타임·애플민트와 같은 허브를 키우고 있다.
유씨는 한때 경기 부천, 충남 홍성 등지를 돌며 레이저를 이용한 철근 가공회사에서 일했다. 업무상 밤과 낮이 바뀌고, 가족과 대화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삶에 지쳐갔다. 그러다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행복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등을 이용해 틈나는 대로 딸기·꽈리고추·굼벵이 농가 등을 견학하며 무슨 농사를 지을지 차근차근 준비했다. 결국 재미없는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볕이 잘 들고, 평온한 시골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땅을 잡아 귀농하기로 작정했다.
유경민씨 가족이 운영하는 로즈메리농장.
“농촌에서도 바쁜 건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허브향을 맡으며 새벽을 맞이하고, 가족과 수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앞마당 잔디밭에서 석양과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은 농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사실 농촌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금은 든든한 우군이 된 부모님이지만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짓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강하게 반대했다. 귀농 직후에도 상황이 쉬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충남도가 추진하는 ‘충남 친환경 청년농부 육성사업’에 참여해 빠르게 시설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지만 초보 농사꾼에게 당장 ‘넉넉한 수입’이 보장될 리 없었다.
귀농 첫해 꽈리고추를 심었지만 밤낮으로 일해도 연간 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틈새시장을 노려보겠다며 국내 체류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잘 먹는다는 공심채·레몬바질 등을 심어봤으나 계절별 가격 등락폭이 커 손해만 봤다.
위기에 빠진 유씨를 구원한 건 허브였다. 다년생이라 땅을 자주 갈아엎을 일도 없거니와 생명력도 좋아 노동력이 덜 들기 때문이다. 때마침 카페나 외식업체를 중심으로 각종 음료에 향미를 더해줄 수 있는 허브에 대한 수요 급증도 한몫했다. 지난해 얻은 매출은 6000만원인데 올해에는 1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가내 분업도 원활했다. 3대가 함께 귀농해서였을까. 아내는 과거 직장 경험을 살려 온라인 마케팅과 판로 확보를 맡았다. 어머니는 수확작업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유씨는 시설관리를 총괄했다. 아이들은 일이 몰리면 가끔 고사리손으로 포장작업을 도왔다.
부모님의 ‘대외 교섭력’도 빛을 발했다. 건지화리 총무, 부녀회장을 각각 맡은 부모님은 가족과 마을 어르신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군에서도 우리 식구가 ‘3대 귀농’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며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앞으로 지역사회 일원으로 활기차고 희망 넘치는 농촌마을을 만드는 데 여섯 식구가 힘을 보탤까 합니다.”
일과가 모두 끝난 저녁 시간에도 그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농촌관광·치유농업을 연계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한 외식업체와 손잡고 올해 유휴지에 글램핑장 부지를 조성할 각오다. 유씨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힘을 합쳐 계단식으로 터를 닦고, 조경수를 심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농사를 짓다보니 1차산업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램핑 텐트에서 숙박하면서 허브를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겁니다. 인근 도시로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간직한 이곳이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 농촌관광 명소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허브 육묘장 완공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육묘장이 완성되면 생산성 높은 허브 원목을 자체적으로 공급할 뿐만 아니라 모종이나 묘목을 허브 체험객에게 판매할 제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까지 예산군청년농업인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한 그는 ‘공존의 가치’를 강조했다.
“농촌에 정착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농사라는 것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답니다. 앞으로 지역 청년의 구심점 역할도 하고, 허브에 관심 있는 후배 농부에게 영농 비결도 전수해주는 ‘더불어 잘사는 농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출처 농민신문 예산=이문수 기자